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 서거, 싱가포르의 정치적 향방

리콴유(이광요) 싱가포르 전 총리가 서거했습니다. 그는 건국의 아버지이자 식민지였던 작은 나라 싱가포르를 GDP 6만 달러의 경제 대국으로 키워낸 국부로 추앙받기도 합니다만, 실상 일당독재의 정치적 행보로 동아시아 민주주의를 저해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승만, 박정희를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리는 것처럼 리콴유 전 총리를 향한 양극단의 시선이 공존합니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와 교류가 활발했는데요, 실제로 리콴유는 생전에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호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 동아시아 정치사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척점에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리콴유의 삶과 싱가포르의 미래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경제대국 싱가포르의 아버지


중국에서 태어난 리콴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정치인으로서 눈을 뜹니다. 종전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 인민행동당을 창당하고 1959년 자치의회 의석 43석 중 41석을 석권하며 싱가포르 자치정부를 이끌었죠. 이후 1991년까지 30년 넘게 총리직을 수행했고 2011년까지 다른 직책을 맡으며 실질적으로 싱가포르를 통치했습니다. 그러니 사실상 반세기 동안 싱가포르의 역사를 쓰고 통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출처 - 파이낸셜뉴스


동남아시아의 아주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싱가포르를 살리기 위해 리콴유 전 총리는 유교를 바탕으로 한 수직적인 권위주의 통치를 국가의 바탕으로 삼고 인재 양성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다방면에서 철저히 국가주도의 계획경제를 구사했지요. 국가 규모가 작은 덕에 통제가 용이했고 오랜 기간 단 하나의 정권이 지속해서 정책을 이어나갔기에 과거 아시아의 4대 용 중에서 가장 큰 경제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의 GDP는 무려 5만 달러가 넘어가고, 실업률은 2퍼센트 미만, 공무원 청렴도는 세계 수위를 자랑합니다. 이뿐 아니라 주택의 85퍼센트를 주택개발청에서 공급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세계의 자유 무역항으로 이름이 높았고 현재는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했습니다. 물론 전자, 조선 등 제조 산업의 역량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이처럼 리콴유가 일군 싱가포르의 국력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 정치인들로서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일당독재의 독재자


"우리는 재판 없이도 사람들을 단속할 수 있어야 한다. 공산주의자든, 맹목적 애국주의자든, 종교적 극단주의자든. 이를 해내지 못하면 국가는 파멸에 이를 것이다."


리콴유 전 총리는 공개적으로 아시아인에겐 민주주의가 맞지 않고 유교적 가부장제에 기반한 권위주의 독재체제가 알맞다고 주장하며 이를 현실에 관철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호감을 표했겠지요. 리콴유의 한결같은 의지와 실행력이 오늘날 부강한 싱가포르의 초석이 되었겠지만, 정치·사회적으로 부작용 또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싱가포르의 미래를 위해 일찍이 인재양성에 힘썼는데 엘리트 교육 위주로 흐르다보니 살인적인 경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싱가포르는 학생들의 전국 석차를 일간지에 게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수험철이 되면 자살하는 청소년이 폭증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지요.


공무원 청렴도가 높고 부패지수가 낮은 것은 좋은 점이나 국가가 국민을 매로 다스리는 방식, 이른바 태형이 아직까지 존재합니다. 사행집행 역시 굉장히 많은 편입니다. 이 때문에 세계 인권단체들이 해마다 문제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소금물에 절여 위력이 배가된 1.2미터짜리 등나무 몽둥이로 태형을 가한다는 건 국가의 권위를 국민에게 내보임으로써 자발적 굴종을 강요하는 어이없는 행태에 다름 아닙니다. 

 

엄격한 공권력을 바탕으로 한 감시와 형벌 때문에 싱가포르 안에서는 치안이 잘 유지된다지만, 해외에서 싱가포르 국민들의 억눌린 감정이 폭발해 여행지에서 갖은 추행과 문제를 야기하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지요. 이런 이중성은 국민을 국가의 부품으로 여기고 효율의 극단을 추구한 결과입니다. 2012년 통계에서 싱가포르는 경제적 부유함에도 불구하고 국민행복지수가 세계 꼴찌였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갤럽은 지난 20일 유엔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International Day of Happiness)'을 맞아 행복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긍정경험지수(Positive Experience Index)'를 발표했습니다. 2014년 한 해 동안 143개국에 걸쳐 국가당 15세 이상 남녀 1000여 명을 대상으로 면접, 전화 인터뷰를 통해 자료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 조사에서 한국인의 긍정경험지수는 100점 만점에 59점으로 지난해 94위에서 24단계나 떨어진 118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반면 싱가포르는 100점 만점에 80점으로 11위에 해당합니다. 2012년 국민행복지수가 세계 꼴찌였던 싱가포르가 2015년에는 행복의 수준이 세계 11위 수준으로 상승했으니 상전벽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하지만 싱가포르의 언론자유지수는 세계 바닥권입니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세계 각국의 언론자유 정도를 확인하는 지표로 발표하는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우리나라는 2012년과 2013년 연속 50위, 2014년 57위, 2015년 60위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언론자유지수가 50위였던 시절 싱가포르의 언론자유지수는 149위였습니다. 2015년 현재 싱가포르의 언론자유지수는 세계 180개국 중 153위에 해당합니다.

