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오전 5시부터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장 불가능한 종식보다는 코로나19와 함께 살며 상황을 통제한다는 뜻을 담은 방역 완화 계획을 시행한 건데요, 백신 접종 완료율이 애초 목표치를 상회하면서 단계적 일상 회복 3단계 중 첫 단계를 시작한 현재, 우리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출처 - 연합뉴스

 

위드 코로나 1단계로 생업을 위한 시설들의 영업시간 규제가 풀렸습니다. 식당이나, 카페, 노래방, 극장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감염 고위험 시설인 유흥시설은 밤 12시까지로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고위험 시설에는 백신패스제가 도입되었습니다. 당분간 불편하지만 이용자는 접종증명 앱이나 음성확인 증명서 등을 제시해야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6주간 지속되는 위드 코로나 1단계가 문제 없이 지나가면 6주간 2단계를 시행합니다. 상황이 계속 괜찮다면 3단계로 진행한다고 하죠.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2단계가 되면 현재 밤 12시까지로 제한된 유흥시설 등의 영업시간도 풀립니다. 백신패스도 위험도가 낮은 시설부터 해제할 예정이고요. 대규모 행사도 허용됩니다. 3단계에 이르면 사적 모임 인원 제한이 풀려 온전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출처 - 뉴스1

 

위드 코로나 시행으로 국제선 운항도 늘어날 전망입니다. 국내 항공사들은 여행 안전 권역을 뜻하는 트래블 버블 체결 국가 등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노선을 중심으로 운항을 재개하고 있는데요, 대한항공은 11월부터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정기편 운항을 1년 반 만에 재개했습니다. 아시아나는 태국, 방콕 노선을 확대하고 싱가포르 노선도 증편합니다. 지난 10월 위드 코로나 상황이 펼쳐질 것을 기대하면서 사람들이 국내, 해외여행 계획을 세우는 등 기대 심리가 작용한 결과입니다. 현재 이탈리아, 괌, 태국, 몰디브, 하와이 등은 백신접종 증명서나 72시간 이내 발급한 PCR 음성확인서가 있으면 입국 및 격리가 면제됩니다.

 

출처 - 여행신문

 

하지만 정부는 중환자실 가동률이 75%를 넘거나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가 급증하는 등 위기 상황이 전개된다면 위드 코로나 상황을 중단하고 방역 강화 상태로 되돌린다고 했습니다. 백신패스 확대, 사적 모임 제한 강화, 행사 규모, 시간 제한, 요양병원 등 면회 금지 등등 사회적 거리두기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죠.

 

출처 - 연합뉴스

출처 -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단계적 일상 회복을 시작하면서 예측한 상황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위드 코로나를 시작하자마자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지난 11월 4일 기준으로는 하루 사망자가 24명에 달해 지난 1월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3일에는 하루 확진자가 1000명 시아 폭증해 2667명을 기록했습니다. 역대 네 번째 규모였습니다. 대개 방역수칙 위반자나 백신 미접종자가 확진자가 된 경우였습니다만, 10월 말 핼러윈 축제의 여파가 반영되지 않은 시점인 것을 고려하면 2300~2500명 정도의 확진자 수가 유지되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예후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달 안에 일일 확진자 수가 3000~5000명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합니다. 정부는 현재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있는 확진자 수가 5000명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중증 병상 가동률은 현재 50% 안팎을 유지 중이죠.

 

출처 – BBC

 

위드 코로나를 시행하면 확진자 수는 당연히 급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영국의 경우 적극적인 백신 접종으로 지난 7월 프리덤 데이를 선언하고 위드 코로나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확진자 수 증가 추세를 보면 팬데믹 초기 상황과 유사할 정도로 높은 편이죠. 유럽에서 한때 모범 방역국으로 꼽히던 독일조차 사상 최악의 코로나19 확산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독일이 방역 조치를 빠르게 완화하면서 코로나19 사망률이 이탈리아의 두 배 이상, 스페인의 세 배에 달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독일은 지난 11월 8일 현재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으며 확진자 수가 팬데믹의 정점이었던 지난해 12월의 기존 최고치를 넘어섰습니다. 그런데 백신 접종은 60%대에 머물러 있죠. 덴마크 역시 위드 코로나로 200명이던 확진자가 최근 2300명으로 늘어나자 2달 만에 위드 코로나를 철회하고 백신패스를 재도입했습니다. 네델란드도 마찬가지로 한 달만에 위드 코로나를 중단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엄청난 사망자로 방역 실패의 대표 국가였던 이탈리아가 놀랍게도 현재 유럽에서 하루 코로나19 사망률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한 곳이 되었습니다. 백신 접종과 마스크 착용 등과 관련해 유렵에서 가장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는 지난 8월 초 백신패스를 도입했죠.

