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가진 사람에게 망각은 어렵다."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유명한 콜롬비아의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말입니다. 동시에 지난 17일 콜롬비아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과 함께한 만찬에서 꺼낸 말이기도 하지요. 꺼낸 말은 의미 있지만, 장소가 잘못되어 영혼 없는 발언에 그쳤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말을 도피성/외유성 남미 방문대신 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와 19일 4.19 혁명 55주년 기념식에서 국민에게 사죄하면서 이 말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사죄할 마음은커녕 거짓말로 일관하면서 국민에게 폭력을 가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세월호 1주년을 피하기 위해 급조된 남미 순방길

 

출처 - 연합뉴스

 

국빈으로 방문하는 것처럼 홍보했던 남미 4개국 순방길의 첫 방문국인 콜롬비아는 페루, 칠레, 브라질처럼 국빈방문이 아닌 공식방문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콜롬비아에서 와주십사 해서 간 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가겠다고 먼저 얘기를 꺼내 콜롬비아의 허락을 받은 셈입니다.



세월호 1주기 범국민 추모제와 4.19 기념식이 예정된 상황이었으니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국내 일정을 마치고 나머지 3개국만 방문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박근혜 대통령은 유족들이 없는 팽목항에 나타나 깜짝쇼를 벌이고는, 성완종 리스트로 식물총리가 된 이완구 총리를 버려두고 뭔가 켕기는 게 있는 사람처럼 일부러 잡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시급히 출국했습니다. 이게 도피성 순방이 아니라면 대체 뭘까요?


 

추모 행사가 불법 집회? 헌법을 무시한 경찰의 불법 대응이 문제!

 

출처 - 참여연대


세월호 1주기 추모제와 헌화, 유가족과의 만남 등이 예정된 시청 광장과 광화문 광장은 지난 16일부터 경찰에 의해 도심 속 섬이 되었습니다. 지난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기 위해 수많은 시민이 시위를 벌였을 때 등장한 '명박산성'처럼 이번엔 '근혜차벽'이 도로나 지하철역은 물론 광화문으로 통하는 골목마저 모조리 막아버렸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불통'과 대한민국 시민을 향한 정부의 의지가 그대로 드러내는 상징적인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세훨호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들의 만남을 통제한 대한민국 경찰(사진-생각비행)

 

경찰은 "불법집회로 변질된 세월호 1주기에 참여한 군중을 막기 위해서"라고 변명했습니다만, 경찰의 차벽부터가 완벽한 과잉진압의 결과물이자 불법 그 자체입니다.

 

출처 - 슬로우뉴스


경찰의 차벽 설치는 2011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결정한 사안입니다. 경찰 버스로 차벽을 설치해 시민들의 통행을 전면 통제하고 평화 시위를 막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해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교수는 경찰 차벽은 위헌임과 동시에 경찰직무집행법 위반이기도 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법령상으로 경찰버스는 사람의 통행을 가로막거나 집회 현장을 봉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경찰 장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경찰 차벽이 급박하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 쓰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지난 주말 세월호 추모 시위는 불법 폭력 시위로 변질되어 차벽 사용이 불가피했다고 변명했습니다. 하지만 이조차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출처 - 미디어스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제는 평화롭게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추모제 이전부터 치밀하게 차벽을 계획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추모제 행사 후 헌화하기 위해 움직이는 동선을 미리 차단해 시민이 유가족과 만나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었죠. 애초부터 경찰은 계획된 의도로 불법을 사전모의한 셈입니다.

 

출처 - 고발뉴스


경찰의 불법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를 그리워하는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을 향해 경찰은 물대포를 사용했습니다. 또한 물대포의 물마저 불법으로 조달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고발뉴스》의 이상호 기자는 경찰이 소화전의 물을 살수차에 불법 주입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트위터에 올린 후 경찰에 항의했습니다. 해당 관할인 종로소방서는 소화전 이용을 사전에 허가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사과하기는커녕 이상호 기자를 체포했습니다. 기자마저 체포하는 마당에 경찰이 시민에게 무력을 행사하지 않을 리 없죠. 

