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깜짝 놀란 분이 많으실 줄 압니다. 부산에서 버스운전을 하던 강 씨는 간단한 어깨 수술을 받으러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했고 뇌사판정을 받아 투병하다 지난 9월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이 수술을 집도한 사람이 의사가 아니라 의료기기 영업사원이었다는 사실을 보고 놀라셨을 겁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런 대리수술이 일회성의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아니라 수술실 안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해 사회적 충격을 안겼죠.


출처 - SBS


살면서 크고 작은 수술을 받는 일이 한 번쯤은 생기죠. 그만큼 우리 삶에서 의사와 병원은 중요합니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중요한 직업이다 보니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오랜 공부와 수련의 생활을 거치는 것이 기본입니다. 인생의 상당한 시간을 의사가 되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까닭에 의사가 되면 고소득을 보장받는 것이 합당한 측면이 있다고 다들 생각합니다. 환자는 의사를 신뢰하기에 수술대 위에 오릅니다. 자신의 신체를 타인에게 맡기는 것은 상당한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경력이 있는 의사가 수술할 것으로 생각하고 수술대에 올랐는데 의료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 없는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집도했다면, 이해나 납득은 고사하고 크나큰 배신감이 드는 게 인지상정일 겁니다. 그런데 의료계에서 왜 이런 대리수술이 행해지는 것일까요?


출처 - 한국일보


결국 돈 때문입니다. 의사들과 의료기기 업체 모두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런 불법을 자행합니다. 의료기기 업체는 일종의 리베이트 영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고가인 자신들의 의료기기를 구매해주면 그 영업사원들이 수술을 대리해주는 방식입니다. 의료기기 영업사원들은 대리수술을 하고 회사로부터 수당을 받습니다. 할 줄 아는 수술이 많아지면 월급 자체가 오르기 때문에 대리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제보자 중 한 명은 하루에 세 건이 넘게 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집도하는 경우도 많다고 폭로했습니다. 심지어 영업사원은 의사는 아니지만 이미 수백 차례 수술을 집도했기 때문에 수련의를 막 마치고 부임한 전문의보다 자신이 수술을 훨씬 잘할 거라는 오만한 말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의사들은 의료기기 영업사원에게 수술을 맡기고 그 시간에 환자 진료를 보거나 다른 수술에 들어갈 수 있으니 두 배,  세 배로 돈을 벌 수 있는 셈입니다. 

 

출처 - 한국일보

 

규모가 큰 병원이라면 마땅히 고용해야 할 의사 한 명의 역할을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해주는 셈이 되니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수억에 이르는 비용을 이익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돈이라는 공통의 이익 앞에 의료계가 짬짜미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마취되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 몸을 의사가 여는지 간호조무사가 여는지 영업사원이 여는지도 모르고 수술이 끝나면 수술비를 내고도 연신 고맙다고 말해왔던 환자들만 바보가 된 꼴입니다.


출처 - SBS

 

의료계에 만연한 대리수술의 가장 큰 문제는 당연하게도 의료기기 영업사원들이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의학을 전공한 적이 없으므로 체계적인 지식 없이 영업 신입 시절 수술실에 들어가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우거나 유튜브에 올라온 수술 영상을 보고 익힌 뒤 수술실에 들어갑니다. 위험한 수술이 아니라면 수술 기술 자체는 경험을 쌓을수록 실력도 늘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술 과정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하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사례가 발생할 때 의사가 아닌 이들에게 제대로 된 대응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이번에 부산에서 검거된 의료기기 영업사원은 의료계에서 통칭 금손이라 통하며 의사들로부터도 인정받는(?) 수술 실력을 갖춘 사람이었지만, 간단한 어깨 수술 중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죠.


출처 – SBS 유튜브


대리수술의 다른 문제는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입니다. 대리수술로 고발이 된다 해도 의사들은 집행유예나 벌금형 수준에 그칠 뿐입니다. 의사면허가 정지된다 해도 2~3년 쉰다 생각하고 다시 면허를 되살리는 신청을 하면 99.99% 정식 면허로 병원에 복직하는 게 통례일 뿐 아니라 문제를 제기한 공익제보자들이 역으로 고소당해 받는 형량이 더 높을 정도라고 하죠.