 

출처 - 동아일보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코로나19 통제로 아시아에서 성공 사례로 꼽혔던 싱가포르는 어떨까요? 지난 8월 10일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싱가포르에서 제한이 완화되자 몇 주 만에 일일 코로나 확진 사례가 수천 명으로 급증했습니다. 싱가포르는 85% 수준까지 예방접종을 완료했지만 인구밀도가 높은 편이라 바이러스 전파력을 과소평가하고 위드 코로나를 도입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결국 싱가포르 당국은 11월 말까지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싱가포르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리저리 뒤집히는 정책과 목표 변경으로 피로감을 느껴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보면 전 세계적으로 위드 코로나가 참 쉽지 않은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동아일보

 

세계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우리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수위는 주요 국가에 비해 크게 낮은 편입니다. 위드 코로나를 기점으로 방역 강도를 단기간에 크게 완화했기 때문인데요, 영국 옥스퍼드대가 발표한 코로나19 ‘엄격성 지수(Stringency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39.35점(8일 집계 기준·100점 만점)이라고 합니다. G20 중 한국보다 엄격성 지수가 낮은 나라는 멕시코(35.19점)와 슬로베니아(36.11점·유럽연합 의장국)뿐입니다. 엄격성 지수는 각국의 코로나19 대응 수준을 분석한 지표인데요, 모임 인원이나 다중이용시설 영업 등 9개 분야의 방역조치를 평가하여 산출합니다. 지수가 낮을수록 방역 강도가 약하고, 높을수록 방역 강도가 세다고 보시면 됩니다. 오랜 코로나 상황에 지쳐 하루빨리 일상회복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앞서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때입니다.

 

출처 - 로이터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11일 현재 단계적 일상회복 2단계로의 전환이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급증하고 있는 확진자 수를 보면 1단계를 지속하거나 이전 사회적 거리두기로 방역 조치를 강화해야 할 수 있다는 얘기죠. 위드 코로나를 시작하면서 유행 규모와 위중증 환자, 병상 가동률이 증가할 것이라는 점은 예상한 상황이긴 합니다만, 이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인 셈이죠.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합니다만 12월 13일을 기점으로 2단계로 진전할 것이냐, 아니면 이전 사회적 거리두기로 복귀할 것이냐는 향후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 증가세에 달렸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정부는 6개월 단위로 코로나19 백신을 추가접종하는 내용을 검토 중입니다. 2022년도에 6개월 단위로 코로나19 백신 부스터샷을 하는 방향으로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밝혔죠. 더불어 고령층이나 고위험군은 5개월로 단축하는 방안 또한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내년도 접종을 위한 백신은 총 9000만 회분으로 화이자는 6000만 회분을 계약 완료했고 나머지는 계약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머크와 화이자의 먹는 코로나 치료제 30만 명분 정도도 계약했다고 하죠.

 

출처 - 비즈워치

 

코로나 상황에 지쳐가는 국민들의 생각과 달리 방역당국은 위드 코로나 전환 속도가 다소 빠르다는 점을 우려합니다. 방역당국은 위드 코로나 로드맵 발표를 앞둔 시점에 식당, 카페 등의 영업시간 제한 전면 해제와 사적 모임 인원 완화를 단번에 시행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낸 바 있습니다. 방역당국 관계자는 "먼저 영업시간 제한을 풀고 2단계 때 인원을 풀거나 아니면 반대로 인원만 풀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다른 부처의 해제 요구가 강해 반영되지 못했다”라고 밝혔죠. 이와 관련해 일상회복지원위원회 방역의료분과 위원인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여러 방역조치가 동시에 완화되면서 이제는 어떤 조치가 확산세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측정하기도 어려워진 상태"라고 지적했습니다.

