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여름휴가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사정상 올해 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하셨던 분들이나 외출이 어려운 분들, 마지막 주말을 집에서 보내는 분들을 위해 유익한 정보를 알려드릴까 합니다. 우리나라는 여름부터 늦가을까지는 영화제의 계절이지요. 깊어가는 가을에 추수하듯 명작들을 거둬내는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부터 한여름 장마 속에서도 마니아층의 발길을 끄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이르기까지 좋은 영화제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EBS에서 주최하는 EIDF는 조금 특이한 영화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주제로 한 영화제라 그렇기도 하지만 영화제 기간 내내 따끈따끈한 상영작을 영화관이 아닌 집에서도 편하게 시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EBS국제다큐영화제 누리집


EBS국제다큐영화제(EIDF, 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는 2004년 '변혁의 아시아'라는 주제로 시작되어 올해 11회를 맞이한 중견 영화제입니다. 그간 세상과 진실 그리고 희망에 대한 세계 각국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해왔습니다. 올해는 이스라엘 특별전을 마련했다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하는 사건 등으로 다수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보이콧을 선언해 개막 직전 이스라엘 특별전이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EIDF에는 흥미로운 작품이 많습니다. 올해는 '다큐, 희망을 말하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Hope Lies Within US', 즉 희망과 공존이라는 다큐멘터리의 근본정신을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되새기자는 의미의 주제 아래 EIDF 2014가 진행 중입니다.





EIDF가 여느 영화제와 다른 점은 영화제임에도 EBS를 통해 상영 작품을 TV와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화제 기간 내내 EBS 채널로 하루 평균 9시간 방송되고 방송이 끝난 후 일주일 동안 인터넷으로 다시보기를 지원합니다. 그러니 표를 사려고 전쟁을 벌이지 않아도, 시간 맞춰 TV 앞에 앉아 있지 않아도 집에서 편안히 영화제를 즐길 수 있다는 얘깁니다.



 

출처 - EBS국제다큐영화제 누리집


올해는 총 82개국에서 781편이 출품되었고, 그중 23개국 50편을 상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총 38편을 TV로 방영 후 인터넷 다시보기를 지원한다고 하는군요. 회원 가입이나 프로그램 설치를 할 필요도 없이 TV 방영이 끝났다면 다시보기 페이지에서 본편 버튼을 클릭하기만 하면 바로 고화질로 볼 수 있습니다(TV 방영 시간이 아직 지나지 않았으면 본편 다시보기를 해도 예고편만 나옵니다).



EIDF 홈페이지 : http://www.eidf.org


EIDF 극장 예매 시간표 : http://www.eidf.org/kr/schedule/screeningSc01


EIDF TV방송 편성표 : http://www.eidf.org/kr/schedule/tvSchedule


EIDF 2014 상영작 다시보기 : http://www.eidf.org/kr/archive/movieList



지난 25일부터 시작된 EIDF는 오늘까지(8월 31일) 열립니다. 영화관 관람을 원하신다면 위 극장 예매 시간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BS스페이스, 상명대학교, 서울역사박물관, 인디스페이스, KU시네마테크, 롯데시네마 누리꿈(상암)에서 의미 있는 다큐영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생각비행이 다큐멘터리 몇 편을 추천해드립니다.


 



CERN: 세상을 바꾼 60년(다시보기)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뉴스를 통해 그 이름은 들어봤을 겁니다. 신의 입자로 널리 알려진 '힉스 입자'를 발견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힉스 입자를 예견했던 피터 힉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죠. 신의 입자를 발견해 현대 우주론의 마지막 조각을 맞춘 곳이 바로 CERN입니다. 이 연구에 사용된 도구는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였습니다. 다큐멘터리는 CERN에서 일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이 일의 의미와 보람에 대해 생생한 의견을 들려줍니다. 신의 입자를 밝혀낸 LHC의 전모를 볼 수 있다는 점도 놓칠 수 없는 관람 포인트입니다.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다시보기)


