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가진 사람에게 망각은 어렵다."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유명한 콜롬비아의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말입니다. 동시에 지난 17일 콜롬비아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과 함께한 만찬에서 꺼낸 말이기도 하지요. 꺼낸 말은 의미 있지만, 장소가 잘못되어 영혼 없는 발언에 그쳤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말을 도피성/외유성 남미 방문대신 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와 19일 4.19 혁명 55주년 기념식에서 국민에게 사죄하면서 이 말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사죄할 마음은커녕 거짓말로 일관하면서 국민에게 폭력을 가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세월호 1주년을 피하기 위해 급조된 남미 순방길
출처 - 연합뉴스
국빈으로 방문하는 것처럼 홍보했던 남미 4개국 순방길의 첫 방문국인 콜롬비아는 페루, 칠레, 브라질처럼 국빈방문이 아닌 공식방문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콜롬비아에서 와주십사 해서 간 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가겠다고 먼저 얘기를 꺼내 콜롬비아의 허락을 받은 셈입니다.
세월호 1주기 범국민 추모제와 4.19 기념식이 예정된 상황이었으니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국내 일정을 마치고 나머지 3개국만 방문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박근혜 대통령은 유족들이 없는 팽목항에 나타나 깜짝쇼를 벌이고는, 성완종 리스트로 식물총리가 된 이완구 총리를 버려두고 뭔가 켕기는 게 있는 사람처럼 일부러 잡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시급히 출국했습니다. 이게 도피성 순방이 아니라면 대체 뭘까요?
추모 행사가 불법 집회? 헌법을 무시한 경찰의 불법 대응이 문제!
출처 - 참여연대
세월호 1주기 추모제와 헌화, 유가족과의 만남 등이 예정된 시청 광장과 광화문 광장은 지난 16일부터 경찰에 의해 도심 속 섬이 되었습니다. 지난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기 위해 수많은 시민이 시위를 벌였을 때 등장한 '명박산성'처럼 이번엔 '근혜차벽'이 도로나 지하철역은 물론 광화문으로 통하는 골목마저 모조리 막아버렸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불통'과 대한민국 시민을 향한 정부의 의지가 그대로 드러내는 상징적인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세훨호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들의 만남을 통제한 대한민국 경찰(사진-생각비행)
경찰은 "불법집회로 변질된 세월호 1주기에 참여한 군중을 막기 위해서"라고 변명했습니다만, 경찰의 차벽부터가 완벽한 과잉진압의 결과물이자 불법 그 자체입니다.
출처 - 슬로우뉴스
경찰의 차벽 설치는 2011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결정한 사안입니다. 경찰 버스로 차벽을 설치해 시민들의 통행을 전면 통제하고 평화 시위를 막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해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교수는 경찰 차벽은 위헌임과 동시에 경찰직무집행법 위반이기도 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법령상으로 경찰버스는 사람의 통행을 가로막거나 집회 현장을 봉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경찰 장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경찰 차벽이 급박하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 쓰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지난 주말 세월호 추모 시위는 불법 폭력 시위로 변질되어 차벽 사용이 불가피했다고 변명했습니다. 하지만 이조차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출처 - 미디어스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제는 평화롭게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추모제 이전부터 치밀하게 차벽을 계획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추모제 행사 후 헌화하기 위해 움직이는 동선을 미리 차단해 시민이 유가족과 만나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었죠. 애초부터 경찰은 계획된 의도로 불법을 사전모의한 셈입니다.
출처 - 고발뉴스
경찰의 불법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를 그리워하는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을 향해 경찰은 물대포를 사용했습니다. 또한 물대포의 물마저 불법으로 조달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고발뉴스》의 이상호 기자는 경찰이 소화전의 물을 살수차에 불법 주입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트위터에 올린 후 경찰에 항의했습니다. 해당 관할인 종로소방서는 소화전 이용을 사전에 허가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사과하기는커녕 이상호 기자를 체포했습니다. 기자마저 체포하는 마당에 경찰이 시민에게 무력을 행사하지 않을 리 없죠.
출처 - 미디어스
경찰은 불법으로 도로와 인도를 점거하여 시민의 통행권을 제한한 다음 이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들을 향해 최루액과 물대포를 쏘며 과잉대응했습니다. 언론과 방송을 통해 경찰이 광화문 일대의 교통 CCTV의 외부 송출을 9시간 이상 차단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참고: '세월호 집회 충돌' 그날 주변 CCTV 중단..왜? )
지난 17일과 18일 격렬했던 집회 현장에서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의 개인 정보가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해명했지만, 어불성설입니다.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채증을 남발하며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통행의 자유를 유린하는 경찰이 시민의 개인 정보 공개를 막기 위해 CCTV 외부 송출을 차단했다니, 그걸 누가 믿겠습니까?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입니다. 외부 송출을 꺼놓은 동안 경찰이 이를 시위대를 감시하는 목적으로 활용했음이 명백합니다. 지난해에도 경찰이 고속도로 CCTV로 집회 참가자들을 몰래 촬영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지난 18일 경찰은 광화문 부근에서 세월호 유가족 21명 등 100명이 넘는 참가자를 연행했습니다. 헌법부터 경찰직무법까지 어긴 자기네의 불법 행위를 눈 감은 채 말입니다.
세월호에 아직 사람이 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한 시기에 벌어진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 성완종 리스트로 불거진 정치권의 혼란, 평화시위마저 불법으로 규정하고 진압하는 경찰의 행태는 4.19 혁명 당시의 시대 상황을 방불케 합니다. 또한 꼭 1년 전 자본주의의 민낯을 목격한 세월호 참사 그날을 방불케 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재래입니다. 대한민국호의 선장은 혼자 도망치고 경찰은 시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책임자를 보호하는 데 안달입니다. 정치권은 세월호의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형국입니다. '기레기 언론'은 얼마나 달라졌나요? 시민의 눈과 귀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다양한 방법으로 뜻을 전하는 시민들(사진-생각비행)
4.19 혁명의 그날 시민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도록 방기한 위정자들을 좌시해선 안 됩니다. 4월 16일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을 가슴에 묻은 유가족의 슬픔을 짓밟는 인면수심의 괴물들을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신동엽 시인은 <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는 시에서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 그날이 오기까지는, 四月은 갈아엎는 달 / 그날이 오기까지는, 四月은 일어서는 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그날'은 아직 멀었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세월호에 아직 사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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