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판결을 받기가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요?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 해당 일본 기업에게 피해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 13년 8개월이 걸렸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0월 30일 이춘식 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이들은 1941~1943년에 신일본제철의 전신인 일본제철에 강제징용되어 고된 노역으로 시달렸으나 임금을 전혀 받지 못했고, 이후 소련군의 공습으로 공장이 파괴되고 1945년 해방을 맞이하여 겨우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유튜브


재판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고 각 1억 원의 위자료와 그에 따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대법원은 핵심 쟁점인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장인 대법원장을 포함해 7명의 다수 의견으로 이처럼 결론을 냈습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일본의 확정판결 효력이 국내에 미치지 않으며 그 내용이 우리나라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일본의 확정판결은 강제동원 자체가 불법이라고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 가치와 정면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국내법상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일본 기업 측 주장도 권리남용이라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여기서 말하는 일본의 확정판결은 같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1997년 일본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금과 미지급된 임금을 청구한 소송에 대한 판결을 의미합니다. 1997년 당시 원고 측은 패소했고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확정되었죠. 한일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본 겁니다. 이에 불복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2005년 우리나라에서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우리나라 1, 2심도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2012년 5월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고 신일본제철이 강제노동에 대한 배상책임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한 끝에 이번에 확정판결에 이르렀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강제징용 배상 소송은 이미 끝난 얘기이며 배상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겁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단을 받겠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지만 현실성은 없습니다. 일본은 죄를 지은 주제에 한 입으로 두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일본도 1990년대까지는 국가 간 협정과 별개로 개인청구권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정부는 관여치 않고 법원에서 알아서 하라는 입장이었죠. 이것이 뒤집힌 건 2000년대 들어 대한민국에서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강제징용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 진짜 일제강점기의 피해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전까지 일본 정부는 개인청구권을 인정하더라도 한국에 군부독재 정권이 계속되는 한 개개인이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도 박근혜 정권이 정상적으로 이어질 것이란 판단에서 질질 끌어왔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오판이었음이 드러났죠. 극우인 아베가 이끄는 일본 정부는 이번 판결 이후 강제징용자 대신 '구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강제가 아닌 자발적 노동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함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척하는 일본의 행태는 여전합니다. 중국인들을 강제징용했던 또 하나의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기금을 설립해 중국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화해금을 지급할 계획은 이미 알려진 바 있습니다. 통절한 반성의 뜻까지 표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강제징용 소송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판결이 나온 뒤 한국 피해자들과 소송 중인 일본 기업을 만나 배상을 거부하라는 지침을 내리며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유튜브


이번 강제징용 소송의 가해자인 신일본제철은 2012년 주총에서 한국법원 판결 수용 의사를 밝힌 바 있습니다. 일본 시민단체에 따르면 신일철주금이 주주총회에서 상무가 한국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법률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며 배상금을 지급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습니다. 기꺼이 자신의 죄를 속죄하겠다기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흐름 속에서는 자신들이 배상금을 낼 판결이 나올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죠.


출처 – SBS 유튜브


또다시 박근혜와 사법농단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군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이 사법 거래 목록에 들어있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 피해자들에 대해 배상 규모를 줄이는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 공개됐습니다. 판결을 지연시켜 추가 소송을 막고 대신 재단을 설립해 수백만 원 정도의 푼돈으로 보상을 끝내겠다는 건데, 이 방안을 박근혜가 지시해 추진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청와대와 법원행정처가 공모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권리 행사를 사실상 봉쇄한 것으로, 아베와 일본 정부가 믿었던 뒷배가 친일 정권인 박근혜와 그 사법농단 패거리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유튜브