제86회 아카데미상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아 이미 유명세에 오른 음악 다큐멘터리입니다. 평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지만 노래 실력만큼은 진짜 스타 가수들 못지않은 백업 가수들을 조망한 다큐멘터리로 그들의 삶과 인생역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비록 조연으로 밀려났지만 롤링 스톤즈,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앨튼 존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세계 최고의 가수들이 즐비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팝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겁니다.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다시보기)


블로그나 SNS를 자주 쓰는 분들이라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CCL)' 'RSS' '레딧' 등의 용어가 익숙하실 텐데요, 이 모두를 만드는데 공통적으로 이름을 올린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26살의 천재 해커 애런 슈워츠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2013년 1월 자택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이지요. 미국 정부의 정보통신 제도에 반기를 들고 인터넷 사용자의 권리 옹호에 힘썼던 그의 일대기를 그린 이 다큐멘터리는 현대 정보통신 이면에 숨겨진 통제와 권위의 구조를 파헤칩니다. 그리고 기존 체제에 저항하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린 애런 슈워츠가 제기한 문제의식을 꼼꼼히 되새기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간첩 조작, 민간인 사찰 등에서 드러났듯이, 국가기관에 의한 국민의 감시와 통제가 일상적인 현시점에 함께 보시면 좋을 다큐멘터리로 생각해 추천합니다.



16년 동안 피해자만 1400명에 달해

 

산업혁명 당시 제철공장이 들어서며 빠른 속도 발전한 영국의 공업지대 로더럼. 인구 20여만 명의 마을에서 영국 전체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큰 사건이 최근에 폭로되었습니다. 16년 동안 로더럼에서 조직적인 아동 성매매가 벌어졌건만 경찰과 정보기관 그리고 지역 정치권이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온 것이죠. 로더럼 아동 성매매 사건에 연루된 피해 소녀만도 최소 140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마을 전체 인구의 최소 1퍼센트가 아동 성매매 사건의 피해자라는 얘기인데, 가해자를 포함하면 마을 인구의 몇 퍼센트가 사건에 연루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이 사건의 피해자들이 대개 16세 이하의 소녀들이어서 사상 최악의 아동학대 사건이라는 불명예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로더럼 아동 성매매 사건은 폐쇄된 커뮤니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점에서 도가니 혹은 은지 사건과 닮은 점이 있고, 국가기관이 제때 개입하여 해결하지 못해 문제를 키워 참사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세월호 사건과도 유사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민족과 인종문제까지 섞여 아주 복잡합니다.





《타임스》와 BBC 등 영국 언론은 알렉시스 제이 교수의 연구 보고서 내용을 발표하며 로더럼 아동 성매매 사건의 끔찍한 실상을 알렸습니다. 제이 교수의 보고서를 보면 1997년부터 2013년까지 16년간 벌어진 조직적 아동 성매매 사건의 피해자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최소 140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니 실제 피해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런데 피해자 대부분이 16세 이하의 영국 백인 소녀였고, 11세 소녀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 대부분은 가난, 가정불화 같은 열악한 환경에 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담배, 술, 마약 등을 매개로 가해자를 만나거나 가출한 경우 잘 곳을 제공하겠다거나 혹은 이미 성매매 피해자가 된 친구의 소개로 가해자들과 알게 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가해자들은 소녀들을 지속해서 성폭행하고, 집단으로 성폭행하거나 다른 도시로 인신매매하는 등 조직적으로 관리하며 성매매를 일삼았습니다. 

 

피해 소녀들은 이 학대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약물 등으로 주변에 낙인 찍힌 시선 때문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자포자기한 나머지 어떤 소녀들은 이 집단 성폭행을 로더럼에서 성장하는 통과의례로 받아들일 정도로 정신세계가 망가졌다고 합니다. 소녀들의 가족이 피해 사실을 인지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에게 불태워 죽이겠다거나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고, 도움이 되지 않는 공권력을 향한 불신이 깊어 16년이나 이런 참사가 이어졌습니다.




