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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실질문맹률 OECD 최하위권" 대한민국의 슬픈 초상

by 생각비행 2014. 3. 7.
최근 과거의 한 조사 결과가 SNS상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실질문맹률이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입니다. 드높은 교육열로 문맹률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자부하던 나라에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글자 자체를 알아보고 읽고 쓰는 '문맹률'은 낮지만, 문장의 뜻을 파악하여 생활이나 업무에 적용하는 실질적인 능력은 한참 떨어진다는 얘기인데, 오늘은 이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우리나라가 선진국 국민들의 실질 문맹률을 비교하는 22개 경제개발기구(OECD) 가입국 국민의 문서해독능력 비교에서 꼴찌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전 국민의 75% 이상이 새로운 직업에 필요한 정보나 기술을 배울 수 없을 정도로 일상문서 해독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OECD 국가 문서해독 능력 비교'는 단순한 문자해독율이 아니라 영수증, 구직원서, 봉급명세서, 약 설명서의 처방전, 전자제품의 설명서와 같이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문서 내용을 파악해 실생활에 적용하는 능력을 알아본 조사입니다. 실질문맹률이란 말은 기사에서 편의상 사용한 말이고 정확히는 문서해석능력, 즉 문해력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이 조사에서 문해율이 최하위권이라는 말이 되지요.
 
 
고학력자의 문해율도 OECD 최하위권
 
OECD에서 캐나다 통계청과 함께 1994년~1998년 시행한 국제성인문해능력조사(International Adult Literacy Survey, IALS)는 세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논설, 기사, 시, 소설을 포함하는 텍스트 정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평가하는 산문문해, 구직원서, 급여 양식, 버스/열차 시간표, 지도, 표, 그래프같이 다양한 형태의 정보가 담긴 문서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고 사용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평가하는 문서문해, 금전출납, 주문양식, 대출이자 등 인쇄된 자료에 포함된 숫자를 계산하거나 수학공식을 적용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평가하는 수량문해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나옵니다.
 

 

출처 - 한국교육개발원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은 전반적으로 선진국임에도 문해력이 낮은 편이었고,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은 문해력이 높았습니다. 스웨덴은 산문문해, 문서문해, 수량문해, 전 영역에 걸쳐 1위를 차지했습니다. 반면 칠레는 전 영역에서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북유럽 교육이 대단하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건 아니군요.
 
우리나라는 더 늦은 시기에 따로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조사 문항 자체는 같은 것을 썼습니다. 시차가 있지만 조사 점수를 단순 비교한다면 평균적으로 하위권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문서문해는 헝가리와 슬로베니아와 비슷한 점수를 받아 OECD 조사 23개국 중 19위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는 한국교육개발원에서 2001년 이 IALS 도구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별도로 조사를 시행한 바 있습니다. 조사 시기가 다른 OECD 국가들보다 몇 년이나 뒤였으니, 유리하다면 유리한 상황이었는데도 조사 결과가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은 우려스럽습니다.
 

 

출처 - 한국교육개발원


문서문해 단계별 성인 비율은 5단계로 이루어집니다. 1단계는 문해에 매우 취약한 능력을 보이는 사람으로 아이의 약 설명서를 보고도 정확한 투약량을 결정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2단계는 1단계보다는 어려우며 단순하게 드러나는 복잡하지 않은 일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일상적 문해 능력이 요구되는 일을 말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직업이나 신기술을 학습하는 것 같은 새로운 요구가 있을 때는 이를 처리하기 힘듭니다. 3단계는 진보된 사회에서 복잡한 일과 일상에서 요구되는 것에 대처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준을 말합니다. 높은 문해 수준에서 요구되는 여러 정보를 통합하여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죠. 4, 5단계는 고도의 정보처리 및 기술 능력을 구사하는 수준을 말합니다.

위 표에서 드러나듯이, 우리나라는 글자는 알지만 그 내용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는 1단계가 무려 성인의 38퍼센트나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고도의 지식 노동을 할 수 있는 4, 5단계는 2.4퍼센트밖에 되지 않습니다. 1위인 스웨덴과 비교할 때 1단계 수준의 비율이 6배 많다는 점도 문제지만, 4, 5단계는 17배 가까운 차이가 난다는 점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대학/대학원 졸업생이 많아 고학력 사회로 불리지만, 실상은 학력 거품이 심하고 실질적으로는 하향 평준화되어 있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이는 학력별 문서문해율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한국교육개발원
중졸 이하의 문해율은 중위권 정도이지만 고졸 이상은 최하위인 칠레와 동점이고, 대졸 이상은 칠레보다도 7점 이상 낮아 최하위입니다. 1위인 스웨덴과는 무려 72점 이상 차이가 나는 상황입니다.

