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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3.1운동 100주년을 보내며 대한민국의 100년 후를 생각하다

by 생각비행 2019. 3. 6.

3월 1일 거리에 나부끼는 태극기가 올해는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1919년 전국에 울려 퍼졌던 삼일운동이 10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입니다. 삼일운동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핵심적인 상징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도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기록되었듯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건립된 시발점이자 서슬 퍼런 독재에 맞섰던 4.19혁명도 제국주의 일본에 항거하여 전 국민이 들고일어난 3.1운동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삼일운동은 독립운동인 동시에 조선이라는 왕조 국가를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가 개화하는 시발점과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일운동 100주년은 우리에게 더욱 뜻깊은 일이 아닌가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또한 삼일운동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위인들뿐 아니라 100년 전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삶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철물점 주인 김상옥은 일본 순사들이 가득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고, 일본군 장교이던 지청천은 삼일운동에 감화되어 탈영한 뒤 한국광복군 사령관이 됐습니다. 기생이던 정칠성은 여성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했고, 주부였던 남자현은 총독부 관리들의 암살을 시도했습니다. 학생이던 윤세주는 조선의용대 전사가 되어 중국 타이항산에서 일본군과 싸웠습니다. 변호사였던 허헌은 독립운동가를 변론하는 벗이 되어 좌우합작운동 단체인 신간회 결성을 주도했습니다. 총독부 간호부 직원이던 박자혜는 간호사 독립운동단체를 결성했습니다. 이처럼 삼일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삶은 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백범 김구, 단재 신채호, 약산 김원봉, 몽양 여운형, 이정 박헌영 등 독립운동의 거목들은 개개인의 허브가 되어 독립투사들을 북돋우고 이끌었죠. 그렇지만 삼일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유관순 열사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1902년에 태어나 이화학당 고등과에 진학한 그는 17세의 나이로 만세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삼일운동 하루 전날 학생들과 시위 결사대를 조직하고 3월 5일 서울 최대 시위운동이었던 남대문역(서울역) 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 후 〈독립선언서〉를 몰래 숨겨 고향인 천안으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밤새 만든 태극기를 나누어주며 독립운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만세운동을 탄압하는 일본 헌병에게 항의하던 아버지가 총검에 찔려 순국하고 어머니마저 죽임을 당하자 유관순 열사는 시신을 들쳐메고 헌병주재소에서 시위를 계속했습니다. 이때 체포된 유관순 열사는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1920년 3월 1일, 삼일운동 1주년을 맞이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수감 중인 동지들과 함께 옥중에서 만세 운동을 펼쳤습니다. 이로 인해 유 열사는 지하 감옥에 감금되어 야만적인 고문을 받게 되고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그해 9월, 18세의 나이로 순국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정부는 삼일운동의 상징이 된 유관순 열사를 삼일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 1월의 첫 독립운동가로 선정해서 그 뜻을 기렸습니다. 아울러 지난달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효창공원에 있는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유관순 열사께 국가 유공자 1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를 의결했습니다. 좀 의아하실지 모르겠으나 유관순 열사께 추서되었던 훈장은 3등급인 건국훈장 독립장이었습니다.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독립운동 인사를 제대로 예우하는 일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정의로운 나라로 나아가는 출발점입니다. 전쟁 시기를 제외하고 공공청사가 아닌 곳에서 국무회의를 연 것이 처음이라고 하니, 삼일운동 100주년을 각별히 기념하고자 하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가 잘 드러났다고 봐야겠네요.


출처 - 미디어오늘


10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곳곳에서 기념식이 거행된 것은 다시금 삼일운동을 되돌아보자는 뜻과 아울러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친일의 잔재를 뽑아내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아 진행된 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의 80.1%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친일잔재가 청산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특히 정치인과 고위공무원, 재벌 등 친일파 후손들이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48.3%나 되었습니다. 박근혜 정권 당시 말도 안 되는 한일위안부 합의를 외교부가 할 수 있었던 상황만 놓고 봐도 당연한 반응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조선을 통치했던 일본의 반응도 썩 다르진 않습니다. 지난 26일 전직 방위상인 이나다 도모미는 도쿄에서 열린 강연에서 일본의 교과서 검정 기준인 근린제국 조항에서 한국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982년 만들어진 이 조항은 일본이 교과서에 역사를 기술할 때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을 배려한다는 내용이 담긴 검정 기준입니다.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을 표면적으로나마 막는 원칙 중 하나였죠. 이나다 도모미는 '여자 아베'로 불리기도 하는 극우인사입니다. 일본의 전직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방위상에 재직한 정치인의 후진적 인식을 보면 역시 일본의 보수층은 제국주의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음을 명명백백히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본의 각 신문이 보도한 기사를 보면 논조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아사히 신문》과 마이니치 신문》은 비폭력 운동인 삼일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 등에 관해 설명하면서 일본군의 탄압 등을 통해 당시 일본이 시대를 잘못 읽었다는 결론을 낸 반면 극우 성격을 보이는 《산케이 신문》은 문재인 대통령이 참배한 김구, 안중근, 윤봉길 등이 일본 요인을 암살한 테러리스트들이라면서 여전히 한국이 과거에 생각이 매몰되어 있다는 식의 어이없는 논조를 드러냈습니다. 이런 일본인들이 아직도 있기에 우리가 과거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겠지요.

출처 - 경향신문

 

우리는 100년 전 삼일운동을 통해 국민국가로 가는 길을 열었고, 압제에 저항하는 역사를 썼으며, 수많은 전쟁과 위기를 극복해내고 2019년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국주의의 식민지였던 나라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정도로 부강해진 대한민국입니다. 그 자긍심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친일 잔재와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100년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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