 

왜 이렇게 문제가 커졌나?

 

행정 당국은 불황과 실업 문제에 정신이 팔려있었으므로 마을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습니다. 소녀들이 다니는 학교의 한 교장은 학교에 정체불명의 차가 와서 성적인 서비스를 목적으로 아이들을 태우고 가는 것을 목격하고서 경찰에 세 번이나 신고했지만 경찰은 두목을 잡아야 한다며 이를 무시했다고 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12세 소녀가 남자 5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음을 알고서도 경찰은 그중 2명에게 주의만 주는 선에서 조사를 마무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관련 인터뷰를 보면 마을 사람들이 비행 소녀로 낙인 찍힌 아이들이 연루된 일상적 폭력에 익숙해진 모습으로 별다른 문제로 보지 않는 경향마저 보였다고 합니다. 비정상이 일상화된 끝에 정상처럼 보이게 된 것입니다. 경제 불황, 실업 문제, 이로 인한 슬럼화와 아이들에 대한 무관심, 그로 인한 일탈과 지역사회와 관계 당국의 무신경함이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더럼 아동 성매매 사건이 더 복잡해지는 것은 가해자들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민으로 8000명 정도 되는 파키스탄 커뮤니티 소속 남자들이 대부분의 사건을 주도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주한 나라의 소녀를 아동 성매매한 사건이라는 겁니다. 이들은 대상을 물색한 후 돈이나 거처를 제공하겠다며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돈, 담배, 술, 마약으로 소녀들을 종속시킨 후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희생자를 끌어들이게 했습니다. 택시 운전사로 많이 일하는 파키스탄 커뮤니티의 특수성도 로더럼 아동 성매매 사건에 크게 연관된 것으로 보입니다. 소녀들을 물색하거나 희생자가 된 소녀들을 성매매 장소로 옮기는 일들을 주로 택시기사들이 맡아서 했으니 범죄의 운반책이었던 셈입니다. 

 

이들은 학교로 택시를 몰고 가서 성매매 대상을 태우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유사 성행위, 성매매 영업을 뛰기도 했습니다. 1997년부터 16년간이나 벌어진 이 경악할 만한 참사가 알려지지 않은 건 파키스탄 이민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구축된 폐쇄성이 한몫했습니다. 외부에서 문제 제기가 들어오더라도 파키스탄 커뮤니티의 종교 지도자인 이맘은 이 문제를 묵인했습니다. 폐쇄적인 커뮤니티 성격상 어떠한 자정 노력도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여기에 갇힌 피해자들은 도움을 요청할 꿈도 못 꾸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파키스탄은 세계에서 여성 인권이 바닥인 다섯 나라 중 하나로 꼽힙니다. 결혼 제도가 돈 주고 여자를 사는 매매혼에 가깝고, 가족이 저지른 죄를 대신해서 여성이 마을 사람들 앞에서 윤간을 당하기도 하고, 강간을 당했다는 이유로 한 해 1000명의 여성이 명예살인으로 죽어가는 나라입니다. 이런 문화권에서 살던 사람들이 영국으로 이주한 뒤 영국 사회에 편입되려는 노력 없이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공고히 하려고만 했으니 여성을 도구처럼 사용한 로더럼 아동 성매매 사건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 터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파키스탄 커뮤니티의 민족적 특수성이 로더럼 아동 성매매 사건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역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해 점점 늘어가는 무슬림 커뮤니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런 사실을 묵인해 문제를 키웠고, 관계 당국은 자칫하면 인종차별로 비화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 이를 방관하고 손대기를 꺼렸습니다.