출처 - 국민일보


문제가 불거지자 의사협회는 대리수술 방지를 위해 내부 고발 활성화와 실태조사 정도를 대안이랍시고 내놓았습니다. 환자들과 정부가 바라는 수술실 CCTV 설치 방안에는 여전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된다는 이유랍니다. 과연 일베에서 두 손 들고 환영받던 의협 회장다운 태도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의료계가 자정을 얘기하려면 적어도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른 의사 회원과 병원에 대해 스스로 보건복지부에 면허 취소, 영업 정지, 회원 자격 박탈 등의 강력한 처벌을 한 뒤에나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외부 인사를 포함한 진상조사를 통해 병원 내 무자격자의 불법 의료행위와 이를 교사한 행위가 어느 정도 만연한지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겠죠.

 

출처 - 한의신문

 

미적거리는 의료계의 대응에 결국 의료 소비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소비자-환자 단체(소비자시민모임, 한국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C&I소비자연구소)는 지난 10일 의료 기관 대리수술 관행이 일부 의사들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 정형외과, 성형외과 등지에서 지속된 관행임을 비판하고 검찰의 안일한 대응과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소비자-환자 단체는 "정부와 국회는 더 늦기 전에 유령수술의 근원적 방지책인 수술실 CCTV 설치와 의사면허 제한 관련한 입법적·행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검찰은 유령수술에 대해 사기죄와 함께 상해죄로도 반드시 기소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 시사플러스

 

한편 지난 15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불법 PA(Physician assistant) 양성을 묵인한 대한의학회와 대한병원협회는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대리수술이 사회적인 문제로 불거졌는데도 일부 학회에서 PA 양성을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PA는 의사의 지도 및 감독하에 의료 관련 업무를 행하는 진료 보조 인력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사가 직접 하는 행위를 PA가 하는 것을 무면허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있죠.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대리수술은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의사가 아닌 사람에게 맡기고 환자를 기만한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라는 점에서 PA 문제와 다를 바가 없다"며 "결국 PA 문제는 대리수술 문제와 같은 잣대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이러한 의료계의 현실을 보면 의사들이 의료기기 영업사원들이 어깨너머로 혹은 유튜브로 익힌 수술 실력만도 못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토록 심각한데 의사의 진료에 대한 권위와 인정을 어떻게 요구할 수 있는 건지 참으로 괘씸합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무색해지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재발 방지 노력도 없이 수술실 CCTV를 거부하고 의사들을 믿어달라고 하는 요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기 치다 들킨 사기꾼들도 이렇게 뻔뻔하진 않을 겁니다.

 

출처 - MBC

 

19대 국회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은 수술이나 환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CCTV 촬영을 의무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으나 의료계의 반대로 폐기되었죠. 20대 국회에서 관련 의료법 개정안 발의가 신속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대리수술을 시행한 의사의 면허를 영구적으로 박탈하는 등 처벌 수위 강화, 해당 의사 실명 공개, 소속 의료기관에 대한 관리 책임 추궁, 해당 의료기관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정부와 국회가 더 늦기 전에 근본적인 대안 마련에 나서길 촉구합니다.

단군에서 반만년 이어진 대한민국이 단일 민족의 나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를 지나 21세기를 맞이한 대한민국에서 단일 민족의 환상이 깨진 지 오래입니다. 국제간 교류가 활발해져 외국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얼마 전에 있었습니다.


출처 – 서울대동초등학교


서울시 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대림에 있는 대동초등학교는 올해 신입생 72명이 전원이 다문화 학생이라고 합니다. 서울에서는 첫 사례라고 하는데요, 대동초등학교는 지난해 기준으로 전교생의 62.4%가 다문화 학생일 정도로 원래 다문화 학생 비율이 높긴 했지만 신입생 전원이 다문화 학생인 건 처음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입학생 중 다문화 학생이 50.7%였던 걸 보면 매우 늘어난 겁니다.


