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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이명박의 보석 석방, 특혜 아닌 특혜 같은 특혜?

by 생각비행 2019. 3. 8.

국정농단부터 사법농단의 원흉들이 보석을 신청해서 우리를 긴장하게 했던 한 주였습니다. 이명박은 조건부이긴 하나 보석이 허가되었습니다. 김기춘과 양승태는 보석 청구가 다행히 기각됐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지난 6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석 허가를 받아 조건부 석방이 되자 시민단체인 조선의열단 관계자가 집 앞에서 항의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보석 허가 결정을 내린 서울고등법원은 "자택구금에 상당한 엄격한 보석조건을 붙인 보석 허가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죠. 사실 보석은 법에서 정한 요건에 충족되면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원칙적인 이야기이긴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보석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토록 들끓게 하는 건 법률적 판단을 하는 법관, 나아가 법질서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크기 때문일 겁니다. 특히 이번에 보석을 신청한 사람이 사법농단의 장본인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보석과 관련된 이 상황 자체가 자기 회귀적이고 아이러니가 아닌가 합니다.


출처 - JTBC


지난 5일 검찰은 양승태 시절 사법농단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 10명을 추가 기소하고 법관 66명에 대한 징계 사실을 통보했습니다. 66명이나 되는 법관 중에 현직에 있는 이도 8명이나 됩니다. 혐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등이며 불구속기소 되었습니다. 이들은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에 개입하고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 모임에 대한 와해를 시도한 데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당시 법원행정처 이민걸 실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시 국민의당 의원들의 재판을 심리한 재판부의 심증을 빼내 전달한 혐의가 드러났습니다. 박근혜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 재판과 민변 변호사들 체포치상 혐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도 있었으며, 신광렬 전 부장판사는 정운호 게이트 당시 판사들 상대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영장전담 재판부를 통해 검찰 수사 상황을 빼내고 영장 심사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냈다고 하죠. 지난달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구속한 성창호 부장판사 등도 수사기밀을 보고한 혐의로 함께 기소되었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파기환송심 재판장이었던 김시철 부장판사의 경우 2015년 무죄를 끌어내기 위해 검사, 변호인에 대한 문답 시나리오를 준비한 사실이 지난달에 드러난 바 있습니다. 사전에 무죄 판결문 초안까지 작성해두고 무죄 선고를 시도했으나 같은 재판부에서 주심을 맡은 최 모 판사가 반대해 실행하지 못했다고 하죠. 이제 대법원이 해당 법관들에게 비위 사유가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요, 법관 징계 공소시효가 3년인 점을 고려하면 이들 중 일부는 징계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점쳐집니다.

 

출처 - MBC

법관의 판결이 외부의 과도한 비난을 받게 된 건 일선 법원의 이런 어이없는 판결들 때문입니다. 사법농단을 지켜본 국민들은 사법부가 삼권분립에 의해 독립된 기관이라는 생각을 더는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기관보다도 독립적이어야 할 법원을 자신의 영위를 위한 거래 수단으로 이용했던 양승태, 그리고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들이 던진 부메랑이 돌아와 결국 법조계의 불신을 야기한 것이죠.


출처 – 연합뉴스


국정농단과 사법농단이 자행되던 때 단물을 빨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이제 자유한국당의 신임 당대표가 됐습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그대로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박근혜와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을 수사하던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 기간 연장 요청을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격으로 거절한 이가 바로 황교안이었습니다. 그는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 "박근혜를 최대한 잘 도와드리고자 특검 연장도 불허"했다며 스스로 공치사를 하듯 말을 꺼냈습니다. 국정농단을 최대한 덮어주고자 사심을 갖고 특검에 대한 수사 지휘를 했다고 스스로 고백한 꼴 아닙니까?

 

출처 - 경향신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수감된 지 353일 만에 석방됐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수감된 지 384일 만에 석방됐으며, 이번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져 349일 만에 석방됐습니다. MB의 보석 석방 때문인지 '보석 제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보석이란 구금된 사람을 일정한 돈이나 채권을 받고 석방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재판에 연루된 피의자에게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조처죠. 자기변호를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어 무고한 사람에게 형벌을 부과하는 사태를 예방하려는 목적입니다. 형사소송법은 일정한 예외 사유를 정해놓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보석 허가 청구를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외 사유에 해당하여 보석 허가를 할 수 없는 경우라도 법원이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임의적 보석 또는 직권 보석 허가 결정을 내려 피의자나 피고인을 석방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는 '병보석'도 이런 임의적 보석의 경우입니다. 일각에선 보석 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법원이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재벌 총수와 정치인 등 막강한 변호인단의 조력을 받는 권력자들에게 예외적으로 보석을 허용해준 과거가 있기 때문이지요. 