 

출처 - 질병관리청

 

《1분 과학 읽기》의 저자는 과학과 인문학이 함께 발전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일상의 풍경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 어떤 명약과 획기적인 치료도 예방만 못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며 깨달았습니다. 위드 코로나로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되었습니다만, 여전히 방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아이러니하지만 생활 속 거리두기 지침을 준수하며 개인방역에 더 신경을 써야 할 때임을 인식할 때입니다. 

언론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만, 지난 11월 1일 YTN이 보도한 <[2022 대선] 안철수 대선 출마, 캐스팅보트의 위력?>이라는 뉴스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대선출마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의 환담을 두고 이정미 정치부 기자가 전달한 내용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출처 - YTN

 

[안철수 / 국민의당 대표 : 저는 서울시장에 당선이 되면 도중에 서울시장 그만두고 대선에 나가는 일은 없다, 그렇게 말씀드린 겁니다.
[이준석 / 국민의힘 대표 : (안철수 후보가 출마선언, 야권 표 분산 지적 나오는데….) 무운을 빕니다. (알겠습니다.)]

...(중략)...


여기에 대해서 아까 이준석 대표의 말, 짧아서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답한 게 무운을 빕니다. 보통 행운을 빕니다라고 얘기하잖아요. 이것을 말을 바꿔서 안철수 대표에게 무운을 빈다, 운이 없기를 빈다라고 짧게 약간 신경전을 펼쳤습니다.

 

출처 - YTN

 

처음 이 보도를 봤을 때 말문이 막혔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무운(武運)’을 '무운(無運)'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냥 넘길 일은 아니겠지요. 그것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중요한 정치 이슈를 보도하는 정치부 기자가 하는 말이니까요. 혹시나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기자라서 긴장했거나 한자어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여서 벌어진 일종의 해프닝이 아닌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알고 보니 17년 차 선임기자로 경력이 상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쯤 되니 걱정이 더 커졌습니다. 생각비행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해력 저하와 이를 부추기는 언론의 심각성에 관한 글을 여러 번 올리기도 했으니까요.

 

실질문맹률 OECD 최하위권 대한민국의 슬픈 초상https://ideas0419.com/457
'사흘'이 급상승 검색어가 되는 사회, 무엇이 잘못된 걸까? : https://ideas0419.com/1087
세계가 열광하는 K-콘텐츠, 정작 우리의 한국어 사용 능력은? : https://ideas0419.com/1229

 

사람이기에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범할 수는 있습니다. 평소 잘 아는 단어라도 특정 상황에서 혼동할 수도 있는 일이죠. 하지만 이번 YTN 보도를 보면 정치부 기자가 '무운'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전달하고 있는데도, 앵커 두 사람은 이를 정정해주지 않고 그냥 넘깁니다. 이런 점 또한 큰 문제가 아닐까 싶군요. 

 

출처 - 네이버

 