 

 

이민자를 차별하는 극우정당의 약진 현상을 우려하며


 


알렉시스 제이 교수의 보고서가 발표되자 로더럼 카운슬 의장은 즉각 사퇴했고 당국자들과 지도자들이 비난과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2003년 이후 세 차례나 유사한 보고서가 나왔음에도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당국과 경찰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벨이란 가명을 쓴 피해 여성은 "지금 와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바뀔 것은 없다. 이미 너무 늦었고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예방했어야 했다"며 절규했습니다. 이로써 영국 사회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알렉시스 제이 교수는 보고서에서 청소년 복지와 인권에 대한 제안을 하면서 눈에 띄는 것은 예외를 두지 말고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번 문제가 인종/민족 문제가 결부된 사건임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공론화하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죠. 실제로 로더럼 아동 성매매 사건의 실체가 보고서 내용대로라면 파키스탄 이민자들은 스스로 인종차별의 근거를 마련해준 꼴이 됩니다. 여성을 도구로 취급하는 그들 문화의 특질이 이번 참사의 중요한 축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안 그래도 경제 불황으로 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좋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는 이때에 자칫 편견을 유발하지는 않을까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올해 초 로더럼에서 시행된 지역 선거에서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UKIP)이 제1야당이 되었습니다. 이런 대약진은 당사자인 UKIP조차 기대하지 않은 결과였죠. 경제불황과 물가상승 그리고 이민 노동자 문제를 방기한 기존 정치권에 넌더리가 난 유권자들은 예상 밖으로 극우정당에 몰표를 줬습니다. 이후 유권자들이 옳은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는 로더럼 사건이 터져 나온 것이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사건으로 자칫하면 유럽에서 이민자를 박해하는 극우정당의 대약진 현상이 나타날지도 모르겠습니다. 파키스탄 커뮤니티가 엄청난 잘못의 원인이 된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종차별 자체를 정당화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미국 퍼거슨 시 사태와 같은 인종차별 논란이 현재 진행형인 세상이니 말입니다. 차별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또 다른 차별로 향하는 지름길일 뿐입니다.



참고 기사

 

Rotherham child abuse scandal: 1,400 children exploited, report finds(BBC)

http://www.bbc.com/news/uk-england-south-yorkshire-28939089


영국의 1400명 성폭력 희생자 사건 정리(클리앙)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31773943&page=2


영국로더럼에서 벌어진 최악의 아동학대 사건(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658655&cloc=rss%7Cnews%7Cglobal


극우정당 UKIP 영국 지방선거에서 공식 야당으로 부상(아시아투데이)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40523010010112



세계적 공공재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국민의 정보

 

또 털렸습니다. 은행이라도 털렸느냐고요? 아닙니다. 이미 세계인의 공공재가 되었다고 해도 될 대한민국 국민의 개인 정보 유출에 관한 얘깁니다. 이번엔 사상 최대 규모라고 하네요. 부끄러운 일에서 기록 경신을 놓치질 않으니 참 한심한 일입니다.


 

출처 - 한국일보

15~65세 우리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의 개인정보가 중국 해커의 손에 들어갔으며, 국내 해커가 이를 들여와 각종 범죄에 활용한 사실이 경찰 수사로 밝혀졌다. 2,716만여 명의 신상이 공개된 이번 사건은 개인정보 유출 규모로는 사상 최대다.


2716만명이나.. 사상 최대 규모 개인정보 털렸다(한국일보)


경제 활동이 가장 활발한 연령층인 대한민국 30~40대 성인의 개인 정보는 사실상 거의 전부 유출되었다고 합니다. 이미 그 정보가 대출사기 같은 범죄에 사용되고 있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유출된 개인 정보 가운데 정작 가장 중요한 주민등록번호는 사실상 변경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에 사상 최대의 개인 정보 유출 사건으로 그간 주민등록번호 문제를 애써 외면하던 정부도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앞으로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금지하는 한편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마이핀'이라는 본인 인증 방식입니다.


출처 - 뉴스1


공공기관과 민간사업자가 법령상 근거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수집, 이용, 제공할 수 없다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에 따라 지난 8월 7일부터 주민등록번호 수집 금지 조처가 시행되었습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 3000만 원, 유출 시 최대 5억 원의 과징금을 물게 됩니다. 하지만 밑바닥까지 뚫린 우리나라의 보안의식이 하루아침에 바뀌겠습니까? 

