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제16호 태풍 '산바'의 영향으로 전국에서 2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주택과 상가는 600여 동 넘게 침수됐고, 323세대 6백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한때 전국 52만 7000여 가구의 전기 공급이 끊겼고, 3000여 가구는 아직 복구되지 않았습니다. 그 밖에도 100여 곳의 도로가 유실됐고, 40여 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8~9월 집중 호우와 태풍 3개가 한반도를 휩쓸면서 손해보험사는 운영에 비상이 걸렸다죠. 

15호 태풍 볼라벤, 14호 태풍 덴빈에 이어 16호 태풍 산바까지 연이어 발생한 태풍 세 개가 한반도에 모두 상륙한 것은 1904년 태풍 관측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은 대자연을 이해할 수도 범접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풍이 지나갔으니 이제 가을 중턱에 접어들겠지요. 어느새 긴 소매 옷으로 갈아입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복귀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가을 중허리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다시 꺼내 읽다가 <우리 동네 목사님>이란 시에 눈길이 머뭅니다. 이 작품은 사람들이 가진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리고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더불어 신앙이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우리 동네 목사님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장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들었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사람들은 자신과 익숙하지 않은 존재나 일에 대해 배타적일 때가 잦습니다.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틀린 게 아닌데도 무조건 싫어하고 거부하는 것은 참 속 좁은 행동입니다.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는 시 서두를 보면 기형도 시인은 아마도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지만,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 관한 이미지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던 것 같습니다. 

동네 목사에 관해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찬송하는 법도 없어/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는 걸로 봐서 그 동네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은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부르는 데 익숙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광경은 시인이 동네에서 흔히 보던 광경이기도 했겠지요. 그런데 어느 날 철공소 앞에서 만난 목사는 동네 교회 교인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분이어서 시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기형도 시인의 눈에 비친 동네 교인들은 신에게 복을 구하고, 자신들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도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목사가 필요했겠죠.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는 표현을 보면 교인들의 신앙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감정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에겐 예수의 삶을 닮아가는 생활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은 더욱 필요 없는 행위였습니다. 그저 자기 삶에 축복이 임하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목사님의 아들이 폐렴으로 죽었을 때, 아마도 교인들은 안수기도나 영적 능력을 통해 병을 고치지 못하는 목사에 대한 신뢰를 거뒀는지도 모릅니다. 신기를 잃은 무당을 찾지 않는 사람들처럼 교인 중에 반이 장마통에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남은 교인이라고 별반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목사의 말에 교회 집사들은 분노합니다. 신앙을 생활에서 표현해야 한다는 기본을 말한 것뿐이지만, 집사들은 목사의 말을 이해하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자신들의 마음을 찌르고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목사의 올바른 설교가 싫었을 뿐입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교인들로 가득 찬 교회에서 떠나야 할 사람은 목사뿐이었습니다. 집사들의 계략이 시의 행간을 채웁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고개를 끄떡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내용에서 새로운 목사를 세우고 기득권을 누리며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집사들의 계략이 성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대신 바라바를 선택한 유대인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기형도 시인은 동네 교회 목사를 교회가 아닌 철공소 앞에서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는 목사에 관한 주변의 정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한참 보다가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떠나는 목사의 모습을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기형도 시인은 신앙을 행동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목사와 그를 향해 수군대는 교인들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기형도 시인이 마지막으로 ‘쓸쓸한 목사의 얼굴’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커다란 벽에 가로막혀 떠나야 하는 한 인간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고정관념을 깨지 못하고 올바른 진리의 외침을 외면한 채 복 타령이나 일삼는 사이비 교인들을 향한 애통함이 아니었을까요? 목회 세습과 기복신앙의 마법으로 초월적인 힘을 부리는 이 시대 목사들을 보고 기형도 시인이 다시 작품을 쓴다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어할지 가만히 귀를 기울여봅니다.

