최근 몇 년간 한국 콘텐츠에 세계가 열광하고 있습니다. 주가로 비유하자면 연일 상종가를 치는 것과 같은 셈입니다. 다시 말하자니 입이 아픈 BTS는 수주에 걸쳐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했습니다. 최근 세계적인 록밴드 콜드플레이와 협업으로 다시 한번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했죠. 여성 K-팝 그룹인 블랙핑크는 유튜브 조회수에서는 BTS마저 따돌릴 정도로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출처 - SBS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이후 코로나19 여파로 영상 콘텐츠 소비가 늘면서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는 한국 드라마에 주목했습니다. <킹덤>이나 <사랑의 불시착> 같은 드라마가 범아시아적인 인기를 선도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K-드라마인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사상 최단기간에 1억 1100만 시청 가구를 넘기며 전 세계 시청률 1위 자리를 꿰찼습니다. 아울러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전 세계 90여 개국에서 1위에 등극하며 범지구적인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를 잡았죠.

 

출처 - 넷플릭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핼러윈이 끝나는 10월 말까지 <오징어 게임> 광고가 이어진다고 합니다. 핼러윈 특수를 맞아 드라마 등장인물들이 착용했던 가면, 옷, 신발 등이 그야말로 폭발적인 기세로 팔리고 있습니다. 특히 드라마 속 게임 참가자들이 신고 나왔던 하얀 실내화 같은 운동화의 경우 무려 7800%의 판매량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출처 – 트위터

 

이뿐이 아닙니다. '미국의 영혼'이라고 불리는 스포츠인 미식축구 경기에서 스타 선수가 <오징어 게임> 커스텀 신발을 신고 나와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신발에는 '오징어 게임'이라는 글자와 등장인물의 캐리커처가 그려져 있었죠.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달고나를 만들어 먹는 동영상이 SNS에 셀 수 없이 올라오고, 유럽의 젊은이들이 길거리에서 딱지치기를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한국의 전통 놀이가 자연스럽게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 겁니다.

 

출처 - YTN

 

이처럼 K-콘텐츠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놀라운 점은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엄청나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고 BTS가 전 세계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것도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의 힘이었습니다. 지난 10월 9일은 575돌 한글날이었는데요, 요즘 K-콘텐츠 열풍에 대해 세종대왕께서 아주 뿌듯해하지 않으셨을까요? 1990년대 프랑스 대학에 한국어과가 개설됐다가 입학하려는 학생이 없어 학과가 폐지될 정도로 인지도가 바닥이었던 한국어가 20여 년 만에 입시경쟁이 치열한 학과로 등극했습니다. 2015년 한국어가 프랑스 의무교육 과정에서 제2외국어로 인정받은 이래 현재 총 22개 대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출처 - 중앙시사매거진

 

K-드라마와 K-팝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2010년대 중반부터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2018년에는 10: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자랑합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은 더더욱 학생들이 몰려 평균 경쟁률이 19.4:1까지 치솟았습니다.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인 보르도대학교 한국어과는 무려 28:1이라는 경이적인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하죠. 이처럼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이 한국어 공부에 열을 내고 있습니다.

 

출처 - KBS

 

좋은 흐름이지만 폭발적으로 늘어난 한국어데 대한 관심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문제도 생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가 운영을 지원하는 세종학당은 외국에서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대표적인 교육시설인데요, 이곳의 대기자가 1만 명이 넘을 정도로 해외의 한국어 교육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최근 1년 사이에 100여 곳이 더 생겼는데도 그렇다고 하죠. 예전엔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종학당이 생겼다면 최근에는 유럽,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한국어 교육시설이 생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교사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우리나라 정부가 지원하는 자금만으로는 예산이 달려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습니다. 과거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정책이 현재의 폭발적인 인기를 쫓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한글과 한국어 콘텐츠가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는 과연 한국어를 얼마나 주체적으로 잘 사용하고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들어 안타까운 측면도 있습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넷플릭스의 드라마 <킹덤>이 인기를 끌자 한동안 갓과 한복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커졌습니다. 지난달에는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복(Hanbok)', '한류(Hallyu)' 등의 단어가 등재됐습니다. BTS를 비롯한 K-팝 아이돌들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곤 하는 한복 군무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세계의 젊은이들은 우리 문화에서 큰 영감을 받는다고 합니다. 지난 10월 12일 한복문화주간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한복을 입고 국무회의를 했습니다만, 대한민국에서 한복의 위상은 참으로 부끄러운 수준이죠. 한복상가의 점포는 감소세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고 코로나19 영향으로 명맥이 끊길 지경입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한복을 보는 것은 자연스럽고 괜찮지만, 실제로 입고 싶어 하는 이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업계의 문제와 편견을 가진 소비자의 문제가 얽힌 복잡한 상황입니다.