하지만 진짜 문제는 보도 말미에 발생했습니다. 제작진이 YTN 이정미 정치부 기자에게 발언에 문제가 있었다는 언질을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보도 말미에 용어를 혼동했다거나 미처 잘 몰랐다고 밝히고 정정할 기회가 있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도 이정미 기자는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변명으로 때워버립니다. 제작팀의 지적에 대해 이정미 기자는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제가 아까 이준석 대표의 발언에 무운을 빈다에서 무운을 행운이 없는 없을 무 자라고 해석을 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조금 전에 저희 팀에서 전달을 해온 걸 보니까 이 무운이 한자어로 무에 전쟁 이런 무술 무 자를 쓰게 되면 전쟁 따위에서 이기고 지는 운수라는 의미가 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준석 대표가 어떤 의미로 한 것인지 중의적인 표현을 만약에 썼다면 단순히 비난하기보다는 결투에서의 운수에 대해서 언급을 한 걸 수도 있다는 지적이 들어와서 이것은 제가 나중에 이준석 대표께 어떤 의미였는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정미 기자는 자신이 해석한 '무운(無運)'이 맞다고 우기며 무운이라는 말을 중의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인 양 호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준석 대표에게 어떤 의미로 말한 것인지 확인하겠다고 합니다. 이 정도 상황에 이르면 기자정신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군요. 헛소리를 하는 건 기자인데 왜 부끄러움은 시청자의 몫일까요? 자신이 틀릴 리 없다는 오만함, 잘못을 지적해줘도 고치려 하지 않는 뻔뻔함, 잘못을 남에게 돌리는 책임전가를 보면서 정치부 기자가 정치인이 다 됐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시인하고 신속하게 바로잡는다"는 기자 윤리강령을 되새길 때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일반 회사에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실시간 공개 행사,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타사와의 공식 미팅에서 17년 차회사원이 저런 소릴 했다고 가정해보죠. 상대 회사에 얕보이는 건 둘째 치고 최악의 경우 회사에 대한 신뢰에 치명타가 되어 계약이 무산될 수도 있습니다. 말과 글을 전문으로 하는 분야가 아닌 일반 기업이더라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닌데, 말과 글로 먹고사는 기자가 제작진이 실수를 바로잡아주어도 뻔뻔하게 변명을 늘어놓으니 윤리 의식이 있긴 한 건지 의구심이 듭니다. 정치인의 말실수는 대서특필하면서 같은 언론의 실수는 슬쩍 넘기는 언론의 풍토도 문제입니다. 가재는 게 편이요,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국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언론의 사설, 논설, 기사를 읽으라고 하시던 어르신들의 말씀이 그야말로 옛말이 되어 버린 세태를 안타까워해야 하는 걸까요?

 

출처 - 로이터

 

언론계에서 그나마 신뢰받는 언론으로 꼽히는 YTN 기자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최근 언론에서 단어의 뜻과 관련된 논란만 해도 '사흘', '명징과 직조', 여기에 '무운'까지 더하게 되었습니다. 트럼트 전 미국 대통령 시절이긴 합니다만, 외국어였던 "long gas line"에 대한 오역까지 생각하면 대부분 일반인이 아닌 언론의 잘못이 문제였습니다. 기레기들이 왜곡을 일삼고 거짓을 전하니 사람들은 반지성주의에 물들고 결과적으로 언론의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듯합니다. 온갖 '밈'과 '줄임말에 찌든 기사 제목'도 모자라 기삿거리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찾는 행태를 보며 혹자는 '기레기'라는 표현조차 무색하다고 비판합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마당에 이런 현실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아 참 암담합니다.

최근 요소수 품귀 현상을 다루는 기사를 많이 보셨을 겁니다. 요소수 품귀로 물류망에 비상이 걸렸다는 기사도 자주 나옵니다. 디젤 차량에 필요하다는 요소수, 연료가 아닌 요소수가 대체 무엇이기에 차가 달리지도 못하게 되는 걸까요?

 

출처 - 연합뉴스

 

요소수가 디젤차에 필요한 이유는 환경적인 요인 때문입니다. 요소수는 디젤 차량의 배출가스 저감장치에 사용하는 촉매제로 대기오염의 원인이 되는 질소산화물(NOx)을 인체에 무해한 질소(N2)와 물(H2O)로 환원한다고 하죠. 전 세계적으로 디젤 차량에 의한 대기오염이 화두가 되자 세계 각국은 이를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우리나라도 배출가스 규제인 유로6를 적용해 디젤차는 선택적 환원 촉매 장치(SCR)를 의무적으로 부착하게 됐습니다. 

 

출처 - 투데이에너지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디젤차를 클린디젤이라 부르며 보급 확산에 나서면서 디젤차가 급속히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차량 중 디젤차는 1000만 대 정도인데요, SCR를 의무적으로 달아야 하는 디젤 차량은 절반이 조금 안 되는 약 400만 대입니다. 그중에 절반이 화물차입니다. 이 때문에 요소수가 부족해지면 디젤차 중 절반 가까이가 운행할 수 없게 되고, 특히 물류를 책임지는 수많은 화물차가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요소수 품귀 현상이 지속된다면 연말을 앞두고 필연적으로 물류 대란이 발생하겠죠. 결과적으로 식자재나 생활필수품의 가격이 인상될 수 있습니다. 안 그래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인플레이션에 불을 붙이는 것일 수도 있는 민감한 문제입니다.

