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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세월호 참사 100일, 국가는 대체 무엇을 했는가

by 생각비행 2014. 7. 23.

내일(7월 24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됩니다. 전대미문의 의혹을 남긴 세월호 사건은 무엇 하나 확실히 밝혀진 게 없어 보입니다. 미궁을 헤매는 것과도 같았던 98일간의 수사. 세월호 참사 100일을 이틀 앞둔 시점에 세월호 사건의 중심인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전 국민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세월호 참사가 한 사람의 죽음으로 그냥 덮여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이에 세월호 참사 100일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해결책이 나오기는 했는지, 안전대책은 세워졌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출처 -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생각비행)


 

출처 - 뉴스1



유병언 사망, 그동안 헛다리 짚은 경찰과 검찰


경찰과 검찰의 미흡했던 초동 대응은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유 전 회장의 시신을 두고도 똑같았습니다. 지난 6월 12일 전남 순천 송치재 휴게소에서 2.5킬로미터 떨어진 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유 전 회장은 40일 동안 누군지 모르는 노숙자로 취급되어 순천의 한 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출처 - YTN


변사자의 시신이 유병언의 시신으로 판단된 날, 검찰은 숨어 있는 유병언을 찾겠다며 구속영장을 재청구했습니다. 검찰이 재수사의 의지를 밝힌 지 불과 4시간 만에 경찰은 순천에서 발견된 변사체 DNA가 유 전 회장의 것과 일치한다는 국과수 감식 결과를 알립니다. 지난 6월 12일 순천에서 변사체를 발견한 경찰은 다음 날 순천 지청에 변사 보고를 했지만 담당 검사는 이를 허투루 넘겼습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유 전 회장의 검거를 촉구한 사건을, 검찰은 바빠서 잘 몰랐다며 방치해놓고 죽은 유 씨에 대해 6개월짜리 구속영장을 재청구한 그야말로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출처 - 한겨레

 

출처 - 경향신문

 

시신이 발견된 6월 12일은 검경이 합동으로 구원파 금수원 2차 진입 수색을 시도했던 날이기도 합니다. 당시 총 1만여 명의 경력을 동원해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허탕을 치고 끝났습니다. 그 이후 검경은 유 전 회장의 추적을 계속해왔다고 밝혀왔는데요.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유 전 회장의 변사체를 확보해놓고도 망자를 찾아 국민의 혈세를 어이없이 낭비한 꼴입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과 정부가 보였던 무능함에 어깨를 견줄 만하네요.



출처 - 연합뉴스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유 전 회장을 검거하고 못 하고의 문제를 떠나서 소위 '국가 개조'에 버금가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사태이며 최종적으로 국가의 의무인 구난과 후속 조치에 실패한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할 일입니다. 그간 대한민국 정부, 대통령, 검경이 대대적으로 유 전 회장을 쫓은 건 세월호 참사로 인한 여파를 어떻게든 한 개인의 부정과 비리로 몰아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의혹이 컸죠. 그런데 이번 유병언 전 회장의 시신 발견으로 이들은 스스로 설정한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하는 무능함의 극치를 온 국민에게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유병언 전 회장이 죽었으니 검경 입장에서는 세월호 관련 유병언 수사를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설정해놓은 세월호 참사의 최종 책임자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유 전 회장의 장남이나 가족을 잡아봐야 연좌제를 적용할 수도 없고 사건 자체가 공중에 뜨게 되었죠. 세월호 참사 배상 책임을 위한 재산 추적도 유병언의 죽음으로 취소됩니다. 재산 가압류도 당사자의 죽음으로 상속 절차에 들어가기 때문에 법리 해석이 새로 필요할 듯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살인지 타살인지 각종 음모론만 횡행하는 가운데 최악의 경우 정부나 여당에서 피의자의 사망을 이유로 세월호 참사 수사 자체가 종결되었다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무엇 하나 바뀐 것도, 누구 하나 벌한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 국회 헛바퀴 100일