 

출처 - 조선일보

 

K-콘텐츠의 세계적인 위상과 달리 우리 일상 속에서 한글을 사용하는 언어 생활은 참으로 심각합니다. 우리나라 국민 상당수의 주거를 책임지는 아파트 상표에 애칭을 포함해 순우리말만 사용하는 곳은 단 하나도 없으니까요. 래미안, 힐스테이트, 더샵, 푸르지오써밋, 아이파크, 롯데캐슬 등등 외래어와 한자어가 뒤섞인 형태입니다. 공기업인 LH마저도 기존 우리말 상표를 버리고 휴먼시아나 안단테 같은 외국어 작명에 가세했습니다. 최근에는 당최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는 외국어, 외래어를 남발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죠. 마포래미안푸르지오,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둔촌올림픽파크에비뉴포레 등등 택배 주소 칸에 다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출처 -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한층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인 중에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층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세계적으로 문맹률이 낮은 상황이라 국민 대부분이 읽고 쓸 수는 있지만, 정작 자신이 읽은 정보가 어떤 의미인지 무슨 맥락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해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건 단순히 국어 점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글을 읽고 논리와 맥락을 찾아 적절한 판단을 하는 한국어 구사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어로 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대처를 할 수 없습니다. 한국어 구사 능력이 떨어지면 수학이나 영어 능력도 덩달아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것이 가짜뉴스고 어떤 것이 옳은 정보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현재 현재 한국 아이들이 당면한 문제입니다.

 

출처 - 한겨레

 

한국 학생들의 문해력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습니다. 지난 5월 발표된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따르면 우리나라 15세 학생(중3~고1) 중 읽기·수학·과학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학생의 비율이 2009년 6.7%에서 2018년 14.8%로 급증했습니다. 가정환경이 하위 20%인 학생의 읽기 최하위 등급비율은 더욱 떨어져 2012년 13%에서 2018년 25%로 증가했습니다. 코로나19가 소득 간 학력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한편 교육부와 국가평생진흥교육원이 지난 10월 7일 발표한 제3차 성인문해능력조사 결과를 보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비문해 성인이 2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출처 - 머니투데이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이나 직장에서 웃지 못할 촌극도 자주 벌어지죠. 한 국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쪽지시험 날짜를 '금일'로 공지했는데, 왜 '금요일'에 시험을 보느냐고 묻는 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국어국문과였는데 말입니다. 얼마 전에는 연휴가 '사흘'이라고 하니 '4일'을 쉬는 것으로 오해하고도 당당히 SNS에 글을 올리는 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바로잡아야 할 언론이 앞장서서 한글을 파괴하거나 가짜뉴스 혹은 선동 기사를 올려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는 일이 많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전 세계로 한국어 콘텐츠가 뻗어나가는데 정작 우리는 한국어를 파괴하고 우습게 여기는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매년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는 이유는 이런 문제를 돌아보고 한글의 중요성을 다시 새기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한국어를 배우고 한글을 익히는 학습자가 우리의 얼이 담긴 말과 글로 세상과 아름답게 소통할 수 있도록, 우리의 한국어 구사 능력을 끌어올리고 우리의 전통을 아름답게 이어가야 할 때입니다.

"여성 직원에게 임신 포기각서를 받았다"

 

조폭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인가 싶으시겠지만 아닙니다. 2021년 우리나라 국정감사 도중에 나온 증언입니다. 증언의 대상은 숱한 문제로 사회적 질타를 받았던 남양유업입니다. 분유와 우유를 파는 기업이 주요한 고객이기도 한 여성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출처 - SBS

 

