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장르 중 SF는 'Science Fiction'의 약자로 과학적 사실이나 가설을 바탕으로 작가가 상상력을 가미해 쓰는 작품을 의미합니다. 과학소설 또는 SF소설이라고도 합니다. 나아가 이런 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창작된 영화, 게임을 이르기도 하고, 원작 자체가 영화나 게임인 SF도 존재합니다. SF는 과학에 기반을 두는 만큼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세계와 미래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런 상상력을 통해 인간성을 성찰하거나 현재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은 편입니다.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작품들처럼 말이죠. SF의 장르적 특성 때문에 현대 과학이 대중의 지지를 받으면서 SF의 문학사적 위상은 점점 드높아졌습니다. 상업적으로 SF영화 혹은 게임의 인기가 더 높을지 몰라도 원작인 문학 작품들이 없다면 이쪽 분야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출처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휴고상과 네뷸러상은 SF소설 중 그해의 최고 작품을 뽑아 시상하는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 휴고상은 1955년 미국 SF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휴고 건즈백을 기념하며 만들어진 상입니다. 70여 년에 이르는 전통을 자랑하는데요, 우리가 잘 아는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 커트 보니것, 아서 C. 클라크, 어슐러 르 귄, 윌리엄 깁슨, 닐 게이먼 등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이 상의 수상자입니다. AI, 사이버펑크, 사이버스페이스 같은 개념이 이런 SF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각인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조만간 개봉할 대작 SF영화 <듄> 역시 프랭크 허버트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데요,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 수상한 작품입니다. 영화로 치자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2024년 연초에 휴고상의 권위와 명예가 완전히 실추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작품 심사와 수상 작품 선정 과정에서 검열과 블랙리스트가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됐기 때문입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2월 15일 휴고상을 시상하는 세계SF대회(월드콘)의 운영위원회 측이 지난달 발표한 2023년 시상식 관련 데이터를 근거로 이와 같이 보도했습니다.

 

 

2023년 휴고상 시상식은 10월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개최됐습니다. 중국 작가가 상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휴고상 시상식이 중국에서 열린 건 처음이었죠. 그런데 심사 과정을 두고 여러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2023 휴고상 검열 리포트(FILE770.com) : https://file770.com/the-2023-hugo-awards-a-report-on-censorship-and-exclusion/ (영문)

우선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 중인 작가 RF 쾅이 특별한 이유 없이 최종 후보 명단에서 제외된 데 대해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운영위 측이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입니다. 이 의혹은 2023년 휴고상 심사위원단의 메일이 유출되면서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출처 - documentcloud.org

 

휴고상 심사위원장이었던 데이브 맥카티는 지난해 6월 중국에서 시상식이 열리기 전 심사위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후보 작품이 중국, 대만, 티베트 또는 중국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추천해도 안전할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압박했습니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심사위원이었던 다이앤 레이시는 다른 심사위원들에 보낸 성명에서 "우리는 중국, 대만, 티베트 문제 등 중국이 민감해하는 이슈를 다룬 작품을 면밀히 심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부끄럽게도 그렇게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로써 휴고상 심사위원들이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스스로 검열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검열 과정은 실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실상 휴고상 운영위 측은 블랙리스트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꼼꼼하게 작가들을 걸러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상식이 중국에서 거행되기 때문인지 중국 정부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거스를 만한 여지가 있다면 죄다 후보에서 제외해버렸습니다.

 

출처 - 넷플릭스

 

<멋진 징조들>, <샌드맨> 등 넷플릭스에서 큰 인기를 끈 작품의 원작자인 닐 게이먼은 <샌드맨> 여섯 번째 에피소드로 후보가 되고도 남을 정도로 추천을 받았지만 최우수 드라마틱 프레젠테이션 후보에서 제외됐습니다. 닐 게이먼이 평소 중국 정부가 작가들을 구금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수상 작품 선정 과정에서 의혹의 발단이 됐던 RF 쾅의 경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였던 <양귀비 전쟁> 3부작의 주인공이 마오쩌둥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레딧

 

중국계 캐나다인인 시란 제이 자오 역시 부당하게 후보에서 제외됐습니다. 그의 작품 <IRON WIDOW>가 측천무후 이야기를 SF로 재해석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모조리 탈락시킨 겁이 현실입니다. 알래스데어 스튜어트 작가의 경우 대만에 있는 배트맨 테마 호텔에 가고 싶다고 언급했다는 이유로 휴고상 후보에서 제외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출처 - 트위터

