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개하다"와 "미안하다"

 

"미개하다"와 "미안하다", 지난 6.4 지방 선거를 뜨겁게 달궜던 단어입니다. 당시 서울 시장 후보였던 정몽준의 막내아들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국민을 향해 미개하다는 망언을 하여 아버지의 낙선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정몽준 후보는 아들의 발언이 언론에 오르내리자 당황하며 즉각 사과했지만 이미 민심은 떠나버린 후였습니다.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나섰던 고승덕 후보 역시 페이스북을 통한 딸의 폭로로 여론조사 1위에서 지지율이 급락하는 곤경에 처했습니다. 사태가 다급하게 돌아가자 선거 유세 마지막 날 고 후보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버린 딸을 향해 미안하다고 소리쳤습니다. 이 장면은 아직도 인터넷과 개그 소재로 패러디되고 있습니다.

출처 – YTN/뉴스1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던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후보는, 아들이 다음 아고라에 올린 진심을 담은 글 덕분에 후보로서 공약을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극적으로 당선의 기쁨까지 누리게 되었죠. 물론 선거 이후 나온 통계 자료에 의하면 사전투표 결과에서 조 후보가 1위를 차지하긴 했습니다만, 조 후보의 아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 유권자의 마음을 뒤흔든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선거판을 뒤흔드는 후보자 자녀들의 선거 지원

 

이 밖에도 강원도지사 후보였던 최문순의 딸들이 선거운동에 발벗고 나서기도 하는 등, 지난 지방선거는 유난히 후보자 자녀들의 행동이 두드러졌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사회관계망서비스의 급속한 확산과 더불어 올해 선거에서 각 후보의 가족 및 자녀들이 유권자의 표심을 흔드는 주요한 변수로 등장하고 있는 듯합니다. 과거에는 후보자의 가족이 명함을 돌리는 정도로 소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후보자의 자녀들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후보자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런 상황은 7월 30일에 있을 재보궐 선거에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서울 동작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진보 후보 단일화를 위해 자진 사퇴한 기동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아들 기대명 군이 한동안 화제였습니다. 인기 배우를 닮은 매력적인 외모와 훤칠한 키로 아버지의 유세장에 등장해 유권자의 표심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무더위에 아랑곳없이 선거운동을 펼쳤던 기대명 군은 '효도유세'라는 유행어를 남겼습니다.

 

출처 - 트위터


이번 7.30 재보궐 선거의 가족 지원에서 가장 돋보이는 이는 경기도 수원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 박광온 후보의 딸입니다. 박광온 후보는 여론조사상 같은 지역구 후보로 나온 정의당 천호선 후보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 16일 박 후보의 딸이 <SNS로 효도라는 것을 해보자(@snsrohyodo )>라는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적어도 온라인상에서는 큰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일명 랜선효녀라고 알려진 이 트위터 계정의 특이한 점은 박광온 후보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시점에서 사실상 실명 후원과 다름이 없는데도 그 운영이 익명의 트잉여(트위터만 하는 잉여)가 하는 것과 다름없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가감 없이 툭툭 던지는 일상어 말투, 후보로 나선 아버지를 지원하는 건지 '디스'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절묘한 문장 구사 등으로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선거 지원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새로움에 큰 흥미를 느끼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트위터


슈퍼불효녀를 자칭하면서도 트위터를 통해 아버지를 홍보하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효도로 시작한 랜선효녀의 트위터 활동은 적어도 그녀가 원했던 아버지의 인지도 상승이란 측면에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듯합니다. 후보자 자녀의 선거 지원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물론 후보자 자녀의 선거 지원 행위는 위험 부담도 굉장합니다. 선거를 위한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잘못된 어휘 선택과 사적인 감정 표현으로 자칫하면 지원은커녕 후보자를 매장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몽준 후보 막내아들의 사례만 봐도(이 경우는 아버지를 지원하려는 목적이 있었는지 정확한 경위를 파악할 수는 없는 사례이긴 합니다) 알 수 있죠.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화제가 된 박광온 후보의 딸 계정도 처음에는 박 후보의 선거 캠프에서 딸을 사칭한 비방용 계정이 아닌가 오인하여 차단했다가 나중에 해제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정서상 가족은 후보자와 동일시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자녀의 선거 지원은 크나큰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처 - 트위터


