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라고 하지 말자. 민주화 운동이다." 이 말이 끔찍한 의미로 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 2014년이었습니다. 신은미 토크 콘서트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 고등학생의 비행(非行)을 마치 도시락 폭탄을 일제의 심장을 향해 던진 윤봉길 의사라도 되는 양 추켜올리며 일베와 극우 인사들이 내뱉었던 저 말은, 2014년에 군사독재의 망령과 공안정치의 부활도 모자라 마침내 백색테러까지 부활했음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았습니다.
출처 - 주권방송
백색테러의 기원,
프랑스대혁명부터 제주 4.3사건까지
백색테러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암살, 파괴 등을 수단으로 하는 테러의 일종으로, 그 행위를 저지른 주체가 극우나 우파인 경우를 지칭합니다. 프랑스대혁명 중 혁명파에 가한 왕당파의 보복에서 이 말이 유래했는데요, 프랑스 왕가의 상징이 흰 백합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백색테러는 위정자가 체제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가하는 탄압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죠. 현대에는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에 대한 탄압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합니다. 미국의 악명 높은 인종차별 단체 KKK단이 현존하는 대표적 백색테러단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처 - 유튜브
어떻게 보면 백색테러의 부활은 감히 이 땅에 서북청년단이란 백색테러단체를 재건하겠다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나오면서부터 예견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해방 직후 결성된 서북청년단은 경찰을 도와 좌익 색출 업무를 하고 좌익 세력에 대한 테러를 주도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백색테러 중 하나인 제주 4.3사건 당시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토벌대의 상당수가 서북청년단이었고, 백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도 서북청년단 정회원으로 활동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공공연한 인터뷰에서 이승만을 찬양하며 한국에 우파는 있지만 극우가 없다며, 네오나치 같은 극우가 한국에도 필요하다는 헛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토크 콘서트에서 자행된 백색테러
이런 시류 속에서 백색테러가 부활했습니다. 2014년 12월 10일, 전북 익산에서 열린 신은미 황선 토크 콘서트 현장에 사제 폭탄을 투척한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놀랍게도 테러범은 19세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테러의 시작은 시쳇말로 '중2병' 걸린 한 소년의 인터넷 허세인 줄 알았습니다. 자주 가던 사이트에서 한 학생은 자신이 구한 인화물질들의 사진을 찍어 올리며 "신은미 폭사당했다고 들리면 난줄알아라"라고 썼습니다. 사람들은 관심병이 도진 이가 왔구나 싶어 폭발물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질 것 같으냐며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신은미 황선 토크 콘서트에서 폭발물 테러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오군(18)은 강연 도중 뜬금없이 말을 끊으며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하셨죠?"라고 묻습니다. 그런 소릴 한 적이 없는 강연자들은 부정했지만, 오군은 끈질기게 강연을 방해하여 사람들에게 제지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오군은 준비해온 냄비에 불을 붙여 던졌고, 폭발로 토크 콘서트장은 아수라장으로 돌변했습니다. 맨 앞에 있던 분이 순간적으로 냄비를 손으로 쳐 바닥으로 떨어뜨려 인명 피해가 나지는 않았으나 폭발물을 사람이 정통으로 맞았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출처 - 유튜브
오군은 현장에서 더 난동을 피우다 체포되었는데 당시 황산 1리터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폭발물 테러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나왔고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오군은 경찰서에서도 자신의 행위를 자랑스러워하며 수갑 찬 사진을 인증샷으로 인터넷에 올리기까지 했습니다. 명백한 백색테러라는 얘기지요.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양극화와 역행적인 정치 상황과 맞물려 축적된 상호 간의 증오가 결국 이런 형태로 터지고 만 것입니다. 적어도 민주화 이후에는 사라졌던 백색테러가 부활했다는 것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죽여도 괜찮다고 하는 사회 해체적인 선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이 사회 안전에 대한 근본을, 농협 인출 사태가 경제 안전에 대한 근본을 뒤흔들었다면, 이번 백색테러는 자신이 믿고 지지하는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근본을 뒤흔든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극단의 분기점에 서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박근혜 정부의 테러 대응방식
―테러범은 열사로 추앙받고, 피해자는 종북으로 검찰 소환당해
우리 사회에 설사 적색테러가 일어났다 한들 다르지 않습니다. 백색이든 적색이든,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해하려는 행각은 대한민국에서 단죄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테러 없는 사회, 최소한의 사회 안정을 위한 당연한 조치겠지요.
