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박물관의 조각상들이 파손되고 진열되어 있던 나폴레옹의 권총이 약탈당했습니다. 프랑스가 침략을 당했거나 엄청난 테러가 있었냐고요? 아닙니다. 평범한 프랑스 시민들의 시위로 인해 벌어진 일입니다. 노란 조끼를 입고 등장한 그들은 최루탄이 빗발치는 거리에서 폭력을 쓰기를 꺼리지 않으며 마크롱 정권에 대한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노란조끼들은 "우리는 이보다 가벼운 이유로도 왕의 목을 쳐본 시민들이다!"라며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한 달도 안 되었는데 4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다쳤으며 400명이 넘게 체포됐습니다. 대체 지금 프랑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출처 - 연합뉴스


일명 노란조끼(gilets jaunes) 시위라고도 불리는 이번 대규모 집회가 시작된 목적은 유류세 인상 철회였습니다. 마크롱 대통령과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가 이끄는 프랑스 정부는 지난 1년간 환경오염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경유 유류세를 23%, 휘발유 유류세를 15% 인상했죠. 지난 11월 17일 첫 시위부터 30여만 명이 참여할 정도로 반발이 극심한 정책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노란조끼 시위를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유류세 인상 반대 시위라고도 부릅니다.


출처 – 노동자 연대


프랑스 정부는 2022년까지 휘발윳값을 2300원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는데 국제 시세를 반영하면 현실적으로 3000원까지도 넘볼 수 있는 정책입니다. 각종 세금과 공과금이 증가 추세고 최저임금은 몇 년째 동결이나 다름없는데 기름값이 저 정도로 오르게 되면 일반 시민의 경우 기름값만으로 1년에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돈을 갖다 부어야 합니다. 비싼 파리 같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야 전차나 버스, 지하철이라도 있지만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차가 없으면 생업은 물론 삶 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유류세 인상은 삶을 영위하지 말라는 얘기와 다름없게 들릴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최근 소득 상위 1%에 대한 세금이 인하됐으니 부글부글 끓고 있던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들이부은 꼴입니다.


출처 - SBS


이렇게 유류세 반대 시위로 시작한 시위는 점차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반발로 퍼졌습니다. 노란조끼 시위대는 마크롱 퇴진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며 정책 노선을 바꿀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위에서 말한 박물관 파괴와 유물 약탈 등을 포함한 폭력까지도 불사하고 있습니다. 폭력 사태는 시위대의 시민들뿐 아니라 최루탄을 포함한 강경한 대응을 하는 공권력의 책임 역시 큽니다. 지난 1일 마르세유에서 시위가 일어났는데 인근 아파트에 살던 80세 여성이 얼굴에 최루탄을 맞아 숨졌습니다. 부상자 중에는 상태가 위중한 사람들도 있어 사망자는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확대일로에 있는 시위 앞에 프랑스 정부는 국가비상사태 선포도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BBC


노란조끼 시위는 프랑스에서 차량에 의무적으로 비치하도록 한 노란색 형광 조끼를 시위대가 입고 나오면서 붙은 이름입니다. 시위대의 구성도 굉장히 다양합니다. 유류세에 직격탄을 맞은 지방에 사는 트럭, 택시, 사설구급차 운전사 등의 SNS 호소로 시작된 노란조끼 시위에 다양한 정치적 입장과 계급이 뒤섞인 사람들이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극우 민족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같이 상반되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물론 온건파도 다수 포진해 있습니다. 극우와 극좌가 함께 반정부 투쟁에 나선 셈입니다. 여기에 여성주의 그룹, 노동자 진영뿐 아니라 중학생까지 포함되어 정말 하나로 모일 수 없었던 사람들의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서민들에게 경제적 충격을 주는 정책과 복지 혜택 축소로 쌓인 분노가 부자 감세와 유류세 인상이라는 기폭제를 만나 폭발하자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죠. 이제는 중학생들이 마크롱의 교육, 시험 개혁 폐기를 요구하는 등 각자의 주장과 요구를 펼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출처 – BBC


그래서일까요? 프랑스 국민의 절대다수가 노란조끼 시위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파리의 폭력 시위 사태 바로 다음 날 시행된 여론조사에서 72%의 시민이 노란조끼 시위를 지지한다고 답했습니다. 한편 85%는 폭력 시위에는 반대한다고도 답했습니다. 하지만 90%의 시민이 정책의 조정이나 시위대를 대하는 정부의 조치들이 현 사안의 위중함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런 여론조사의 결과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평화롭게 시위할 수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이번 폭력 시위는 마크롱 대통령이 서민층을 무시한 것에 대한 정당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실제로 일부 시위 현장에서는 진압하러 나온 경찰 중 일부가 시위대에 가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하지요.


