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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주 52시간제를 둘러싼 말말말...

by 생각비행 2022. 2. 15.

2022년 새해가 됐지만 보수 정치권과 기업의 앞잡이가 된 일부 언론은 주 52시간제를 비난하느라 바쁩니다.

 

 

2022년 1월 1일부터 30인 미만 사업장에도 가족돌봄 근로시간 단축제가 시행됐죠. 자녀 돌봄이나 건강, 학업 등의 사유에 해당하면 신청이 가능합니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주 52시간 맞추기도 힘든데 가족돌봄 근로시간 단축제까지 들어오면 경영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중소기업 경영자 입장에서는 죽으라는 소리와 다름없다는 얘기였죠. 사정을 이해하지 못할 얘기는 아닙니다. 영세한 우리나라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하청을 주는 대기업에 차 떼고 포 떼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그렇더라도 이런 문제는 대기업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할 일이지, 노동자를 쥐어짜서 해결할 일은 아닙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일하려는 '노오력'이 안 보인다고 욕을 할 거면 경영하는 본인들도 제대로 인력을 뽑고 정상 경영을 하려는 '노오오오오력'을 보여줘야 공평할 테니까요. 자기네가 인력을 뽑을 수 없는 사정은 봐줘야 하고 노동자는 애가 아프더라도 회사에 매달려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군요.

출처 - 이뉴스투데이

더 황당한 주52시간제 비난도 있습니다. 광주 현대아이파크 신축 현장 붕괴 관련 보도에서도 이런 시각이 보였죠. 《이뉴스투데이》는 지난 1월 12일 건설업계 의견을 종합하면 코로나19, 파업 등으로 근로자들의 근무시간이 줄었는데도 주 52시간 규제로 추가 근무가 제한돼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공정을 진행한 것이 이번 아파트 참사의 근본 원인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상식적인 사람들은 이런 황당한 기사에 어이없어했습니다. 어차피 공정 관리는 다 보고됐을 테고고 진행이 안 됐다면 공기를 연장하든 준공을 늦추든 건설사 경영진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문제였는데, 그걸 안 했기 때문에 참사가 일어났으니까요. 당시 조만간 시행될 중대재해법을 피해 가려고 그전에 공사를 마치려고 온갖 편법을 다 동원하다 붕괴 사고가 일어난 것이 뻔하다는 심증을 가지고 있는데 언론이 주 52시간제 때문에 참사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왜 꺼내는 건지 모르겠군요.

 

출처 - 뉴시스

 

정부는 이미 2018년 7월 1일부터 주52시간제를 단계적으로 시행했고 이번 사태의 주범이었던 현대산업개발은 그로부터 9개월 뒤인 2019년 4월 광주 아파트 신축 공사를 수주했죠. 업체는 2019년 5월 분양, 2022년 11월 준공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니까 계약 전부터 이미 주 52시간제에 들어가서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사고의 원인으로 주 52시간제를 꺼냈다는 건 법을 어기려고 처음부터 맘을 먹었거나 자기네 사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법에 대한 지식 없이 회사를 운영했다고 하는 고백밖에 안 되는 상황입니다.

 

출처 - YTN

 