지난 10월 5일 국정감사에 남양유업의 홍원식 회장과 피해를 본 직원 최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이날 국회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최모 씨는 "내가 회사에 입사할 때는 여성 직원에게 임신 포기각서를 받았다"라고 증언했습니다. 남양유업의 홍 회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유도 최모 씨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었죠. 최모 씨는 지난 2002년 남양유업에 입사해 2015년 육아휴직을 하고 이듬해 복직했습니다. 이때부터 최모 씨에게 시련이 닥쳤습니다. 책상이 한쪽으로 치워지고 경력과 관련 없는 이상한 업무를 배정받았을 뿐 아니라 지방 근무 등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입사할 때 임신 포기각서를 받는 남양유업 분위기상 2015년 육아휴직을 쓴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어서 고민 끝에 애초 계획보다 3개월이나 늦게 육아휴직을 쓰게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육아휴직 신청은 전자 문서로 결재가 완료됐지만 이후 수기로 신청서를 다시 올리라며 꼬투리를 잡고 회사 측은 최모 씨를 압박했습니다. 문제가 불거지자 남양유업 측은 최모 씨의 증언이 사실이 아니라며 법적 대응으로 옥죄려고 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지난 9월 7일 최모 씨의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자 남양유업 측은 육아휴직을 사유로 부당한 대우를 하지 않는다며 반박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남양유업은 2013년 6월 여직원이 결혼할 경우 계약직으로 고용 관계를 바꾼 뒤 임금을 깎을 뿐 아니라 각종 수당마저 주지 않는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습니다. 여성을 주요 고객으로 삼아 성장해온 회사가 내부에서는 여성을 소모품으로 쓰고 버리는데, 남양유업 측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 리 없죠.

 

출처 - SBS

 

그런데 충격적인 건 언론을 통해 나온 녹취록을 보면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이 이런 갑질에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입니다. '빡세게 일을 시키라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강한 압박을 해서 지금 못 견디게 하라'라고 말이죠. 그러고는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게 갑질을 하라며 꼼꼼하게 지시까지 했습니다.

 

출처 - SBS

 

피해자인 최모 씨는 입사 6년 만에 최연소 여성 팀장 자리에 오를 만큼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던 직원입니다. 새벽부터 자정 넘어까지 일할 정도로 회사에 모든 것을 바치며 열정적으로 일했습니다. 그토록 열심히 일하고 능력과 열정을 겸비한 직원을 우대해주지는 못할망정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사용했다고 불이익을 주었으니, 남양유업은 대체 어디까지 썩은 걸까요?

 

출처 - 한국여성노동자회

 

우리 사회에서 '오너 리스크'가 인구에 회자하는 일이 많지만, 남양유업의 경우 근본 자체가 틀려먹었습니다. 최모 씨는 회사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승소했지만 항소심에서는 패소해 현재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6일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남양유업에 대해 조만간 수시 근로감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MBC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감염병인 코로나19로 수많은 사람이 시름하던 시국에 남양유업은 자기네 제품인 불가리스가 코로나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며 소비자를 우롱하며 주가를 조작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홍원식 회장은 지난 5월 초 사퇴하겠다고 발표하고서는 사실상 회장직을 유지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회사 자금을 유용하여 물러났던 두 아들까지 이사로 복직시켰습니다. 

 

출처 - 한국여성민우회

 

갑질 문화가 기본인 남양유업의 패악은 내부 직원들까지 농락하는 수준입니다. 남양유업 같은 불량한 회사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될 시점입니다. 《갑의 횡포, 을의 일터》의 저자는 '을'이 옆에 있는 다른 '을들'을 마주 보고 함께 조직을 이루거나 연대한다면, 그래서 을들이 질주를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질문합니다.

 

 

이 시대의 을들은 성과주체로서 성공도 실패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라고 믿으며 끊임없이 앞만 보고 내달립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을들은 학교나 회사 같은 조직에서 성적이나 성과로 서열을 매기는 무한경쟁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갑의 횡포 속에서 을들은 막다른 골목으로 서로를 내몰고 상호 변절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최근 인기를 구가하는 <오징어 게임>은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에서 을들은 협동보다는 생존을 우선적인 가치로 생각하게 됩니다. 개인으로만 자신을 인식하는 을이 성과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일어나는 착시효과 때문이죠. 급변하는 흐름 속에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압박에 시달리며 을들은 하루하루가 공포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갑의 횡포에 눈감기보다는 현실을 똑바로 보기 위해 눈을 부릅떠야 할 때입니다.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김 군이 사망한 이후로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노동의 개인화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을들은 균열일터라고 할 수 있는 노동의 외주화에 휩쓸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갑의 횡포에 의해 노동자의 근무여건이 나빠지고, 사생활을 침해당하고, 노동 강도는 나날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더는 안 됩니다. 을들이 연대하며 사회문제 해결을 국가에 더욱 강력하게 요구할 때입니다.

지난 9월 28일 출근길과 점심시간 스타벅스 매장 앞에 늘어선 긴 줄을 보신 분이 많을 겁니다. 원인은 스타벅스가 진행한 '리유저블컵 이벤트'였습니다.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재사용이 가능한 다회용 컵을 무료로 주는 행사였는데요, 반응이 그야말로 폭발적이었습니다.