그런 차원에서 볼 때 랜선효녀의 계정처럼 운영되는 방식은 잃을 것이 없는 후보가 인지도를 폭발적으로 늘리기 위해서 한 일종의 모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온라인상에서 누린 주목도가 실제 득표율로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랜선효녀는 애초에 자신의 트위터 계정의 목적을 아버지에 대한 인지도 상승으로 명확히 설정했고, 한국에서 트위터 서비스가 시작되기도 전인 2008년부터 트위터를 사용해온 공력을 바탕으로 지금까지는 별다른 역풍을 받지 않고 현상 유지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트위터에 대한 이해 없이 어설프게 '드립'을 치며 장난식으로 운영했다면 벌써 묻혔거나 건방지다는 역풍을 맞았을지 모릅니다. 이전에는 이런 방식으로 후보자의 자녀가 선거 지원을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흥미롭게 여겨 사람들이 긍정적인 관심을 보이며 반응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계정 운용을 누군가 다시 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주목받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최초라는 프리미엄에 명확한 목표 설정 그리고 홍보 대상에 맞춘 운영 능력이 어우러졌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지요.

 

 

7.30 재보궐선거의 향방은?


이렇게 위험 부담이 있음에도 올해 선거 판세를 뒤흔든 일들은 모두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일어났습니다. 선거만이 아니라 개인, 단체, 기업의 활동에 있어서 브랜딩과 마케팅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포털 게시판,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한 차례씩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번 7.30 재보궐 선거는 또 어떤 후문을 남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7월 25일부터 26일 오후 6시까지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따른 사전투표 결과를 공시했습니다. 선거인 288만 455명 중 22만 9986명이 투표에 참여해 최종 7.98퍼센트의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는데요, 이는 역대 재보궐선거의 사전투표율 중 가장 높은 기록이라고 합니다.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큰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는 서울 동작을 지역구는 13.22퍼센트의 투표율을 기록했군요. 재보궐선거에 어떤 후보자들이 나왔는지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타고 들어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생각비행은 한 표 차이가 가른 역사 (꼭 투표하세요!)라는 기사에서 우리가 행사하는 한 표가 때론 국가와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크나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지난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로 대한민국 국민은 대통령, 정부, 정치인의 약속만으로는 앞으로 벌어질 참사의 반복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와 가치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이 없는 한, 그리고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우리가 흘린 눈물은 의미 없이 증발하고 말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 정치적 무관심에서 벗어나 소중한 선거권을 행사하는 일은 자본주의적 욕망에 생을 저당 잡히고 점점 괴물을 닮아가는 우리네 모습에서 벗어나 삶의 근본적인 조건을 변혁하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재보궐선거 유권자분들은 소중한 권리를 꼭 행사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인 24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추모 문화제 '네 눈물을 기억하라'가 열렸습니다. 3만여 명의 시민이 운집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했습니다. 안산분향소에서 출발해 1박 2일간 행진한 희생자 가족들이 추모 문화제에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는 세월호 100일을 외면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한 달여 만인 지난 5월 19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명운을 걸겠다"고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에서 180도 돌변한 것입니다. 실로 괴물 같은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각비행은 세월호 참사를 목격한 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을 출간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문제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곪아 터진 결과요,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을 활개 치게 방치한 결과입니다. 

 

이 책은 자본주의적 욕망에 생을 저당 잡힌 채 괴물을 닮아가는 우리의 일그러진 얼굴을 포착한 문화비평집입니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의 심연을 함께 들여다보시죠.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대형 참사가 드러낸 자본주의의 민낯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곪아 터진 결과요,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을 활개 치게 방치한 결과였다. 승객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선령 규제 완화, 더 많은 화물과 승객을 싣기 위한 선박 개조와 증축, 안전 규제 완화와 철폐, 승무원의 비정규직화, 사고 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구명벌, 승객보다 선장과 선원을 먼저 구조한 이해할 수 없는 해경의 구조 방식, 인명 수색 작전에서 전권을 휘두르다시피 했던 잠수업체 언딘과 해경의 알 수 없는 유착 관계, 승객 구조의 골든타임에 중앙부처 고위급 인사를 위한 의전 통화에 바빴던 119상황실과 해경, 사고 초기부터 인명 수색에 이르기까지 재난구조체계의 총체적 부실,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며 책임 면피에 급급한 정부와 대통령, ‘정피아’ ‘해피아’ ‘관피아’로 통칭되는 정부와 산업계 전반의 이권을 매개로 한 유착 관계, 허위 정보를 받아쓰기한 것도 모자라 진실을 감추는 언론의 저급한 보도 행태…. 이 모든 게 인간과 생명보다 돈과 이윤과 권력을 우선시하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끔찍한 모습이었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생각비행)