 

출처 - 미디어스


경찰은 불법으로 도로와 인도를 점거하여 시민의 통행권을 제한한 다음 이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들을 향해 최루액과 물대포를 쏘며 과잉대응했습니다. 언론과 방송을 통해 경찰이 광화문 일대의 교통 CCTV의 외부 송출을 9시간 이상 차단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참고: '세월호 집회 충돌' 그날 주변 CCTV 중단..왜? )

 

지난 17일과 18일 격렬했던 집회 현장에서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의 개인 정보가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해명했지만, 어불성설입니다.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채증을 남발하며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통행의 자유를 유린하는 경찰이 시민의 개인 정보 공개를 막기 위해 CCTV 외부 송출을 차단했다니, 그걸 누가 믿겠습니까?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입니다. 외부 송출을 꺼놓은 동안 경찰이 이를 시위대를 감시하는 목적으로 활용했음이 명백합니다. 지난해에도 경찰이 고속도로 CCTV로 집회 참가자들을 몰래 촬영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지난 18일 경찰은 광화문 부근에서 세월호 유가족 21명 등 100명이 넘는 참가자를 연행했습니다. 헌법부터 경찰직무법까지 어긴 자기네의 불법 행위를 눈 감은 채 말입니다.

 

 

세월호에 아직 사람이 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한 시기에 벌어진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 성완종 리스트로 불거진 정치권의 혼란, 평화시위마저 불법으로 규정하고 진압하는 경찰의 행태는 4.19 혁명 당시의 시대 상황을 방불케 합니다. 또한 꼭 1년 전 자본주의의 민낯을 목격한 세월호 참사 그날을 방불케 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재래입니다. 대한민국호의 선장은 혼자 도망치고 경찰은 시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책임자를 보호하는 데 안달입니다. 정치권은 세월호의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형국입니다. '기레기 언론'은 얼마나 달라졌나요? 시민의 눈과 귀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다양한 방법으로 뜻을 전하는 시민들(사진-생각비행)

 

4.19 혁명의 그날 시민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도록 방기한 위정자들을 좌시해선 안 됩니다. 4월 16일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을 가슴에 묻은 유가족의 슬픔을 짓밟는 인면수심의 괴물들을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신동엽 시인은 <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는 시에서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 그날이 오기까지는, 四月은 갈아엎는 달 / 그날이 오기까지는, 四月은 일어서는 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그날'은 아직 멀었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세월호에 아직 사람이 있습니다!


다사다난했던 2014년이 지나갔습니다. 문자 그대로 일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생각비행은 지난 1년 동안 사회의 각종 문제를 지켜보며 책에 문제의식을 담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오늘은 2014년에 생각비행 블로그에서 주로 다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이슈를 뽑아 대한민국 사회상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이를 통해 2015년에 우리가 풀어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전망할 수 있겠지요.



2014 대한민국의 사회 시스템의 붕괴

― 세월호 참사부터 백색테러까지


2014년은 대한민국의 사회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전 분야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그중 대한민국의 안전 불감증과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의 실체가 드러난 사건은 세월호 참사였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수학여행 중이던 안산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을 포함해 수많은 이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대한민국의 안전 시스템 중 무엇 하나 제대로 작동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목도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무능했고 세월호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비리와 의혹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세월호 사고로 자본주의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났건만 고쳐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2015년부터 가동된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는 세월호 특별법을 반대하고 유가족들을 조롱한 전력이 있는 인사가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있는, 실종된 9명을 기다리는 가족들은 팽목항에서 2015년을 맞았습니다.


출처 - JTBC



한편 하반기에는 은행이라는 경제 시스템의 신뢰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1억 2000만 원 농협 인출 사건입니다. 아무 잘못 없는 소시민의 통장에서 1억 2000만 원이 증발했다는 것도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보안 책임은 나 몰라라 하고 법이 규정한 보상 책임마저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농협의 행태는 그야말로 기가 막힙니다.


출처 - 유튜브


 

2014년 12월에는 백색테러가 부활해 사회적인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대한민국 사회가 퇴행을 거듭하다 대미를 장식한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박근혜 정부의 대응 방안은 테러에 대한 단죄가 아니라 공안 몰이, 종북몰이였습니다. 애초 박근혜 정부의 슬로건이었던 '비정상의 정상화'가 사실상 '비상식의 상식화'였고, 대한민국 사회가 비상식 공화국으로 착착 나아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2014년 대한민국은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의 시스템이 신뢰를 잃고 작동하지 않는, 그야말로 사회 해체적인 공포를 대면해야 했습니다. 과연 2015년이라고 더 나아질 수 있을지 고민스러운 지점입니다.