기형도

1960년 2월 16일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도에서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79년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정법계열에 입학하여 1985년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하여 정치부·문화부·편집부에서 일하며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로 등단했으며 강한 개성을 담은 독특한 시들을 발표했다. 1989년 3월 7일 종로 파고다극장에서 심야영화를 보다 뇌졸중으로 죽었다. 《입 속의 검은 잎》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이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번 기사 <독립출판물 전시회가 있다!>에서 《그린마인드》라는 잡지를 다시 한 번 다루겠다고 약속드린 바 있습니다. 독립출판물은 창작자들이 기획, 제작, 유통에 이르는 출판의 전 과정을 도맡아 만든 출판물을 말하는 것으로, 최근 2~3년 사이에 주목받기 시작하여 홍대 주변을 중심으로 독립출판물을 전문적으로 유통하고 판매하는 서점이 생길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독립출판물에 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반영이라도 하듯, 얼마 전 《한겨레 매거진 esc》는 '사표'를 주제로 기획기사를 준비하면서 독립출판물 형태로 사표를 재해석한 신미경(30) 씨를 중점적으로 다뤘더군요. 신 씨는 출판사에 다니다 지난 7월 사표를 내고 비정기 간행물인 《사표》를 냈다고 합니다. 독립출판물 잡지를 만드는 강좌를 듣고 과제물로 이런 도전을 시작했다는 내용이 기사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 5일부터 8월 19일까지 KT&G 상상마당에서 열린 <어바웃북스(ABOUT BOOKS: INDEPENDENT BOOK MARKET)> 전시에서 생각비행이 더 주목한 독립출판물은 《그린마인드》였습니다. 

삶과 삶의 무대를 담은 책, 《그린마인드》

이하 사진 그린마인드 제공

최근 발간된 《그린마인드》 2호는 잡지의 성격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린 마인드'는 삶과 삶의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환경은 인간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삶의 무대이며 인간은 그 무대를 수놓는 주인공입니다. 세상은 시간을 더해 갈수록 더 특별한 것 자극적인 것을 요구하지만 저희는 묵묵히 버티고 있는 오늘의 '그냥'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도 열심히 사는 당신의 이야기 그리고 당신의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비록, 오늘 당신이 밟은 땅이 회색빛 아스팔트 길이 대부분이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밟은 시멘트 땅 속에 보드라운 흙이 있다는 것과 마음에도 '그린'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선물처럼 전달해 드릴 '그린 마인드'입니다. 

 
그 때문일까요? 《그린마인드》에는 자연의 풍광을 담은 아름다운 사진이 자주 눈에 띕니다. 2호 기획기사는 '재생지'에 관한 내용이었는데요,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끝납니다.

"아무런 보호정책이 없어 재생지의 가격경쟁력이 나무로 만드는 종이에 비해 저렴하지도, 종이의 질이 나무로 만드는 인쇄용지에 비해 뛰어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재생지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생지는 종이가 종이의 원료가 된다는 단순한 생각을 넘어 종이가 나무를 지킨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는 것. 이제 종이를 소비할 때 고지가 사용된 퍼센트가 적힌 고지율을 살펴보는 건 어떨까? 소신 있게 재생지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신 있게 재생지로 만든 책을 찾는 것도 필요한 때이다."

그다음 페이지를 넘기니 다음 사진이 나왔습니다. 잘 정돈된 농지와 지붕에 태양열 집열판을 얹은 주택이 인상적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연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종이를 얻기 위해 많은 나무를 훼손하지만, 한편으론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면서 살고 있기도 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인간의 숙명이 이 한 장의 사진에 녹아 있다고 느끼는 건 아마 저희만은 아니겠지요. 

《그린마인드》를 만드는 이들은 전문 출판인이나 잡지 전문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린 마인드'를 전파하는 데에는 누구보다 앞장서는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그린마인드》 2호 '당신의 그린마인드' 꼭지에는 삼청동 일대에서 인력거를 끄는 두 젊은이를 취재한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주인공은 인재와 모빈. 이 둘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 사이랍니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인력거를 끄는 이들을 향해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요. 두 사람의 답변이 궁금하신가요? 그렇다면 《그린마인드》의 독자가 되어주세요. 오늘 소개하지 못한 '그린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으니까요.