 

청대 말기 오견인(吳趼人)은 견책 소설(譴責小說, 사회 개혁을 목적으로 폭로와 풍자적 성격을 담은 소설)인 〈20년간 목도한 괴현상〉에서, 구사일생(九死一生)이라 자칭하는 주인공이 20년간 겪은 내용이라는 형식을 빌려, 청조 말기의 관계에 있던 매관(賣官) 풍습, 뇌물의 실태, 관료의 부패·타락, 민중 박해의 상황을 낱낱이 폭로했다. 숱한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했지만 위정자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그렇기에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은 대만판 ‘20년간 목도한 자본주의의 괴현상’이라 할 만하다. 국립대만대학교 외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대만《연합보(聯合報)》의 명인 칼럼과 《중국시보(中國時報)》의 시론광장 칼럼에 기고한 문화평론을 엮어, 인간과 생명보다 돈과 이윤을 우선시하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기 때문이다.

 

2009년 8월 7일 태풍 모라꼿이 대만 남부와 동부 지역을 강타하여 700명이 넘는 사상자와 엄청난 물적 피해를 남겼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8·8 물난리를 몸소 겪으며 공포에 떨었을 이재민과 구조대원들보다 복구 작업의 불성실 등을 이유로 여론의 맹렬한 비난을 받은 정부 관료들한테서 ‘충격 방어’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징후가 먼저 포착되었다. 신속하게 재해 상황을 조사하고 복구 작업에 힘써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이재민처럼 행동했다. 심지어 복구 대상이 ‘태풍’의 재해인지 ‘정당’의 재해인지(당시 마잉주 정부는 여론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급기야 관련자 처벌 명단을 발표하고 내각을 개편한다고 밝혔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먼저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정부와 관계 당국의 ‘보신주의’는 이 책의 저자가 비판하는 대판 사회의 ‘정치 재난학’을 떠오르게 한다. 대형 참사 앞에서 책임을 면피하려는 위정자의 행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괴물을 닮아가는 우리의 일그러진 얼굴

 

과거 ‘자본주의는 괴물이다’ 식의 경직되고 완고한 사유 방식에서 자본주의는 사람을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뼈까지 통째로 잡아먹는 무소불위의 거칠 것 없는 힘과 잔인성을 소유한 괴물로 비유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정태적 사고로는 ‘생산’하고 ‘변화’하고 ‘도주’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본주의의 실태를 포착하기 어렵다.

 

세계화 시대에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은 신감각의 산물로 엄청난 운동에너지와 시장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시대의 괴물들은 자본주의의 신세대 권력으로 인간의 욕망을 조작한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은 급진적이고 돌발적인 방식으로 경계를 허물고 다시 경계를 만들어 해체와 재편, 분출과 흡입을 거듭하는 ‘시장 괴물’ ‘정치 괴물’ ‘미인 괴물’ ‘영상 괴물’ ‘젠더 괴물’ ‘공간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이 책은 ‘자본주의’와 ‘괴물’을 문화비평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유 방식으로 관찰하면서 대만 사회라는 ‘문화 유격전’의 현장에서 작동하는 괴물의 실체를 생생히 포착한 비평집이다.

 

‘시장 괴물’은 과연 어떻게 움직이는 것일까? 그 작동 방식을 살펴보자. 저자는 ‘늙지 않는 젊음’에 대한 대중의 경이와 흠모, 그리고 그런 시선을 비판적인 인식으로 들여다본다. 여배우의 ‘영원한 젊음’은 여성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부권 사회의 강박과 내화(內化)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늙는 것은 자연의 한 현상이지만 부권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또 여배우의 ‘영원한 젊음’은 자본주의 상품 시장이 여성의 몸을 어떻게 다루고 착취하는지 잘 보여준다. 나이가 들면 몸집이 불고 늙기 마련이다. 하여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미션 임파서블’, 그러니까 영원히 소녀 같은 몸매와 피부와 얼굴을 유지하는 것은 가장 이문이 남는 장사가 된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생각비행)