2014 국민에게 애증을 남긴 사법부


그나마 신뢰할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던 사법부도 오락가락한 판결로 애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출처 - 한겨레



2014년 가을에는 현대차 비정규직의 투쟁이 승리로 결실을 보았습니다. 현대자동차에서 2년 이상 하청 노동자로 근무한 994명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 등 청구 소송에 대해 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죠. 또한 공안 몰이에 한창인 정부의 영장 청구를 기각하고 세계 최초로 리트윗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아야 했던 박정근 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한편 사법부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9.11 테러가 될 수 있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애매하고 찜찜한 이율배반적 선고를 내려 국민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12월에 헌법재판소가 헌정 사상 최초로 통진당 해산이라는 어마어마한 법적 참사를 일으켰습니다. 정치 권력화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법부를 2015년에는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4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인 재벌들


해를 넘겼으나 국민의 공분이 가라앉지 않는 조현아의 땅콩 회항 사건처럼 2014년 한 해는 재벌과 그 자녀들의 천박하기 짝이 없는 행태가 가관이었습니다. 대한항공의 중역 중 한 명으로 2013년 라면상무를 질책했던 당사자라 더욱 웃지 못할 사태였죠.


출처 - 조세일보



2014년 상반기 질소 과자 논란과 더불어 이른바 '황제 노역'으로 대한민국 재벌은 여론의 몰매를 맞았습니다. 국민과 약자를 봉으로 아는 한국 재벌들의 천박한 자본주의는 얼어붙은 경기를 버텨야 하는 미생들에게 심한 박탈감을 안겼습니다.



2014 생각비행 블로그 인기글



출처 - 한겨레


 

생각비행이 주목한 생활 밀착형 기사가 독자 여러분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실질문맹률'에 관한 글과 '노 키즈 존' 논란에 관한 글은 일상생활에서 겪는 일이어서 그런지 논쟁도 치열했습니다. 국정원의 사찰로 세간의 관심을 끌며 카카오톡의 아성을 넘봤던 '텔레그램' 관련 기사도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2014 생각비행이 펴낸 책

 

 

2014년은 아주 혼란한 해였지만, 생각비행은 출판사로서 묵묵히 의무를 다했습니다. 작년에 총 8권을 출간했더군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이 있었기에 작은 출판사이지만 소신 있게 책을 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책을 재미있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2015년에 책에만 집중하는 한 해가 되면 좋겠지만, 박근혜 정부 임기가 아직 3년씩이나 남았으니 안타깝게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2015년에도 블로그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좋은 정보를 공유하도록 힘을 다하겠습니다. 될 수 있으면 좋은 소식을 많이 전해드리는 2015년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만 인사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공안몰이 중단하라

 

박근혜 정권의 공안몰이가 갈수록 거세집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데요. 독재자의 딸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겠다던 약속은 온데간데없고 아버지를 능가하는 대국민 탄압을 서슴없이 벌이고 있습니다. 최근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고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글을 올린 현직 교사를 경찰과 검찰이 구속하려고 해 국민의 공분을 샀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이 사건을 코미디로 만든 건 검찰과 경찰이 영장을 청구한 사유 때문입니다. 사전구속영장 청구서에는 범죄의 중대성과 도주, 증거 인멸의 위험 등이 적시되었습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청와대 누리집에 실명으로 글을 쓴 행위가 중대한 범죄에 해당한다는 해석도 웃기지만, 이 교사가 사용한 개인 이메일이 미국에 서버를 둔 구글 지메일이어서 수사기관이 압수수색하기 번거롭게 만들었다며 증거 인멸의 위험이 있다고 주장한 것은 희대의 코미디라고 하겠습니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입니다. 어떻게 대한민국 검찰이 이 지경이 된 걸까요? 글을 게재한 교사들이 전교조라는 사실과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를 걱정한 검찰 조직의 과잉 충성 때문으로 보입니다.


 

출처 - 청와대 누리집


개인이 무슨 이메일을 쓰든 그건 개인의 자유에 속합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지요. 그런데 더 웃긴 건 지메일이 애플의 아이폰을 제외한 구글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운용되는 대부분의 스마트폰에 기본으로 설정된 이메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이폰에서도 지메일을 쓰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삼성 스마트폰이 강세인 지역이어서 특히나 세계 평균보다 안드로이드 사용자가 많은 편에 속합니다. 안드로이드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78퍼센트이고, 한국은 무려 93.4퍼센트에 달합니다. 

 

그러므로 검찰과 경찰의 구속영장 청구 사유는 스마트폰을 쓰는 국민의 93.4퍼센트를 국가기관의 조사를 부당하게 방해하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로 규정한다는 얘기나 다름없습니다.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경찰이나 검찰 중에도 구속될 사람이 수두룩할 겁니다.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국민의 대부분이 지메일을 사용하게 한 삼성을 대역죄로 다스려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가 담긴 검찰의 사전구속영장 청구를 법원은 당연히 기각했습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일입니다. 대통령의 비위나 맞추려고 공안정국을 조장하는 검경은 일단 꼬투리만 잡으면 그 어떤 비상식적인 이유를 동원해서라도 구속부터 하려고 안달입니다. 공포는 또 다른 공포를 낳고, 결국엔 국민의 자기 검열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태가 정상적인 상태인 것처럼 오인하는 지경에 도달합니다. 지금과 같은 비상식적인 일이 빈번히 발생하는 현상은 군사정권 시절처럼 국민이 국가기관의 판단에 따라 고분고분해지기를 바라는 이들이 득세하고 있는 현실을 방증합니다.  