 

출처 - 당근마켓

 

요소수 품귀 현상은 일종의 비상상황이니 차량의 정화장치를 무력화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분도 계실 텐데요, 이는 법적인 의무 사항이라 SCR만 무력화하는 프로그램이 별도로 필요하다고 합니다. 더구나 수많은 차종에 대응하는 개별 프로그램을 만들기까지 수개월이 걸리는데 과연 그 기간을 버틸 수 있을까요?

 

출처 - 연합뉴스

 

결국 요소수 품귀 현상이 왜 발생했느냐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론에 소개된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중국과 호주의 '석탄분쟁'이 원인입니다. 전랑외교(늑대외교)로 인해 세계 각국의 분노를 산 중국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그동안 우호적이었던 호주와도 충돌하게 됐습니다. '전랑외교'란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무력과 보복 등 공세적인 외교를 지향하는 중국의 외교 방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출처 - 시사원정대

 

중국이 호주로부터 석탄과 철강 등의 수입을 금지하자 호주는 수출 길이 막혀 일시적으로 큰 곤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겨울을 대비해야 할 때가 되면서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중국은 난방과 전기 생산의 수요를 절대적으로 석탄 발전으로 지탱하고 있는데요, 석탄 수요가 급증하자 호주가 아닌 다른 나라의 석탄을 비싼 값에 사 오게 된 겁니다. 중국과 호주의 무역 갈등으로 석탄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은 석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정전 사태가 빗발치게 되었습니다. 인도처럼 석탄 수요가 많은 나라들도 석탄을 구매하려 하니 석탄 가격은 더 치솟게 됩니다.

 

출처 - 매일경제

 

요소수를 생산하려면 일정한 고온을 유지해야 하는데 대다수의 생산업체는 채산을 맞추기 위해 석탄을 태워 온도를 유지해왔습니다. 애초 석탄에서 암모니아를 추출해 요소를 만들기도 합니다. 석탄 대란으로 인해 요소 생산부터 근본적인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원재료가 모자라고 석탄 가격이 너무 비싸지니까 요소수 생산은 채산이 맞지 않게 됐습니다. 자국 내 석탄 부족으로 중국 정부는 사실상 요소 수출을 중단해버렸습니다.

 

출처 - YTN

 

바로 여기서 요소수를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던 우리나라의 상황이 문제로 등장합니다. 우리나라는 산업용 요소의 무려 97.6%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중국의 수출 제한 조치로 직격탄을 맞은 셈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도 석탄 가격 폭등으로 고생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만, 우리나라처럼 심각한 문제 상황은 없습니다.

 

출처 - 한국경제

 

상대적으로 EU는 디젤차가 상당히 많은 편인데도 말입니다. 요소의 수입처를 한 곳에 의존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한 국가에 70% 이상 의존하는 품목의 경우 수입을 다변화하거나 재고 물량을 늘리는 등 전략물자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채산성이 문제라면 전략물자의 경우 세제 혜택 등을 주더라도 국내에서 생산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코로나19 초기에 우리나라가 마스크 생산 시설을 가지고 있어 다른 나라에 비해 마스크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던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요소의 경우 가격 경쟁력을 이유로 2013년을 전후해 국내 요소 생산 업체가 모두 없어졌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요소수 품귀 현상은 단순히 물류나 택배만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당장 소방과 구급 문제가 대두하고 있으니까요. 소방청은 지난 11월 1일 전국 소방본부에 공문을 보내 요소수 수급 관리를 철저히 하고 비축량과 사용량을 일주일 단위로 공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전국에 운영하고 있는 소방차 중 80.5%, 구급차량 중 90%가 요소수를 사용하고 있는 차량이기 때문이죠. 현재 전국적으로 소방 관련 차량용 요소수는 4개월분이 채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요소수 품귀 현상은 119 출발에도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습니다. 요소수 가격 급등을 노린 사기가 기승을 부리자 국토부는 산업용 요소수를 차량용으로 전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점검하는 등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중국 정부가 요소에 대한 수출 규제를 푸는 것 말고는 요원한 듯합니다.