출처 – YTN 유튜브


이는 중국 교포들의 선호와 한국 학부모들의 기피가 맞물려 일어난 현상으로 풀이됩니다. 중국 교포 사이에서 대동초등학교는 명문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교포 학생이 많은 편이어서 아이들이 적응하기 쉽고 이들을 위한 수업 환경도 다른 학교에 비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대동초등학교는 다문화 예비학교로 지정돼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한국어 특별학급이 갖춰져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다문화 학생이 많기 때문에 교포들이 안심하고 자식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고 하죠.


한편 다문화 학생이 많다 보니 지원 정책과 학사의 초점이 다문화 교육에 맞춰져 있어 상대적으로 한국 학생들이 역차별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한국 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전학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죠. 학교 현장에서도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초등학교인 만큼 우리나라 정규 교과과정으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들 때문에 교사와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더운 날씨에 웃통을 걷어붙이고 나다니면 안 된다는 등의 문화적인 차이까지 반복해서 가르쳐야 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입학식 같다며 피로감을 호소하는 교사도 많습니다.


중국 교포가 많은 영등포, 구로, 금천구의 초등학교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동초등학교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다른 학교에서 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가 많고 부담이 커 교사들이 다문화 학생이 많은 학교 근무를 꺼린다고 말합니다. 일각에서는 다문화 학생 쏠림 현상으로 이 학교들이 다문화 격리구역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죠.


출처 – YTN 유튜브


모든 선생님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누구보다 다문화를 배려하고 존중해야 할 선생님까지 편견에 빠져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베트남 출신인 전학생을 당연하다는 듯이 "야, 다문화!" 하고 부르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한국어가 서툴러 숙제를 제대로 못 한 다문화 학생을 한국인 학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선생님도 있습니다. 이는 비단 동남아시아나 중국 교포의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닙니다. 일본 전학생에게 일본놈, 쪽바리라며 모욕을 주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학부모들의 편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일부 한국인 학부모들은 이주민 가정에 대한 편견으로 자녀들에게 외국에서 온 친구랑 가까이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는가 하면, 학부모 정보 공유 단톡방에 외국인 학부모를 초대하지 않는 사례도 비일비재합니다. 

출처 - 서울신문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지만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아직도 편견에 빠져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차별을 하는 겁니다. 다문화라는 테두리 안에 사는 이주민들은 제도적인 차별보다 더 무서운 게 인식의 차별이라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출처 - 서울신문


서울시와 시교육청은 지난해 영등포, 구로, 금천구를 묶어 교육국제화특구 지정을 추진했는데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닥쳐 무산됐습니다. 다문화 학생이 많은 특징을 살려 제2외국어 교육 강화 등 교육과정 자율성 부여를 하려고 했는데 특권 교육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주장에 밀려 무산된 겁니다. 글쎄요. 학교 구성원의 특성을 무시한 채 모든 아이가 똑같은 교육만 받게 되어 있는 현재 교육체계야말로 잘못된 게 아닐까요?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것을 계기로 학생들의 특성에 맞춰 이제는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교육 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단군 설화를 보면 아버지인 환웅은 하늘에서 내려왔고, 어머니인 웅녀는 마늘과 쑥만 먹은 지상의 곰이었죠. 이런 이야기가 보여주는 게 무엇입니까? 천상계와 지상계의 조화이자 신, 인간, 자연이 어우러지는 이상적인 세상의 모습 아닐까요? 바야흐로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야 하는 세상이 열렸습니다.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실천한다면 더 좋은 다문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7일 주말에 있었던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으로 걱정 많으셨을 줄 압니다. 서울까지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접수될 정도로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죠. 17시간이나 타오른 불이 266만 리터의 기름을 태우고 43억 원 가량의 재산 피해를 냈습니다. 그런에 화재의 원인이 1000원짜리 풍등으로 밝혀져 우리를 어이없게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사고 전날 밤 한 초등학교 행사에서 풍등을 날리는 행사가 있었고 그 풍등을 주운 스리랑카 국적의 이주노동자 ㅂ씨가 근처 공사현장에서 풍등을 날렸습니다. 풍등은 300여 미터를 날아가다가 대한송유관공사 경기지사 저유소 탱크 옆 잔디밭에 떨어졌습니다. 이 풍등에서 떨어진 불씨가 저유소 주변 잔디밭으로 옮겨붙어 연기가 나기 시작했고 18분간 불타다가 유증기 환기구를 통해 휘발유 탱크 내부로 옮겨붙으면서 폭발이 일어나 탱크 상부 지붕이 날아갔습니다. 우리가 본 화재는 이렇게 시작된 겁니다. 처음 속보가 나왔을 때는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인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사고 원인이 알려지면서 초등학교, 나아가 가장 큰 책임이 대한송유관공사에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죠.