 

 

언제까지 국가보안법 타령을 할 셈인가?

 

생각비행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6] 희망버스, 평화비행기로 날다라는 글에서 《민중의소리》 기사를 인용하여  국가보안법 관련 입건 및 처리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입건 2배 증가, 기소율은 절반에도 못미쳐>라는 기사를 보면 2010년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로 입건된 94건 중 단 20건만이 유죄로 인정되었으며, 이 중에 13건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사실상 검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조사하기 위해 무조건 입건한다는 얘기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명박 정권하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사건 가운데 '찬양고무' 건의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민중의소리》 기가에 따르면 "2008년 찬양고무건의 비율이 32.6%에 그치는 반면 2009년에는 40.5%로, 2010년에는 62.7%로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출처 - 진보네트워크센터


이런 기조는 박근혜 정권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생각비행이 블로그 기사에서 계속 문제를 제기해왔던 국정원 간첩조작사건이 이를 증명합니다. 국민의 안녕과 안위를 책임져야 할 정부와 국가기관이 국민을 범죄자로 만드는 데 골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비상식'이 '상식화'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를 향해 대법원이 제동을 건 일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이 진행 중이던 박정근에게 법원이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박정근은 2012년 1월 눈에 띈 북한 계정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를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말입니다. 북한 계정인 우리민족끼리의 트윗을 리트윗하여 이적표현물을 팔로워들로 하여금 보게 만들었다는 점이 죄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애초 박정근의 리트윗은 북한을 풍자하고 조롱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박정근의 트윗을 제대로 보기만 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죠.


3호 2010. 11. 10. 장군님 빼빼로 주세요 

42호 2010. 12. 15. 사실 주체사상도 사실 통큰치킨에 쉽게 무너지는 사상누각입니다. 

45호 2010. 12. 15. 나의 사랑 너의 사랑 김정일! 

49호 2010. 12. 15. 모든 것은 장군님께서 해주십니다. 홀아비에겐 아이도 갖게 해주시죠. 

58호 2010. 12. 21. 그래? 그럼 너 앞으로 김정일 장군님 여자친구해라. 

66호 2010. 12. 22. 장군님이 자웅동체라는거 아십니까? 어머니라 부르고 아버지라 부릅니다. 

75호 2010. 12. 24. 최고사령관 김성일장군 최저야 최저야 아 최저야. 

92호 2010. 12. 29.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김정일장군님께 부탁드리면 됩니다. 알아서 신묘하게 들어가집니다. 

106호 2011. 01. 03. 제가 어렸을 때는 말이죠 병원에 자주 가서 주사도 잘 맞고 주체사상도 병원에 전파했던 사람입니다. 

115호 2011. 01. 03. 올해의 장군:김정일 내년의 장군:김정일 내후년의 장군:김정일..

121호 2011. 01. 04. 삐리리 붉어봐 김정일 

126호 2011. 01. 05. 저는 사실 김일성입니다. 

132호 2011. 01. 06. 제가 수령님 생각만 하면 주체주체하고 웁니다만.. 

135호 2011. 01. 08. 북에 계신 장군님도 술을 줄이고 계신다 합니다. 

141호 2011. 01. 12. 청년대창 김정은 

142호 2011. 01. 12. 내가 주체사상하고 연애할 줄 알았느냐! 

146호 2011. 01. 17. 김정일장군님빨리오세요김치찌게해놨다늦으면전화해라 

157호 2011. 01. 18. 아기 주사파는 옹위옹위하고 웁니다. 

162호 2011. 01. 18. 월화수목김정일 

163호 2011. 01. 18. 선군정치에 모에하는 북조선인민군에 주목을! 

168호 2011. 01. 20. 주체사상은 단백질이 풍부하다. 

184호 2011. 01. 28. 삼대잉여세습 

197호 2011. 02. 01. 그장군 그수령의 사정 

199호 2011. 02. 02. 따르릉 여보세요 김정은이예요.. 

200호 2011. 02. 02. 주체100년 연기대상! 

