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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낙태 여성 조사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압수수색한 경찰

by 생각비행 2018. 12. 27.

점점 낮아지는 출산율을 걱정하는 시대인데 얼마 전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경찰이 낙태한 여성을 색출하겠다고 특정 산부인과를 이용한 여성 26명에게 참고인 조사 출석을 요구하고 낙태 사실을 취조한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21일 성명을 통해 경남 남해경찰서가 20여 건의 개인정보를 얻어 해당 여성들에게 낙태했는지를 취조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출석 통지 우편물을 확인 후 출산한 지 얼마 안 되어 신생아가 있어 못 간다고 전화한 여성에게조차 재차 출석을 요구했습니다. '개인정보가 어디서 난 거냐'는 여성들의 질문에는 경찰서에 나오면 답해주겠다며 답변을 회피했다고 하죠.


출처 - 여성신문


낙태죄 자체가 위헌의 요소가 많은 법률입니다만, 경찰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수사를 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모조리 출석하라고 윽박지를 게 아니라 출산한 지 얼마 안 되어 신생아가 있어 못 간다는 사람의 경우 병원에 문의하거나 출생신고를 확인하기만 하면 될 일이죠. 게다가 당사자들이 개인정보의 출처를 질문했는데 경찰이 이에 대해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는 것은 경찰 스스로 수사의 무리함을 알았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출처 - 시사위크


한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임신을 하려고 노력했으나 아이를 사산해 치료를 받았다는, 다시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일까지 진술해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경우 동네에 산부인과 병원이 하나밖에 없는데 여성이 어디로 가서 진료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남편이 출석 통지서를 보고 임신중절을 한 게 아닌데도 의심을 하는 가정도 있다고 하니, 이런 경우 가정불화를 경찰이 대체 어떻게 책임을 질 겁니까? 가정에 불화를 조장하고 산부인과도 못 가게 하면서 출산율 운운할 염치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출처 – 민중의 소리


경찰은 다른 분들은 다 이해를 하더라며 민원이 들어와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습니다. 9월 초 해당 산부인과가 낙태수술을 한다는 진정을 접수하고 지난달 27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참고인 26명의 인적사항을 받았다고 하죠. 진정인이 낙태 받은 사람들과 병원을 지목했기 때문에 사실을 확인하려고 압수수색에 출석까지 요구했다는 겁니다. 살인범이나 국정농단 사범도 아닌데 하루 만에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고 소환 통지를 하는 신속함을 보인 이유를 당최 모르겠습니다. 정말 신속함이 필요할 때는 뭉그적거리는 경찰이 말입니다.

 

출처 - 시사저널

 

한국여성민우회의 발표대로 특정 기간에 특정 산부인과를 이용한 특정 연령대의 여성을 무작위로 조사하는 건 반인권적이며 행정편의주의적인 작태입니다. 쌍팔년도처럼 한 놈만 걸려라는 심산이 아니라면 대체 무슨 생각으로 벌인 일일까요? 현재 낙태죄 폐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뜨겁고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성을 검토하고 있는 판국에 낙태죄로 여성을 처벌하는 데 반인권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경찰의 행태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경남여성단체연합 등 도내 여성단체들은 지난 24일 경남지방경찰청 수사과를 찾아 항의 서한을 전달했습니다. 이들 단체는 "개인 의료정보 수집을 통한 경찰의 반인권적 임신중절 여성 색출 수사를 규탄한다"면서 "여성의 건강권 보장을 요구하며 낙태죄 폐지 등을 촉구하고 있는 사회 상황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경찰이 시민 안전과 치안을 위한 민중의 지팡이가 맞는가"라고 비판했습니다.


출처 -KBS


6년 전 낙태죄를 합헌으로 판결했던 헌법재판소가 이번에 다시 낙태죄 위헌 여부를 검토 중입니다. 여성들은 물론 학자, 변호사들도 잇따라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냈습니다. 6년 전 헌재 결정의 가장 큰 문제는 임부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양자택일의 대립 구도로 설정한 점이었습니다. 두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아니라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결정이었죠. 이와 관련된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에서 조국 민정수석은 태아 대 여성, 전면금지 대 전면 허용의 이분법을 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현재 하루 평균 낙태 여성이 3000명에 달하고 대부분 음지에서 불법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낙태는 더 많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죄, 임신중단의 권리는 양지에서 더욱 심도 있게 다뤄져야 합니다. 6년 전에 4:4로 겨우 합헌 판결이 났던 만큼,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최근 들어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할 때 이번에는 위헌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출처 -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헌재가 낙태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 국회는 관련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낙태죄 폐지가 임신 중단 합법화 논의의 끝이 아니라 시작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미성년자가 임신중절 수술을 받을 경우 보호자의 동의를 요건으로 둘 것인지, 임신 주수에 따라 임신중단 규제를 어떻게 나눌지, 임신중단의 기본 절차를 어떤 식으로 구성할지 등등 이후에 논의해야 할 의제는 차고도 넘칩니다.


출처 - 뉴시스


미성년자의 임신중단 문제는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문제와 함께 다뤄야 하므로 미성년자의 법적 지위와 연령에 대한 논의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합법적으로 임신중단이 가능해지면 임신중단을 원하는 여성들이 올바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와 이를 뒷받침하는 법적 장치와 사회적 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되어야 합니다. 임신중단과 출산, 양육의 가능성 사이에서 여성 스스로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할 수도 있도록 해야 하며, 임신중단 시 따르는 신체적 변화와 합병증 등에 대한 상담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임신중단을 위한 수술비는 건강보험과 공공재정에서 부담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임신중단을 위한 법 개정은 국가가 허용하는 임신중단 사유를 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임신한 여성이 올바른 정보를 토대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시작이 될 낙태죄에 대해 헌재가 현명한 판단을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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