 
산문, 문서, 수량 등 3개 영역을 평가하는 성인문해력은 학력이 높을수록 세계 수준과 큰 차이를 보였다. 중졸 이하 학력자의 문해 수준은 중하위권이었지만 대졸 이상 학력자는 △산문문해 19위 △문서문해 23위 △수량문해 21위 등 최하위권이었다. 금전출납 대출이자 계산 등 숫자를 이해하고 계산하는 능력인 '수량문해력'은 276.87점으로 세계 12위, 기사나 소설 등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인 '산문문해력'은 269.2점으로 체코(269.4점)보다 낮고 영국(266.7점)보다 높은 13위였다. 이 연구위원은 "한글을 단순히 읽고 쓰는 국민은 많지만 숫자 문서 도표 등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문해능력은 떨어진다"면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해 교육에 국가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국민은 글자를 읽을 줄만 알지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조금만 어려운 단어를 쓰고 문장이 길어지거나 복잡해지면 알아먹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거죠. 도표나 그래프, 수식이 나오는 실용문서 문해력은 심각할 정도로 뒤떨어집니다. 연구 같은 전문 영역은 더 할 말이 없죠.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관해서는 아주 많은 이유를 들 수 있을 겁니다. 토론이나 논술이 아닌 주입식 교육, 외국어보다 국어 교육을 등한시하는 교육 현실, 부끄러울 정도로 낮은 독서율 등등 말이죠.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세 줄 요약과 난독증이 판을 치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게 해주는 조사였습니다. 2014년 지금 다시 이 조사를 시행하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우리 말도 제대로 못 하는데 외국어 교육에만 몰두하는 '어륀지 정권'을 지난 지금 그 수준이 떨어지면 더 떨어졌지 올랐을 것 같지는 않군요.


영어를 나랏말로 바꿀 셈인가

교육과학기술부는 2010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의 영어 수업시간을 주당 1시간에서 주당 3시간으로, 초등 5~6학년은 주당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려 영어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영어격차가 교육격차, 소득격차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고 14조 원에 달하는 영어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축소하겠다던 장본인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교육개혁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획일적 관치교육, 폐쇄적 입시교육에서 벗어나야 합니다'라며 공교육 강화론을 주장했죠. 그 결과 학교에 영어프로그램만도 20개가 넘는 학교가 생기고, 심지어는 40~50개가 넘는 학교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출처-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생각비행이 출간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에 나오는 글입니다.

초등영어교육이 사교육비 증대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1997년 초등학교에 영어교육이 도입된 이래 초등 저학년뿐만 아니라 미취학 유아와 갓난아기에 이르기까지 무분별한 영어교육 열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영어 조기교육이 과연 교육적이기는 할까? 아동기가 '언어습득능력이 활발한 시기'라는 주장을 부인하자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영어교육 과열이 어린이들의 지적, 정서적 발달을 가로막고 모국어 구사능력을 퇴보시킨다는 것은 학계에 정설로 이해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영어교육을 타교과목에 비해 비중을 높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당연히 국어교육 교과를 비롯한 타 교과목을 경시하는 풍토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사교육의 기회와 경제력이 있는 가정의 자녀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편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 영어 구사 능력이 마치 생존의 필수 조건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학교교육의 목표인 전인교육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영어교육의 강화는 학문의 편식을 비롯한 조기 유학을 부추기고 민족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게 할 뿐 아니라 공교육 황폐화를 불러오게 될 게 뻔하다.

실제로 그간 학교 현장에는 (초중등) 영어교사와 원어민 보조교사가 수업을 하고 있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 영어회화를 가르치기 위해 2009년부터 교육청 단위로 6000여 명의 영어회화 전문강사를 임용시험도 치르지 않고 채용했다가 2011년에는 학교에서 알아서 채용하라고 바꾸기도 했다. 영어공교육 강화정책으로 초등영어 수업시수 증가 외에도 영어 체험교실 증가, 교사 영어연수 강화 정책 등으로 지자체와 교육청 예산이 온통 실용영어 강화정책으로 편중되고 중복되는 문제도 빚어졌다.

