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도 대한민국 예산은 470조 5000억 원입니다. 올해 예산보다 약 41조 원가량 증가했습니다. 이는 9.7% 증가한 수치로 내년도 경제 성장전망률 4.4%의 두 배 수준입니다. 특히 보건, 복지, 고용 분야의 예산이 크게 증가될 예정이라고 하죠. 이렇게 큰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정하는 역할은 국회의 몫입니다. 국민의 대리인으로 선출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한국경제


내년 예산 470조 5000억 원을 국회의원 300명으로 나누면 국회의원 한 명당 1조 6000억 원의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셈입니다. 또한 2018년 기준 대한민국 인구수가 5164만 명이니 국회의원 한 명이 국민 17만 명을 대표하고 있는 셈입니다. 대체 1조 원은 어느 정도나 되는 돈일까요? 단군 할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60만 원씩 쓰고도 원금 1조 원이 그대로 남을 정도의 돈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의문이 듭니다. 국회의원 1명의 역할이 너무 큰 것 아닌가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과연 국회의원은 몇 명이 적당한 걸까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좀 더 근본적인 부분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바로 대한민국의 선거제도입니다.


출처 – 한라일보


대한민국은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 병립제를 선거제도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소선거구제는 하나의 선거구에서 1명의 당선자를 선출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투표가 간단하고 명확합니다. 하지만 군소정당이나 무소속에 매우 불리한 제도죠. 1등만을 뽑기 때문에 49.9% 득표한 후보가 50.1% 득표한 후보를 이길 수 없습니다. 두 후보 모두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은 건데도 말입니다. 


비례대표제는 이런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을 조금이나마 보완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각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비율을 국회 의원을 구성할 때 반영하겠다는 것이니까요. 소수 정당의 대표성을 보장하고 사표를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이 제도에도 아쉬운 부분은 있습니다. 적은 득표율로도 의석을 차지할 수 있어 선거 직전 급조된 군소 정당이 비례대표제를 악용해 당선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선거제도로는 상황에 따라 특정 정당이 유권자의 실제 지지율보다 훨씬 적은 의석을 갖게 될 수도 있고, 훨씬 많은 의석을 차지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20대 총선 결과를 살펴보면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정당 득표율은 합쳐서 약 60%였지만, 실제로는 국회 의석의 80%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니까 유권자의 정당 지지율이 의석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겁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비례대표에게 할당된 국회 의석이 300석 중 15%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한국이 채택한 선거 방식인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에서 오는 이런 한계를 다른 나라에선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요? 최근 노란조끼 시위가 한창인 프랑스는 결선투표제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선거에서 당선 조건으로 일정한 득표율을 충족해야 합니다. 만일 이를 충족하는 후보가 없으면 상위 후보 몇 명을 추린 다음 다시 투표(결선 투표)를 해서 최종 당선자를 뽑는 방식입니다. 결선투표제의 장점은 아주 명확합니다. 당선자가 확실한 대표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겁니다. 결선투표제에서 당선된 사람은 전체 투표자 과반의 지지를 얻은 것이기 때문이지요. 


출처 – 허프포스트


지구 반대편에 있는 호주는 선호투표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투표자가 투표 용지에 후보자 전원의 선호 순위를 적어 그 순위를 당선자 결정에 반영하는 제도입니다. 선호 1순위 후보자를 집계하고 여기서 과반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최저득표자를 탈락시킨 뒤 각 표에서 최저득표자보다 낮은 선호 순위로 기표된 후보의 순위를 한 단계씩 올려 과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이를 반복합니다. 투표는 한 번 이뤄지지만 재투표가 즉석에서 시행되는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과반 득표라는 결선투표제의 장점을 취하면서도 유권자 개인의 선호도를 보다 정교하게 반영할 수 있는 발전된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주 외에 이탈리아, 벨기에, 뉴질랜드, 미국 몇 개 주에서도 선호투표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점은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이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선호투표제를 채택한 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노무현 후보가 단숨에 지지율을 끌어올려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죠. 