   

우리 사회에서 ‘공간 괴물’은 또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많이 긁을수록 이득이 되는’ 방법으로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현대 자본주의 논리 안에서 ‘이성’은 ‘욕망’적 소비 충동으로 전락해버린다. 모든 ‘욕망’ 안에 ‘이성적’ 계산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경제 발전 동력의 지표가 되는 각종 성장률이 지속적 하락세를 보이는 대만의 상황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본의 흐름에서 불균등하게 이뤄지는 자원 분배의 문제는 은폐되고, 거시적 ‘문제’들이 개별 소비자군의 미시적 ‘징후’로 단순화되는 현실이 거론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은 창립 기념 할인 행사를 하는 백화점의 화장품 매장 앞에서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여자들만 볼 수 있을 뿐, 현재 우리의 소비 관념과 소비 유형, 소비 내용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한 경제구조의 변화는 볼 수 없다.

 

다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자. 세월호 참사로 대한민국 국민은 대통령, 정부, 정치인의 약속만으로는 앞으로 벌어질 참사의 반복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와 가치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이 없는 한, 그리고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우리가 흘린 눈물은 의미 없이 증발하고 말 것이다. 이런 시점에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의 저자가 대만 사회의 자본주의 문화 현상을 비판하며 들려주려는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은 동시대 자본주의적 욕망에 생을 저당 잡히고 점점 괴물을 닮아가는 우리네 모습에서 벗어나 삶의 근본적인 조건을 변혁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장샤오홍(張小虹)

국립대만대학교 외국어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 대학교에서 영미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대만대학교 교수로서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전투적 글쓰기로 자본 권력과 남성 중심의 지배구조를 해체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여성》《젠더 크로싱》《욕망의 새로운 땅》《‘성’ 제국주의》《정욕 미물론》《이상한 가정 로맨스》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대만에서 최고의 책에 수여하는 ‘금정상(금정상)’과 ‘최우수 도서상’을 받았으며, ‘10대 좋은 책’에 다수 선정된 바 있다.

 

 

옮긴이 박성희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은 5년 동안 오로지 책만 읽은 시기가 있었는데, 그 시간이 없었다면 세인이 알아주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고백한 바 있다. 이른바 고령 출산모인 나는 기운 뻗치는 머스마 둘과 부대끼며 “혼자 있고 싶어!”를 하루 한 번은 꼭 외친다. 그만큼 공부(책 읽기)가 간절한 까닭은 가진 것 없는 부모로서 물려줄 건 ‘바른 가치’라는 깨달음과 믿음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번역학을 전공한 뒤 저작권 에이전시 그린북(Greenbook)에서 책 기획과 번역을 겸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행 중국어 회화》가 있고, 옮긴 책으로 《중국어 어휘 시리즈―언어(속담편) 》《중국문인열전》 등이 있다.

 

 

목차


저자 서문  오늘의 대만, 그 자본주의적 감성 배치


시장 괴물
짝퉁의 속도 혁명
대국굴기와 짝퉁 정신
팝 마오쩌둥
‘자본주의’와 유통기한
베이징의 비자소(妃子笑), 타이베이의 앵두홍(櫻桃紅)
합법 복제판 장아이링(張愛玲)
여자들의 자기 노출
상어 피부를 입은 수영복 그리고 스포츠 신화
수전 보일의 심미적(審美的) 아비투스
뚱보들의 아메리칸 드림


정치 괴물
달라이라마의 영어
‘가짜’ 책가방의 역사 미물론(微物論)
국부의 새 옷
정계의 ‘머리 타래 강탈’
놀라운 ‘정치 재난학’
청년들, 아저씨 아주머니들과 함께 거리에 나서다
소수의 힘, 집단 자수운동
명명법(命名法) 속에 숨겨진 부권 논리
세계 정상들의 ‘슬픈’ 패션쇼
협상 테이블 위의 우울한 유머       


미인 괴물
동안거유(童顔巨乳)라는 괴물
글로벌 몸 
두려낭(杜麗娘)의 가슴
바비는 집에 없어요
여배우의 미션 임파서블
여학생의 몸
폭식증의 봄날   
여산(廬山)에는 진면목이 없다
옷을 입은 토용과 벗은 토용   