이번 대법원 선고는 지난 2013년 8월 대법원에 사건이 다시 접수된 지 5년 2개월 만에 이뤄진 것이며, 처음 소송이 제기된 2005년 2월부터 따진다면 무려 13년 8개월 만에 나온 겁니다. 안타깝게도 그사이에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당사자 4명 중 3명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춘식 씨만이 유일하게 살아 있습니다. 이춘식 씨는 호적상으로는 95살이지만 실제 나이는 98세로 알려졌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100년 세월을 살아온 분이 이제 와서 호의호식하자고 힘든 소송을 계속하셨겠습니까? 엄연히 인정받아야 했던 개인의 권리와 인권을 이제라도 확인받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가 왜 이렇게 어렵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번 소송의 승소를 계기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소송 등 다른 일제 피해자 소송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 집계 강제징용 피해자만 해도 14만 명이 넘고, 유가족이라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른 피해자들의 소송이 이어질 전망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가 추가로 소송을 낼 피해자들을 위해 공동 대리인단을 구성한다고 밝혔습니다. 변호사 스무 명 정도 규모의 공동 대리인단은 지역별로 소송 설명회를 열고, 추가로 소송에 참여할 피해자를 모집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늦더라도 정의는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세대에게 떳떳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폭행 파문으로 시작된 갑질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습니다. 양진호는 직립 보행 로봇으로 유명한 미래 기술 기업의 회장이자 국내 1, 2위인 위디스크, 파일노리 같은 웹하드 서비스로 부를 축적한 사람입니다.


출처 – 뉴스타파 유튜브


처음에 밝혀진 갑질은 《뉴스타파》가 보도한 회장이란 지위를 이용한 폭행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전 직원의 뺨을 때리고 머리를 가해하는 영상이 폭로된 것이죠. 그런데 이 영상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인 양진호 회장이 촬영하라고 한 것이어서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런 영상을 남겨도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일종의 기념품이었던 셈입니다. 한술 더 떠 직원들과의 워크숍에서는 직원들에게 살아 있는 닭을 죽이도록 강요하는 영상도 찍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처와 불륜 의심이 든 교수를 사무실로 불러 폭행을 하고 침을 뱉고 핥게 하는 등 엽기적인 행위를 벌여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죠.


출처 - 뉴스타파


경찰은 11월 2일 양진호 회장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자택과 위디스크 사무실, 한국미래기술 사무실 등 10여 곳입니다. 경찰 조사 후 검찰 수사와 재판 등 단계가 남아 있지만 온 국민이 본 폭행 동영상처럼 증거가 명확히 있는 만큼 처벌을 피하기는 어렵겠지요. 단순 폭행이 아닌 상해죄가 적용되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습니다. 외도를 의심해 사람들을 동원해 폭행을 벌였던 교수 사건에 대해 성남지청은 무혐의 처분을 내린 바 있습니다만, 지난 4월 서울고검으로부터 다시 수사하라는 명령이 내려온 바 있습니다. 아울러 고용노동부는 갑질 사건의 심각성을 고려해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주관으로 특별근로감독반을 편성하고 5~16일까지 고강도 근로감독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출처 – SBS 유튜브


양진호 폭행 사건에 쏠린 세간의 관심이 직장 갑질뿐 아니라 불법 동영상 유통 문제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리벤지 포르노'라 불리는 불법 촬영 영상을 웹하드 서비스를 통해 유통하고 이를 돈 받고 삭제해주는 '웹하드 카르텔'의 정점에 양 회장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각종 영상물 등 자료 유통 플랫폼인 웹하드 업체와 방대한 자료를 올리는 헤비 업로더, 불법 자료를 거르고 삭제하는 필터링 업체와 보복성 성관계 영상 등을 삭제해주는 디지털 장의업체 등이 한통속이 돼 불법 영상 자료를 조직적으로 유통하고 삭제하며 돈벌이를 했고, 그 카르텔의 중심에 양 회장이 있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양진호가 실소유주인 위디스크와 파일노리는 불법 영상물을 방대하게 올리는 헤비 업로더 다수를 지속해서 관리했습니다. 콘텐츠 공급업체 4곳과 계약하고, 업체들이 토렌트 등에서 내려받은 음란물 같은 불법 동영상을 웹하드를 통해 유통하고 대가로 현금화하여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지급했습니다. 이는 웹하드 업체가 돈을 주고 불법음란물을 비롯한 불법 영상들을 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위디스크와 파일노리가 국내 1, 2위 웹하드 업체가 될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이런 식으로 운영하면 당연히 법망에 걸릴 여지가 커집니다. 이 때문에 양진호는 영상물을 여과하는 필터링 업체를 직접 운영했습니다. 이 필터링 업체는 디지털 장의업을 병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디지털 장의업이란 몰카, 리벤지 포르노 등 불법 영상물 피해자들의 의뢰를 받아 돈을 받고 인터넷에 퍼진 영상이나 사진을 삭제, 차단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양 회장은 북 치고 장구 치고 병 주고 약 주며 온갖 불법을 자행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를 통해 1000억 대의 부를 축적했고요.