출처 - 연합뉴스


현재 프랑스에서는 노란조끼 시위의 기폭제가 된 유류세 인상을 포기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크롱은 지난 5일로 예정되었던 세르비아 방문을 전격 연기했습니다. 지난 4일로 예정되었던 정부와 노란조끼 시위대 간 협상도 시위대의 거부로 무산됐습니다. 자신이 말한 만큼 강한 대통령이라면 마크롱은 이제 폭력 사태로 비화한 시위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징집제를 부활시키려고 하는 등 극우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던 마크롱에 대한 반작용에 가까운 시위이기도 하니까요. 

 

한편 시위대 역시 극우와 극좌, 도시와 지방, 부자와 서민 등 서로 간의 입장 차이가 서서히 도드라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극우를 비롯한 정치권이 이 틈을 파고들어 이용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노란조끼 시위는 서민들의 경제적 충격과 삶의 질 저하가 얼마나 큰 국가적 시험대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우리나라도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닌 셈이지요.

남북 협력이 속도를 붙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엔 남북 산림 협력, 30일엔 남북 철도 공동조사에 착수했기 때문입니다. 통일부는 지난달 29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약제 50톤을 전달했습니다. 아울러 통일부는 "산림병해충 방제 협력은 국경이 없는 산림병해충 확산을 방지함으로써, 남북 모두에게 호혜적인 사업"이라며 "남북이 협력하여 한반도 산림생태계를 보전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남과 북은 병해충 방제 외에도 양묘장 현대화와 산림보전·보호를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주춤했던 남북 협력이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입니다.

 

 출처 – KBS


또한 지난달 30일에는 철도 공동조사에 착수했습니다. 2007년 조사가 진행됐던 경의선뿐 아니라 동해선도 새롭게 공동조사에 포함시켰죠. 경의선 북측 구간을 공동조사하는 건 11년 만이며, 북측 동해선 금강산―두만강 구간이 열리는 건 한반도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 공동조사 후에는 지난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연내로 합의했던 철도 연결 착공식도 열릴 수 있게 될 희망적 관측입니다.


출처 - 노컷뉴스


이번에 진행된 공동조사는 한반도 종단 철도 연결 및 현대화와 동북아 철도 공동체라는 꿈을 현실화하는 첫걸음을 뗀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북미 간 신경전이 여전한 가운데 남북이 먼저 핵심 사업 진행에 뜻을 모았다는 점에서 남북관계는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는 명확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출처 - 한겨레


30일 달린 우리 방북 열차는 모두 6량으로 5만 5000리터 규모의 유조차와 발전차, 객차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남측에서는 통일부, 국토부, 철도공사 관계자 등 경의선과 동해선에 각각 20여 명이 투입되었죠. 북측도 비슷한 인력이 참여했습니다. 서울역을 시작으로 18일간 우리 열차가 달릴 북측 구간은 무려 2600km로 한반도의 약 2배입니다. 이를 통해 선로는 괜찮은지, 터널 같은 시설은 문제없는지 등을 직접 살펴보게 됩니다. 


출처 - 한겨레


이번 공동조사로 남북이 바로 철도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건 아닙니다. 유엔 대북 제재는 아직 철회되지 않았고, 이번 공동조사에 한해 제재가 면제된 것이기 때문이지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앞으로의 철도 연결 사업에 대해선 추가 면제 조치를 받아야 한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미국 역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이 있어야 대북 제재에 대해 논할 수 있다고 했고요.


출처 - 해외문화홍보원


그래도 이번 철도 공동조사는 북미 간의 신경전으로 인한 정세 교착과 대북 제재에 대한 미국 정부의 원칙적 태도라는 난관을 뚫고 성사된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남과 북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물자와 사람이 조금씩 오가야 진정한 의미에서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걸음을 뗀 것에 의미를 두고 중장기적으로 남북관계가 진전되길 기대합니다. 