영상 괴물
영부인의 옷장
강렬한 일별(一瞥)의 영상 미학
인간의 ‘성(性)’은 줄곧 과학기술과 함께했다
시각이 지배하는 문화
누란녀(樓蘭女) 부활하다  
‘명화-영화’ 속의 악마
영상의 매력과 말의 힘
삼국지 이야기
‘얼굴’을 포기한 루브르 박물관 


젠더 괴물
공자의 딸 성씨는 ‘공’이 아니다     
‘국민 욕설’의 젠더 정치
왕씨 집안의 ‘세기적’ 결혼식
우리는 나쁜 여자는 사랑하지 않아요
연극 〈올랜도〉 보면 영화 〈매란방〉 관람은 공짜! 
여성의 몸에 관한 두 가지 신화
문학 월계관의 성별
너의 두건을 벗어던져라
여성 총리의 옷장  


공간 괴물
도시의 꽃들
도시와 괴수
백화점의 경제 살리기?
만국기의 공간 정치학        
문학원의 복수전
노래하는 몸, 유랑하는 영화제
타이베이 아레나의 아프리카 대초원
박물관을 집으로
화약 예술가 차이궈창(蔡國强)
미술관에 갈까 예랑에 갈까?


옮긴이 후기  세월호 참사가 드러낸 자본주의의 민낯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의 졸업사진 찍기 문화

 

생각해보니 요즘 생각비행 블로그에 무거운 주제만 다뤘군요. 오늘은 재미있는 내용을 다뤄볼까 합니다. 훈훈한 고등학생들의 귀여운 일탈(?) 이야기입니다. 최근 의정부고등학교 졸업사진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교복 정장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질서정연하게 서서 찍는 일반적인 졸업사진에서 벗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부터 당대에 이슈가 된 인물에 이르기까지 패러디해서 재미있는 졸업사진을 찍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코스프레 쇼처럼 말이죠. 

 

출처 - SBS

 

실제로 몇 년 전부터 인터넷 게시판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 기상천외한 졸업사진이 이슈가 되곤 했습니다. 올해 의정부고등학교가 화제의 중심에 놓이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교감선생님이 이러한 졸업사진 촬영 문화를 저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학생들의 행위가 학교의 위신을 떨어뜨린다는 게 주된 이유였습니다. 일부 학부모와 졸업생 사이에서도 자제를 부탁한다는 요청이 들어왔다고 말입니다. 이에 교감선생님은 학생들이 정갈하게 교복을 입은 모범생처럼 보이지 않으면 졸업앨범 촬영을 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은 선배들에게 지지 않을 졸업사진 촬영을 위해 1년을 준비해왔습니다. 그런데 촬영 당일 갑자기 교복을 입은 모습이 아니면 졸업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요? 결국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은 단체로 촬영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졸업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졸업사진을 찍는 행위를 두고 두 가지 시선이 엇갈리는데요, 생각비행은 여기서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를 구분하는 시선의 폭력성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교감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이런 것이죠. 단정하거나 멋진 모습이 아니라 이상하고 추잡한 모습으로 졸업사진을 찍으면 남부끄럽다는 겁니다. 평생 남을 졸업사진인데 기괴한 모습만 남는다면, 학생 개인이야 그렇다 쳐도 학교 위신이 떨어지고 이런 졸업사진을 찍기 위한 준비로 학교생활도 소홀해진다는 게 이유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거창하고 남들이 인정할 만큼 훌륭한 것만을 문화라고 생각하는 콤플렉스가 뒤섞인 시각의 폭력성이 숨어 있습니다. 거창하거나 훌륭하지 않더라도 <강남스타일>처럼 외국에 알려지거나 돈을 벌면 문화라고 인정하는 현실은 또 어떻습니까? 묘합니다. 과연 문화라는 게 원래부터 그런 것일까요?


잠시 우리 사회에서 시야를 돌려 세계 모든 고등학생이 꿈에 그리는 명문대학교, 그중에서도 세계 제일의 명문대 중 하나라고 하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문화를 살펴보겠습니다.



MIT 캠퍼스 건물 위에 자동차를 올리다


MIT에는 IHTFP(I Hate This Fucking Place)라는 해킹클럽이 있습니다. 공대생이자 해커인 이들의 관심사는 소프트웨어 해킹 이외에 또 하나가 있습니다. MIT 캠퍼스의 상징적 건물 중 하나인 그레이트돔에 무언가를 올리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게 뭐 별일일까 싶지만 일의 규모나 주제가 남다르기 때문에 유명해졌습니다. 자동차부터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으로는 도저히 건물 지붕에 올라갈 일이 없는 기상천외한 것들을 올려놓기 때문입니다. 혈기 넘치는 MIT 학생들에겐 그레이트돔 자체가 일종의 해킹 대상이 된 것이죠.