《그린마인드》를 만드는 이들과 나눈 인터뷰

- 《그린마인드》라는 잡지를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그린마인드》는 청춘에게 고하는 환경 잡지입니다. 《그린마인드》는 오늘 우리가 밟은 땅의 대부분이 회색빛 아스팔트 길이었어도 우리가 밟은 시멘트 땅속에 보드라운 흙이 있다는 것과 우리의 마음에도 ‘그린’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잡지의 타이틀처럼 모든 출발은 '그린 마인드'에서 시작됩니다. 'green(자연)'과 'mind(마음)'는 여러분과 우리가 건강한 마음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 자연스레 생태와 인간이란 주제를 발견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여전히 생태와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 중이지만, 분명한 것은 여러분이 이 잡지를 통해 성장하는 청년들을 발견할 수 있고 응원을 보내게 되리라는 점입니다.

- 잡지를 만드는 분들을 간략하게 소개해주시고, 각자 맡은 역할도 알려주세요.

김현정_ 애칭은 팅커벨. 학창 시절, 배농사를 지었어요. 직접 수확하고 판매까지 하는 자연주의 교육을 받았답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고, 재활용하는 것이 취미입니다. 《그린 마인드》에서 디자인을 맡고 있어요. 디자인 전공이 아닌 터라 여러 책을 참고하면서 만들고 있어서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린 마인드》 정신만은 충만합니다!

장혜영_ 애칭은 마치. 삶의 소소한 일들에 호들갑 떠는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들을 제작해왔습니다. 일관적인 주관을 가진 ‘작가’가 되는 게 꿈이어서 그 꿈에 첫발을 떼는 심정으로 《그린 마인드》의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었습니다. 마치 해야만 했던 것처럼, 마치 처음부터 내 자리였던 것처럼, 기획과 취재를 꿰찬 호들갑을 떠는 마치입니다. 

전지민_ 애칭은 썸머. 부산에서 출생해 포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바닷가를 제 집처럼 누비고 다니던 유년의 추억이 삭막한 도시생활을 하는 지금까지 힘이 되고 있습니다. 소설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했고 지금까지 꿈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시를 쓰려면 시인처럼 살아야 하는 것처럼 《그린 마인드》를 만드는 나도 '그린 마인드'처럼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깨달음을 얻고 있는 꿈 많은 썸머입니다. 잡지의 세부적인 콘셉트와 스토리텔링 및 편집을 맡고 있습니다.

-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런 잡지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제까지 우리는 말 잘 듣는 딸들이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해서 돈을 벌고 있지만, 우리의 삶이 발랄하지는 않다고 느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은 빨리 ‘무엇’이 되길 바라셨고 그래서 우리는 서둘러 무엇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시기 중 중요하지 않은 때는 없겠지만, 우리는 서른이 되기 전 빨리 '사고'를 치고 싶었습니다. 각자 본인의 마음속에 깃들어 꿈틀거리는 소망을 꺼내어 목소리도 붙여주고 옷도 입혀주면서 구체적으로 모양을 만들어내고 싶었습니다. 《그린마인드》는 이처럼 절대 사라지지 않을 콘텐츠이자 우리의 신념입니다.

- 세상에 많은 잡지 가운데 《그린마인드》만의 차별성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앞으로 어떤 잡지로 만들어나갈 생각인지 알려주세요.
 
세 명의 여자가 만든다는 것, 처음엔 이게 큰 약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담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 셋이기에 풍겨 나오는 감성이 있고, 여자 셋이기에 아기자기한 일들도 벌일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드리는 부록만 봐도 그래요. 저희는 매번 직접 재활용해서 만든 소품을 부록으로 선물할 예정인데요, 창간호는 동대문 시장에서 원단을 자르고 남은 자투리 천을 활용한 팔찌였어요. 2호 선물은 쓰고 남은 벽지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든 노트랍니다. 만일 우리가 남자였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했겠지요. 