 

세 번이나 휴고상 후보에 올라 자격이 차고도 넘치는 폴 와이머는 티베트에 간 적이 있다는 이유로 후보에서 제외됐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폴 와이머는 티베트에 다녀온 적이 없다고 하죠. 그는 자신이 다녀온 곳은 티베트가 아니라 네팔이라며 SNS ID를 '네팔은 티베트가 아니다'로 바꿔 항의의 뜻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휴고상의 권위가 실추된 사건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과거에 정권의 눈치를 보며 국방부가 불온도서를 선정한 적이 있으니까요. 그러자 정부가 인증한 불온도서라며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품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이런 일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2023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9월 14일 부천국제만화축제 기간에 맞춰 개막할 예정이었던 제24회 전국 학생만화공모전 수상작 전시회를 열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인 <윤석열차>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풍자했다는 이유로 잡음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지자 아예 전시회를 취소했기 때문이었죠. 불통의 정치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출처 - 에스콰이어

 

휴고상 심사 사건으로 올해 수상작을 심사해야 할 2024년 월드콘 위원회 위원 일부는 사임했다고 하죠.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사회의 불합리한 시스템을 비판하고,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해오던 SF 장르의 권위 있는 상의 권위와 명예가 바로 회복되는 건 아니죠. 표현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의 전통 있는 시상식이 중국 자본에 굴복했다는 사실이 씁쓸함으로 남습니다.

현직 국회의원이 대통령 경호원에 의해 끌려나간 경악스러운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이와 같은 일이 또 발생했습니다. 이번에는 국회의원이 아닌 졸업생이 대상이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윤석열 독재 국가로 전락하나? 현직 국회의원이 끌려나가는 현실 : https://ideas0419.com/1408 

사건은 지난 2월 16일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학위수여식 행사장에서 일어났습니다. 자랑스러운 학생들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 친지, 친구 들이 운집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졸업식 현장은 여느 졸업식 풍경과는 달랐습니다. 대통령이 졸업식에 참석한다는 공지 때문이었죠.

학위수여식에 참석한 학부모들의 증언에 의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사실이 졸업식 전날 밤에 긴급하게 공지된 모양입니다. 학교 측은 학부모님께 늦지 않게 와달라고 당부했는데 다음 날 아침 식장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대기 줄이 몇 겹으로 꼬여 늘어선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졸업식 입장 시간이 되기도 전에 학부모들의 입장이 차단됐다고 합니다. 식장이 만석이라 들여보낼 수 없으니 옆 강당에서 스크린으로 학위수여식을 보라고 했다죠. 이미 졸업생 1인 2매 입장권까지 받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졸업식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스크린으로 봐야 한다면 그 상황을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출처 - 한겨레

 

그런데 정작 졸업식장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참석한다고 그 주변 자리를 모조리 비워버린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보안을 핑계로 말입니다. 졸업생 가족과 친지 들이 강력히 항의하자 그제야 입장을 시켜주었는데, 이후 족히 수백 명은 더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부터 졸업식을 망쳐놓더니 윤석열 대통령의 경호실은 한 달 전과 똑같은 사건을 일으키고 맙니다. 졸업식장의 주인공인 졸업생과 이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가족, 친지, 친구 들이 모인 자리에서 졸업생을 끌어내는 만행을 저지른 거죠.

과학입국의 효시를 내건 군사 정권조차 하지 않았던 R&D(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축소해놓고는 윤석열 대통령이 졸업식 축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와 상반된 자화자찬을 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과학계를 고사시키려던 사람이 왜 학위수여식 행사에 참석했는지 의문이 들긴 합니다. 윤석열이 읽은 축사 내용이란 게 축하도 비전도 없는 그저 단어의 나열일 뿐이었다고 입을 모으니까요.