 

출처 - 뉴스1

 

스타벅스 비대면 주문 방식인 사이렌오더 앱에 8000여 명의 동시 접속자가 몰려 시스템이 마비되었고 일부 지점은 1~2시간이 넘는 대기 줄이 늘어서기도 했습니다. 스타벅스 한정판 굿즈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꽤 비싼 가격에 팔리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소장할 목적이 아니라 되팔 목적으로 스타벅스 이벤트 상품을 받으려고 매장에 줄을 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런 욕구 때문에 이벤트의 취지인 리유저블, 즉 재사용이 가능한 컵으로 커피를 마시며 환경에 보탬이 되자는 뜻과 완전히 동떨어진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스타벅스 매장의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점심시간에 커피를 주문한 직장인들은 음료를 기다리다 결국 가져가지 못하는 상황마저 생겼습니다. 사이렌오더는 앱으로는 취소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시간에 쫓기다 매장을 떠난 직장인들이 주문한 음료와 리유저블컵은 마시지도 써보지도 못하고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출처 - MBC

 

스타벅스나 여타 기업의 친환경 취지의 행사나 물품이 오히려 환경을 망가뜨리는 아이러니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지적이 많았죠. 스타벅스는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친환경으로 과장하거나 속이는 기업 마케팅을 의미하는 '그린워싱'의 대표 기업으로 지적되곤 했습니다. 텀블러, 에코백, 리유저블 컵 등등 그간 스타벅스가 한정판이라며 뿌린 굿즈 이베트지만, 정작 지구환경에 도움이 되었을지 의문이 듭니다.

 

출처 - 스냅타임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 리유저블컵과 뚜껑, 빨대를 합한 무게는 약 49g이었습니다. 평소 스타벅스에서 쓰이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약 14g이어서 리유저블컵이 3.5배 더 무겁습니다. 그러니까 리유저블컵 하나에 네 배 가까운 플라스틱이 들어갔으니 인스타그램에 인증 사진 올리기만 하고 버린다면 기존 일회용 컵을 쓰는 것보다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죠.

 

출처 - 인스타그램

 

지난 2019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의 실험 결과로 보더라도 330ml 용량의 텀블러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카페에서 주로 쓰는 종이컵보다 24배, 일회용 플라스틱 컵보다 13배 높았습니다. 다회용 컵이 진짜 친환경 목적을 달성하려면 리유저블 등 플라스틱 텀블러는 최소 50회 이상, 스테인리스 텀블러는 최소 220회 이상 사용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출처 - KBS

 

한편 이번 스타벅스 이벤트같이 수집욕을 자극하는 친환경 굿즈들은 쓰레기를 양산하는 돈벌이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 여론도 거셉니다. 한편 스타벅스의 리유저블컵 이벤트는 노동자의 업무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칩니다. 리유저블컵 이벤트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만큼 스타벅스 직원들은 엄청난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출처 - MBC

 

직장 블라인드 앱에 익명으로 올라온 스타벅스 매장 직원들의 원성을 보면 이런 상황을 잘 알 수 있죠. 지난 9월 28일 당시 대기 음료가 100잔이 넘고 대기 시간은 기본 1시간 이상이었는데, 이 음료를 누가 대신 만들어주는 게 아닙니다. 평소 매장 직원의 노동으로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스타벅스는 회사 방침상 진동벨 등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어 음료가 나올 때마다 직원이 목청 높여 손님을 일일이 불러야 하죠. 이번 이벤트 때 상황이 정말 나빴던 매장은 대기 음료만 650잔이었다고 합니다. 직원들은 역대 최대 주문량에 울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지만 책임감 하나로 이 악물고 버텼습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이벤트를 기대하는 고객이 몰릴 것이 너무나 뻔한 상황인데도 아무런 지원책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스타벅스는 매장 규모와 매출에 따라 적정 직원 수가 정해져 있어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으니까요.

 

출처 - 시사저널

출처 - 머니그라운드

 

'글로벌 대기업'이라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스타벅스의 커피 맛을 좌우하는 정규직 바리스타의 월급은 세후 200만 원이 안 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구나 10년 차와 1개월 차 노동자가 똑같은 시급을 받습니다. 업무 능력에 비해 경력 직원의 급여가 지나치게 낮게 설정되어 있는 겁니다.