우리 잡지의 특성은 ‘성장하는 잡지’라는 겁니다. 이제 막 시작한 잡지여서 부족한 모습이 많겠지만, 그것을 그대로 보이려고 해요. 오히려 그런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를 드리고 싶어요. 한 예로 저희는 재생지로 잡지를 만들고 싶었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창간호는 콩기름 인쇄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호는 표지는 전면 재생지를 사용했어요. 재생지의 가격이나 이미지 구현 면에서 부담이 있었지만, 재생지에 관해 공부하고 공장을 찾아가 취재하면서 저희가 변화된 결과랍니다. 이렇게 저희가 성장하는 만큼 잡지도 성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부터 '그린 마인드'를 잃지 않고, 실천해나가려고 해요. 《그린마인드》가 저희이고, 저희가 《그린마인드》인 삶을 꿈꾸며 '그린 마인드'인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응원하려 합니다.  

- 처음 잡지를 만들면서 생긴 일화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잡지를 만들면서 우리 스스로 더 적극적으로 변했어요. 그전에는 좋은 사진을 보거나 그림을 보면 그저 '좋다'고 생각하고 말았지만, 이제는 잡지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사진작가에게 찾아가 말을 걸고, 작품을 의뢰했어요. 잡지가 나온 것도 아닌데, "창간호를 만들고 있는데요~" 하며 말을 건넸으니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더 대단하신 것 같아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잡지를 위해 작품을 주시다니 말이에요. 그 당시에 저희는 명함조차 없었어요. 종이에 친필로 쓴 명함을 건넨 것도 참 귀여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출판등록을 하지 않은 독립잡지 형태인데 앞으로 어떻게 구독자를 늘려나갈지 계획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잡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최선을 다했습니다. 함께 참여하고 도움을 주신 분들, 글을 기고해주신 분들이 알아서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책을 만드는 과정과 《그린마인드》의 일상을 페이스북, 블로그, 홈페이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리며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잡지를 만들고 나서야 잡지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잡지를 알리고 독자에게 전달되는 통로를 만드는 일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독립 출판 서점들과도 연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잡지는 YOUR MIND, 가가린, shop MAKERS, from th books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 잡지에 올인할 계획이 있는 건지도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그건 언제쯤일까요?

잡지를 향한 마음은 이미 올인입니다. 각자 하고 있는 일들도 책을 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니까요.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욱 잡지에 올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해야 하고, 환경 전반에 관한 공부도 필요하고, 출판 관련 실무 지식도 쌓아야 하거든요. 창간호는 우선 저희 셋이 돈을 모아 제작했어요. 앞으로도 계속 《그린마인드》를 만들고 싶고, 그러자면 제작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러자니 콘텐츠의 질에 한계가 있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뿌린 대로 거둔다’고 생각해요. 올인하지 않으면서 좋은 결과를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잡지를 만들고 그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부담을 느끼며 고민하고 있습니다. 

- 혹시 잡지를 구매한 독자한테서 받은 의견이 있나요? 사연 있는 독자 이야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초창기엔 주로 지인들이 잡지를 구매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피드백 대부분이 응원과 칭찬이었습니다. 출판 분야의 전문가이신 선배님들께 조언을 듣고 싶었지만 선뜻 내밀기엔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더군요. 저희 스스로 너무나 부족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블로그에 우리 잡지에 관한 후기가 하나둘 올라왔습니다. 절망감에 빠진 어느 야심한 새벽, <그린마인드엔 이효리가 없다>라는 서평을 보았습니다. 이 잡지는 왠지 뒷동산에서 읽어야 할 것 같다며 싱그러운 풀 위에 《그린마인드》를 올려놓고 사진도 찍으며 계속 볼 수 있으면 좋겠다며 애정을 보이시더라고요. '특별한 사람이 없어도 가능성이 보이는 책'이라는 문장이 특히 위로가 되었습니다. 

- 앞으로 담고 싶은 특집이나 꼭 인터뷰하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잡지의 구성과 연관하여 알려주세요.
 
