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난사 테러와 표현의 자유

2014년 대한민국이 백색테러의 부활에 전율했다면, 프랑스의 2015년은 끔찍한 총기 난사 테러로 시작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수도이자 세계적인 관광지인 파리 한복판에 있는 언론사를 향한 테러로 경찰 2명을 포함해 총 12명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이 다쳤습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는 표현의 자유를 극단까지 밀어붙였던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의 편집장과 만평을 그리는 만화가들을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막으려는 물리적인 테러가 얼마나 만연한지 알 수 있는 자화상과도 같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TV



《샤를리 에브도》, 극한의 표현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다


《샤를리 에브도》는 프랑스의 대표적 풍자 주간지 중 하나입니다. 성향상 좌파에 가깝지만 투표 거부자를 포함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편집진이 특징입니다. 또 하나 이 매체는 만화와 삽화를 중심으로 하는 만평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볼린스키, 블러치 등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앙굴렘 페스티벌의 그랑프리 수상 작가부터 《르 몽드》의 간판 만평가인 카뷔까지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샤를리 에브도》에 만화와 만평을 그렸습니다.


출처 - SSTV


《샤를리 에브도》는 일견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만평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샤를리 에브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하라 키리》는 1961, 1966년 두 차례나 판매 금지를 당했고, 1970년 샤를 드골의 죽음을 조롱하는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냈다가 폐간되었습니다. 이후 폐간을 피해 잡지를 계속 발간하고자 잡지명을 바꾼 것이 바로 《샤를리 에브도》입니다. 하지만 1982년 광고 수익 저하로 진짜 폐간되고 맙니다. 그러다 훗날 앙굴렘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는(1992) 만화가 볼린스키에 의해 《샤를리 에브도》는 되살아나는데요, 이때부터 이전에 참여했던 만평가들이 다시 그림을 싣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출처 - 디지털만화규장각


문제는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은 그 수위가 높아, 과연 이것을 표현의 자유냐 아니면 자극만을 추구하는 황색 저널리즘이냐, 하는 문제로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점입니다. 유대교, 이슬람교, 가톨릭, 개신교는 물론이고 마이클 잭슨 같은 슈퍼스타와 르펜 같은 프랑스 극우주의자까지 광범위하게 풍자하고 조롱해서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문구에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그려놓고 “나쁜 놈, 그럴 줄 알았어!” 같은 대사를 단다거나, 해골이 된 마이클 잭슨을 그려놓고 "마이클 잭슨 드디어 하얘지다." 같은 문구를 넣기도 했습니다. 시쳇말로 '모두까기 인형' 같은 풍자지였다고 할까요?


 

출처 - 디지털만화규장각


그중에서도 이슬람교는 《샤를리 에브도》와 가장 빈번히 충돌했습니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로 선거에서 근본주의 정당이 집권하자 《샤를리 에브도》는 《샤리아 에브도》라는 특별판을 내고 선지자 무함마드를 객원 편집자로 칭해 만평을 실었습니다. 가혹한 '샤리아 율법'이 아랍에 되살아날 것을 풍자한 것이죠. 《샤를리 에브도》는 이때 방화 테러를 당해 사무실이 잿더미로 변해버렸고, 인터넷 사이트 또한 해킹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샤를리 에브도》는 2012년에 선지자 무함마드를 포르노 배우처럼 그린 뒤 "내 엉덩이는? 내 엉덩이도 좋아해?" 같은 문구를 넣었습니다. 사무실이 불타서 다른 언론사에 얹혀살고, 편집장이 경찰에 신변보호를 받는 와중에 말입니다. 


"무릎 꿇고 살아가느니 차라리 선 채로 죽겠다."



출처 - 연합뉴스


《샤를리 에브도》의 전 편집장이자 만평가인 스테판 샤르보니에는 자신의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타인의 표현의 자유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012년 테러가 발생했을 때 프랑스 외무장관이 이슬람 국가들과의 외교적 마찰로 프랑스 각국 대사관의 테러 위협을 걱정하면서 그를 비난하자, 스테판 샤르보니에 편집장은 "무함마드는 내게 신성하지 않다"면서 "나는 《코란》이 아니라 프랑스법 아래 산다"며 만평을 계속 실었습니다. 이슬람 단체들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한 샤르보니에는 프랑스 내 이슬람계 주민의 항의시위를 정부가 막으려 했을 때 "왜 정부가 그 사람들이 의견을 표출하는 걸 막아야 하는가"라며 "우리가 표현의 권리가 있듯, 그들도 역시 표현할 권리가 있다"며 옹호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누구나 극한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 자유주의자였습니다.