출처 - 아시아경제


그야말로 생선 가게를 고양이한테 맡긴 꼴입니다. 위디스크나 파일노리는 리벤지 포르노가 유통될 때 삭제가 아니라 오히려 이를 독려하고 관리를 한 셈이 아닙니까? 직장 갑질과 관련하여 위디스크와 파일노리 직원들은 양진호의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였을지 몰라도 불법 동영상을 적극적으로 유통하여 돈벌이를 했다는 점에서는 이들 역시 중대한 가해자로 봐야 합니다. 사내 복지 중 하나가 리벤지 포르노를 싸게 볼 수 있다는 인면수심의 글을 올린 전 직원도 있을 정도니까요. 양진호 폭행 사건을 개인의 갑질 문제가 아니라 몰카, 리벤지 포르노 등으로 총칭되는 불법 영상물 카르텔에 대한 수사로 확대해야 할 이유입니다.


출처 - 아시아경제


아울러 불법 영상물을 소비하며 문제를 느끼지 않았던 이용자들도 잘못을 인식해야 합니다. 몇십 포인트에서 몇백 포인트에 해당하는 리벤지 포르노와 불법 음란 영상물을 판매하여 (이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만) 1000억 원대 부를 축적할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법 영상물을 본 걸까요?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들은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까지 끊는데 말입니다.


출처 - 아시아경제


현재 양진호가 받은 혐의는 폭행(상해), 강요, 동물보호법 위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 최소 5가지입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정치권이나 검찰, 경찰 등 권력층에 로비를 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양진호 한 명을 처벌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인터넷이라는 바다에 가득한 쓰레기를 걷어내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지난 11월 1일 대법원이 중요한 판결을 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죠.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오 씨가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가 병역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건에 대해 상고심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무죄 9, 유죄 4의 의견으로 집총거부라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대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하므로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무려 14년 만에 판결이 뒤집어진 겁니다.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양심의 자유 등은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처벌이 정당하다고 판결했고,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일률적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해왔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양심적 병역거부란 자신의 신념이나 양심에 따라 병역 이행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병역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고, 전투행위, 다시 말해 무기를 쥐는 것을 거부하는 집총 거부 형태도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 이전부터 종교적인 교리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했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대표적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된 사람의 상당수도 여호와의 증인들입니다. 종교적인 이유로만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21세기 들어서는 다양한 이유로 병역을 거부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2001년에는 불교 신자이자 평화주의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오태양 씨가 있었고, 2002년에는 반전주의 신념에 의해 병역을 거부한 나동혁 씨가 구속 후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번에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자 여론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이기에 남성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의무적으로 병역을 이행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이라 많은 이들이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신념'의 문제라기보다 '형평성'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비아냥으로 "그럼 군대 간 나는 비양심적이냐?"라고 따지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이 나고 하루 뒤인 지난 11월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청원이 300건이 넘었습니다. 대부분 군 복무를 마친 남성들이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청원이었습니다. 징병제 국가에서 군 복무를 한 것에 대해 억울함을 느끼는 감정은 공감합니다만, 양심적 병역거부를 오해하거나 곡해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일반적으로 선량하다, 착하다, 올바르다는 뜻으로 쓰이는 양심과 헌법에서 사용된 양심은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 양심에 관해 '헌법 제19조에서 보호하는 양심은 착한 마음 또는 올바른 생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을 추구하는 가치적, 도덕적 마음가짐을 뜻한다'고 규정했습니다. 헌법이 보호하는 양심은 단순히 착하다, 올바르다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개인의 소신을 함부로 국가가 간섭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 사회 일반에서 통용되는 생각과 조금 다를지 모르겠지만, 사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는 유구합니다. 단순히 병역거부로 감옥에 갇히는 정도가 아니라 죽음을 불사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1만 2000명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했고, 일제강점기 때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일제의 징병을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33명이 수감되고 5명이 사망했죠. 주권을 상실한 상황에서조차 양심적 병역거부는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문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SBS 마부작침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면 국방력이 상실된다는 주장도 입증된 사실이 아닙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있기 이전에도 매년 600명 정도 수준이었습니다. 60만 명에 달하는 군 규모에 비해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군복무 면탈을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택하는 사람이 정말로 많았다면 지금까지 구속 수감하는 철퇴에 의해 입영자가 줄어 사회적 문제가 되었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죠. 인생 좀 편하게 살겠다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택해도 좋을 만큼 한국 사회가 녹록지 않습니다. 몇십 개월을 위해 빨간줄까지 그어가며 병역을 면탈하려 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을 겁니다. 더구나 그 수조차 해마다 거의 같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그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단순히 입대하기 싫어서 이런 선택을 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방증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지속해서 처벌했으나 거부자 수가 줄지 않았던 추이를 볼 때 이들을 계속 수감시키는 것보다 대체복무라는 대안을 마련해주는 편이 국가적으로나 국방력 측면에서 유익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이게 우리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바라보는 '형평성'의 시선에서 벗어나 '인권'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제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때입니다. 의견이 엇갈리는 문제라 난항이 예상되긴 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를 받아들이더라도 대체복무 기간과 복무지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징벌적인 성격'을 부과하길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엔 인권위원회와 인권단체들은 대체 복무 기간이 현역 기간보다 너무 길다면 이는 또 다른 인권침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징병자에 대한 병역 형평성을 고려한다면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 복무자의 2배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출처 - SBS 마부작침