'그린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을 찾고, 그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유명한 사람은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서 소소하게 실천하고 있는 건강한 사람들의 마음을 응원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빙글빙글(Round and Round)》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김동환 재활용 작가가 만든 책인데 굉장히 도전받았습니다. 재활용을 다시 사용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재창조’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그의 시각에 정말 박수를 보내게 됐어요. 우리 잡지의 이름 그대로를 딴 특집을 한번 만들고 싶어요. 도전이 되는  《그린마인드》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듭니다. 《그린마인드》는 '그린 마인드'를 지닌 사람을 만드는 잡지입니다. 초록 물결이 더 널리 퍼지도록 여러분이 관심을 기울여주세요.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독서력은 한 국가의 지식수준과 미래를 가늠하는 척도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가 2012년을 '독서의 해'로 지정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최근 7년간(2004~2011년)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이 10퍼센트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문화부가 매년 시행하는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성인 독서율은 2004년 76퍼센트에서 2008년 72퍼센트, 20011년 66퍼센트로 지속적인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하는군요. 책을 읽지 않는 이유로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34%)' '독서습관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33%)'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으며 그 밖에 영상물, 인터넷, 게임 등의 발달로 독서에 관한 관심이 점차 줄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독서율 추이(1994~2011)


조사 시점을 기준으로 지난 1년(2010년 11월~2011년 10월) 동안 종이책 일반도서 기준으로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고 응답한 18세 이상 성인의 경우 인근지역(도보 10분 거리 이내)에 공공도서관이 있는 경우(72.9%)가 인근지역에 공공도서관이 없는 경우(67.8%)보다 독서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과거 부모님과 선생님의 독서 권장 여부가 독서율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좋은 독서습관은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군요.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주변에서 열리는 다양한 책 잔치를 소개할까 합니다. 


파주북소리

파주북소리

 
2011년부터 파주출판도시는 책을 생산하는 공간에서 책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자 '책방거리' 조성을 시작하여 1년 사이에 42개의 서점이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점점 국제적인 출판 메카로 발전하고 있는 파주출판도시에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북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올해는 9월15일(토)부터 23일(일)까지 9일간 진행됩니다. 한류의 초석이 되는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 '한글'의 흐름과 역사를 알아보는 '한글 나들이전(展): 생활 속의 한글 이야기'와 개화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한국잡지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특별전을 비롯해, 국내외의 지식인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심포지엄, 강좌, 공연 등이 파주출판도시를 수놓습니다. 

파주북소리의 가장 큰 특징은 출판도시 내에 둥지를 틀고 있는 출판사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해 함께 만들어간다는 점입니다. 출판사 사옥과 서점 곳곳에서 각 출판사의 대표 저자, 작가들이 강연, 저자와의 대화, 워크숍 등 다채로운 지식의 향연을 벌입니다. 특히 작년 파주북소리의 '아시아대편집자특강'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국, 중국, 일본의 출판인들이 아시아 출판의 역량을 키워가기 위해 '아시아 출판문화상'을 제정하기로 의견을 모아 그 결실로 '파주 북 어워드(Paju Book Award)'가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책으로 소통하는 아시아’를 모토로 내건 지식축제 ‘파주 북소리 2012’는 대형 전시와 공연, 강연, 북마켓, 체험행사 등 130여 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지식 난장’ 문화행사이기도 합니다. 북소리 축제는 15일 오후 5시 출판도시 안 야외 특설무대 개막공연으로 시작되며 가수 박완규와 포미닛, 비보이 그룹 익스트림 크루, 파주 북소리합창단이 참여합니다. 인디음악 페스티벌(16일), ‘필리핀의 날’(23일) 등으로 이어지는 공연도 모두 무료입니다. 

100년 역사의 인쇄기업인 ‘보진재’의 인쇄 체험행사,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주관하는 세계 최고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전시, ‘김소월 문학의 날’, 피아니스트 막심 므르비차와 명창 양은희 등이 함께 출연하는 ‘다산의 밤’도 빼놓을 수 없는 행사인데요, 더 자세한 프로그램은 파주북소리 누리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