<빅뱅이론>이란 미드를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영화 <스타워즈>는 MIT 학생들로서는 성전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선지 학생들은 1999년 5월 <스타워즈 에피소드1 – 보이지 않는 위협>의 개봉을 기념해 MIT 그레이트돔을 스타워즈의 마스코트 로봇인 R2D2로 만들었습니다.


 


2003년에는 첫 동력구동 비행기 100주년을 기념해 라이트 형제가 만든 비행기를 재현해 그레이트돔 위에 올렸고요.


 


2006년 9.11 테러 5주년 때는 테러 발생 당시 인명구조에 나섰다 숨진 소방관들을 추모하기 위해 소방차를 그레이트돔 위에 올렸습니다.


 


이런 행위를 MIT에 다니는 천재들의 기행, 창의력 넘치는 괴짜들의 문화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문화의 기원을 알고 나면 맥이 빠질 겁니다. 돔 위에 차를 올리는(CP Car on the Great Dome) 문화는 1994년 어느 학생이 경찰에게 억울하게 딱지를 떼이자 그 보복으로 친구들과 함께 딱지를 뗀 경찰의 경찰차를 그레이트돔 위에 올려버린 사건에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당연히 큰 이슈가 되었는데요. 이때 총장은 학생을 벌하거나 경찰에 넘기지 않고 대체 어떻게 경찰차를 돔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는지부터 물었다고 합니다. 정말로 궁금하지 않습니까? 유동 인구가 많은 캠퍼스에 기중기가 나타난 흔적도 없고 UFO가 출현한 것도 아닌데 경찰차를 대체 어떻게 돔 위로 올렸을까요?

 

문제의 학생은 친구들과 합심해 경찰차를 완전히 분해한 뒤 돔 위에서 재조립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완벽하게 재조립했기에 밑에서 본 사람들은 차를 그대로 들어서 올려놓은 것처럼 보였겠지요. 이처럼 어떤 문화의 시작은 거창하지도 훌륭하지도 않은 경우가 빈번합니다. 오히려 아무런 의미가 없어 한심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그 문화를 따르는 사람들도 즐거워한다면 그것이 바로 뜻깊은 문화가 아닐까요?

 

딱지 떼여 열 받은 김에 시작한 사건이 유쾌하고 재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참여가 시작되어 돔 위에 차를 올리는 문화는 학교의 명물이 되었고, 9.11테러 희생자를 기리는 문화로 확장되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자생적이고 참여적인 문화야말로 진정한 문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거창해야 하고 훌륭해야 한다는 보여주기식 강박증이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새로운 문화를 싹 틔울 가능성마저 짓밟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의정부고 졸업사진 문화는 계속된다


2014년 의정부고등학교 졸업사진 찍기 문화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 때문에 빚어진 신구의 격돌(?)은 순식간에 퍼져 사회관계망 서비스와 인터넷 게시판을 달궜을 뿐 아니라 방송에서 취재를 나올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올해 메릴린 먼로로 분장하고 졸업사진을 찍으려던 의정부고등학교 한 학생은 인터뷰를 통해 공부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졸업사진 촬영이 끝나면 즐거운 추억과 성취감을 가진 채 바로 공부에 전념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5년 전부터 시작된 이 기상천외한 졸업사진 찍기 문화를 하나의 졸업식 전통으로 이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출처 - 한국경제TV

 

“메릴린 먼로 최연호 학생입니다. 제가 그렇게 선정적이었나요, 교감선생님? 이렇게 찍는 게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은데, 저희가 이걸 한다고 갑자기 공부를 손 놓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학교 또는 다른 분들께서도 '얘네는 공부도 잘하면서 놀기도 잘 노네'라는 아주 좋은 말씀도 해주시는데, 선생님들도 저희 되게 좋게 보고 계시는데 저희 좀 도와주세요.”