출처 - 문화일보


이번에 일어난 총기 난사 테러로 《샤를리 에브도》의 전 편집장인 스테판 샤르보니에, 프랑스 만평가들의 아버지로 추앙받으며 《샤를리 에브도》를 되살린 장본인이자 2005년 앙굴렘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했던 만화가 조르주 볼린스키, 《르 몽드》의 간판 만평가 장 카뷔 같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스테판 샤르보니에 편집장은 2012년 테러 직후 공식 석상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보복이 두렵지 않다. 나는 아이도, 아내도, 차도, 신용도 없다. 약간의 허세를 보태자면, 나는 무릎 꿇고 살아가느니 차라리 선 채로 죽겠다."


2013년에 알카에다의 표적이 되어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으며 살았지만, 그는 두려워할 시간이 없다며 만평을 계속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그림을 그려 분노할 사람이 있다는 걸 의식해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다른 그림도 그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요. 또한 우리의 일이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며 한결같이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가 추도일로 선포하고 3일간 조기를 게양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공화국과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표현의 자유는 테러에 꺾이지 않을 것임을 확인하면서 말입니다. 프랑스 국민들은 공화국광장으로 몰려나와 희생자를 추모하며 촛불 대신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펜을 들었습니다. 톨레랑스의 나라이자 유럽의 한복판에 있는 프랑스에서 일어난 테러가 2015년 유럽과 세계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분열과 복수의 길, 그리고 화합과 용서의 길 중 세계는 어느 쪽을 택할까요? 한국의 상황을 바라볼 때 생각이 많아집니다.

 

 

2015년 대한민국, '종북몰이 광풍'의 끝은 어디인가?

 

얼마 전 <백색테러의 부활, 대한민국은 어디로?>라는 기사에서 2014년 12월 10일, 전북 익산에서 열린 신은미 황선 토크 콘서트 현장에 사제 폭탄을 투척한 백색테러의 부활을 경계하며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사회 안정이라는 국가의 근본을 생각해야 할 일국의 대통령이 진영 논리를 따라 가해자를 옹호하는 입장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월 1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테러 사건을 거론하면서 콘서트가 종북 성향이라는 말만 했을 뿐 테러 행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넘겼습니다. 

 

실정법을 위반해 사회 전체에 위기를 야기할 수 있는 가해자의 범법 행위에는 눈을 감은 채 억울한 피해자를 종북몰이했으니 개인으로서는 물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자각이 전혀 없다고 봐야겠지요. 대통령의 한마디 때문에 테러의 피해자인 신은미, 황선은 오히려 테러를 당해도 마땅한 '종북주의자'로 낙인 찍혔고, 경찰과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피해자 두 명을 소환하기에 이릅니다. 출국금지까지 했으니 참 가관입니다.

 

과연 대한민국 정부는 종북몰이 광풍을 어디까지 몰아가려는 것일까요? 최근 재미교포 신은미 씨의 저서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책이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문학도서에서 취소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문화부의 위탁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는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은 누리집의 우수도서 목록에서 신 씨의 책을 삭제했습니다.

 

선정된 우수도서가 취소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더구나 저자의 성향을 둘러싼 논란 때문에 선정을 취소한 것도 문제이지만, 이런 조처는 언론 및 출판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더 나아가 표현의 자유를 짓밟는 행위입니다. 일부 극단세력이 저자를 고발했지만,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하나도 나온 게 없는 마당에,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2013년 상반기 우수도서로 선정된 책을 1년 7개월이나 지난 시점에 선정을 번복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번 도서 선정 철회는 일부 보수단체가 '종북도서'를 지적한 이후 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선정 절차 등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밝힌 뒤 1주일 만에 이뤄졌습니다. 사회 일각의 비이성적인 마녀사냥에 박근혜 정부가 종북몰이로 힘을 보태고 있는 형국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프랑스 언론을 향한 총기 난사 테러는 과격세력이 커지지 않게 국민통합을 이뤄내는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와 문화 다양성을 보호하는 일이 정부의 역할일진데, 일부 보수세력의 마녀사냥에 정부가 부화뇌동하는 꼴이어서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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