올해로 8회째를 맞이하는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책 축제인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은 9월 18일(화)부터 23일(일)까지 6일간 홍대 주차장거리와 일대 카페에서 열립니다. '책, 청춘을 껴안다'를 주제로 109개 출판사 및 서점과 69개 문화관련 단체 등이 70여 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합니다. 도서전, 저자와의 만남, 북 콘서트, 인디밴드들이 함께하는 야외 콘서트, 출판 포럼, 체험 행사 등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와우북판타스틱 서재'는 올해 가장 이슈가 된 국내외 문학과 출판계 이야기를 관련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소통하는 자리입니다. ‘와우종이 책놀이터’는 도심 한 복판에서 책과 뛰어놀 수 있는 책 놀이 공간으로 꾸며집니다. 이곳에서는 '북캐스터가 읽어주는 동화' '어린이 도서연구회' '에코팜므와 함께 몽골, 아프리카 책 여행' '이춘 선생님과 신나는 영어동화세상' '판소리로 듣는 동화세상!' '띵까띵까 종이기타, 리본링스 만들기' '지지고 볶고 장난치고 즐거운 우리놀이!' '숲속 식물로 생활용품 만들기!' '원목 DIY 장난감 만들기!' '어머니도서연구회와 함께하는 책놀이!' 'PAGEBE와 두근두근 캐릭터 그리기' 등 각종 프로그램(마임, 퍼포먼스, 체험, 낭독 등)이 진행됩니다. 

아동문학가 이오덕(1925~2003) 선생 10주기를 맞아 대안교육을 다루는 좌담회도 열린다고 하니 어린이 교육에 관심이 있는 분이시라면 참여해보시기 바랍니다. 행사 일정은 서울와우북페스티벌 카페나 와우책문화예술센터(336-1584~5)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와우책시장'은  책을 통해 지역주민, 일반 시민,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새로운 만남과 소통을 이루는 독특한 책·문화 벼룩시장입니다. 온라인커뮤니티에서 사전에 신청하시거나 축제 당일 현장에서 신청하실 수도 있습니다. 참가비는 '사랑의 책꽃이'에 사용될 책 3권(잡지, 학습지 제외)입니다. 많은 분이 참여할 수록 더 뜻깊은 축제가 되겠지요.


국립중앙도서관 '책으로 이끌림, 미래로 두드림' 

국립중앙도서관은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책으로 이끌림, 미래로 두드림’ 행복한 책 잔치를 엽니다. 독서퀴즈, 전시, 작가와의 만남, 시낭송, 디지털북 페스티벌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입맛대로 즐길 수 있는 책 세상이 펼쳐진다고 관심 있는 분들은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행사명
일시
장소
주요내용
담당과
오늘의도서관 표지그림 전시회 ‘그림, 책을 읽다’
9.3(월)
~ 23(일)
본관 1층 로비
독서 관련 작품 전시
국제교류
홍보팀
(02-590-6323)
사서가 추천하는 책
100선을 잡아라
9.3(월)
~ 21(금)
www.nl.go.kr
독서관련퀴즈,
사서추천도서 증정
자료운영과
(02-590-0583)
시인과 함께하는 시낭송회
9.26(수)
15:00
본관5층
세미나실
강연, 시 낭송 등
김난도 교수와 함께하는 작가와의 만남
9.20(목)
13:00
국제회의장
작가 강연 및
사인회 등
길 위의 인문학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학 강좌’
9.13(목)
15:00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
‘동해의 서정을 따라’ 강연
사서교육
문화과
(02-590-0551)
9.27(목)
15:00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
‘임진강에 흐르는
인문학’ 강연
‘추억의 그 잡지’ 전시
9.15(토)
~9.23(일)
파주 아시아출판문화
정보센터
시대별,
특정분야별 전시
연속
간행물과
(02-590-0615)
9.25(화)~10.31(수)
본관 3층 로비
전시 패널 및
베스트 잡지 전시
디지털도서관 심포지엄
9.21(금)
15:00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
‘전자출판의 진화,
도서관의 미래를
전망하다’ 주제
디지털
정보이용과
(02-3483-8847)
디지털북 페스티벌 2012
9.20(목)
~22(토)
디지털도서관
지하 2‧3층
전자책 체험전 및
관련 세미나 개최 등
‘책, 빛으로 읽다 - 디지털 북,
도서관 프로젝트’
북아트 전시회
9.18(화)
~10.21(일)
디지털도서관
전시실
책을 소재로 한
북아트 전시
국립장애인도서관
개관식 및 현판식
9.24(월) 11:00
국제회의장
개관식‧현판 제막식, 시설 견학
국립장애인
도서관
(02-3483-8857, 8855)
장애인 독서 한마당
9.24(월)
13:30
국제회의장
포럼, 낭송회,
전시회 등
장애 아동․청소년
독후감 대회
9.24(월)
10:00
본관 및
디지털도서관
독후감대회 발표
우수학생 및
학교 시상 등
2012년 9월 독서의달 행사안내 