출처 - SBS


이 외에도 다양한 선거제도가 있습니다. 후보자에게 복수로 투표할 수 있는 승인투표제, 한 선거구에서 대표 1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와 달리 2~5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 등 전 세계 여러 나라는 다양한 선거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정치 구도를 가진 나라는 없습니다. 어떤 나라의 선거제도가 좋아 보인다고 무작정 한국에 적용해 시행할 수는 없습니다. 요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문제로 국회가 뜨겁습니다. 야 3당(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과 원외 정당인 노동당, 민중당, 녹색당 등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처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제도이길래 이렇게 많은 정당이 도입을 촉구하고 있을까요? 내일 자세하게 다뤄보겠습니다.

한파가 절정이었던 지난 주말 뉴스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지난 8일 이른 아침 서울로 향하던 KTX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났기 때문이지요. 지난 12일 공개된 관제 녹취록을 보면 기장이 교신을 통해 사고사실을 알렸는데 강릉역 관제사가 믿기지 않는 듯 여러 차례 되묻는 등 상당히 긴박했던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천만다행으로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승객 15명과 역무원 1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열차는 45시간 동안 운행이 중지되었습니다. 고속철도 탈선사고 하면 1998년 독일 에세데 참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망자가 103명이나 되는 대형 사고였죠. 또한 2013년 스페인 열차 참사로 2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일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이번 KTX 탈선사고에서 사망자가 1명도 없었다는 것은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사고를 조사한 뒤 국토부는 선로의 방향을 결정하는 선로전환기 2대의 케이블이 잘못 연결돼 있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서울로 향하던 열차가 정상 진행하기 위해선 선로전환기가 선로 왼쪽에 확실히 붙어야 하는데 사고 당시 틈이 벌어진 채 어중간하게 놓여 있었기 때문에 KTX가 탈선한 것으로 원인이 파악되었죠. 그런데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듯이 코레일은 이 선로전환기가 고장 났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으나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장치와 상황실을 연결하는 회선이 거꾸로 연결돼 있었던 탓에 엉뚱한 옆 선로만 점검했기 때문입니다. 코레일 상황실에는 고장 난 선로가 정상으로, 정상인 선로가 고장으로 표시되었고 문제 상황이 발생하자 현실과 정반대로 탈선한 선로가 정상이니 일단 그쪽으로 열차를 통과시키자는 판단을 한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황당한 점은 회선이 작년 강릉선이 개통되기 전부터 잘못 연결된 상태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선로전환기가 오작동하지 않았을 뿐이었죠. 그러니까 여태껏 사고가 나지 않은 게 신기한 상황일 따름입니다.


출처 - KBS


열차 탈선사고로 문제가 불거지자 KTX 강릉선 개통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일정에 맞추려고 졸속으로 진행했기 때문이 아내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2년 전 강릉선 건설 중 30미터 높이로 짓고 있던 교량이 추운 날씨 탓에 철강 자재가 수축하며 지상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뿐이 아닙니다. 강릉선 공사는 부실시공과 비리로 얼룩졌죠. 당시 철도시설공단 임원들이 하청업체의 뇌물을 챙기다 징역형을 받았고 사정 당국에 발견된 부실시공과 납품 불량만도 수십 건이 넘었습니다. 이번 선로전환기도 해당 업체가 설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질 때부터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된 이권 사업이 최순실의 잇속을 채워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많았죠.


출처 - MBC


최근 들어 계속 발생하는 KTX 관련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진행된 대규모 인력 감축과 민영화입니다. 철도는 공공성을 띠어야 하는 대표적인 교통수단이지만 기술 인력과 운영 인력을 감축하고 외주로 돌리기 바빴습니다. 일반인도 집에서 리모컨 건전지를 바꿀 때는 플러스, 마이너스 극을 확인합니다. 그러니 안전과 직결되는 선로전환기의 설계, 시공, 점검 이 모든 과정이 엉망으로 진행되는 황당한 일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현장 인력과 운영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었다면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는지도 모릅니다.


출처 - 한겨레


이번 KTX 탈선 사고로 드러난 열차 운행의 다른 문제점은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의 업무 이원화입니다. 열차 운행과 선로 유지·보수는 코레일이, 선로 시공과 소유권은 철도시설공단이 맡고 있죠. 이 때문에 탈선 사고의 책임 소재를 놓고 두 기관이 서로 떠넘기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원래 하나였던 철도공사가 둘로 쪼개진 것도 궁극적으로 철도 민영화를 위한 밑작업이었죠. 철도 사업에 민영 회사가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시설과 운영을 분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작업의 시작은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KTX 승무원 대량해고 및 비정규직화였습니다.