출처 - 연합뉴스


풍등을 날리는 행사 자체가 불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26일 소방기본법이 개정되면서 풍등은 불장난, 모닥불, 흡연, 화기 취급과 동급의 위험물로 취급받게 되었습니다. '풍등 및 소형 열기구 날리기'를 금지하는 조항이 추가됐기 때문이죠. 법 개정 이후 소방본부장이나 소방서장이 화재 위험이 있다고 판단할 시 풍등을 날리지 못하며 날린 사람에게 200만 원가지 벌금까지 부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소방당국의 금지·제한 명령이 없다면 풍등을 날릴 수는 있습니다.

 

출처 - KBS

 

외국인인 스리랑카인보다야 공공기관인 학교가 법을 더 잘 알아야 함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개정된 지 1년 채 되지 않은 터라 풍등의 위험성에 대해 대중이 널리 인지하지 못한 측면이 있고, 인터넷을 통해 풍등을 너무나 쉽게 살 수 있는 상황이다 보니 이를 초등학교만의 문제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출처 - 다음 검색 결과

 

이 때문에 우선적인 책임이 저유소를 책임지는 대한송유관공사에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폭발물이 아닌 풍등 하나가 저유소를 폭발시킬 수 있다면, 이런 식의 대형 사고가 수도권이나 도시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겠죠. 당시 저유소에는 6명의 공사 관계자가 근무하고 있었지만 잔디가 불타던 18분 동안 아무도 불이 난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CCTV를 보면 저장탱크 주변이 불타오르고 있는 게 선명히 보이는데 말이죠. 그곳에 설치된 CCTV만 46대였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유튜브


한편 풍등과 별개로 대한송유관공사의 방재 시스템에 큰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탱크 내부에는 온도가 800도 이상 올라가면 경보가 울리는 센서가 설치돼 있었지만 외부에는 센서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휘발유 탱크 안에는 유증기 압력 조절을 위한 환기구가 설치돼 있는데, 이 환기구의 안전장치가 부족했던 점도 비판받을 지점입니다. 유증기는 쉽게 불이 붙는 가연물질이기 때문에 유증기 환기구에 유증기 회수장치가 있으면 화재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죠. 또한 환기구 입구에는 인화방지망이 설치돼 있어야 하는데, 풍등의 불씨가 환기구를 통해 옮겨붙어 폭발이 일어난 것이라면 인화방지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공사의 위험물 안전관리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경찰은 추후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뉴시스