'추억의 그 잡지' 특별 전시

국립중앙도서관(관장 심장섭)은 독서의 달을 맞아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 《대죠선독립협회회보》(1896년), 월간 계몽잡지 《소년》(1908년) 등 개화기부터 현대까지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희귀잡지 140여 종을 최초로 공개합니다. 15일(토)부터 23일(일)까지는 ‘파주북소리 2012’가 열리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1층 이벤트홀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25일(화)부터는 국립중앙도서관 본관 1층 로비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시대별 잡지를 통해 국내의 정치·경제·사회상의 거시적 변천은 물론 당시 생활양식 등의 미시적 흐름도 엿볼 수 있는 ‘추억의 그 잡지’ 특별 전시회를 놓치지 마세요.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독립, 하셨습니까?] 연재물의 두 번째 주인공은 얼마 전 홍대 스몰톡프로젝트(홍대 인근의 창작문화공간)에서 창고전을 연 이수지 작가입니다. 

주유소, 다단계회사, 동대문 도매상, 홍대 옷가게, 클럽, 커피숍, 비디오 대여점, 바(bar), 편의점, 음식점 써빙, 골프캐디, 핸드폰 검수원 등을 거쳐 미술계에 입문한 뒤 여전히 워킹푸어로서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흔치 않은 작가입니다. "자본으로부터의 철저한 독립, 대중성 없음, 알아주는 이 적으나 열광적"인 사람을 찾아 인터뷰하겠다는 [독립, 하셨습니까?] 연재물 성격상 주인공으로 모시기에 적합한 분이죠. 

1. <당연한 명제에서 열린 결말으로>
2. <동성애와 드라마의 행복한 공존, 김조광수의 영화 두결한장> 
3. <오늘의 노동으로 작품을 쓰다, 이수지 작가와 나눈 이야기>


오늘의 노동으로 작품을 쓰다,

이수지 작가와 나눈 이야기

인터뷰를 곰삭이며 글을 쓰는 동안 저널리스트이자 운동가인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르포르타주 <노동의 배신>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백인이자 지식인이지만 자신이 가진 자원을 가능한 한 숨긴 채 웨이트리스, 청소부, 판매원 같은 일을 전전하며 몸으로 겪은 워킹푸어의 현실을 생생히 그린 문제작이다. 쌍팔년도 식으로 말하면 '위장취업'인 셈인데, 아무리 노동계급 안에 들어가 있어도 그의 시선은 지식인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일터에서 순전한 노동자였다 할지라도 근무가 끝난 후에는 매일의 노동을 성찰하는 데까지 나아가야만 했다. 분명한 목적이 있고 기한을 정하고서 시작한 일이었음에도 그 모든 일은 녹록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입맛에 따라 직장을 고를 여지조차 없다는 현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몸으로 하는' 노동의 가치가 폄훼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주로 여성의 몫인) 가사노동이 사실상 정당한 대우를 받은 일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최근 들어서야 이혼할 때 재산의 50퍼센트 정도를 전업주부에게 지급하는 추세다. 그러나 여성의 급여평균이 남성의 64퍼센트밖에 안 되는 것에서 드러나듯, 노동의 가치가 대등하지는 않다. 비정규직 여성의 급여가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성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노동시장, 신자유주의와 '고용 없는 성장'은 여성과 청년 세대를 옥죄는 굴레와 같다. 굴곡 없는 삶을 살았다 해도 그럴진대, 정규교육을 거부하고 원하는 바대로 살아온 사람에게 이 사회가 얼마나 가혹했을까.