지난 주말 KT 아현지사 화재 때문에 네트워크 블랙아웃이 찾아와 서울 서북 지역과 멀리는 경기도 고양시 일부에 이르기까지 통신이 두절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주말을 맞아 홍대, 망원, 신촌, 이대, 용산 부근으로 나들이하신 분들과 주민, 이 지역에서 장사하는 자영업자분들은 그야말로 막막하셨을 겁니다. 통신장애로 인한 각종 문제로 거의 사회적 재난에 가까운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중앙일보


우선 KT 기반망을 쓰는 스마트폰의 안테나 신호 표시가 사라지며 전화기가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PC에 연결해서 쓰는 유선 인터넷도 마찬가지였죠.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알아보려고 해도 전화도 문자도 인터넷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밖에 있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가득 모이는 홍대나 신촌 근처의 카페나 음식점 중에 KT 회선을 쓰는 건물에 입점한 곳들은 카드 결제도 안 되었습니다. 결국 현금이 없는 손님을 받기 어려운 희한한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요즘은 주문과 결제가 네트워크에 연결된 POS 방식입니다. 이 때문에 통신이 두절되자 가게 주인이나 종업원들은 고객의 주문을 일일이 손으로 받아 적어야 했습니다. 요즘은 카드 소지조차 귀찮아서 스마트폰 페이 서비스만 쓰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이들이 현금을 소지했을 리 만무하죠. 그래도 밥음 먹어야 하겠기에 인근 은행에 현금을 찾으러 갔더니 KT망을 쓰는 건물에 있는 ATM은 모조리 죽어버렸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집으로 돌아가려고 지하철을 타려고 해도 스마트폰 안에 있는 교통카드가 반응을 안 합니다. KT 화재로 통신이 두절된 곳 일대에서 운전하던 분들은 내비게이션이 멈춰버리는 아찔한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하루하루 장사 준비를 해야 하는 자영업자들의 경우 문제가 훨씬 심각했습니다. 식자재 납품업체와 전화가 되지 않으니 자재를 주문할 수도 배달을 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화재 당시 복구에 일주일을 예상하던 전망대로라면 11월이 지나가 버리게 될 수도 있는 문제였죠. 통신 장애가 일어난 지역에 속한 중소기업들은 월말 정산과 출입금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자칫하면 부도가 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망원역 인근 약국에서는 KT 인터넷이 끊기며 병원에서 발급한 처방전이 전달되지 않아 몸이 아픈데도 약을 받을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이번 KT 화재의 심각성은 유무선 인터넷과 함께 전화도 죽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25일 새벽 5시 35분쯤 마포구에 사는 76세 할머니가 119와 통화가 되지 않아 사망했다고 합니다. 평소 당뇨를 앓고 있던 할머니는 새벽에 화장실에 갔다가 갑자기 심장이 답답하다며 남편에게 알렸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휴대폰으로 아무리 119를 눌러도 전화가 먹통이었습니다. 놀란 남편은 길거리로 뛰어나가 KT가 아닌 통신망을 쓰는 사람을 간신히 붙잡고 119에 전화를 했지만 늦어버렸다고 합니다. 새벽이라 사람이 별로 없어서 연락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겁니다. 원래 휴대폰은 하나의 망에 문제가 있더라도 다른 망을 우회하여 112, 119 같은 긴급호출이 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분의 전화가 불통이었다는 건 휴대폰이 구형이었거나 단말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119에 전화가 제때 됐더라면 할머니가 살 수 있었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출처 – SBS 유튜브


사실 112와 국방부도 직격탄을 맞았다고 합니다. 이번 화재로 통신망이 죽은 지역인 용산에 소재한 국방부는 육군본부 등은 군내 직통 연결망을 제외한 내외부 통신망이 모조리 끊겼습니다. 또한 유선망을 KT로 쓰는 112 시스템도 일부 먹통이 됐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경찰력과 군사력을 마비시키는데 사이버전과 같은 대단한 사건은 필요치 않았습니다. 일개 사기업의 지하 통신구에 화재를 내는 것만으로 전시나 테러에 준하는 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 백일하에 드러난 겁니다.