 

출처 - 국경없는기자회

 

싱가포르의 언론사는 TV와 신문을 가리지 않고 대주주가 국영 투자업체이기 때문에 주요 언론 전부가 정부가 운영하는 거대 공기업의 지배를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니 정부 비판이나 언론 자유가 지켜지기 어려운 상황이죠. 외신의 경우 싱가포르 국내에 법정 대리인과 예치금을 두어야 합니다. 공권력을 직접 동원하지 않더라도 명예훼손이나 고소, 고발로 재갈을 물리기 위해서죠.



출처 - 경향신문


리콴유 전 총리의 개인적인 청렴함이 높게 평가되기도 하지만 사실상 싱가포르라는 국가 자체가 리콴유 일가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싱가포르 최대 기업이자 경제의 중추인 국영 투자회사 테마섹 홀딩스의 시이오(CEO)는 리콴유의 며느리이며 아들 리셴룽은 아버지를 이어 싱가포르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사실상 권력 세습인 것이죠.

 

출처 - 한겨레

 

싱가포르의 집단대표선거구제인 GRCs는 여러 선거구를 묶어 하나의 큰 선거구로 만들고 후보가 아닌 정당에 투표를 하는 제도입니다. 득표수가 많은 정당의 후보가 전부 선출되는 방식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돈이 많고 힘이 있는 여당이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리콴유와 리셴룽이 후보로 나온 지역구에 야당은 아예 출마를 하지 않을 정도라고 하며, 그렇게 되면 리콴유와 같이 나온 후보들은 자동적으로 당선이 되는 기형적인 선거 구조입니다. 야당이 있지만 들러리조차 되지 못하는 셈입니다. 야당이 84석 가운데 2석이나(!) 차지해 선전했다는 뉴스가 나오는 판이니 싱가포르의 정치 상황이 어떠한지 이해하시겠지요.



아시아적 가치 논쟁, 리콴유 대 김대중


해외 지면을 통해 아시아적 가치를 논쟁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리콴유의 시각차와 관련된 일화는 유명합니다. 시작은 1994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3~4월호였습니다. 리콴유는 편집장과의 대담에서 민주주의나 인권이 동아시아에는 적용될 수 없다며 유교에 바탕을 둔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웠습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기반으로 한 독재체제가 더 알맞다는 논리였죠. 리콴유는 동아시아 정치경제 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서구적 가치관의 위선과 체제의 한계를 강조했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그런데 같은 해 말, 《포린 어페어스》 11~12월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문화란 운명인가'라는 기고문으로 리콴유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민주주의야말로 동양 전통사상의 이념이며 리콴유는 자신의 독재를 위해 민주주의 거부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후로 리콴유는 1998년 한국이 IMF가 부과한 미국식 조건을 너무 따르는 게 문제라며 서양식 처방이 능사가 아니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아시아의 민주주의 사상과 전통을 강조하며 리콴유의 권위주의 통치를 반박했습니다.


두 사람의 정치적 시각을 짧은 지면으로 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동아시아 정치사에 있어 리콴유와 김대중은 대척점에 서 있는 거인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리콴유 전 총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이로써 동아시아 정치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리콴유의 존재가 곧 국가였던 싱가포르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새로운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고 있고, 인민행동당의 일당통치에 반감을 보이는 시민도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빈부격차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관건입니다. 2013년 말에 발생한 이주노동자들의 폭동은 사회적 빈부 격차와 부의 불평등성이 극에 달했음이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출발부터 성장 과정까지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은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의 서거 이후 싱가포르가 어떤 정치적 행보를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댓글(2)

  • fdffdf
    2015.05.23 08:23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외국인노동자 정정바랍니다
    이주란말은 영원히 이주한다는 의미 영주권 상주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대부분 임시 체류자들입니다

    즉 다문화공정 단체가 만들어 낸 단어입니다
    동성애자를 성소수자로
    불법체류자를 미등록외국인
    이혼녀 돌싱 이런단어 물타기입니다

    • 2015.05.27 03:42 신고

      저희는 정정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주노동자'라는 용어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공인하여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ILO에서 2003년 7월 1일 발효한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에 따르면 " 그 사람이 국적국이 아닌 나라에서 유급활동에 종사할 예정이거나, 이에 종사하고 있거나, 또는 종사하러 온 사람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가 국적의 색채를 배제하고 노동자를 대하려 하는데, 왜 님께서는 굳이 '외국인노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시는지 이해하기 어렵군요. 우리나라 사람도 외국에 가서 국적과 피부색 때문에 차별을 받거나 배척받기도 합니다.
      사회적 인권의 신장으로 생긴 표현을 두고 '물타기'라는 식으로 함부로 규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이라고 차별과 질시의 대상으로 사람을 대하려는 마음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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