206호 2011. 02. 06. 김정일 귀엽게 생겼다 모에모에 

211호 2011. 02. 08. 내가 바로 그 김일성이오.. 

233호 2011. 02. 22. 내가 김정일하고 노는 법을 알려주지. 

243호 2011. 02. 26. 김일성 개새끼 해봐 

262호 2011. 03. 13. 아이유 수령이시여 오빠들에게 명령만 내리시라 

269호 2011. 03. 17. 조선로동당 인민무력부에서 인턴십 구합니당. 

275호 2011. 03. 22. 받아라 친환경 주체사상이다! 

276호 2011. 03. 23. 꿈에 김정일을 안고올걸 

306호 2011. 04. 07. 이놈들아 주체100년이 되어도 굶어죽는 인민들을 생각해보아라. 

335호 2011. 04. 22. 김정일 개새끼 해주세요! @Kangjaechon 

343호 2011. 05. 10. 푸틴:우리애들은 말을 잘들음.보여줄까 정일:응 푸틴:야 보디가드야 너이리와바 보디:네?푸틴:너 저기 창문으로 뛰어내려 보디:각하 저에겐 처자식이 있습니다.8층높이에서 떨어지면 도저히 살아날수가 없습니다.제발살려주세요 

344호 2011. 05. 10. 정일:야 내 보디가드야 이리와 보디:네 정일:야 뛰어내려 보디:네 보다못한 푸틴이 보디가드를 잡고서 말린다. 푸틴:야 여기서 떨어지면 죽어 보디:놓으십쇼 제겐 처자식이 있습니다! 

390호 2011. 06. 04. 내가 김정일이다 이새끼야 

392호 2011. 06. 05. 한류스타 김정일 

411호 2011. 06. 28. 3대세습 feat. 김정은 a,k.a 샛별대장 

412호 2011. 06. 28. 2011.년:북조선의 무기프로그램을 강화하여 미사일 1000여기 이상으로 늘어나고 핵실험이 다시 시행되자 UN으로부터 제재를 받음. 2012년:김정일 급사. 그의 아들 김정은이 북한의 지도자로 집권함 

416호 2011. 07. 04. 나는 김정일이 불쌍하다. 

427호 2011. 07. 25. 김일성 개새끼 해보라우 

429호 2011. 07. 27. “노무현 개새끼~~엉엉엉 자 술이나 한 잔 하게” 

449호 2011. 08. 22. 김정은 원래 이름이 김정운이였지비..북조선의 미래에 구름이 낄까봐 은으로 바뀐거지비.. 

463호 2011. 09. 15. 남조선 청소년=예비범죄자.인권 필요없음 북한인민=일단 김정일이 개새끼라 북한인권은 중요합 근데 인권이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알바 아님. 

452호 2011. 10. 20. 북한 전어 굽는 냄새에 박제된 김일성이 돌아옴 

463호 2011. 10. 29. 김정일 개새끼하면 날아라 슈퍼보드 제작진 김정일씨가 슬피 움. 

473호 2011. 11. 15. 김정일 개새끼! 

484호 2011. 12. 07. 주체탑은 오늘도 모에하시며 일용할 감자를 배급하시매 여튼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 만세 

490호 2011. 12. 15. 가화만사성이라고 주체100(2011.)년11월에 새로나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노래가 나왔는데 장군님이 가르쳐준 가화만사성이라고 하는데 장군님 집안이 개판인걸 어쩌냐.응? 

495호 2011. 12. 17. 김정일 장군님 배 쓰다듬고 볼에 뽀뽀하고 귀 핥고싶다 

496호 2011. 12. 18. 배가 김정일 배처럼 되어버렸어! 

497호 2011. 12. 19. 김정일 죽었는데 정말 제발 저랑 사귀어주세요 

499호 2011. 12. 19. 김정일 개새끼 해봐! 

500호 2011. 12. 19. 김정일 부검? QT @gb_Luxun_bot:분명 나는 종종 남을 해부한다. 하지만 더 많은 경우 더 사정없이 나 자신을 해부한다. 

505호 2011. 12. 19.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에 조의를 표하며 조문 대신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조의의 뜻으로 보내겠습니다. 좋은데 쓰세요. 

511호 2011. 12. 19. 김정일 개새끼해봐! 

515호 2011. 12. 20. 김정일 주검이랑 님들 주검이랑 차이점은 님들은 죽을 때도 저렇게 관리를 못받고 죽는다는거죠. 

516호 2011. 12. 20. 김정일 주검이 뭐 대수라고.=_=; 

521호 2011. 12. 26. 시신을 방부처리하는거야말로 제일 바보같은 짓 같다. 주검은 주검일 뿐이다. 우상화와 희화화는 비례관계인데. 