 

출처 - 오마이TV

 

윤 대통령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제가 여러분의 손을 굳게 잡겠다"고 축사를 하자, 비분강개한 한 졸업생이 "R&D 예산 복원하십시오! 생색내지 말고 R&D 예산 복원...!"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말도 끝내지 못한 채 경호원에 의해 입이 틀어막혔습니다. 그러고는 윤석열의 경호원들이 졸업식의 주인공인 졸업생을 개처럼 강제로 끌고 나갔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런 사태를 보고도 한순간의 주춤거림도 없이 축사를 무의미하게 읽고서는 아무런 조치 없이 돌아갔습니다.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뒤늦게 한 달 전과 똑같은 변명을 내놨습니다. 경호 구역 내에서 경호 안전 확보를 위해 소란 행위자를 분리 조치했다는 것이었죠. 

 

출처 - 경향신문

 

이에 대해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명백한 직권 남용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대통령경호법에서 정의하는 '경호'는 '대상자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신체에 가해지는 위해를 방지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안전활동'을 의미합니다. 이번 졸업식에서 졸업생이 있던 자리에서 R&D 예산 삭감을 외친 행위가 윤석열의 생명이나 재산을 위협했다는 근거가 하나라도 있습니까? 졸업생의 언행을 만약 위협 행위로 판단했다면 그 학생을 끌어내기보다 윤석열 대통령을 둘러싸고 보호해야 했겠죠. 그런데 윤석열 주변에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경호원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호원이 물리력을 동원해 학생의 입을 막은 것은 헌법이 정한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러 시민단체가 이번 사태에 대해 대통령 경호처장과 현장 경호원이 직권을 남용한 것이며 윤석열의 과잉 경호에 대한 사과와 당사 경호원에 대한 징계를 해야 한다고 입장을 표명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출처 - MBC

 

카이스트 동문들은 지난 1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였습니다. 이들은 16일 카이스트 학위수여식에서 윤석열 대통령 경호원에 의해 졸업생이 끌려나간 사건을 비판하며 윤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동문 10여 명은 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위수여식) 행사의 주인공인 졸업생의 입을 가차 없이 틀어막고 쫓아낸 윤석열 대통령의 만행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면서 윤 대통령의 사과와 삭감된 R&D 예산 복원을 요구했습니다. 

 

출처 - MBC

 

대통령 경호실에서 한 번은 실수였다고 회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한 달도 안 돼 똑같은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어떻게 변명할 수 있을까요?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건 실수가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반론과 비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경호실의 공식적인 대응 방침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경호실의 행태를 묵과한다는 것은 윤석열이 명백히 국민을 개, 돼지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국민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윤석열 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행태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 명절을 앞두고 국민의 관심사였던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에 대해 제대로 된 입장을 밝히지 않고 남탓으로 일관하며 아내를 비호하는 것이 대통령이 할 일입니까?

 

출처 - KBS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사고 수습 당사자들의 말과 정치권의 태도가 연상된다는 지적이 최근 들어 많이 나오는 이유를 윤석열 대통령이 알긴 할까요? 그 깊은 뜻은 모르고 단지 비판받기 두려운 마음에 자충수를 자꾸 놓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방송 장악을 통해 국민의 비판 여론을 옥죄려고 하는 것도 비판 여론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 테니까요. 최근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 방영 일정을 연기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KBS는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를 오는 4월, 세월호 참사 10주기에 맞춰 방송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방송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방영 연기를 지시한 제작본부장은 윤석열이 임명한 박민 KBS 사장에 의해 임명된 인물입니다. 상황이 돌아가는 걸 보면, 이들은 세월호 참사가 자기네가 저지른 잘못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나 봅니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방영을 막으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출처 – 연합뉴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자신을 뽑지 않은 모든 국민의 의사까지도 고려해 합리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겸허하게 경청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사소한 비판조차 틀어막으려는 이가 어떻게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부끄러운 줄 알기 바랍니다.