출처 - 뉴스1


이번 탈선사고 당시 200여 명에 달하는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승무원은 딱 1명이었습니다. KTX가 개통되던 해 코레일이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승무원을 무더기로 해고하고 비정규직으로 돌린 결과가 바로 이것입니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그나마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조차 턱없이 모자라는 실정인 겁니다. 철도의 수익성 향상은 역세권 개발이나 복합환승센터, 돈 낼 가치가 있는 운행 상품 개발 등 경영의 묘를 발휘해 타개할 일이지, 안전을 외주화하여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번 사고의 책임을 지고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사퇴했습니다. KTX 해직 승무원 문제 같은 노사문제와 SR 통폐합 등에서 성과를 냈지만 기본 중의 기본인 안전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도권 시민들이 KT 화재로 디지털 난민이 되어 눈이 멀고 귀가 막히는 경험을 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상황인데, 이번에는 시민의 발이어야 할 열차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날 뻔했으니, 참 많은 고민이 듭니다. 

 

출처 - JTBC

 

촛불시민은 문재인 정부에 양극화 해소,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을 국정 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요구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국민의 염원을 받들어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를 약속하고 출범했습니다. 노동소득 분배를 통한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노동 시간을 줄이는 주 52시간 근무제 등을 약속한 것도 그 때문이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 정부가 가운데 가장 비판을 많이 받는 부분이 바로 노동정책입니다.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양대 노총의 반발을 무릅쓰고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려는 움직임 등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초심을 유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고 현장에는 '풀코드'라고 하는 비상시 기계를 멈추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풀코드를 작동시킬 한 명만 더 있었더라도 김용균 씨는 죽지 않았을 겁니다. 서로의 안전을 지킬 '2인 1조 근무'는 강제 조항이 아니었습니다. 노동조합은 줄곧 2인 1조 근무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단순 업무라며 이를 무시했습니다. 생각비행은 <풍등으로 인한 저유소 화재, 문제는 안전불감증이야!>라는 기사에서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번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다양한 징조가 있었습니다. 현장 노동자들은 컨베이어벨트 작동 상태를 살피고 정비 부서에 이상 여부를 알리는 작업이 위험하다고 계속 주장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노동자의 요구를 회사가 무시한 탓에 결국 안타까운 사고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돌아보게 하는 사건, 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있습니다. 이를 무시한다면 대형 참사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출처 - 《갑의 횡포, 을의 일터

 

생각비행이 출간한 책 《갑의 횡포, 을의 일터》의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하청사회의 문제 혹은 하청사회라는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하청사회가 작동하는데 필요한 거시적 구조화와 미시적 개인화라는 문제를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갑과 을의 위계를 재생산하는 보이지 않는 구조와 제도, 갑과 을이라는 지위를 재생산하는 주체의 태도와 문화에 대한 고찰이 필요합니다. 외주를 받는 하청업체는 대개 영세합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관점에서 보면 실무에 가장 능한 업체이며, 그 구성원이야말로 그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그런 그들을 우리 사회는 일거리를 받는 '을'이라고 부르며 홀대하고 있습니다. 갑이 을에게 주는 외주를 맡기는 업무는 위험이 크고 사회적으로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일거리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전문가다운 대접을 받지도 못한 채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책임을 뒤집어쓰고 맙니다.

출처 - 《공자, 이게 인(仁)이다!

 

우리는 분절화되고 개인화된 관계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를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갑과 을, 원청과 하청 사이에 책임 있는 관계와 연대의 끈을 다시 형성해야 합니다. 갑과 을의 불평등이 가속화되는 하청사회는 결코 지속될 수 없으며 또 지속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를 위해 현실에 눈감기보다 현실을 똑바로 보기 위해 눈을 부릅떠야 합니다. 을들이 하청사회를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힘, 특히 갑의 지대추구행위와 외주화를 모든 시민이 알아채고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면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회계처리 변경 과정에서 고의로 4조 5000억에 달하는 대규모 분식회계를 했다는 금융위원회의 결정으로 상장 폐지 기로에 섰던 삼성바이오로직스 문제가 어이없는 방향으로 풀리고 있습니다. 삼성 그룹 전체 불법 승계 문제의 핵심열쇠가 될 수 있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가 재벌 개혁 2라운드의 문을 열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생각비행에서도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삼성바이오 고의 분식회계 결론, 핵심은 삼성 경영권 승계 문제(생각비행) : https://ideas0419.com/897



하지만 황당하게도 한국거래소는 지난 10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유지를 최종 결정하고 주식 거래를 재개해버렸습니다. 시장의 불확실성을 시급히 해소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는 데 역점을 뒀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이런 전개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나 이렇게 뻔뻔하게, 이렇게 시급한 결정을 내릴 줄을 몰랐습니다.