 

현재 대체복무 기간에 대해 현역 복무 기간의 1.5배부터 2배까지 다양한 법안이 올라와 있는 상태입니다. 국방부가 기준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핵심인데요, 현재 국방부는 3년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대체복무제 신설 과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한지 적합 여부를 심사하고 운용하는 부서를 어디에 두느냐에 대해서도 첨예한 대립이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일이긴 한데요, 정부와 주관 부서들은 국방부와 병무청이어야 한다는 의견에 반해 인권단체 측은 심사와 운용 모두 군에서 독립된 제3의 기관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안은 대체복무 기관으로 소방서와 교도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근무는 현역병과 마찬가지로 합숙 형태입니다.


출처 - 뉴스1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는 2020년 1월부터 시행됩니다. 병무청은 대체복무제가 도입될 때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입영을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공정하고 인권적이며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대체복무제를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야 할 때입니다.

최근 미세 플라스틱이 사람의 대변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는 언론 보도로, 인간에 대한 지구의 역습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느끼는 분이 많으실 겁니다. 미세 플라스틱이 뭔지 잘 몰랐던 분들도 계실 법합니다. 미세 플라스틱이란 5mm 미만의 작은 플라스틱을 말합니다. 피부 각질 제거에 효과 있는 세안제나 치약 속에 든 작고 꺼끌꺼끌한 알갱이 역시 플라스틱인데요, 1mm 미만의 아주 작은 플라스틱을 마이크로비드(microbead)라고 합니다.

 

출처 - 키즈현대

 

미세 플라스틱은 처음부터 작게 제조되거나, 플라스틱 제품이 부서지면서 생성됩니다. 크기가 너무 작아서 하수처리시설로도 걸러지지 않고 바다와 강으로 그대로 유입되는 게 문제입니다. 플라스틱은 석유화합물질이기 때문에 바다를 부유하다가 오염물질과 만나 이전과는 다른 환경 문제를 야기합니다.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문제가 되는 점은 주로 강이나 바다의 생물이 미세 플라스틱을 먹이로 오인해 먹은 다음 잡혀서 인간에게 섭취되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음식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인체로 광범위하게 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염전에서 바닷물을 모아 증발시키고 남은 천일염 등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되는 보고는 종종 있었지만 이번처럼 사람이 섭취하여 대변으로까지 검출될 정도라는 건 처음 검증된 일이죠. 오스트리아 환경청이 조사에 참여한 유럽과 일본, 러시아 국적자 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 전원의 대변에서 마이크로 비드가 검출됐다고 합니다. 10가지의 다양한 플라스틱 유형을 찾는 이번 조사에서 최대 9개의 다른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습니다. 조사 대상자는 모두 채식주의자는 아니며 6명은 해산물을 먹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들 플라스틱 포장지에 들어 있는 음식을 먹거나 플라스틱병에 든 음료를 마셨습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류의 50퍼센트 이상이 대변에 미세 플라스틱을 함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미세 플라스틱은 이미 인체 소화기관으로 침투해 있다는 겁니다.


