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예능식 사과, 박근혜 정부의 정책인가?

대통령 선거 3일 전, 한밤의 경찰 수사 결과 발표

2012년 12월 16일 박근혜-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초박빙의 대선을 치르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경찰이 국가정보원 직원의 댓글 사건에 대한 긴급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양당 후보의 TV 토론회가 끝난 직후인 밤 11시경에 느닷없이 진행하여 많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했던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2012년 12월 16일은 대통령 선거를 사흘 앞둔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토론에서 박 후보는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을 달았는지 증거도 없는 걸로 나왔다.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고 사과도 하지 않는다"며 문 후보를 쏘아붙였습니다. 이때 문 후보는 "그 사건은 수사 중인 사건이고, 지금 발언은 수사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출처-민중의소리

그런데 TV 토론회가 끝난 직후 한밤에 서울 수서경찰서가 긴급 브리핑을 열어 "국정원 직원 김 씨의 컴퓨터를 분석한 결과 대선후보 관련 댓글 작성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가 박 후보의 토론회 발언 내용을 뒷받침하는 셈이 된 것이죠. 예측을 불허하는 혼전 상황에서 경찰의 이례적인 심야 발표 배경을 놓고 야권은 의구심을 제기했습니다. 실제로 2013년 12월 기준으로 국군사이버사령부 직원들이 대선에 개입하는 글을 올린 것과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에서 트위터에 수십만 건 이상의 정치·대선 개입 활동을 한 사실이 추후 확인되어 이 사건은 더욱 확대되었으며 각계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퇴진 요구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뷰'는 "대선 당시 경찰이 국정원 사건의 전모를 제대로 밝혔다면,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의 8.3%가 마음을 바꿔 문재인 후보를 찍어 승패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여론조사 분석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참여연대에서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의 문제점을 잘 정리해놓았으니 다음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국정원의 개그본능


대선을 앞두고 경찰의 깜짝쇼가 인구에 회자하자 이에 자극을 받았는지 국정원도 주말 예능을 시작했습니다. 일요일인 지난 9일 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문제와 관련해 기습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발표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만 던졌을 뿐이니까요. 개그콘서트와 시청률 경쟁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요? 이런 중요한 사과를 아무도 주목하지 못할 일요일 밤에, 그것도 기자들한테만 기습적으로 메일을 보내놓고 넘기려 하다니 어이가 없다 못해 실소를 금할 수 없군요.

출처 - MBN
 

국정원은 '발표문' 첫머리에서 "최근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세간에 물의를 야기하고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스럽다"고 밝힌 뒤 곧바로 해명을 늘어놓았다. 국정원은 "재판 진행과정에서 증거를 보강하기 위해 3건의 문서를 중국 내 협조자로부터 입수해 검찰에 제출했다"며 "하지만 현재 이 문서들의 위조여부가 문제가 되고 있어 저희 국정원으로서도 매우 당혹스럽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자살을 시도한 국정원 협력자 김아무개씨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정말로 죄송한 마음이 있다면 한밤중에 꼼수를 부릴 일이 아니라 책임자인 국정원장 혹은 그 상급자인 대통령이  국민 앞에 직접 나서서 진심으로 사과해야 마땅합니다. 사과란 진심과 예의를 갖춰서 해야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지요. 국정원의 사과는 꼬리자르기식으로 억지로 꺼낸 비겁한 사과로 보입니다. 여론이 나빠짐을 느껴서일까요, 오로지 종북 타령만 하던 보수 신문과 검찰도 비겁한 급선회에 동참했습니다.

대통령이 "증거자료 위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한마디 하자 검찰은 전격적으로 국정원을 압수 수색을 했고, 보수 신문들은 남재준 국정원장 사퇴와 사태의 철저 규명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애초 대통령의 유감 표명은 사태 해결을 위해서가 아닌 6.4 지방 선거용 말치레라는 관측이 일반적입니다.