출처 - MBC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정도로 속전속결로 결론을 냈기 때문입니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로 분식회계를 했다고 결론을 내리기까지 걸린 기간만 20개월입니다. 장고 끝에 명백하게 문제가 있는 기업의 주식 매매는 제재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었죠. 그런데 한국거래소는 영업일 단위로 겨우 19일 만에 이 결정을 뒤집어버렸습니다. 4조 5000억 원에 이르는 분식회계를 고의로 했다는 확정 결론을 받은 기업에 말이죠. 한국거래소 심사위원회 위원들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오래 끌고 가는 게 맞지 않다고 판단했답니다.


출처 - 뉴스웍스


그런데 이상합니다. 앞서 5조 원대의 분식회계로 증선위 제재를 받은 대우조선해양의 주식 매매 정지 기간은 1년 3개월에 이르렀습니다. 그때는 시장이 확실했던가요? 그때는 보호할 필요가 없는 투자자들만 있었나요? 대우조전해양이 1년이 넘도록 주식 매매를 하지 못해도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삼성은 채 20일도 되지 않는 기간 주식 매매를 못 하면 한국 경제가 망하기라도 한답니까?

 

출처 - 경향신문

 

같은 대기업 사례이지만 형평성의 기준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면 우리나라가 여전히 삼성공화국이라는 현실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이번 결정을 내린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가 추가 회의조차 하지 않고 단박에 결론을 내버린 건 삼성과 짬짜미를 한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출처 - 한국일보


대마불사라는 속언을 증명이라도 하듯 주식 거래가 재개된 첫날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20% 가까운 급등세를 보였습니다. 이대로 가면 최저점에서 산 사람들은 거의 50%에 이르는 차익 실현이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돕니다. 그런 정보와 짬짜미가 가능한 세력들 사이에서 이번 사태를 이용했다면 돈 놓고 돈 먹기를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IMF 당시 상황을 재현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나라가 망하는 상황을 자기 이익을 실현하는 데 써먹은 것과 똑같은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출처 - 고발뉴스


시민단체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유지 결정에 대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는 한국 자본시장의 불신과 불투명성만 키운 삼성 봐주기 결정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사건의 위법성과 중대성을 감안할 때 당연히 상장폐지가 됐어야 함에도 재무적 지속성만 고려해 상장 유지 결정을 내린건 순전히 삼성이라는 경제권력 앞에 무릎을 꿇은 재벌 봐주기라는 거죠.

 

출처 - 한겨레

 

상식적으로 봐도 말이 안 됩니다. 증선위가 분식회계 판정을 번복한 것도 아니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그 판정에 따라 수정공시를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삼성은 분식회계를 한 상태이고 눈곱만큼도 고칠 생각이 없는데 왜 한국거래소가 나서서 면죄부를 주느냐는 겁니다. 회계 투명성 부족은 국내 기업의 주가를 낮추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판국인데 삼성이라는 대표적인 기업에게조차 이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투자를 바라며 경기를 호전시키기를 바랄 수 있을까요? 그래서인지 시민단체뿐 아니라 평소에 기업의 편에 서던 시장주의자를 자임하는 교수들 중에서도 일부는 이번 한국거래소의 결정을 참사 수준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시장주의적 시각에서 봐도 회계가 제대로 작동해야 자본시장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인데, 이번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는 고의 분식회계였다는 결정을 내린 것 말고는 뭐 하나 제대로 작동하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물론 아직 끝이 난 건 아닙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제기한 행정소송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맡은 고의 분식회계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금융 당국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내린 중징계도 아직 유효합니다. 과징금 80억과 대표이사, 담당 임원 해임 권고, 회사와 대표이사에 대한 검찰 고발 등에 대한 조치인데 삼성바이오는 이 처분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죠. 검찰 수사가 이뤄진다고 해도 상장 폐지가 될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결정적 증거를 잡고 유죄 판결이 날 경우 분식회계와 관련한 책임자 등에 대해서는 사법처리가 이루어질 전망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도 이재용까지 올라가기 전에 꼬리 자르기를 하겠지요. 이번 삼성바이오 주식 거래 재개는 참여연대의 말대로 자본시장을 교란시키는 중대 범죄인 분식회계의 재발을 방지하고 향후 자본시장 신뢰 회복에 만전을 기했어야 할 한국거래소가 사실상 자신의 책무를 유기한 것입니다. 검찰은 한국거래소와 삼성의 짬짜미 의혹을 포함해 우리나라 자본시장 활성화와 경제를 위해서라도 삼성바이오 사태를 낱낱이 파헤쳐야 할 것입니다.