 

생각비행 블로그에 <윈도XP 지원 종료가 가져올 보안 대란(http://ideas0419.com/462)>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쓴 지가 반년이나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공공기관에서 여전히 보안에 취약한 윈도XP를 사용 중이듯 주민등록번호를 뻔뻔이 요구하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보안 관련 환경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기업뿐 아니라 지자체들까지 대체 보안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개인 정보 파기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넘겨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출처 - SBS


출처 - 시티저널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금지하고 보유한 주민번호를 파기해야 하는 법률이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일선 현장에선 주민번호 파기를 위한 예산을 확보하지 않고 있다 법 시행에 이르러서야 부랴부랴 불완전 파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개인정보 파기 솔루션이 시중에 나와 있지만 '비싸다'고 업체를 압박해 일부 기능만 구현하고는 의무를 준수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주민번호 파기하랬더니… `어이없는` 기업들(디지털타임스)


 

마이핀, 과연 안전한가?


그렇다면 주민등록번호 대체 인증 수단인 마이핀은 과연 안전할까요? 사실 마이핀이란 인터넷에서 본인 인증을 하는 수단 중 하나로 이용되던 아이핀의 오프라인 확장 버전입니다.


마이핀(My-Pin)?

① 13자리의 임의의 숫자로 구성되고,

②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③ 필요 시 변경할 수 있고(1년에 3회),

④ 회원가입 및 기타 서비스에 이용할 목적으로,

⑤ 받고 싶은 사람만 발급받는 번호다.


‘마이핀’으로 세금 낭비하고 고생하는 방법(슬로우뉴스)


주민등록번호는 변경이 어려운 반면 아이핀과 마이핀은 변경할 수 있으므로 보안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쓰도록 권장하는 방법인데요, 1년에 3회 이내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개인 정보가 유출되었다면 바꿔버리면 그만이라는 얘깁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으로 개인 정보의 보안을 유지할 수 있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인을 옭아매는 번호가 하나 늘어났을 뿐입니다.


출처 - 슬로우뉴스


웃긴 사실은 오프라인 개인 식별 수단으로 주민등록증이 있는데 오프라인 식별 수단으로 마이핀을 왜 또 만들어야 하느냐는 점입니다. 요즘 같은 공안정국엔 신분증도 두 개 정도는 들고 다녀야 한다는 얘길까요? 게다가 마이핀의 개인 정보를 보관하는 업체는 1억 건이 넘는 개인 정보를 유출한 KCB, 가입자 정보를 여러 차례 유출한 전력이 있는 KT와 별 다를 게 없는 기관이라는 사실입니다.

출처 - 슬로우뉴스


그리고 황당하게도 마이핀을 발급받으려면 아이핀처럼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야 합니다. 결국 주민등록번호 대체 인증 수단인 마이핀은 그 근원이 주민등록번호이기 때문에 정보 유출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똑같은 숫자로 설정해놓고 털리지 않기를 바라는 상황과 똑같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의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 같은 개인 정보가 전 세계에 유출된 상황입니다. 이 정도의 정보만으로 가상세계에 또 다른 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마이핀인들 못 만들겠습니까? 오프라인에서 쓸 수 없다는 점만 빼고는 똑같은 기능을 하는 아이핀이 2014년 초 내부 직원에 의해 유출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아무리 봐도 이는 세금을 낭비하는 전시 행정에 불과합니다. 발급 과정의 불편함으로 아이핀 보급률이 낮았던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국민을 통제하려는 발상에서 벗어나야


정부의 발상은 근본부터 잘못되었습니다. 코드 하나로 개인 식별을 일괄적으로, 그것도 정부 기관이 아닌 기업 및 민간 영역까지 적용하려는 발상 말입니다. 주민등록번호가 국민 개개인을 식별해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겨나고 이용되어왔다는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런 통제 수단을 그대로 둔 채 마이핀으로 대체하기만 하면 된다는 건 구시대적인 발상이죠. 일괄적인 본인 인증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정부의 국민 통제 본능 때문입니다.