서울시 은평구 역촌동 한 골목에 초록길도서관이 있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여들어 떠들썩한 활기로 가득 찬 공간입니다. 아이들을 웃게 하고 어른을 어른답게 만들어 주던 그 도서관이 열두 돌을 맞이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벽돌기금(후원금)을 조성하고, 후원회원을 모으고, 이곳저곳에서 책을 모아 설립한 민간도서관이 12년간 재정과 운영상 어려움을 이겨내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까지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동네 작은도서관 초록길

초록길도서관은 처음부터 ‘시끄러운 도서관’을 지향했습니다. 시끄럽지 않고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요? 시끄럽지 않고 어떻게 삶을 흔들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초록길도서관은 책이 있는 마을사랑방이고, 책을 읽으면서 노는 아이들의 놀이터이고,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평생학습관이고, 민주적 시민을 길러내는 학교였습니다. 
초록길에서 마음껏 웃고 떠들며 책을 읽던 장난꾸러기들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어엿한 동료 시민으로 성장했습니다. 아이들을 잘 키우려는 마음으로 초록길을 찾은 엄마들이 든든한 동네 친구들을 만나 삶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두가 힘들 때 초록길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연결된 돌봄의 관계망은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사회적 백신이 되어 주었습니다. 다양한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축이 바뀌었다고 고백합니다. 초록길이 지나온 역사는 숱한 인생의 변곡점으로 가득합니다.
《시끄러워도 도서관입니다》는 우리동네 작은도서관 초록길의 12년 좌충우돌을 정리한 보고서이자 같은 꿈을 꾸는 마을에 전하는 지침서가 되어 줍니다.

  

 

 

박지현
초록길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하면서부터 ‘마을 오지라퍼’의 삶을 살고 있다. 작은도서관을 만들어 보니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을 함께 만드는 일에 재미가 붙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병원도 만들고, 태양광발전소도 짓고, 채식식당도 만들었다. 요즘은 ‘협동조합이 세상을 구한다.’는 믿음으로 여러 협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도서관을 만들고 나이 앞자리가 두 번 바뀌었다.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초창기만큼 초록길에 집중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힘들 땐 초록길에 가서 에너지를 채운다. 내 삶의 힘이 되어 준 초록길 이야기를 기록하고 자랑하여 마음의 빚을 갚으려 한다.

 

백미숙
초록길도서관이 있는 역촌동에 30년 넘게 살고 있는 동화작가. 《오른쪽이와 동네한바퀴》, 《감자는 약속을 지켰을까?》, 《누구랑 가?》, 《주차금지》 등을 썼다.
초록길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동화책을 읽었고 아이들의 즐거운 시간을 지켜보았다. 어른들과 함께 동화쓰기 교실을 진행하며, 어른들 속의 아이들을 만났다.
우리만 알고 있기는 너무 아까운 초록길도서관의 재미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세상에 전달할까 궁리하던 차에 이 책을 먼저 쓰게 되었다. 

 

차례 

추천의 글 | 초록길이라는 행성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초록길도서관을 응원하는 작가들 
들어가는 글 | 초록길에서 내 삶도 풍요로웠습니다 

우리동네 작은도서관 초록길 이야기 - 박지현
도서관에 온 코끼리 
아이들은 놀기 위해 도서관에 온다
맥주로 지은 도서관 
우리동네 작은도서관 이름 찾기 
시끄러워도 이곳은 도서관입니다
봉산 넘어 화전놀이 간다네 
장생도에 등장한 루돌프와 산타 
도서관 사모님과 책 읽는 금요일 
여기는 꽃집이 아닙니다 
동백꽃 실종사건 
이 길은 초록길이 아닙니다 
안심하고 나이 들고 싶은 마을 
누구나 마음속에 이야기 하나쯤은 품고 산다 
저, 미대 나온 여자예요 
냉장고의 변신은 무죄 
초록길 어린이 대통령 뽑기 
상상 초월 초록길도서관 송년회 
코로나가 아니라 우울증으로 죽겠어요 
광화문에 나부낀 초록길 깃발 
작은도서관을 지속하는 힘 
우리 동네 이웃 도서관들 
작은도서관도 뭉치면 작지 않다

우리동네 작은도서관 초록길 사람들 - 백미숙
초록길에서 두 아이를 키웠어요 _윤성화 
인생의 큰 축이 바뀌었어요 _김은지 
초록길을 거점 삼아 나를 확장하다 _이은영 
초록길 때문에 멀리 이사를 못 가요 _아이스 유미코 
아이 잘 키우러 와서 내가 자랐다 _허남선 
초록길은 추억이 가득한 마음의 집 _김시현, 정예지, 현아영 
바다로 간 코끼리 _박종원 

나가는 글 | 다음에 이어질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합니다

일본 전범기업에 의해 강제동원된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은 강제동원 피해자 이모 씨가 일본 히타치조센이 2019년 서울고법에 맡긴 보증공탁금 6000만 원을 압류해달라며 제출한 압류 및 추심명령신청서를 받아들였습니다. 피해자 이모 씨의 신청은 대법원 확정 판결에 근거해 히타치조센의 국내 자산인 공탁금 6000만 원을 압류하기 위한 첫 단계입니다. 히타치조센이 서울중앙지법의 압류 및 추심명령신청 인용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서울고법의 담보 취소 결정에 불복해 항고할 수도 있지만 채무자의 항고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 이모 씨가 공탁금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법조계에서 보고 있다고 하죠.