 

출처 - MBC

 

결국 참고 참았던 스타벅스코리아 직원들이 이번 이벤트를 계기로 차량 시위를 계획했습니다. 1999년 스타벅스가 들어온 이후 22년간 스타벅스에는 노조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이 시위를 계획했다는 것만 봐도 직원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죠.

 

출처 - 아시아경제

 

직장 블라인드 앱을 통해 익명으로 모인 이들은 전례 없는 무노조 트럭 시위를 기획했습니다. 트럭 시위는 게임회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권리 찾기 시위로 많이 쓰인 바 있죠. 스타벅스코리아 직원들은 트럭 대여비와 현수막 비용 등을 위해 간편송금앱으로 트럭 계약금과 법적 자문 비용 등 330만 원을 모금했다고 합니다. 이 트럭시위에 쓰일 현수막에는 '스타벅스코리아는 창립 22년 만에 처음으로 목소리 내는 파트너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마십시오', '#스타벅스파트너는 일회용소모품이 아닙니다'와 함께 이를 영어로 표기한 ‘#NoMoreTreatPartnersAsExpend’ 등의 문구를 노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뉴시스

 

스타벅스 직원들은 안 그래도 적은 매장의 인원 감축을 규탄하는 한편 업무 환경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송호섭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는 지난 10월 6일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공식 사과했습니다. 이번 스타벅스 이벤트와 트럭 시위는 친환경 이벤트의 아이러니와 극악한 노동 환경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노조 없는 직장의 직원들이 익명 앱에서 모여 트럭을 대여해 간접 시위를 하는 형태는 요즘 젊은 세대의 노동 운동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이 같은 형태의 노동 운동이 향후 직장 환경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때입니다.

세계 각국 수장과 재벌 들의 탈세 비리와 관련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습니다. 《워싱턴포스트》 등 해외 유력 외신들과 우리나라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지난 10월 3일 일명 판도라 페이퍼스를 공개했습니다. 세계 정치지도자와 억만장자 등 유력 인사들이 조세도피처에 거액을 숨겨놓고 탈세와 불법, 편법을 일삼았다는 내용이었죠.

 

출처 - 뉴스타파

 

ICIJ는 세계 14개 기업에서 입수한 약 1200만 건의 파일을 검토한 결과 수백 명에 달하는 세계 각국 정상 지도자와 유력 정치인, 억만장자, 유명 연예인 들이 지난 25년간 저택, 해변 전용 부동산, 요트, 예술품, 기타 자산을 역외 탈세가 될 수 있는 방법으로 비밀리에 투자해왔다고 폭로했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수많은 인사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일단 눈길을 끄는 사람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입니다. 판도라 페이퍼스는 푸틴이 내연녀를 비롯한 측근을 통해 모나코 내 비밀 자산과 연결됐다고 밝혔습니다. 푸틴의 측근이자 러시아 국영TV 대표인 콘스탄틴 에른스트는 모스크바 내 극장 수십 개를 민영화하는 사업에 끼어들어 거액을 챙겼습니다. 러시아 언론은 판도라 페이퍼스 관련 보도를 하면서도 푸틴의 이름을 쏙 빼버렸습니다.

 

출처 - 뉴스타파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경우 880만 달러 짜리 빅토리아 시대 건축물을 보유한 버진아일랜드 업체를 인수해 2017년 건물주가 됐습니다. 이 건물은 현재 부인인 셰리 여사의 명의로 돼 있다고 판도라 페이퍼스는 지적합니다. 1994년 당시 토니 블레어는 선거운동 당시 "누군가는 자신의 몫보다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동안 우리의 조세 제도가 납세 의무 회피자와 악용자들의 놀이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연설한 바 있는데요,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질지 모르겠군요.

 

출처 - 뉴스타파

 

브라질의 경제부 장관인 파울로 게데스는 부유층에 대한 세제 개혁 방안을 제안하며 "부자라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한다"라고 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판도라 페이퍼스에 의하면 게데스 장관도 2014년 조세도피처인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법인을 세운 것이 들통났습니다.

 

출처 - 뉴스타파

 

많은 국민이 실업과 부패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왔던 아랍의 봄 시위 때부터 수년간 요르단 국왕은 역외 법인 세 곳을 통해 말리부 해변에 있는 맨션 세 채를 3800만 달러에 구매했습니다. 안드레이 바비스 체코 총리는 역외 법인을 통해 2200만 달러 상당의 프랑스 대저택을 사들였습니다. 