출처 - 슬로우뉴스


마이핀보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본인 확인을 요구하지 않으면 됩니다. 주민등록번호를 폐기하고 각 기관과 기업이 필요에 따른 최소한의 정보만 수집해 각기 다른 식별 코드를 만들어 쓰면 될 일입니다. 애초에 주민등록번호라는 일괄적인 식별 코드를 우리나라만 쓰고 있다는 사실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기업과 민간 영역에서 필요에 따라 여권, 사회보장번호, 멤버십 카드 정보 등 개인을 입증할 수 있는 수단은 많습니다. 동네에서 쓸 마트 멤버십 카드 하나 만드는 일에 도대체 왜 정부가 부과한 개인 식별 코드를 써야 하는 걸까요? 해당 활동에 꼭 필요한 정보만 수집하게 한 뒤 이를 유출한 기업을 징벌하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할 일입니다.

 

이런 식으로 기업이나 기관마다 다른 정보를 각자의 방식으로 따로 식별 코드를 만들어 쓰게 하면 설사 유출이 된다 할지라도 사회적 문제가 될 일은 적어집니다. 다시 말해 멤버십 카드 정보가 유출된다고 은행 계좌를 염려할 일은 없다는 겁니다. 주민등록번호가 기본이 된 마이핀을 도입한들 과연 개인 정보 유출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기존의 프레임을 혁파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로 보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슬로우뉴스》 마이핀 관련 기획기사를 참고하시길 권합니다.


 

‘주민등록번호’ 혹 떼줄 테니 ‘마이핀’ 혹 붙이라는 정부: http://slownews.kr/28954

‘마이핀’으로 세금 낭비하고 고생하는 방법(제공: 안행부): http://slownews.kr/28993

마이핀과 국가 감시: 누가 안전행정부를 견제할 것인가: http://slownews.kr/29319

 


임진왜란 당시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삶을 그려낸 영화 <명량>이 1500만 관객을 넘어 한국 영화 흥행 역사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생각비행은 일전에 이순신 장군께 진짜로 본받아야 할 리더십은 극한의 난전 속에서도 지휘관이 최전선에서 솔선수범하며 최대한 병사들이 살아서 돌아올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참 군인의 면모를 뒤따라야 할 군이 온갖 비리와 봐주기, 사건·사고로 추잡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터진 윤 일병 살인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국민은 군을 향한 신뢰를 거뒀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어디다 팔아먹었는지조차 모를 인면수심의 군을 과연 어떻게,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성인 남성에게 군역의 의무를 부과한 대한민국은 장병의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군은 병사들의 무사귀환을 책임지기는커녕 군 복무 중 사망한 장병과 유가족을 또 한 번 죽이는 법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출처 - 이데일리



군 의문사 시신 화장 법안 추진, 증거 인멸 위한 초석인가?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기치로 내걸어 사람들의 실소를 자아냈습니다. 국방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정부 보고 자료로 '장기 미인수 영현처리 육군 추진 계획'이라는 것을 마련했습니다. 이 때문에 국방부가 장기 미인수 시신에 대해 강제 화장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복무 중이던 군인이 사망하면 군은 수사를 통해 이유를 밝히고 유가족에게 알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 유가족이 그 수사 결과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밝히면 군 의문사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현재 군은 수사 결과와 다른 이유로 숨졌다는 입증 책임을 수사당국이 아닌 유족이 지게 하고 있습니다. 군 조직은 문제 발생 시 부대가 해체되거나 고인과 같이 복무한 병사나 간부가 뿔뿔이 흩어지거나 하는 문제가 있고,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내부고발의 피해를 두려워해 사전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무엇보다 군 내 수사는 국가 안보를 빌미로 매우 폐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보 접근에도 제한이 많습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지금까지 진실이 규명되지 못하고 수사가 종결되지도 않은 채 의문사 상태로 군 안치소에 상당한 유골이 모셔져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유골은 43년, 시신 상태로 냉동고에 15년간 계신 분도 있습니다. 그 긴 시간을 유가족은 지옥 같은 삶을 살았겠죠.