 

출처 - KBS

 

1944년 국민징용령에 따라 일본 오사카에 있는 조선소로 강제동원됐던 피해자 이모 씨 외에도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된 피해자가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받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1944년~1945년 후지코시는 군수 공장에 조선인 10대 소녀 1000여 명을 강제동원했습니다. 공부도 할 수 있고 일한 대가도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매일 10~12시간의 노동을 했는데도 사실상 임금은 없었습니다. 피해 당사자들이 일본에서 일본 정부와 후지코시를 상대로 소송을 낸 지 21년 만에 우리 대법원에서 최종 결론이 나왔습니다. 후지코시는 강제동원되어 노동했던 여성 근로정신대 피해자들과 유족 41명에게 각각 8000만 원에서 1억 원, 그리고 지연 손해금을 더해 배상해야 합니다. 하지만 후지코시 측에서 배상을 거부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가 "극히 유감스럽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어 배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출처 - MBC

 

일제강점기 당시 전범기업에 의한 강제동원은 한국 사회에 해결되지 않은 숱한 과제를 남기고 있습니다. 일본 전범기업의 피해자 대법원 배상 판결 같은 고무적인 사례가 나오는가 하면 같은 시기 분통 터지는 판결도 나오는 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지난 1월 24일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4단독이 '위안부는 매춘부' 발언을 한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지난해 10월 26일 대법원이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서울고등법원으로 사건을 환송한 데 이어 약 3개월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출처 - 오마이TV

 

2019년 9월 21일 《프레시안》에 공개된 연세대 사회학과 '발전사회학' 강의 녹취록에 따르면 그달 19일 강의 때 류석춘 (당시) 교수는 "왜 매춘을 했느냐? 살기가 어려워서, 집이 어렵고 본인이 돈을 못 벌고. 지금 그렇다는 것에 동의하죠? 지금은 그런데, 과거에 안 그랬다고 얘기하는 건데 그게 아니고 옛날(일제강점기)에도 그랬다는 거예요.", "매너 좋은 손님들에게 술만 따라주면 된다. 그렇게 해서 접대부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지금도 그래요. 옛날만 그런 게 아니고. 궁금하면 한번 해볼래요?"라고 발언했습니다.

 

출처 - MBC

 

서울서부지법은 피고인의 발언이 피해자 개개인을 향한 발언이라고 보기 어렵고,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전체를 향한 추상적 표현이라면서 검사 제출 증거만으로는 해당 발언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류석춘 전 교수의 주장이 '위안부'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관계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출처 - SBS

 

서울서부지법은 류석춘 전 교수가 2019년 당시 강의에서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한 발언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당시 강의에서 류석춘 전 교수는 정대협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획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정대협이 끼어들어 와서 할머니들 모아다 교육하는 거다. 정대협 없었으면 그분들 흩어져서 각자 삶을 살았을 거다. 과거 삶을 떠벌리지 않았을 거다. 지금은 일종의 떠벌리는 거다. 텔레비전 나와서 떠들고 있잖아요. 일제가 끝난 직후에는 쥐 죽은 듯이 돌아와서 살던 분들이다. 그런데 정대협이 끼어서 '국가적으로 너희가 피해자'라고 해서 서로의 기억을 새로 포맷했다"라고 말이죠. 이런 말도 안 되는 발언에 대해 벌금 200만 원으로 그쳐도 되는 걸까요? 시간을 잠시 되돌려보겠습니다.