출처 - 한겨레


재난이나 재앙으로 불려야 할 이번 통신망 두절 사건은 KT 아현지사 지하에서 일어난 불 때문이었습니다. 아현지사는 서대문, 마포, 용산, 중구 지역 유무선 통신의 대동맥 구실을 하는 곳이라고 하죠. 케이블 부설을 위해 깊고 긴 지하도 관로가 빽빽이 깔려 있어 불을 끄기가 어렵게 되어 있어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합니다. 문제는 통신구 화재가 수년 전부터 발생해왔는데 이번에 불이 난 통신구는 관련 규정상 연소방지설비 설치 대상에서 제외되는 곳이어서 화재 예방에 실패한 것이었죠. 한편 통신장애가 발생할 경우 이를 우회할 대책이 마련돼 있어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못해 문제가 더 컸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번 화재로 사람들은 디지털 난민이 되었습니다. 문제의 근원에는 수익과 효율화만을 꾀하며 몸집을 불린 KT 경영진이 있습니다. 공기업인 한국통신에서 시작한 KT는 민영화 이후 수익 극대화라는 명목으로 통신의 공공성을 도외시하고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하에 현장 인력을 감축하거나 외주로 돌렸습니다. 분산되어 있던 통신 장비를 고도로 집중시켜 장비가 빠져나가면서 비게 된 전화국 건물은 매각하거나 부동산 개방을 하는 임대업에 급급했죠. 그런 실적 덕분에 경영진들은 성과급 잔치를 하기 바빴습니다. 정권 덕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통신 문외한 CEO들은 이런 문제를 더욱 가속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인프라와 백업은 잘 돌아갈 때는 모르지만 문제가 불거지는 순간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지탱하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불이 난 KT 아현지사에 KT 소속 관리자는 없었습니다. 책임자가 없으니 우회 선로 확보를 위한 투자나 안전관리는 뒷전이었겠지요.

 

출처 - 경향신문

 

KT도 문제입니다만 정부의 미흡한 대처도 한몫했습니다. KT 통신망이 죽었는데 KT 핸드폰으로 재난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그게 제대로 가겠습니까? 화재 당시 SK와 LG는 망이 살아 있었던 만큼 재난에 준하는 이 사태 앞에서 LTE 통신망 전체를 열 수는 없었더라도 디지털 난민이 된 사람들을 위해 적어도 SK와 LG의 WIFI 망을 쓸 수 있도록 전면 개방했어야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유튜브


지난 25일 황창규 KT 회장은 화재로 인한 통신 장애와 관련해 사과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은 소방법을 어긴 것이 없다는 면피성 발언을 해 구설에 휘말렸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장애를 겪을 KT망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이용료 1개월 감면을 보상책으로 들고나와 2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뭇매를 맞았습니다. KT의 작년 매출이 15조 원이 넘습니다. 이번 화재 사고의 책임을 통감한다면 통신비 1개월 감면을 대책으로 내세울 수 있느냐는 겁니다. 더구나 이번 디지털 재난은 생활 전반에 걸친 사회 시스템 마비를 가져왔으니 통신비 감면만으로는 제대로 된 피해 보상이 되지 않습니다. 손님이 많은 주말에 카드 결제가 안 되어 손님을 돌려보내야 했던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출처 - 한겨레

 

화재가 일어난 지 24시간 만에 휴대전화는 53%, 인터넷 77%가 복구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영진이 경영 효율화와 비용 절감을 외치며 축소만 하던 현장 인력들이 추운 날씨에 고생하며 이뤄낸 성과입니다. 기업들은 이제라도 현장 전문가와 인프라 유지를 위한 투자 그리고 안전 관리에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불을 끈 것도 사람이고 고친 것도 사람입니다. 초연결 시대에 오히려 사람의 힘을 절감했던 주말이었습니다. 이번 화재로 정보화 시대의 그늘을 보았습니다. 모든 것을 기계에 맡기고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에 너무나 길들어 있지 않았는지 반성할 때입니다. 아울러 큰일이 나지 않은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고 만반의 대비를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패스트푸드는 이름 그대로 시간이 없을 때 신속하게 주문하고 먹을 수 있는 대중 음식입니다. 그런데 요즘 패스트푸드점 중에 키오스크형 무인계산대를 도입하는 곳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큼지막한 터치스크린에 원하는 메뉴를 지정하고 카드나 현금을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주문과 결제가 완료됩니다. 왁자지껄한 점심시간에 줄을 서서 점원과 고객이 소리 높여 이야기할 필요가 없게 되어 참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점원과 대면하여 주문 때문에 티격태격할 필요 없이 조용히 먹고 가고 싶은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생각입니다. 일전에 생각비행에서는 이 문제를 노동과 일자리라는 관점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인간 노동의 종말, 천국인가 지옥인가?(생각비행) : https://ideas0419.com/738

