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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재발의된 노란봉투법, 이번엔 통과시켜야

by 생각비행 2024. 7. 19.

노란봉투법이 22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6개 야당 연합으로 다시 발의됐습니다. 지난 21대 국회 당시 민주당의 주도로 본회의에서 통과됐으나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폐기된 바 있습니다.

 

출처 - 한겨레

 

노란봉투법은 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입니다. 노란봉투법이란 명칭은 2014년 쌍용차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게 47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지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시작한 운동에서 유래했습니다. 판결 결과를 보고 한 시민이 언론사에 "이렇게 10만 명만 모아도 노조원들을 도울 수 있다"며 4만 7000원이 담긴 노란봉투를 보냈고 이를 계기로 모금이 시작돼 총 4만 70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해 최종 목표액인 14억 7000만 원을 달성했습니다. 이 노란봉투 캠페인을 계승한 것이 현재의 노란봉투법입니다.

 

출처 - MBC

 

대한민국 헌법은 근로자에게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근로조건이라는 것은 임금, 근로시간, 복지, 해고 등을 의미합니다. 사측의 근로조건 즉, 지급되는 임금이나 근무시간, 월차 사용 등을 근로자가 수용하면 근로 계약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노사의 협상력이 대등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압도적인 설비와 자본력을 가진 사측을 상대로 개별 근로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근로조건을 협상하기란 사실상 어렵습니다. 그래서 단체행동권을 헌법에서 보장하는 것입니다. 본인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파업과 쟁의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말이죠.

 

출처 - YTN

 

현재는 근로 형태가 과거보다 더 다양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보험설계사나 골프장 캐디, 배달산업 종사자는 각 보험회사, 골프장, 배달 앱 회사들과 근로계약을 맺고 있지 않습니다. 노무를 제공하고 일정한 수수료를 받는 노무제공 계약을 맺는 사업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원-하청 수급 관계의 노동자도 문제입니다. 원청에게 업주 지시를 받고 노무를 제공하지만 임금은 하청에게 받으니까요. 노란봉투법은 이런 다양한 근로계약에서 사측, 즉 사용자의 범위를 넓히자고 하는 것입니다.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게 되면 사측이 교섭해야 하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회사 입장에서는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양측의 입장차가 더 큰 부분은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노동자가 파업하면 응당 회사의 매출은 감소하게 됩니다. 파업 과정에서 시설 등의 파손이 발생할 여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파업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해버리면 사측으로선 앞으로 있을 수 있는 파업을 억제할 아주 효과적 방법이 되겠죠. 노란봉투법 법안이 발의된 계기가 됐던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에게 부과된 47억 손해배상 판결처럼 말입니다. 수십억의 손해배상 청구를 각오하고 누가 쉽게 파업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출처 - MBC

 

이런 점 때문에 노란봉투법이 사측의 재산권 보장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불법 파업을 조장하고 산업 현장에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요. 하지만 노란봉투법은 불필요하고 극단적인 쟁의 활동을 모두 이해하고 넘어가자는 취지가 아닙니다. 폭력  · 손괴행위를 수반하지 않는 경우이거나 헌법 · 노동조합관계법에서 정한 목적을 넘어서는 쟁의행위까지만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자는 것입니다. UN인권이사회나 국제노동기구는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이 단순한 권리행사를 넘어 노조탄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한 바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노조에 대해 청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액 소송에 대한 상한액을 최소 한도로 제한하거나 개별적으로 위법한 쟁의를 주도한 노조 간부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출처 - 경남도민일보

 

장안대 박창환 교수는 노란봉투법 개정안 통과 추진 자체의 문제보다 하청 노동자들의 권리보장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BBC 코리아에 말했습니다. 1980년대 경제 호황기 때는 사용자 측에서 노동자들의 입금 인상 요구를 기본급을 올려주는 게 아니라 수당을 지급하는 등 편법적인 방식으로 들어줬습니다. 지금은 노조가 보편화되고 사람들의 인식에 자리 잡았으나 문제는 불황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입니다. 박창환 교수는 "지금의 하청 노조, 소형 노조, 비정규직 같은 경우에는 불황기 때 탄생했고 노조의 역사도 짧다"면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못 만든 상태에서 비정규직 노조 문제까지, 거기에 위법 문제까지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출처 - 뉴스1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지난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노란봉투법을 단독으로 통과시켰습니다. 국민의힘 소속 안조위 위원들은 반발하며 퇴장했고요. 앞서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환노위 소위에서 노란봉투법을 단독으로 가결하자 이견이 큰 안건을 심사하기 위해 구성되는 안조위 회부를 신청했는데요, 노란봉투법이 안조위를 통과한 만큼 다음에 열리는 환노위 전체회의에 상정,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모든 노동자에 대한 차별 없는 권리 보장은 당연히 추구해야 하는 사회적 화두죠. 21대 국회에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던 법안인 만큼 필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강한 의지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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