 

출처 -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 뉴스1

 

당시 논란을 일으킨 류석춘 교수에 대해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는 학생들과 '위안부' 피해자에게 류 교수가 사과하고, 대학 본부가 류 교수를 파면해야 한다는 입장문을 냈습니다. 정의연은 "연세대학교는 류석춘 교수를 즉각 해임함으로써 실추된 학교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며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이 입은 인권유린에 대해 사과하게 하며, 연세대 학생들이 입었거나 앞으로 입을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4년 만에 나온 이번 판결에 대해 대한민국 사법부는 학생들에게 올바르게 판결했다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을까요? 과연 정의로운 판결입니까?  


출처 - MBC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만이 아니라 전범국 일본, 대만,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다양한 국적의 피해자가 발생한 끔찍한 전쟁 범죄였습니다. 그런데도 류석춘 전 교수는 이에 대해 직접적인 가해자가 일본이 아니라 자발적 매춘이었다고 주장해왔죠. 

 

출처 - MBC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1월 24일 1심 판결에서 류석춘 전 교수에 대해 일부 무죄, 일부 유죄를 선고하면서 헌법이 대학에서의 학문의 자유와 교수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을 볼 때, 교수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류석춘 전 교수의 전쟁 범죄 미화 발언이 학문의 자유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의문입니다. 또한 류석춘 전 교수가 학자적 소양을 갖추고서 저런 망언을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고요.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요 시위 때마다 엄청난 혐오를 쏟아내는 사람들의 발언이 한국 사회에서 허용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판결을 비판했습니다. 김 교수는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판결이 4건 있었는데 모두 피해 사실이 인정됐고 한국 법원에서도 마찬가지"라며 "법원이 이미 법적 판단을 내린 '법적 사실'을 고정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라 무죄 판결을 한 것은 모순"이라고 했습니다. 한편 양조훈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현대사 문제는 역사 왜곡 발언으로 인한 피해자들이 많아 사실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당사자와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표현을 학문의 자유라고 재판부가 너무 쉽게 접근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진보당 박태훈 부대변인은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제 피해자들을 '매춘부'라고 이야기했던 류석춘 전 교수가 1심 무죄 판결을 받았다. 지금도 아홉 분의 피해자가 살아서 피해를 증언하고 있는데, 피해자들이 겪은 피해와 고통을 무시한 판결이다. 일본 정부에 의한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한 류 교수의 발언을 재판부가 용납해선 안 됐다. 정금영 재판부의 이번 판결은 학문의 자유를 지킨 게 아니라, 조직적이고 악랄한 2차 가해에 동참하고 힘을 실어준 것이다"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번 판결로 과거사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당장 오늘 류 전 교수가 집회를 열고 '사법부가 내 주장을 정당하다고 인정했다'고 말했다"면서 "수요시위 현장에서 나오는 혐오 목소리가 커졌다"고 했다고 하죠. 이런 류 전 교수의 행보를 가만히 둬도 괜찮은 걸까요? 지난 1월 30일 서울 서부지검은 류 전 교수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한다고 밝혔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검찰 관계자는 "1심 법원은 류 전 교수의 발언이 헌법상 보호되는 학문의 자유 및 교수의 자유에 해당되고, 정치적 의견 표명에 불과해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면서도 "발언 내용이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에 반한 점, 헌법상 보호되는 학문의 자유도 일정한 한계가 있는 점, 단순한 의견표명이 아니라 사실적시에 해당하는 점 등 여러 견해가 있어 상급심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히고 "1심 법원의 법리 판단이 잘못됐다고 봐 이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고, 유죄로 판단한 부분에 대한 선고형도 너무 낮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고 합니다.

 

출처 - 한국일보

 

류석춘 전 교수의 망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숱한 상처를 주었습니다. 법정에 섰을 때 그는 "'위안부'가 매춘의 일종이라 말한 것은 '단순 의견 표명'이었다"는 식으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1심 판결이 나온 뒤에는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이 말한 것처럼 2차 가해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재판이 늘어지면서 2020년 1학기를 끝으로 정년퇴임해 사학연금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연세대에서 '정직 1개월'에 해당하는 징계, 그리고 정년퇴직 교수에게 흔히 주어지는 '명예교수'라는 직함을 받지 못한 것 외에는 어떠한 불이익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망언을 일삼는 이에 대한 사법적 징계와 역사적 심판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시민들이 눈과 귀를 열고 류석춘 전 교수가 어떠한 망언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하고 끝까지 추궁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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