 

출처 - YTN

 

여기에 수십 건의 살인 범죄로 현재 징역 20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 이탈리아 마피아 라파엘레 아마토, 팝 스타 샤키라,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시퍼 등등 마피아부터 국왕까지 전·현직 수장 35명, 91개국의 정계 인사 및 공직자 330여 명을 포함해 각족 범죄인의 금융 비밀 정보가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우리나라의 대장동 게이트처럼 돈 앞에서는 마피아와 국왕의 구분이 없었고, 좌파 우파의 구분도 없었습니다.

 

출처 - 뉴스타파

 

이 판도라 페이퍼스에 우리나라 사람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의 이름이 올라 있었습니다. 이수만은 현재의 아이돌과 K팝 시스템의 근간을 만든 사람으로 일찍부터 해외로 눈을 돌렸죠. 그런데 탈세도 해외로 눈을 돌려 하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출처 - 뉴스타파

 

판도라 페이퍼스에 이수만과 SM 관련 홍콩법인이 여덟 개 발견됐습니다. 홍콩에서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하여 탈세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데요, SM의 탈세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출처 - 뉴스타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입니다. 그의 이름은 세계 최대 역외서비스 업체인 트라이덴트 트러스트의 고객 관리 파일에서 나왔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조세도피처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운영했다는 건데요, 판도라 페이퍼스에서 이재용의 영문 이름인 'Jae Yong Lee'를 검색하면 200여 건의 파일이 나온다고 합니다. 한국 주소와 생년 정보가 맞아떨어진다고 하죠. 파일과 함께 이재용 부회장의 여권 사본도 발견되었습니다. 이재용이 운영한 페이퍼컴퍼니는 배처리 파이낸스 코퍼레이션으로 2008년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것입니다. 이 페이퍼컴퍼니의 이사 세 명은 모두 트라이덴트 트러스트 임직원입니다. 하지만 주주 명부에는 이재용 단일 주주로 되어 있고 트라이덴트 트러스트에서 유출된 내용에서 확인된 이재용 관련 파일에는 배처리 파이낸스 설립 비용 청구서가 이재용 앞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도 베네피셜 오너, 실제 수익 소유자가 이재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출처 - 뉴스타파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SM과 달리 이재용이 역외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것은 확인된 사실로 보입니다. 문제는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 역외 법인을 만들었느냐는 것이겠지요. 삼성그룹의 비자금 관리하기 위한 건지 아니면 이재용 개인 목적의 탈세를 목적으로 한 것인지 현재로는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뉴스타파》에 의하면 삼성전자와 이재용 모두 인터뷰 요청과 질의서를 아예 받지 않고 있으며 입장 표명 요청에 대해서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정농단에 연루된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현재 가석방 상태이며 형 집행이 끝나는 내년 7월 이후 5년간 삼성전자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다양한 활동을 하며 삼성그룹을 드나들고 있죠. 차명주식에 대한 세금을 스스로 납부했다면서 얼마를 냈는지는 밝힐 수 없다고 해 국정농단과 관련된 뇌물, 경영권 승계로 인한 주가 조작과 탈세 혐의 등이 아직도 따라다니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번에 역외 탈세 혐의까지 드러나고 있어 법무부는 이런 재벌을 대체 무슨 생각으로 가석방해줬느냐는 비판에 휘말릴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출처 - MBC

 

지난 20년 동안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은 조세도피처 근절을 다짐해왔습니다. 유령회사와 자금세탁을 안보와 민주주의, 그리고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행위로 정의하며 이를 근절하기 위한 법률과 국가 간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6년 파나마 페이퍼스가 공개된 후 탈세가 만천하에 폭로되어 좀 줄어드나 싶었는데 이번 판도라 페이퍼스의 폭로로 조세도피처가 건재할 뿐 아니라 이를 근절하겠다고 했던 지도자들까지도 애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출처 - MSNBC / 한국경제 

지난 10월 8일 미국 시사평론가 제이슨 존슨 박사가 MSNBC 주말 프로 '더 비트'에 출연하면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출연자들이 입은 녹색 운동복을 입고 나왔습니다. 그는 이 옷을 입은 것을 "오징어게임에 대한 오마주"라고 밝혔는데요, 미국의 빈부격차와 소득 불균형 문제를 언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전 세계인이 <오징어 게임>에 열광하는 이유를 이번 판토라 페이퍼스를 통해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권력자들과 그 비리를 타파하겠다고 나섰던 자들이 한솥밥을 먹고 있었던 걸 보면, 돈 앞의 대동단결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세상이 영화나 드라마보다 참혹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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