출처 - 뉴시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사회 안정이라는 국가의 근본을 생각해야 할 일국의 대통령이 진영 논리를 따라 가해자를 옹호하는 입장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월 1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테러 사건을 거론하면서 콘서트가 종북 성향이라는 말만 했을 뿐 테러 행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넘겼습니다.
실정법을 위반해 사회 전체에 위기를 야기할 수 있는 가해자의 범법 행위에는 눈을 감은 채 억울한 피해자를 종북몰이했으니 개인으로서는 물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자각이 전혀 없다고 봐야겠지요. 대통령의 한마디 때문에 테러의 피해자인 신은미, 황선은 오히려 테러를 당해도 마땅한 '종북주의자'로 낙인 찍혔고, 경찰과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피해자 두 명을 소환하기에 이릅니다. 출국금지까지 했으니 참 가관입니다.
출처 - 시사in
폭발물 테러를 저지른 오군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베와 우익 사이에서 열사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미쳐도 단단히 미쳐 돌아갑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종북주의자에게는 관대하고 이를 보다 못한 청년에 대해서는 법을 집행하는 게 정상인가"라는 망언을 했습니다. 인터넷 《독립신문》의 신혜식 대표는 테러범인 학생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고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엄마부대봉사단 등 때 되면 나오는 보수 단체들도 선처를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오, 애국열사 장하다. 19살 어린 의사가 빨갱이를 척결했다. 헌재 재판관보다도 더 훌륭하다." 이런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사건 당시가 2014년인지 1947년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새누리당 내에서 백색테러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차 없이 다 제명해야 한다." “청와대에선 정윤회 건 터져 나오고 우파들은 황산 테러 옹호하고, 일부 우파님들 제발 정신 차리세요. 옹호할 걸 옹호하세요. 어떻게 폭력과 테러를 옹호합니까"라고 비판한 하태경 의원 같은 사람이 있긴 했지만요.
출처 - 헤럴드경제
종편과 언론도 미쳐 돌아가긴 마찬가지였습니다. TV조선 같은 종편은 인터넷 《독립신문》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을 보였고, 《헤럴드경제》는 폭탄 테러범에게 '용감한'이란 수식어를 붙였다가 비난이 빗발치자 부랴부랴 기사 제목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진짜 속내야 어쨌든 최소한 테러는 안 된다 폭력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언론이 보여야 할 마땅한 모습일 텐데, 퇴행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런 기대조차 사치인가 봅니다.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는 단죄된다는 엄격함을 보여야
지난 2006년 박근혜 대통령이 지원 유세 도중 얼굴에 칼을 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살짝 베였다고는 하나 이 역시 명백한 테러 행위입니다. 당시 '커터 칼 테러'를 저지른 할머니는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계획대로 되었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줬을 폭발물 테러범에게 과연 어떤 처벌을 내릴까요?
출처 - 위키피디아
위 사진은 아사누마 이네지로 암살 사건 현장을 포착한 사진입니다. 퓰리처상을 받기도 해 유명해졌지요. 이네지로 암살 사건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대표적인 백색테러 중 하나입니다. 1960년 일본 좌익 정치인인 아사누마 이네지로가 TV 연설회 도중 극우 소년인 야마구치 오토야의 칼에 찔려 살해당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테러범의 나이는 불과 17세였습니다. 야마구치 오토야는 소년원에서 천황폐하 만세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후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보수로서는 불리한 상황이었는데도 예상을 깨고 다음 선거에서 우익인 자민당은 과반을 넘겨 압승합니다. 일본의 후진적 정치와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이어지고 있지요. 우리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왜 이리도 50년 전 일본과 겹쳐 보일까요. 2015년 새해가 밝았지만, 대한민국의 앞날이 참 암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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