한편 이런 기업의 논리에 영합하는 정치인도 있습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주52시간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죠. 윤 후보는 2021년 11월 30일 오후 충북 청주시 2차전지 강소기업인 '클레버'를 방문해 회사 관계자들을 만나 구인난과 노동 시간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고 하고,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분들은 청년들을 구인하기 어렵다고 해 일자리 미스매치가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며 회사 관계자들의 애로사항에 공감을 표했습니다. 그러면서 "최저시급제나 주 52시간제라고 하는 게 중소기업에서 창의적으로 일해야 하는, 단순기능직이 아닌 경우에 비현실적이고 기업 운영에 정말 지장이 많다는 말씀을 들었다. 대체적으로 중소기업 경영 현실을 모르고 탁상공론으로 만든 제도 때문에 힘들다고 (말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밝혔습니다. 그러고는 "차기 정부를 맡게 되면 정책 대상자에게 물어보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것은 확실히 지양하겠다"며 "당·정·청 협의에서 워킹 그룹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정책실패를 예견한 것이라는 좋은 말씀을 (업체 대표에게) 들었다. 다양한 말씀을 많이 들었고 세부적인 의견을 주셨지만 탁상공론 탓에 중소기업을 하기 어렵다고 하셨다. 비현실적인 제도는 철폐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보듬겠다는 허울 좋은 말로 국민의 대다수인 노동자의 건강과 생황을 무시하겠다는 발언이었죠. 그러자 윤석열과 결이 비슷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측에서조차 한국인의 연간 노동시간은 OECD 국가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다면서 52시간 기준마저 없앤다면 국민의 삶이 더 고단해질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논란이 커지자 윤석열은 슬쩍 물러나 자신은 근로 조건을 유연성 있게 해달라는 말이었다며 꽁무니를 뺐습니다. 그러나 윤석열이 한 말의 증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출처 - MBN

 

윤석열 후보는 2021년 7월 18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매일경제》와 나눈 인터뷰에서 실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게임 같은 거 하나 개발하려고 하면 정말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24 곱하기 7 하면 얼마야, 168이잖아. 주 120시간 일해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2주 바짝 하고 그다음에 노는 거지." 

 

출처 - MBC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자동차 기업 현대자동차 남양 연구소는 현대차의 심장과 같은 곳입니다. 신차 디자인을 담당하는 곳이기 때문이죠. 1년 5개월 전 이 연구소의 디자인 센터에서 팀장급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과로로 인한 자살이었습니다. 10살과 7살 된 자녀를 남기고 신차 발표를 8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촉망받던 디자이너였지만 그는 밤낮 구분 없이, 휴일에도 일하며 과로에 시달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조울증, 중증 우울증,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반년 간 휴직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사이에도 중압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고 복직할 날이 다가올수록 상태가 더 나빠졌다고 합니다. 결국 복직을 한 달 남긴 시점에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출처 - MBC

 

주 52시간제 따위는 개나 주라는 듯, 직원을 과로에 내몰아 사회적으로 죽음으로 몰고 간 현대자동차는 동료의 추모의 글마저 막았습니다. 결국 직원들 사이에 분노가 넘쳐났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한 이를 두고 회사가 모르는 척 쉬쉬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성토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글들이 곧 삭제됐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사회적 풍속을 저해하는 경우 부조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을 들고 나왔습니다. 자살했으니 추모도 하지 말라는 얘기였죠. 그러자 동료들은 추도사와 호소문을 직접 찍어 따로 돌렸습니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2014년에도 신차 개발을 맡은 11년 차 책임연구원이 과로와 상사의 압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업무 관련성이 없는 자살이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업무상 재해라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 또 다른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현대자동차의 변명은 똑같았습니다. 그를 괴롭히던 디자인센터장은 부사장으로 승진하기까지 했죠.

 

출처 - 오마이뉴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기업의 노동자가 겪는 상황이 이 정도라면,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의 현실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겁니다. 주 52시간제는 사람이 최소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판과 같습니다. 사람은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지 일하기 위해 살아가는 건 아닙니다. 이 와중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지난 2월 3일 열린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과거 자신이 꺼냈던 주52시간 근무제도·최저임금제 철폐 발언에 대해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지적하자 "그런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토론에서 심상정 후보는 "윤 후보가 주 120시간 근무 등을 얘기할 때도 '실언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후 말씀을 보니 신념인 것 같다"면서 "대한민국과 세계의 민주주의가 성취한 노동시간이나 임금, 산업재해, 노동권 이런 것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날 토론회 직후 심상정 후보는 기자들을 만나 "윤 후보가 자신은 중대재해처벌법, 52시간제 폐지, 최저임금제 폐지를 전혀 말한 바 없다고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말해서 제가 헷갈렸나 할 정도였다"라며 "사실 확인해서 언론이 검증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진정으로 이 땅의 노동자들을 위한 선택이 어떠해야 하는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대선을 앞두고 심사숙고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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