523호 2011. 12. 28. 시신방부처리하는데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북한엔 벌써 관리할 주검이 둘이야. 

525호 2012. 01. 02. 어젯밤 꿈에 북한에 갔다왔다. 근데 김일성 죽기 전 북한이었는데 뜻밖에도 권력이양 직전 김정일이 먼저 죽어버린거다. 다들 난리가 나서 특히 김일성은 아들이 죽은 비통함에 나도 죽겠다며 높은곳에서 뛰어내리려는걸 내가 말렸다. 웃긴 가족이었음. 

526호 2012. 01. 05. 김정일을 퇴치하자!


출처 - 박정근 트위터


"김정일가슴만지고싶다, 김정일을 퇴치하자, 김정일 카섹스" 같은 트윗을 올리는 사람이 우리민족끼리를 리트윗했다면 그게 북한을 찬양하기 위한 목적일까요?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겁니다. 이건 애당초 화를 내도 대한민국 검찰이 아니라 북한 당국이 화를 내야 할 사안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상식의 상식화'를 실천하는 선두주자인 대한민국 검경은 박정근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지만 트위터 내용을 리트윗했다고 구속된 사례는 박정근 사건이 세계 최초입니다. 당시 해외 언론에도 대서특필되었고 CNN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한국에선 농담하면 감옥에 끌려갈지도 모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이죠. 상황이 이러니 이명박 정권부터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인권 순위와 언론 자유도 순위가 나날이 추락하는 건 당연한 결과였겠지요.


South Korean 'joke' may lead to prison(CNN)


1심에서는 조롱의 의도였다고 해도 북한 트윗을 리트윗한 행위 자체가 이적표현물을 공중에 살포한 것이라는 어이없는 재판부의 판단 때문인지 검찰은 징역 2년 구형했습니다. 이후 재판부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으나 검찰과 박정근 양측 모두 항소했습니다. 2심에서는 조롱과 풍자의 의도가 뚜렷하고 북한에 동조하거나 동조하게 하려는 목적성이 없어 검찰이 제기한 혐의는 모두 무죄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심리 2년 반만인 2014년 8월 28일에 이르러 이 어이없는 사건은 대법원의 무죄 선고로 최종 마무리되었습니다.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판결이지만 박정근은 정신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정신세계가 피폐해졌고, 수입이 끊겨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비상식의 극치라고 할 잘못된 조사로 한 사람의 2년 반 인생을 망쳐버린 검찰은 대체 어떻게 이를 보상할 건지 묻고 싶습니다.


 

출처 - 트위터


당치도 않은 이유로 억울하게 구속되어 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할 때는 잠잠하던 국내 언론들은 박정근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자 마치 간첩이 분명한 사람에게 부당하게 무죄 판결이 난 것처럼 희한한 기사 제목들을 쏟아냈습니다. '비상식의 상식화'란 이렇게 확산되는 걸까요?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공권력을 휘둘러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 그로 말미암아 국민 스스로 자기검열의 족쇄에 빠지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공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소외된 이들을 생각하는 한가위가 되길 

 



출처 – 민중의 소리, 연합뉴스


온 가족이 모여앉아야 할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앞에 두고, 세월호 참사로 인한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진실을 밝혀주길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시위를 불법으로 간주하여 몰래 미행하고 무차별 채증하는 행위는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행위에 가깝습니다. 더 많은 민주주의와 권력이 더 낮은 곳으로 향하도록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가 옮겨붙을까 봐 안간힘을 다해 찍어누르는 박근혜 정권의 무리수가 도를 넘었습니다.   

 

 

 

 

출처 - 한겨레, 경향신문

 

비상식의 폭력을 행사하는 공권력 앞에서 시민들이 취해야 할 행동은 연대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온 국민이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진정한 대응 방안이 연대 외에 따로 있을 리 만무합니다. 추석에도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는 세월호 유가족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에 연대가 필요한 이들을 보듬으면서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한가위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검열의 역사는 뿌리 깊습니다. 과거 왕권과 종교의 권위에 도전하는 책을 금서로 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음란과 폭력을 통제한다는 미명하에 이뤄지는 검열에 이르기까지 검열은 지배자의 통치 수단으로 이용된 측면이 다분합니다.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이런 검열이 일상화되면 피통치자는 검열의 '끝판왕'이라고 할 자기 검열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속칭 '알아서 기게 되는' 거죠. 이런 상황은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검열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비화합니다. 생각비행은 검열의 헤게모니를 쥐고 표현의 자유를 억합하려는 국가와 정부의 문제를 줄곧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뤄왔습니다. 