군의 폐쇄성을 해체할 대안이 필요한 때


성인 남성 대부분이 군역을 마친 이 나라에서 최근 군대 내 문제로 드러나는 수사 결과를 그대로 믿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군의 추잡한 면모가 세상에 고스란히 드러난 윤 일병 살인사건의 경우도 국방부가 처음 발표한 공식 수사 결과에 따르면 회식 중 취식으로 인한 기도 폐쇄가 그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윤 일병은 구타와 가혹행위 때문에 사망한 사실이 밝혀졌죠.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치사사건의 경우처럼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군사독재 시절의 경찰 발표와 오늘날 군의 발표가 대체 어떻게 다른 건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 한겨레


대한민국의 군대 내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 군은 유가족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는커녕 증거 인멸을 법제화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법령 개정 3년 이상 인수 거부 시 화장.' 이 내용만 보면 무연고 시신을 화장하겠다는 내용 같지만, 지금처럼 군 의문사 문제가 비일비재한 상황에서는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유족의 의지에 반해 시신을 화장함으로써 증거를 인멸하겠다는 논리에 불과합니다. 

 

지금도 군은 사건이 터져 수사가 진행되면 유족을 회유하고 협박해 시신을 속히 화장하게 합니다. 고인을 화장하면 순직 처리하여 국가유공자로 지정해주겠다는 꼬드김에 넘어가 유골만 남은 유족의 억울함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바로 그런 유골이 43년째 남아 있다는 겁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의 폭로로 여론이 나빠지자 다급해진 국방부는 처음엔 유가족의 동의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시행 전 관련 방법을 유가족에게 고지하고 6개월 전에 유가족에게 통보하는 식으로 처리하겠다며 발을 뺐습니다. 고지와 통보는 모두 일방적인 행위일 뿐입니다. 유가족에게 기약 없는 통보 편지만 달랑 보내놓고 국방부가 마음대로 시신을 화장해버릴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국방부의 발표 내용 어디에도 명시적으로 유가족의 허가와 동의라는 말은 없었습니다.


더구나 기가 막힌 건 이런 인면수심의 법안을 국회가 아닌 국방부 훈령 개정을 통해 처리하려고 준비 중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법안이라 국회에서는 통과되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국방부 안에서 몰래 해치우려고 했겠지요. 이 법안의 의원 입법을 추진하는 것으로 명시된 백군기 의원은 국방부에서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적은 있지만 법안 발의를 추진한 적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덧붙여 유족 동의 없이 이런 법안이 추진되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결국 국방부의 해명이 궁색해졌습니다. 정부가 민감한 법률 개정을 추진할 때 흔히 쓰던 꼼수가 제대로 먹히지 않았나 봅니다. 

 

이번 사건은 군의 폐쇄성을 국가 안보라며 방치했을 때 인간성이 과연 얼마나 좀 먹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출처 - 이데일리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이 사실로 드러나고, 22사단 고성 GOP 총기 난사 사건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 군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후 군인 신분의 자살자가 갑자기 늘어나더니 급기야 윤 일병 살인사건으로 군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여기에 김광진 의원이 국방부가 군 의문사 사병의 시신을 강제 화장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자 국방부는 아연실색해서 군 의문사 입증 책임을 일부 정부가 지겠다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시적으로 여론을 잠재우려는 심보인지 아니면 물러설 곳이 없는 군의 상황과 그간 끊임없이 진실을 규명하라고 요구해왔던 의문사 유족들의 노력이 맞물려 결실을 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 너무 늦게 나왔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현재 군 의문사 사건으로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시신은 18구, 유골은 133구라고 합니다. 이분들이 편안히 영면하실 날은 언제쯤 올까요? 대한민국 군대에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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