 

무인계산대 시스템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노동 문제로 심화하는 이유는 노약자들이 소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인분들이 많은 종로구의 패스트푸드점에 가보면 찌푸린 얼굴로 무인계산대와 번호판을 번갈아 쏘아보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젊은 사람에게는 충분히 큰 화면이지만 노안이 온 어르신들은 이마저도 잘 보이지 않아 불편을 겪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뉴시스


터치스크린 방식의 주문도 이분들에겐 고역입니다. 요즘은 나이 드신 분들도 대부분 스마트폰을 사용하시긴 하지만 단톡방에 온 톡을 보는 수준일 뿐 톡 한 번 보내려면 하세월이 걸리는 분들도 많습니다. 게다가 스마트폰의 스크린을 터치할 때 메뉴 구분 역할을 하는 숏 터치와 롱 터치 그리고 화면에서 터치해도 되는 포인트들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분들이 무인계산대 앞에서 어찌어찌 주문하기를 눌러 메뉴에 들어갔더라도 실제로 주문하고 싶은 음식을 화면을 넘기며 살피면서 감자튀김, 사이다, 우유 등등 생각지 않은 메뉴를 터치하는 바람에 주문이 들어가 최종 결제 금액이 너무 많이 나온 것에 대해 놀라고 당황하시는 분들도 계시지요. 삭제하는 방법이라도 알면 되돌아가 지울 텐데 그마저 모르시거나 알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처 - 뉴시스


안쪽에 대기하고 있는 점원이 구두 주문을 받아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요즘은 본사의 지침 때문인지 사람에게 주문해도 되냐고 물어보면 무인계산대에서 주문하라는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입니다. 결국 다시 무인계산대 앞으로 돌아가 헤매게 되니 속절없이 점원도 아닌 젊은 고객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십상입니다.


출처 - 중앙일보


인건비 절감과 패스트푸드점이 주 고객층으로 생각하는 젊은 세대의 편리함을 고려할 때 무인계산대의 확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될 듯합니다.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일은 없겠지요. 하지만 앞서 소개한 문제는 단순히 노인분들만 겪는 일은 아닙니다.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이 있는 분은 잘 아시겠지만,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 역시 무인계산대 앞에서 곤란함을 겪긴 마찬가지 신세입니다.

 

출처 - MBC

 

터치스크린형 무인계산대는 비장애인 성인이 서 있을 때의 높이만을 고려했기 때문에 휠체어에 타고 있거나 키가 작은 아이들이 주문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터치스크린 방식은 손을 움직이기 어려운 파킨슨병이나 다른 병의 후유증이 있는 분들이 사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손이 떨려 정확한 터치가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스마트폰에는 그나마 음성 인식 기능이라도 있다지만 키오스크형 무인계산대에는 이런 기능도 없습니다. 나아가 현금 없는 매장을 운영하는 프랜차이즈들은 비장애인이더라도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거나 페이 시스템을 지원하지 않는 구형 전화기를 쓰는 경제적 약자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출처 - 중부매일


비대면, 무인화 서비스가 대세가 되고 있다 하더라도 노인분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서비스가 등장할 때까지는 사람의 응대가 필요합니다. 약자들의 다양한 특성을 고려한 무인계산대 기술 개발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겠지요. 비장애인 젊은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줄을 늘어선 은행 ATM기에서 터치 한 번 잘못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적이 한두 번은 있을 겁니다. 그런 문제를 사회적 약자들의 경우 밥 한번 먹을 때마다 늘 겪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직 젊고 최신 기술에 능숙하니 딴 나라 얘기로 보이는 사람이라도 언제 어떤 기술에 의해 사회적 약자로 밀려날지 모릅니다. 모든 책상 위에 하나씩 있던 PC가 스마트폰에 밀려나는 모습을 보십시오.

 

사회는 하루가 멀다고 급변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이웃과 주변 사람들을 좀 더 배려해야 하겠고요. 약자에 대한 배려는 언젠가는 늙고 굼뜨게 될 나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사회적 약자들이 불편 없이 지내는 세상이라면 모두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세상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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