 

다시 기억해야 할 5.18 광주민주화운동, 신군부의 독재와 언론·방송의 굴종사
http://www.ideas0419.com/145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사회 변화의 씨앗 있다
http://www.ideas0419.com/192

 

정보조작 의혹으로 살펴보는 SNS 심의의 허구성
http://www.ideas0419.com/280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며 표현의 자유를 다시 돌아보다
http://www.ideas0419.com/354

 

<천안함 프로젝트>,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http://www.ideas0419.com/448

 

삼일절에 돌아보는 헌법의 근본정신
http://www.ideas0419.com/456

 

증거 조작 시대에 꼭 봐야 할 영화 5편
http://www.ideas0419.com/459 

 

안타깝게도 2014년 현재 광주에서 예술가의 작품을 검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출처 – 광주 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박근혜 비판을 금지하다


민주화의 상징 도시 광주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광주 비엔날레는 올해로 20돌을 맞은 현대설치미술전시회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생긴 비엔날레로 국제적 위상도 매우 높습니다. 올해 9월 5일부터 열릴 예정이던 이 행사에 17개 나라, 49명의 작가가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광주비엔날레가 올해 그간 쌓아온 위상을 일거에 허물어버리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비엔날레 창설 20돌을 맞아 광주 5.18 정신을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로 특별전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비엔날레 측이 정치적인 이유에서 특정 예술 작품의 수정을 지시하고, 그 수정본조차 전시를 거부한 일이 사건의 발단입니다. 문제 작품은 민중미술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입니다.


출처 - 뉴시스


광주비엔날레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을 거부한 이유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할 박근혜 대통령을 작품에서 허수아비로 표현했기 때문인데요, <세월오월>은 세월호 참사로 불거진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이 등장하게 된 원인을 되짚어 올라가 결국 518 광주에 닿는 작품입니다.

 

작품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김기춘 비서실장,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문창극 총리 후보자,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수많은 정치인이 등장합니다. 광주 비엔날레 측은 박정희로 보이는 군사독재 정권과 김기춘에 의해 조종되는 허수아비로 묘사된 박근혜 대통령 부분을 수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홍 작가는 고민 끝에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형상화한 내용을 닭으로 수정합니다.
 

출처 - 한국일보


그러나 광주비엔날레 측은 홍 작가의 작품 전시를 유보했고, 보수단체들은 홍 화백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기에 이릅니다. 홍 화백은 "세월호를 들어 올려서 아이들을 탈출시켜 우리 품 안에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림의 주제도 못되고 부제일 뿐이다. 세월호 사건은 단순한 침몰 사고가 아니라 학살사고이고 그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에 있다고 생각해 그림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림 수정으로 작품이 담고 있는 원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작가의 작업에 간섭하지 않겠다며 취소 결정을 뒤집고 비엔날레 재단이 결정할 일이라고 한발 물러서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하지만 비엔날레 재단은 결국 <세월오월> 작품의 전시 유보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세월오월>은 특별전 장소인 광주시립미술관에 걸리지도 못한 채 특별전 개막식이 열렸습니다.

 

특별전을 총괄해온 책임 큐레이터는 <세월오월> 전시 유보가 자신이 불참한 가운데 강행된 결정이라며 개막식에 앞서 사퇴를 표명했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항변하면서 말입니다. 애초 계획된 특별전 개막식은 5분 만에 파행으로 끝났고, 20년 전통의 광주비엔날레는 5.18 정신을 세계에 알리기는커녕 그 정신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세계 작가들의 공동 대응, <세월오월>의 전시를 허하라!


지난 8일 특별전 개막식장 바깥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세월오월> 작품의 게릴라 전시가 기획되었습니다. 홍성담 작가를 포함한 다른 작가들이 <세월오월> 작품의 수정된 그림을 4배 크기로 확대한 프린팅을 가지고 외부에 전시하는 항의 퍼포먼스를 벌이려 했으나 사복경찰 50여 명이 동원되어 이를 막는 소란이 일었습니다. 이후 홍 작가의 거주지를 사복경찰이 감시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사태가 점점 커지자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들이 공동 대응에 나섰습니다.
 