출처 - 연합뉴스


현재 전 세계 수돗물과 바다, 조류에서 발견되고 있는 미세 플라스틱이 어느 정도 인체에 해를 끼치는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세계보건기구는 미세 플라스틱은 아직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분야이기에 인체 위해성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언급했습니다. 대변에서 검출됐다고 해도 인간이 섭취하는 다른 물질과 달리 미세 플라스틱이 대장 세포에 흡수되기에는 너무 커서 단순히 대장을 통과해 대변으로 배설된 것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반면 미세 플라스틱이 혈류와 림프계 심지어는 간으로 유입될 수 있고 체내에 장기간 남아 있을 경우 염증을 유발하고 장의 내성, 면역체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동물 플랑크톤에 실험한 결과 미세 플라스틱에 노출된 플랑크톤의 활동성이 떨어지며 생존율이 감소할 뿐만 아니라 발달 지연 현상이 나타났다고 하기도 합니다. 지구의 먹이사슬에 미세 플라스틱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인체에 어떤 위해를 끼치는지 명확하지 않은 점이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죠.


출처 - 그린포스트코리아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남용은 이명박 정부가 견인하고 박근혜 정부가 완성했습니다. 실제로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 추이를 보면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부터 가파르게 증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6년에는 플라스틱 일일 폐기물량이 이례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합성수지를 제외한 플라스틱 종류만 해도 박근혜 정부 이전 10년 동안 431.1톤 늘었던 폐기물량이 박근혜 정부 4년 동안에만 1454.5톤으로 급격히 늘었죠.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의 환경 관련 규제의 완화 기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카페의 테이크아웃 컵, 빨대 사용 자제 등의 새로운 변화가 생겨나고 있긴 합니다.


출처 - 아시아경제


그린피스가 발행한 〈바다의 숨통을 조이는 미세 플라스틱〉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2015년 12월 '마이크로비즈 청정 해역 법안(The Microbead-Free Waters Act)'을 통과시켰다고 합니다. 이 법안은 미국에서 마이크로비즈를 함유한 '세정(rinse-off)' 제품의 판매와 유통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안은 자외선 차단제처럼 '바르는(leave on)' 제품에 사용되는 마이크로비즈에는 적용되지 않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대만, 캐나다, 호주,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벨기에 등에서도 마이크로비즈 규제 법안 도입을 논의하고 있고 업계 차원에서 마이크로비즈 추방 움직임도 진행되고 있다고 하죠. 서구권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소비자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자사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처이기도 합니다. 

 

출처 - Roman Pawlowski / 그린피스

 

하지만 이 문제에 대다수의 기업들이 소극적입니다. 자기네가 사용하는 미세 플라스틱의 범주를 애매하고 좁게 정의하거나 마이크로비즈 사용 중단 약속의 대상이 되는 제품이 한정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이미 여러 나라에서 법제화 단계에 이르렀지만, 우리나라 해양수산부는 2015년에서야 미세 플라스틱의 환경 영향을 조사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조사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안전성평가연구소가 2020년 까지 진행할 예정입니다.

 

출처 - CMN


대한민국에서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 움직임은 더딘 반면 미세 플라스틱의 배출원으로 지목되는 화장품 산업의 세계 성장 추세는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생활용품 및 화장품 시장은 8조 원 규모에 이른다고 하죠. 2015년 우리나라의 화장품 수출액은 26억 달러로 전년에 비해 약 44퍼센트 증가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식약처가 지난 2017년 7월부터 미세 플라스틱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규제를 세정과 각질 제거 등 일부 제품으로 제한했다는 한계가 있죠. 미세 플라스틱을 원료로 사용하는 제품은 전체 화장품의 24.5퍼센트를 차지합니다. 기초화장품뿐 아니라 색조화장품에도 미세 플라스틱이 많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기초화장품 일부에만 미세 플라스틱을 제한함으로써 미세 플라스틱을 원료로 하는 제품 중 2.2퍼센트만이 규제 대상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는 전체 화장품으로 치면 0.56퍼센트 수준입니다.

 

 

출처 - 그린피스

 

한국리서치와 그린피스가 2016년 6월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 국민의 86퍼센트가 기업 주도의 자율적 규제가 부족하다는 데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무려 응답자의 99퍼센트가 정부 대응이 부족하며 마이크로비즈에 대한 강제성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마이크로비즈가 들어간 제품을 구매하지 않겠다고 답한 응답자도 71퍼센트에 달합니다. 이제 정부가 결단할 때입니다. 자원 절약과 재활용 촉진, 전체 쓰레기 줄이기 등은 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할 일이 아닙니다. 적어도 자기 자신과 우리 아이들의 입에 플라스틱을 쓸어 넣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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