 

출처 - AP

 

요소수 품귀에 대해 대중이 관심을 기울이자 보수 언론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탄소중립 40% 저감 발언을 물고 늘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은 환경 챙기다 경제 망친다는 터무니없는 얘기까지 하고 있죠. 이런 정보가 말이 안 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당장 EU가 탄소국경세인 CBAM 도입 일정을 2023년부터로 잡았습니다. 간단히 말해 EU 생산품보다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는 공정을 가진 공산품에 대해서 초과분만큼 비용을 더 매기겠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그만큼 관세를 더 매긴다는 얘깁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현행 산업 구조로는 관세가 1.6% 추가되면 매년 약 1조 2000억 원을 추가로 내는 꼴이 된다고 합니다. 보수 언론조차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고 하지 않나요? 그런데 추가 관세로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 수출에 타격이 오지 않겠습니까? 탄소중립과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은 이미 환경 이슈를 넘어 실질적인 경제와 직결된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장 내후년부터 말이죠.

 

출처 - IOPSCIENCE

 

콜로라도 대학교가 전 세계 221개국 3만여 개의 화력발전소를 일제조사해 발전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조사했는데요, 상위 5%의 화력발전소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73%를 차지한다는 충격적 결과를 내놨습니다. 전 세계 석탄 소비량의 67%를 중국과 인도 단 2개국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위 10개 탄소배출 화력발전소 보유국 상황을 보면 우리나라도 들어 있습니다.

 

출처 - 환경운동연합

 

지금처럼 석탄 가격까지 오르는 세계적인 상황을 볼 때 2030년까지 석탄에 의한 탄소 배출량을 79%까지 줄여야 한다는 파리협약의 목표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빌 게이츠 역시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억제한다는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죠. 이렇게 모두가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결국 인류는 공멸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세대에서 일어날 일이 아니니 괜찮다고 여기실 건가요? 그렇지 않겠지요. 우리에게는 에너지 전환에 귀를 기울이고 일상에서 실천할 의무가 있습니다.

 

출처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이번 요소수 품귀 사태를 통해 우리는 세계 경제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위기는 한 국가를 비난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 공동의 대응, 그리고 함께 정한 목표에 맞춰 각국의 정상적으로 약속을 이행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를 단순히 경제적 문제로 국한해서 이해할 게 아니라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와 각국의 경제 활동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는지를 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에너지 전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실천뿐입니다.

 

 

지난 10월 21일 누리호 발사로 대한민국은 우주개발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KSLV-II 누리호는 1.5톤급 실용위성을 지구 저궤도인 600~800km에 투입하기 위해 제작한 3단 발사체였죠. 엔진 설계부터 제작, 시험, 발사 운용까지 모두 국내 기술로 완성한 최초의 국산 발사체여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출처 - 뉴시스

 

최종 목표였던 위성 모사체 궤도 안착은 비록 실패했지만 1.5톤 위성 모사체를 700km 이상 저궤도까지 견인하며 독자적인 우주 수송 능력을 갖춘 발사체를 쏘아 올렸으니 사실상 성공에 버금가는 뜻깊은 일입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세계 7대 우주강국의 꿈을 이루기 위한 초석을 놓았습니다. 지금까지 발사체를 만들어 쏘아 올릴 수 있는 독자 역량을 보유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9개국뿐입니다. 1톤급 이상 실용위성을 싣고 쏘아 올릴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 미국, EU, 중국, 일본, 인도까지 6개국에 불과하죠. 발사체를 쏘아 올릴 수 있는 9개국 가운데 이스라엘, 이란, 북한은 300kg 이상을 쏘아 올리지 못합니다.