초중등 교육은 부모의 경제력이나 학력, 지역 편차에 구애됨이 없이, 학생들이 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자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인성 함양과 지식 습득의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무분별한 조기영어교육 강화는 성장과정의 아이들에게 미국 중심의 편향된 가치관을 심어주게 된다. 한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초등학생들에게 과도한 영어교육을 하는 것은 미국의 창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도록 강요하여 정체성의 혼란을 유발했다.

국제사회에서 영어의 중요성을 무시해서는 안 되겠지만, 중국어나 아랍어처럼 하나의 외국어에 불과하다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영어몰입 소동에서 볼 수 있듯이 영어구사 능력을 한 개인의 인품보다 상위의 가치로 여기는 문화사대주의 풍토가 확대되지 않았던가.

초중등 교육은 국가가 맡아 책임을 져야 한다. 국가는 부모의 경제력이나 학력, 지역 편차에 구애됨이 없이, 학생들이 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커가도록 인성 함양과 지식 습득의 균등한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영어 수업시수 확대방침은 영어교육과 다른 교육 간의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계층 간의 갈등과 교육양극화마저 심화시켰음이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의 5년 임기가 끝났다. 이제는 영어몰입교육의 폐해를 인정하고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초등영어 수업시수부터 줄여야 한다. 영어는 언어와 사고체계가 발달된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교에 배우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영어학자나 현장 교사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중에서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이 부끄럽지 않도록

영어 광풍이 휘몰아치는 국내 상황과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네스코가 모국어 개발 등 문맹 퇴치의 공로가 있는 기관이나 개인에게 수여하는 상의 이름은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입니다. 이 상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고, 개발도상국에서의 모국어 개발 등을 통해 전 세계적 문맹 퇴치에 이바지한 개인이나 단체를 장려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으로 1989년에 제정되어 1990년부터 매년 시상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요르단, 튀니지, 에콰도르, 중국, 사우디아리비아, 이집트, 페루, 필리핀, 토고, 인도네시아, 르완다 등 전 세계 곳곳의 42개 단체에 문맹 퇴치 공로로 세종대왕 문해상이 수여되었습니다. 수상자(단체)는 상금 2만 달러와 상장, 세종대왕 은메달을 받게 되며, 시상식은 매년 9월 8일 '세계 문해의 날(International Literacy Day)'에 열립니다.

 

출처-연합뉴스

2013년도 세계 문해의 날에 세종대왕 문해상 수상자로 인도의 인적자원개발부 소속 국립문맹퇴치국의 문맹 퇴치운동인 '삭사르 바랏 미션(Saakshar Bharat Mission, 글을 읽을 수 있는 인도)'과 아프리카 차드공화국 구에라 지역의 '모국어 문해 프로그램(The programme Mother Tongue Literacy)'이 선정되었습니다. 

인도의 삭사르 바랏 미션은 인도의 25개 지역에 분포되어 26개 언어로 제공되고 있으며 매년 1000만 명이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기본 교육, 직업 교육, 기능적 문해, 여성 평등을 포함하고 있고, 30퍼센트에 이르는 인도의 문맹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수상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또 다른 세종대왕 문해상 수상 단체였던 아프리카 차드공화국 구에라 지역의 모국어 문해 프로그램은 구에라 언어의 발전과 표준화, 문맹퇴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의 영예를 누렸습니다. 2012년과 2013년에 교육을 받은 교육생 6577명 중 여성이 5356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하는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의 문해율 제고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합니다.

2013년 10월 15일에 경남도의회가 <경상남도 국어진흥조례>를 제정했습니다. 우리의 말과 우리글이 지닌 의미가 퇴색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지자체가 나서서 국어에 대한 관심을 환기했다는 사실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말과 우리글로 된 우리 문화가 세계로 급속히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세계 많은 나라의 국민이 우리말과 우리글을 배우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22개 OECD 가입국 국민의 문서해독능력 비교에서 최하위권에 해당하는 상황과 뭔가 들어맞지 않는 현실이 아닌가 합니다. 국적 없는 외래어나 필요 이상의 영어 남발을 지양하고 아름다운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국어진흥조례를 제정하는 것으로 그칠 일이 아니라 올바르고 아름다운 언어생활을 영위한다면 온 국민의 문서해독 능력은 자연스럽게 신장하지 않을까요?

참고자료
 
한국교육개발원 2006 한국의 교육·인적자원지표(SM2006-11)
 
한국 성인의 문해실태에 관한 OECD 국제비교 조사연구(CR20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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