출처 - 광주일보


이윤엽, 홍성민, 정영창 작가는 지난 11일 오전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달콤한 이슬 1980년 그 후’에 출품했던 자신들의 작품을 자진 철거했습니다. 작가들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검열에 항의하면서 이 작품을 전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출처 - 광주일보


광주비엔날레 보이코트 움직임에 국제적인 반향이 일고 있습니다. 일본 오키나와 미술계가 출품작의 철회 의사를 밝히며 홍 작가의 <세월오월> 작품 전시를 요청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오키나와 미술계는, 예술은 정치의 관점이 아닌 인간의 생명과 존엄의 문제로 제안하는 행위이므로 예술 작품은 정치의 힘으로 막을 수 없으며, 그렇지 못하다면 비엔날레의 이념이 무너진 것이니 참여할 의미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서 가장 주목받는 독일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을 오키나와 미술계가 대여해주었기 때문에 오키나와 미술계가 전시를 철회할 경우 광주비엔날레는 국제적인 망신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번 사태는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 측이 박근혜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벌어진 촌극에 가깝습니다. <세월오월> 작품 중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풍자는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광주민주항쟁으로부터 이어진 민주정신이 세월호 참사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다는 승화와 치유가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입니다. 

 

설사 홍 작가의 작품 주제가 직접적인 박근혜 비판이라 할지라도 정치권이나 행정력이 예술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일반적인 장소가 아니라 예술적 표현의 극한을 맛볼 수 있어야 할 예술전시회장에서 이번과 같은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권력의 검열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 드러나는 지표가 아닌가 합니다. 눈치를 보고 몸을 사려야만 무사할 수 있다는 자기 검열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다른 곳도 아닌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가 독재자의 딸을 무서워하며 알아서 기다니 참혹한 심정입니다.

 

 

박근혜 정부, "자유 없는 민주주의"를 꿈꾸는가?


 

출처 - 한겨레


작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월간 《현대문학》이 원로소설가 이제하와 정찬, 서정인의 소설 연재를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중단시킨 것이죠. 그러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신을 부정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문학에 이어 이번에는 미술 다음에는 어떤 예술이 권력 앞에 굴복하고 자기 검열을 하게 될까요? 독재자의 그늘에서 비롯된 박근혜 정권의 어둠이 우리 사회에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술계의 연대와 시민의 관심과 비판의식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종북몰이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자유 없는 민주주의"가 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2013년 12월 16일 국회 세미나실에서 열린 '표현의 자유와 언론탄압 2차 사례발표'에 참석한 유종성 교수(미국 UC샌디에고)는,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요소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한다고 해도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자유 없는 민주제"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대통령 선거 부정 의혹, 부정 당선 의혹, 국정원과 국방부가 연류된 부정 선거와 댓글 조작 의혹, 이를 수사하던 검찰의 수장을 혼외아들 문제로 찍어낸 의혹, 국가정보원의 유오성 간첩조작사건 등을 바라보면 과연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선박 침몰 사고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퇴행과 깊은 연관 관계가 있으며, 총제적인 구조 실패가 독재 국가에서나 나타날 법한 정권의 경직성 때문이라는 비판적 분석이 힘을 얻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제(8월 12일) 《경향신문》에 홍성담 작가를 인텨뷰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내 그림 '수장고'라는 감옥에 가두지 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인터뷰 내용을 발췌해 전달하는 것으로 이번 기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왜 이런 작품을 구상했나.

“올 1월부터 ‘광주 정신과 관련한 전시회를 하는 데 걸개그림을 그려 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수차례 거절해 왔다. 그런 와중에 세월호가 침몰했다. 내 작업실이 안산에 있는데 단원고 2학년생 2명을 아르바이트로 써 왔다. 이 중 한 명도 숨졌다. 사고 이후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며 나흘을 보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자본주의와 부패한 관료, 국민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국가 시스템이 세월호 사건을 만들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세월호와 5·18은 국가 폭력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작품을 결정했다.”

 

-박 대통령 풍자 장면은 꼭 필요했나.

“세월호 침몰로 304명이 죽거나 실종됐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못 했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박 대통령에게서 유신의 그림자를 봤다. 대통령은 유신의 어두운 그림자들의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사건이 발생한 정치적 원인은 반드시 밝혀서 증언하고 기록해야 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시각적으로 기록할 임무와 의무가 민중미술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광주시는 ‘시의 예산이 지원됐는데 정치적 내용은 안된다’는 입장이다.

“광주시에서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전체 제작비는 1억원 정도 들었다. 작품은 기획 단계부터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광주 정신은 저항 정신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들에게 저항하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광주 정신을 알리겠다는 전시회에서 이런 정도의 권력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도 못 한다면 광주 정신은 집어치워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전시가 불가능하다면 작품은 작가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시는 미술관 수장고에 넣어 둔 채 감옥살이를 시키고 있다. 세상에 빛을 못 보게 하려는 술수다. 광주시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너무 부끄럽다. 윤장현 시장이 책임지고 담대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