출처 - 한겨레


당시 불이 활활 타오르는 탱크 옆에는 다른 저유탱크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자칫 연쇄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불이 잡혔죠.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화하면서 인근 탱크로 번지지 않도록 물을 뿌려가며 온도를 낮췄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번 고양 저유소 화재는 개인부터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여전한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의 단면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일까요. 저유소 화재 사건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자 지자체들이 풍등 행사를 취소하거나 규모 축소를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전북 진안군은 오는 18일부터 나흘 동안 여는 '2019 진안홍삼축제' 때 풍등 날리기 행사를 취소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9일 축제를 끝낸 제22회 전북 무주반딧불축제 제전위원회는 저유소 화재를 계기로 풍등 날리기 행사에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무주반딧불축제 때는 '반디 소망 풍등 날리기' 행사가 6일 동안 진행됐습니다. 별다른 사고는 없었지만 제전위원회는 내년부터는 한꺼번에 날리는 풍등 개수를 줄이고 재질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아울러 풍등 낙하 예상 지점에 배치되는 모니터링 요원 수도 늘릴 방침이라고 하죠. 매년 9월이면 열리는 효석문화제 때 강원 평창군 봉평면의 하얀 메밀꽃밭에서 수백명이 동시에 소망을 담은 형형색색 풍등을 날리던 모습도 내년부터는 보기 어렵게 됩니다. 축제를 주최·주관하는 이효석문학선양회가 내년부터 풍등 날리기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환경문제 때문에 폐지를 고민하던 차에 이번 고양 저유소 화재가 풍등 행사를 없애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주유소 화재로 도마 위에 오른 대한송유관공사가 올해 안전한국훈련평가에서 A등급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한송유관공사를 비롯한 산업부 소속기관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5조'에 따라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안전한국훈련평가를 받아야 하는데요, 대한송유관공사는 2014년 B, 2015년 C, 2016년 A, 2017년 B, 2018년 A등급을 받았습니다.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ㅂ씨가 날린 풍등으로 인해 불이 난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는 지난 5월 18일 고양저유소에서 안전한국훈련을 했다고 하죠. 그런데도 실제 화제에 대한 사전대응이나 사후 초동조치가 미흡했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요? 이 때문에 지난 1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고양시 저유소 화재 사건과 관련해 정부의 미숙한 안전관리에 대해 질타했습니다.

 

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당연한 일입니다. 화재의 책임을 스리랑카인 한 명에게만 돌리는 건 우리 사회의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선장이나 유병언에게 돌리려 했던 박근혜 정부의 과오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더 큰 구조적 문제인 국정농단 사태의 당사자들이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마당에 스리랑카인에 대한 구속영장이 신청되자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고양시 저유소 화재는 스리랑카노동자로 인해 더 큰 피해를 막았다.' '나라가 미쳤다! 왜 스리랑카인에 뒤집어 씌우려해?' 등의 게시물이 올라왔던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겁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경찰에 긴급 체포된 ㅂ씨는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기로 하여 48시간 만에 풀려났습니다. 검찰이 구속수사의 필요성이 없다고 결정한 것은 경찰이 적용한 형법의 '중실화'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저유소 폭발의 책임을 이주노동자 한 명에게 묻지 않을 정도의 상식적인 판단을 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출처 - 수자원공사블로그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란 게 있습니다. 큰 재해가 있기 전에 이와 관련된 작은 사고나 징후들이 포착된다는 건데요, 미국 여행보험사의 손실통제 부서에 근무하던 하인리히는 5000여 건의 산업재해를 분석한 결과 큰 재해와 작은 재해,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점을 실증적으로 밝혔습니다. 하인리히 법칙은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해 방치할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번 저유소 화재를 사회의 안전의식을 점검하고 다잡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피고인이 다스 실소유자이고 비자금 조성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


1심 선고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다스는 이명박의 것입니다. 그것도 넉넉히 말입니다.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 모두 알고 있던 상식적인 대답을 확인하는 데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출처 - JTBC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은 1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에 대해 징역 15년, 벌금 130억 원, 추징금 약 82억 원을 선고했습니다. 검찰은 징역 20년, 벌금 150억 원, 추징금 약 111억 원을 구형한 바 있죠. 재판부는 17개 혐의 중 7개에 대해 유죄 또는 일부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주요 혐의인 다스 비자금 조성(특경법상 횡령), 다스 소송비 삼성전자 대납(특가법상 뇌물)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일부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회장에게서 이명박의 부인인 김윤옥이 뇌물을 받은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이 뇌물 역시 김윤옥 혼자 받았을 리는 만무하고 대선 전 유력한 후보인 이명박을 바라보고 주었을 테고, 부피가 상당한 현금 뭉치를 이명박이 몰랐을 리가 없다는 겁니다.