 

출처 - KBS

 

발사체 기술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분야라서 국력이 강한 나라라고 하더라도 시행착오를 거쳐 현 상태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기술 개발 속도가 매우 빠른 편입니다. 1950년대부터 이뤄진 전 세계 로켓 발사 역사에서 첫 시도에 성공할 확률은 30%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 러시아 기술을 빌린 나로호도 3차 시도에 성공한 전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누리호 발사는 전 공정을 국내 기술로 완성했음은 물론 첫 발사부터 성공과 진배없는 성과를 거두었으니 참으로 비약적으로 기술 진보를 이뤄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뉴시스

 

외신들은 한국이 자체 개발 로켓인 누리호를 성공적으로 쏘아 올렸다는 소식을 긴급 타전했습니다. AFP는 한국이 기술 선도국으로 성장했지만 우주비행 분야에선 뒤쳐졌는데 이번 성과로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인도, 북한에 이어 위성 발사 기술을 갖춘 국가가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BBC 역시 누리호 발사 직후 속보를 내어 한국이 우주로 로켓을 성공적으로 쏘아 올린 7번째 국가가 됐다고 소개하면서 최종 위성 안착에는 실패하여 절반의 성공이었다는 점을 아쉬워했습니다.

 

출처 - KBS

 

누리호는 약 12년간 2조 원 가까운 비용이 들어갔는데요, 국내 300여 기업과 800여 명이 부품 37만 개를 조립해 만든 노력의 결정체입니다. 개발 비용이 2조 원이나 들었다니 엄청난 액수로 보입니다만, 일본의 경우 발사체 한 대당 투입인력이 3000명 수준이고, 미국과 러시아의 경우 2만 명 규모입니다. 인력이 많이 들어가니 예산 또한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준이 아닙니다.

 

출처 - 조선일보

 

 세계 주요국의 우주개발 예산을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적은 예산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10월 22일 발간한 <세계경제 포커스 - 우주 탐사 및 개발의 국제협력 동향과 시사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우주개발 예산은 7억 2200만 달러이고, GDP 대비 비중은 0.04%라고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를 보면 누리호 개발은 좋게 평가하자면 굉장히 효율적이지만 나쁘게 평가한다면 숱한 사람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시간과 열정을 갈아넣은 결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완벽한 성공을 위해 제대로 된 지원과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 HelloDD.com

출처 - 머니투데이

출처 - HelloDD.com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21일 누리호 발사를 본 뒤 아쉽게도 목표에 완벽하게 이르진 못했지만 첫 번째 발사로 매우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번에 부족했던 부분을 점검해 보완하면 내년 5월에 있을 두 번째 발사에서는 완벽한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아울러 다음 달(11월)부터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장이 과기정통부 장관에서 국무총리로 격상되어 민관의 역량을 결집해 세계적 우주기업이 탄생하도록 정책적, 제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출처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출처 - 연합뉴스

 

내년 5월 예정된 2차 발사 때는 1.3톤의 더미와 200kg의 성능 검증 위성을 탑재합니다. 그 이후에는 누리호의 성능 향상과 상용화 모색을 위해 2027년까지 네 차례 추가 발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1차 반복발사에서 누리호에는 차세대 소형위성 2호가 실립니다. 2024년에 2차 발사를 할 예정이며, 이때에는 차세대 검증위성 3호와 초소형위성 1호를 탑재하게 됩니다. 2026년(3차)부터는 검증위성 대신 실전 배치형 위성만 탑재합니다. 그러니까 바로 이때부터 본격적인 K-위성시대가 열리는 셈입니다. 3차 반복발사에는 초소형위성 2~6호 등 5기가 동승 발사됩니다. 반복발사의 마지막인 4차 발사 때는 초소형위성 7~11호 등 5기가 함께 탑재됩니다.

 

출처 - 뉴스핌

출처 - 한국일보

 

대한민국이 본격적인 위성 시대로 들어서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형 위성항법체계(KPS) 구축에도 힘이 실릴 예정입니다. 지난 10월 20일 정부는 15차 유엔 국제위성항법위원회(ICG)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체 개발한 발사체인 누리호를 활용해 원할 때 위성을 지구 궤도상으로 쏘아 올릴 수 있게 되면 위성을 활용한 통신 등 다양한 신산업이 열리게 되겠죠. 2030년에는 누리호로 달 착륙선을 쏘아 올린다는 구상까지 하고 있습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미국 주도로 달에 유인기지를 건설하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 참가해 내년 8월 달 궤도선을 발사할 예정이라고 하죠. 한국형발사체(누리호)는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기대를 안고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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