 

다행히 의정부고등학교 교감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꽉 막힌 분들은 아니었습니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 언론까지 나서서 개성 넘치는 졸업사진을 찍지 못하게 된 것에 아쉬움과 질타의 목소리를 내자 촬영을 막았던 교감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사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졸업사진을 검열하겠다던 방침을 철회하고 학생회 주도하에 졸업사진 촬영을 학생들의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고 합니다. 요즘 보기 드문 훈훈한 모습입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이 주축이 된 자생적인 문화가 더 많이 생겨나기를 기대해봅니다.


내일(7월 24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됩니다. 전대미문의 의혹을 남긴 세월호 사건은 무엇 하나 확실히 밝혀진 게 없어 보입니다. 미궁을 헤매는 것과도 같았던 98일간의 수사. 세월호 참사 100일을 이틀 앞둔 시점에 세월호 사건의 중심인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전 국민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세월호 참사가 한 사람의 죽음으로 그냥 덮여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이에 세월호 참사 100일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해결책이 나오기는 했는지, 안전대책은 세워졌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출처 -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생각비행)


 

출처 - 뉴스1



유병언 사망, 그동안 헛다리 짚은 경찰과 검찰


경찰과 검찰의 미흡했던 초동 대응은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유 전 회장의 시신을 두고도 똑같았습니다. 지난 6월 12일 전남 순천 송치재 휴게소에서 2.5킬로미터 떨어진 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유 전 회장은 40일 동안 누군지 모르는 노숙자로 취급되어 순천의 한 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출처 - YTN


변사자의 시신이 유병언의 시신으로 판단된 날, 검찰은 숨어 있는 유병언을 찾겠다며 구속영장을 재청구했습니다. 검찰이 재수사의 의지를 밝힌 지 불과 4시간 만에 경찰은 순천에서 발견된 변사체 DNA가 유 전 회장의 것과 일치한다는 국과수 감식 결과를 알립니다. 지난 6월 12일 순천에서 변사체를 발견한 경찰은 다음 날 순천 지청에 변사 보고를 했지만 담당 검사는 이를 허투루 넘겼습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유 전 회장의 검거를 촉구한 사건을, 검찰은 바빠서 잘 몰랐다며 방치해놓고 죽은 유 씨에 대해 6개월짜리 구속영장을 재청구한 그야말로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출처 - 한겨레

 

출처 - 경향신문

 

시신이 발견된 6월 12일은 검경이 합동으로 구원파 금수원 2차 진입 수색을 시도했던 날이기도 합니다. 당시 총 1만여 명의 경력을 동원해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허탕을 치고 끝났습니다. 그 이후 검경은 유 전 회장의 추적을 계속해왔다고 밝혀왔는데요.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유 전 회장의 변사체를 확보해놓고도 망자를 찾아 국민의 혈세를 어이없이 낭비한 꼴입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과 정부가 보였던 무능함에 어깨를 견줄 만하네요.



출처 - 연합뉴스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유 전 회장을 검거하고 못 하고의 문제를 떠나서 소위 '국가 개조'에 버금가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사태이며 최종적으로 국가의 의무인 구난과 후속 조치에 실패한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할 일입니다. 그간 대한민국 정부, 대통령, 검경이 대대적으로 유 전 회장을 쫓은 건 세월호 참사로 인한 여파를 어떻게든 한 개인의 부정과 비리로 몰아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의혹이 컸죠. 그런데 이번 유병언 전 회장의 시신 발견으로 이들은 스스로 설정한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하는 무능함의 극치를 온 국민에게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유병언 전 회장이 죽었으니 검경 입장에서는 세월호 관련 유병언 수사를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설정해놓은 세월호 참사의 최종 책임자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유 전 회장의 장남이나 가족을 잡아봐야 연좌제를 적용할 수도 없고 사건 자체가 공중에 뜨게 되었죠. 세월호 참사 배상 책임을 위한 재산 추적도 유병언의 죽음으로 취소됩니다. 재산 가압류도 당사자의 죽음으로 상속 절차에 들어가기 때문에 법리 해석이 새로 필요할 듯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살인지 타살인지 각종 음모론만 횡행하는 가운데 최악의 경우 정부나 여당에서 피의자의 사망을 이유로 세월호 참사 수사 자체가 종결되었다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무엇 하나 바뀐 것도, 누구 하나 벌한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 국회 헛바퀴 100일