출처 – 연합뉴스


재판부는 선고문에서 이명박에 대해 "국민은 물론 사회 전반에 불신과 실망을 안겨줬다"고 지적하며 "1억 원만 수수해도 10년 이상 징역형 처하게 하는 중한 범죄"인 뇌물 혐의에 대해 "국가 원수,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뇌물 행위는 직무 청렴성을 해치는데 그치지 않고 집행 공정성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로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이명박은 재판부가 생중계를 허용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전날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법정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럴 만한 사유가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지만 말입니다.


출처 - 뉴시스


다스의 실소유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는 결론을 법원이 내리게 된 데는 다스의 법적 대표였던 이상은 회장의 말이 한몫했다고 합니다. 검찰이 이문성 전 다스 감사의 주거지에서 발견한 회장님 말씀 메모가 한 근거인데요, 이 메모에서 이상은은 본인이 법적 대표이사이고 주주인 상황인데 모든 협의와 결정에서 자신을 제외시켜 가족 간의 체면과 위계질서를 문란케 하여 대외적으로 형의 체면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쉽다고 적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명박에게 아들인 이시형의 경영수업이나 철저히 시키고 비난받지 않는 사람이 되게 가르치라고 볼멘소릴 했다고 하죠.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이상은이 다스 경영에서 배제됐고 이시형이 다스 경영권 승계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명박은 자신의 배만 불리고 주변 인물들을 쓰고 버렸습니다. 결국 이명박의 목을 조른 것은 그의 측근과 가족들이었습니다. 사필귀정, 인과응보입니다.


출처 - 서울경제


이명박은 오는 11일 정도에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검찰은 형량이 너무 낮다고 이미 항소한 상태입니다. 1심에서 이 정도까지 인정되었다면 징역을 살지 않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마도 이명박의 고민이 상당할 겁니다. 대통령 등 특별사면을 염두에 둔다면 항소를 포기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할지 모릅니다. 사면은 형이 확정된 상태에서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재판을 계속하여 형을 낮출 가능성을 찾으려 해도 재판 기간 등을 고려할 때 사면을 받기란 힘들겠지요. 극우 보수가 집권하고 총선에서 승리해야 사면의 가능성을 점쳐볼 텐데, 현재로서는 도저히 그럴 가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형량을 낮추기 위해 항소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번 판결을 반기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25년과 비교해서 징역량이 낮은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무엇보다 벌금이 130억밖에 나오지 않은 것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권에서 4대강, 자원외교 등으로 날린 국가 예산만 수십조 원이 넘습니다. 그 돈이 모두 이명박 패거리의 호주머니로 들어갔을 텐데 130억밖에 뱉어내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죠. 1심 판결에 근거해 이명박의 차명계좌를 비롯한 전 재산을 털어서 환수해야 마땅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도곡동 땅의 소유주도 이명박으로 확인되었고 이 땅을 매각한 돈을 차명계좌에 예치해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외에 차명 증권과 기타 예금계좌도 확인됐죠. 금융실명법에 따라 차명계좌에서 발생하는 이자 및 배당소득의 90%가 차등과세 대상입니다. 법에 따라 적법하게 세금으로 환수할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앞으로 이명박과 그 가족, 패거리 같은 자들이 다시는 이 땅에서 활개를 칠 수 없도록 그들이 부당하게 갈취한 돈부터 되찾아야 합니다. 이번 이명박 재판은 다스에 관한 1심일 뿐입니다. 더 많은 혐의에 대한 재판으로 그들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생각비행은 이명박근혜 9년을 우리가 어떻게 겪어왔는지, 우리가 어떠한 역사를 후대에 남길 것인지를 고민하자는 취지로 《부끄러운 이명박근혜 9년》이라는 책을 펴낸 바 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 감방에 가 있는 지금, 이전 정권의 적폐를 타파하고 대한민국의 앞날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자녀들과 함께 읽으며 새로운 사회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시면 좋겠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