출처 - 노컷뉴스
 

향후 꼬리자르기 위험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 변호사는 "국정원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조직이 아니며, 현재 드러난 것만 알고 있을 뿐 사건의 실체와 배후가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다"며 "국정원이 책임지는 쪽으로 꼬리를 잘라내고, 남재준 국정원장이 정치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정도로 마무리하려 할지 모르나 이렇게 되면 배후도 밝히지 못할 뿐 아니라 수사책임자인 검찰에 대한 사법처리도 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특검 명분을 없애고 선거 앞두고 조기 봉합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야당이 공세를 펴기도 어렵게 돼 지방선거 정국이 여당에 유리하게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며 "정치적으로 과감한 선택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건 배후와 관련해 박 변호사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라는 점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해 색깔론 공세를 펴기 위한 것으로 본다"며 "차기 대선 후보에 대한 싹을 자르기 위해 무리하게 하다가 덤터기 쓴 것이다. 검찰의 이런 기세라면 1~2주 안에 처벌대상자와 구속자까지 다 나오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주말 예능식 사과, 박근혜 정부의 정책인가?

그런데 이런 상황, 왠지 익숙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거의 정확히 1년 전에 이런 주말 예능식 사과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국가 공공기관과 권력자의 잘못을 한 개인에게 떠넘겨 꼬리자르기 하는 대처법은 박근혜 정권의 전매특허인가 봅니다. 세계 외교사에 길이 남을 수치인 윤창중 성희롱 사건에 대한 사과도 이와 똑같았으니까요.

출처 - 한겨레21

미국을 순방한 박근혜 대통령을 수행하던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한국대사관에서 자신의 수행으로 배치한 여성 인턴을 호텔 바와 자신의 호텔 방에서 성추행했다는 보도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던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정치권 안팎으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박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비서실장이 대신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데 이르렀지요. 

전날까지만 해도 "사과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어오던 청와대가 주말 오전에 갑자기 사과 입장을 밝힌 배경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다음날 일간신문들이 나오지 않는 토요일에 사전 공지도 없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한 건 유례를 찾기 쉽지 않다. 이에 이날 오후 2시에 예정돼 있던 고위 당·정·청 워크숍에서 있을 수 있는 '인사참사'에 대한 논란을 사전봉쇄하기 위한 포석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인사 책임자인 대통령은 뒤로 빠진 채 비서실장 명의의 대국민 사과문을 청와대 대변인이 주말에 기습적으로 대독했지요. 추후 가시적인 책임자도 후속조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진심이 아니라 뒤로 머리를 굴리는 사과, 예의가 아닌 꼼수에 불과한 참으로 나쁜 사과의 전형이었습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데, 잇따른 인사 실패의 결과가 1년 뒤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까지 이어진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에 대해 많은 국민이 "차라리 사과를 하지 말든가"라고 분노하며 한때 박근혜 정부의 국정지지율이 41퍼센트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국민이 뽑아준 대표자가 국민을 우습게 보니 사과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합니다.


소비자 우롱하는 기업의 꼼수 사과도 여전

정치권의 하는 듯 마는 듯한 비겁한 사과 행태가 사업계까지 퍼져나간 걸까요? 국내 최대 소셜커머스업체인 티켓몬스터는 지난 3월 5일 경찰로부터 3년 전인 2011년 해킹으로 113만 명의 회원 정보가 유출된 사실을 통보받았지만, 이를 주말인 7일 저녁에야 언론에 발표했습니다. 직장인들이 다 퇴근하고 주말을 즐기기 바쁜 시간에 은근슬쩍 사과해 진정성에 의구심이 듭니다.


출처 – 티켓몬스터 홈페이지

더군다나 티몬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제대로 공개하지도 않았습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 광고뿐입니다. 별도의 팝업으로 사과문을 띄우기는커녕 한참 스크롤을 내려야 보이는 홈페이지 우측 하단에 조그맣게 2011년 개인정보 유출 확인이라는 메뉴를 만들어놓았을 뿐이었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거늘, 국익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대통령, 국정원, 검찰, 여당, 보수언론이 이렇게 비겁한 작태를 보이는데 일개 기업이라고 다르겠습니까? 그러니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 총수들이 한결같이 휠체어 신공을 선보이며 집행유예 코스로 빠져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큰 기금을 출연하여 재단을 만들겠다는 약속으로 위기를 넘기는 술책에 국민이 하루 이틀 당한 것도 아니지요.

박근혜 정부 내내 각계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반복될 텐데 비겁한 주체들이 앞으로 어떠한 예능감으로 무장하여 국민에게 큰 웃음을 줄지 자못 기대되는군요.

        
생각비행이 펴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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