 

출처 - 중앙일보

 

사실상 우리나라의 보석 허가율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한다면 낮은 편에 속합니다. 대법원이 발간한 《2018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석 허가율은 36.3%(2204명)였다고 합니다. 2008년 이후 법원의 보석 허가율이 점차 낮아지는 경향도 보인다고 하는군요.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가 지난해 말 발표한 '미국 보석 제도의 경제학'이라는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 1999~2009년 사이 보석 청구가 기각된 경우는 대체로 10%대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보석으로 풀려나는 사람이 많은 미국에서는 오히려 높은 보석금 때문에 보석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고 하죠.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피고인이 보석 허가를 기대하지 않아 청구하는 비율 자체가 낮습니다. 지난해 전체 피고인 중 11.4%(6079명)만이 보석 신청을 했고 실제로 보석이 허가된 피고인은 3%대에 불과했다고 하죠. 

 

출처 - 노컷뉴스

 

이런 상황에서 보석으로 풀려나온 이명박을 바라보는 여론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이른바 'MB 보석은 특혜 아닌 특혜 같은 특혜'라는 얘기입니다. 이명박의 보석 석방은 특혜라고 단정해서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특혜가 전혀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는 겁니다. 우선 이명박 보석의 결정적인 이유는 구속 기간이었습니다. 이명박은 1심에서 징역 15년을 받아 2심 재판이 진행 중이죠. 이명박의 항소심 재판 과정을 보면 4월 8일로 예정된 구속 기간 만료 시점까지 끝날 가능성이 없습니다. 형사소송법은 1심, 2심, 3심 각 6개월만 구속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고 있는데요, 어차피 구속 기간 내에 재판을 끝낼 수 없어 장기적으로 가야 하는 상황에서 보석을 결정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심에서 징역 15년이 선고될 정도의 중대한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이명박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그간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했느냐 하는 부분에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또한 형법이 보석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긴 해도 실제로 풀려나기가 어려운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본다면 권력이 있거나 돈이 있는 수감자에게 주어지는 특혜로 인식될 측면이 크죠. 물론 일반 국민의 경우에도 구속 기간보다 예상 재판 기간이 더 길어지면 보석을 허가해주긴 하지만, 일반인의 재판이 이 정도로 길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입니다. 또 하나 이명박의 보석 석방이 특혜로 인식되는 측면은 형사 피고인에게 불구속 재판은 그 자체로 엄청난 특혜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경우 법원이 조건을 까다롭게 걸긴 했으나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보다 자택에 자유롭게 머무는 상황이라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훨씬 커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측근들에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고 법정에서 그들의 진술 증거가 중요한 증거가 되기 때문에 진술을 번복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죠. MB가 보석으로 풀려났다는 사실 자체가 지렛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 않겠습니까?

 

출처 - 연합뉴스

 

이명박의 보석 석방을 두고 일각에서는 MB의 재판지연전술이 먹힌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김현정의 뉴스쇼〉 '권영철의 Why뉴스' 꼭지를 맡은 권영철 기자는 이번 MB 보석 석방에 관해 취재하며 검찰의 한 핵심관계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판을 지연시켜 기간 내에 끝내지 못하게 하려고 작전을 짠 것"이라며 "재판부가 그런 의도를 알고도 이를 묵인한 셈"이라고 인터뷰한 내용을 들려주었습니다. 실제로 MB는 1심에서 자신의 측근들을 증인으로 법정에 세우지 않았지만 항소심에서는 23명이나 되는 증인을 신청하며 재판지연작전을 펼쳤습니다. 이명박의 경우 별건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있는 것이 없어 박근혜와 달리 영장을 추가로 발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를 충분히 이용했고 재판부가 수용한 상황이 됐습니다.

 

출처 - 카카오 1boon

 

앞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법원의 사전 허를 받고, 복귀 후에도 법원에 보고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구치소에서 석방돼 자택에 머무르면서 재판 준비에만 집중해야 한다"며 "법원 허가 없이 자택에서 한 발짝도 밖으로 나올 수 없고 변호인과 직계 혈족 외의 사람과 접견 통신할 수 없다"고 조건을 달았죠. 아울러 재판부는 "보석조건을 준수한다는 조건으로 임시 석방하는 것일 뿐 구속영장의 효력은 유지되는 셈"이라며 "만일 피고인이 조건을 위반하면 언제든지 취소하고 다시 구치소에 감금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풀려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가사도우미와 경호원, 운전기사 등과 "만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접견 허가를 요청했습니다.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이라 하더라도 100억원이 넘는 뇌물을 받아 챙긴 혐의로 징역 15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가사도우미까지 두는 데 대해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보석 허가에 대해 사실상 가택 구금이라고 밝힌 법원의 엄격한 석방 지침과도 사뭇 다르다는 지적도 뒤따릅니다. 얼마 전 이른바 '황제보석'으로 논란이 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사례 때문인지 재판부는 이명박의 보석 석방이 '병보석' 사유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MB 보석이 특혜라는 점이 분명해보입니다.


출처 - YTN

 

이명박이 보석으로 풀려 나오는 날 YTN '돌발영상'이 오랜만에 영화 같은 영상 한 편을 찍었습니다. 이명박이란 배우 자체가 스포일러이긴 했으나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 뺨치는 연기를 보고 있자니, '벽 짚고 보석 석방되기'라는 특권층을 위한 고급 기술의 창시자가 될 성싶다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명박의 보석 석방,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재판부가 아무리 조건부라는 단서를 달았더라도 결국 그 보석을 허가한 것은 법원입니다.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날이 참으로 멀어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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