한때 우리나라 최대의 온라인 여론광장이었던 다음 아고라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아고라를 운영하는 포털 다음은 지난 3일 공지를 통해 아고라 서비스를 2019년 1월 7일 종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때부터 새글 쓰기가 막히고 2019년 4월 1일까지는 개인별 작성 글을 백업할 수 있다고 하며, 백업 기간이 지나면 아고라의 모든 콘텐츠를 파기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출처 – 다음 아고라


아고라는 원래 미디어다음 뉴스 서비스 안에서 운영되며 주제별 토론방을 강화하는 형태로 지난 2004년 12월 시작된 서비스였습니다. 아고라는 이름 그대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광장 같은 곳이었습니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모여 토론을 벌이던 광장의 역할을 온라인에서 똑같이 수행한 겁니다. 다음 아고라의 청원 게시판은 법적인 구속력이나 효력이 전혀 없었는데도 사람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신문고 같은 소통의 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사회의 불의를 고발하고 개인의 억울한 사연이 올라오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온라인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다음 아고라에 글을 써본 적이 없는 분일지라도 지인이나 단체를 통해 다음 아고라의 청원글에 서명을 해달라는 요청을 한 번쯤은 받아보셨을 겁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유용하게 쓰는 서비스였죠. 지난 15년 동안 다음 아고라에 1000만 명 이상이 3000만 건이 넘는 글을 작성하고 20만 건에 이르는 청원을 했고, 이에 대해 4500만 건의 서명이 진행됐다고 합니다.


다음 아고라가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낸 건 서비스를 시작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시점이었습니다. 2005년 1월 서귀포시의 부실 도시락 사건이었죠. 뉴스를 통해 결식아동들이 부실한 도시락을 먹고 있다는 소식에 분노한 누리꾼들이 다음 아고라를 통해 결식아동 도시락 개선 청원 운동을 벌였는데, 이런 움직임이 다시 뉴스를 타며 사회적 파급력을 낳았습니다.


출처 - 블로터


그런 아고라가 전성기를 맞이한 때는 이명박 정권 시기였습니다. 2008년 대한민국을 들썩였던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벌어진 바로 그때입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난 반대 여론이 오프라인과 거리로 확대되는 모습이 이때 펼쳐졌습니다. 다음 아고라는 촛불시위의 대표적인 온라인 의견 수렴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기성 정치 세력들도 아고라에 들어와 각종 여론전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한 비판 글을 아고라에 올린 사실은 이미 밝혀진 바 있죠.


출처 - 매일경제


미네르바 사건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08년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한국 경제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글을 올린 박대성 씨는 이명박 정부에 의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언론이 매일 대서특필하여 엄청난 화제가 됐죠. 그런데 박대성 씨는 2011년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그리하여 미네르바 사건은 공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인식됐고, 이 사건을 계기로 허위사실유포죄에 해당하는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이 위헌 결정을 받게 됐습니다.


출처 – 청와대 청원 게시판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권력에만 해당하는 얘긴 아닙니다. 2000년대를 대표하던 여론 공간인 다음 아고라도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SNS 서비스와 오늘의유머 등 다른 커뮤니티 서비스의 등장으로 점점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시작된 청와대 청원 게시판은 사실상 다음 아고라의 바통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아고라는 실질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의미를 다한 듯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2018년 한 해가 저무는 시점에 다음 아고라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공지를 듣게 되니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달은 차면 기울기 마련이고, 시대는 변화하기 마련이겠지요. 시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고 정당한 여론을 형성할 공간의 필요성은 여전합니다.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일이 시시각각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다른 서비스와 공간이 생겨 사람들이 자유롭게 뜻을 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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