세월호 참사 이후 드러난 정치권의 행보는 분노를 넘어 헛웃음마저 나올 지경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던 국무총리는, 후임 총리 후보가 부패와 비리로 청문회 문턱도 못 가보고 줄줄이 낙마한 탓에 결국 유임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해체를 공표했던 해경은 스리슬쩍 남겨두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으며, 세월호 특별법을 당장에라도 입안할 것처럼 굴던 국회는 당리당략으로 말미암아 표류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가리고 후속 조처를 위한 입법을 해야할 국회는 달라진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던 다짐이 무색하게 100일을 허송세월하고 있습니다. 여야는 지난 6월, 19대 국회 후반기 첫 임시국회를 소집하면서 세월호 국회로 명명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주요 법안을 단 한 건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안마다 여야 간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데다 7.30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있어 각자의 이익을 위해 대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최우선 입법 과제로 꼽은 세월호 특별법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문제를 놓고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여야가 TF까지 꾸려 협상에 나섰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파행만 거듭하고 있습니다. 야당은 진상조사위가 수사권을 가진 특별사법경찰관을 두어 조사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여당은 애써 진상조사위의 권한을 축소하고 싶어 합니다. 자신들의 비리와 무능함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조사위 구성도 여당은 여야추천권을 배제한 채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과 희생자 가족 측 추천 인사로만 꾸리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정부와 여당 입장을 대변할 인적 구성을 할 수 있으니까요. 조사위의 의결 정족수도 여당은 3분의 2 찬성을, 야당은 과반 찬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를 보다 못한 세월호 참사의 유족들이 국회 앞에서 열흘에 이르는 단식 농성을 하며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요구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은 표류해도 유병언 전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날 의료민영화에 대한 법은 착착 진행되고 있더군요. 전대미문의 참사 앞에서 유족들의 슬픔을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유족들이 직접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정치권의 당리당략과 자기 이익만 챙기는 치졸함 때문에 국민은 다시 한 번 국가가 과연 무엇인지 되묻게 됩니다.



세월호 유족을 직접 공격하고 나선 천박한 보수단체들


세월호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간 세월호 참사의 가족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이 오죽하면 직접 나섰겠습니까. 그런데 이들의 마음에 또다시 대못을 박는 사건이 지난 21일 벌어졌습니다.


 

출처 - 한겨레


보수성향 단체인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 봉사단이 세월호 가족의 단식 농성장에 난입해 세월호 참사가 거짓 폭력이라며 난동을 부렸습니다. 이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연 후에 세월호 유가족들의 집기를 뒤집어엎고 소리를 지르는 추태를 보이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것도 아닌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이해라 수 없다며 유가족을 비난했습니다. 이들은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 봉사단'이라는 단체 이름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봅니다. 어떻게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이리 짓밟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이들 보수단체의 주장은 애초에 틀렸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이 직접 내놓은 가족대책위의 세월호 특별법에는 의사상자 지정이나 특례입학 같은 혜택 조항이 없습니다. 그런 혜택은 정치권에서 여야가 자신들의 입장에서 내놓은 별도의 세월호 특별법안에 포함되어 있을 뿐입니다. 유가족이 내놓은 세월호 특별법에는 어디까지나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세월호 유가족 특별법에는 의사상자 지정, 특례입학 없다(슬로우뉴스)

http://slownews.kr/28079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다 되도록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진상규명도 되지 않았으며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는데, 이제 그만하라는 보수단체의 주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박근혜 정권의 안위를 위한 것에 불과해보입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 '100일 100리 행진'



출처 - 참세상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참사 100일을 맞아 약칭 '100일 100리 행진'을 진행한다고 밝혔습니다. 23일 오전 9시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대행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1박 2일 행진에 돌입하는 것이죠. 안산 단원고등학교, 하늘공원, 광명시민체육관까지 행진한 후 국민대토론회와 촛불문화제를 개최합니다. 이튿날에는 광명시민체육관에서 국회로 행진해 단식 중인 유가족을 만날 예정입니다. 이후 서울역 광장을 경유해 저녁에는 광화문 광장을 거쳐 문화제가 열리는 서울시청광장까지 행진합니다. 23일 행진과 함께 서울에서는 반대로 팽목항으로 가는 기다림의 버스가 운행됩니다.

 

희생된 아이들과 가족들의 영정 앞에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한 특별법을 올려놓기 전에는 물러설 수 없다는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 참사 100일이 다 되도록 아무것도 변한 게 없고,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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