세월호 참사 이후 드러난 정치권의 행보는 분노를 넘어 헛웃음마저 나올 지경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던 국무총리는, 후임 총리 후보가 부패와 비리로 청문회 문턱도 못 가보고 줄줄이 낙마한 탓에 결국 유임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해체를 공표했던 해경은 스리슬쩍 남겨두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으며, 세월호 특별법을 당장에라도 입안할 것처럼 굴던 국회는 당리당략으로 말미암아 표류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가리고 후속 조처를 위한 입법을 해야할 국회는 달라진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던 다짐이 무색하게 100일을 허송세월하고 있습니다. 여야는 지난 6월, 19대 국회 후반기 첫 임시국회를 소집하면서 세월호 국회로 명명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주요 법안을 단 한 건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안마다 여야 간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데다 7.30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있어 각자의 이익을 위해 대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최우선 입법 과제로 꼽은 세월호 특별법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문제를 놓고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여야가 TF까지 꾸려 협상에 나섰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파행만 거듭하고 있습니다. 야당은 진상조사위가 수사권을 가진 특별사법경찰관을 두어 조사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여당은 애써 진상조사위의 권한을 축소하고 싶어 합니다. 자신들의 비리와 무능함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조사위 구성도 여당은 여야추천권을 배제한 채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과 희생자 가족 측 추천 인사로만 꾸리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정부와 여당 입장을 대변할 인적 구성을 할 수 있으니까요. 조사위의 의결 정족수도 여당은 3분의 2 찬성을, 야당은 과반 찬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를 보다 못한 세월호 참사의 유족들이 국회 앞에서 열흘에 이르는 단식 농성을 하며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요구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은 표류해도 유병언 전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날 의료민영화에 대한 법은 착착 진행되고 있더군요. 전대미문의 참사 앞에서 유족들의 슬픔을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유족들이 직접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정치권의 당리당략과 자기 이익만 챙기는 치졸함 때문에 국민은 다시 한 번 국가가 과연 무엇인지 되묻게 됩니다.



세월호 유족을 직접 공격하고 나선 천박한 보수단체들


세월호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간 세월호 참사의 가족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이 오죽하면 직접 나섰겠습니까. 그런데 이들의 마음에 또다시 대못을 박는 사건이 지난 21일 벌어졌습니다.


 

출처 - 한겨레


보수성향 단체인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 봉사단이 세월호 가족의 단식 농성장에 난입해 세월호 참사가 거짓 폭력이라며 난동을 부렸습니다. 이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연 후에 세월호 유가족들의 집기를 뒤집어엎고 소리를 지르는 추태를 보이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것도 아닌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이해라 수 없다며 유가족을 비난했습니다. 이들은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 봉사단'이라는 단체 이름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봅니다. 어떻게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이리 짓밟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이들 보수단체의 주장은 애초에 틀렸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이 직접 내놓은 가족대책위의 세월호 특별법에는 의사상자 지정이나 특례입학 같은 혜택 조항이 없습니다. 그런 혜택은 정치권에서 여야가 자신들의 입장에서 내놓은 별도의 세월호 특별법안에 포함되어 있을 뿐입니다. 유가족이 내놓은 세월호 특별법에는 어디까지나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세월호 유가족 특별법에는 의사상자 지정, 특례입학 없다(슬로우뉴스)

http://slownews.kr/28079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다 되도록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진상규명도 되지 않았으며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는데, 이제 그만하라는 보수단체의 주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박근혜 정권의 안위를 위한 것에 불과해보입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 '100일 100리 행진'



출처 - 참세상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참사 100일을 맞아 약칭 '100일 100리 행진'을 진행한다고 밝혔습니다. 23일 오전 9시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대행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1박 2일 행진에 돌입하는 것이죠. 안산 단원고등학교, 하늘공원, 광명시민체육관까지 행진한 후 국민대토론회와 촛불문화제를 개최합니다. 이튿날에는 광명시민체육관에서 국회로 행진해 단식 중인 유가족을 만날 예정입니다. 이후 서울역 광장을 경유해 저녁에는 광화문 광장을 거쳐 문화제가 열리는 서울시청광장까지 행진합니다. 23일 행진과 함께 서울에서는 반대로 팽목항으로 가는 기다림의 버스가 운행됩니다.

 

희생된 아이들과 가족들의 영정 앞에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한 특별법을 올려놓기 전에는 물러설 수 없다는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 참사 100일이 다 되도록 아무것도 변한 게 없고,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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