오늘의 인터뷰이에게로 이야기를 옮겨보자. 작가(예술가)이며 노동자인 이수지에게 선택할 수 있는 노동의 조건이란 애초 없었다. 대부분의 순수미술 작가가 그렇듯, 작품활동만으로 생계를 담보할 수 없다면 그것은 창작활동을 제한하는 덫이기도 할 것이다. 파트 타이머이면서 작가란 타이틀은, 원하는 일과 돈이 되는 일, 당장의 성취나 재화를 창출하거나 하지 않는 일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해야 하는 청년 세대의 표상 혹은 그 암울함과 직결된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먹고살기 위한 일과 창작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자화상>이란 제목이 붙은 목탄화에 등장하는 비틀린 육체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손은 끊임없이 작품을 매만진다. 또 그 손으로 우리가 육체를 지탱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먹는 식료품을 오리고 붙여 작품을 만들어낸다. 미술에 전혀 조예가 없는데도 굳이 인터뷰를 청한 까닭은 이수지의 작품에 시대와 작가의 초상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어서였다. 지독스럽게 선명한 은유로서의 작품은 유명세를 떠나 그 자체로 시선을 사로잡고, 공감을 자아내고, 말을 건네게 하는 힘이 있었다.

[자화상] (2007~) 개인을 판가름하는 보편적 지표로 작용하는 얼굴과 성별, 개성을 제거한 뒷모습을 차용하였으며 그로 인한 개체의 익명성은 한 개인의 자화상 연작에서 군상으로 확장된다.


제주에서 프랑스, 호주까지
이수지의 공간

비바리(아가씨를 일컫는 제주 방언) 이수지가 달랑 10만 원 들고 서울로 상경한 것은 여러모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트렁크 하나 달랑 끌고 학교까지 휴학한 채 서울로 올라온 내 기억과 겹쳐지는 지점도 있다. 일, 그리고 꿈을 찾아 바다 건너 서울행을 감행한 십대의 이수지는 '탈학교생'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중학교 때부터 영 적응할 수 없었던" 학교를 때려치웠다.

"학교 갈 생각을 안 했어요. 수중에 돈이 없으니까 밥도 굶고, 종일 있을 수 있는 곳이 도서관뿐이라 거기 눌러앉아 몇 권이고 책을 읽었어요. 그러다 집에 들통 나면 맞고, 학교에 강제로 보내지면 틈을 타서 빠져나와 바닷가를 걷거나 다시 도서관에 갔어요. 결국은 학교를 그만두게 된 거죠."

미술의 꿈을 한 번도 버린 적은 없었지만 남들처럼 미대에 가는 건 꿈도 꾸지 않았다. 진학을 위한 그림을 잘 그리려면 학원에 다녀야 하는데, 거기에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집을 버리듯 나와 서빙, 주유소 아르바이트, 동대문 옷가게 등 갖은 노동을 했다. 학력도 나이도 기준에 미달하는 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새로운 가능성이란 한국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2007년, 해외로 진학할 마음을 먹고 본격적으로 그림에 몰두했다. 가난한 노동자에게 재료가 많이 드는 물감 작업조차 버거웠지만 손에 잡히는 재료를 이용해 자신을 쏟아내듯 그리고 또 그렸다.
말을 깨치기라도 한 것처럼 봇물 터지듯 진행한 작업의 결과들을 추려 순수미술로 유명한 프랑스의 국립미술대학(보자르)에 응시했다. 3차 최종 면접까지 갔으나 낙방한 건 순전히 어학실력 탓이었다.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는 실력도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 전시한 작품들도 대부분 프랑스 가기 6개월 전에 그런 거예요. 예상 답변만 달달 외워서 갔는데 '이건 크기가 얼마지?’ 이런 질문에 답을 못 한 거죠. 그 정도 불어도 영어도 못 했거든요. 달달 외운 질문은 막상 알아듣지도 못했을 거고요. 나이 제한이 있어서 마지막 기회를 어이없이 날린 셈이었지만 아쉽지 않았어요. 심사위원들이 관심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인정받은 기분이었거든요. 호의적으로 그림을 보다가 제가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하기 시작했을 때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웃음)"

국경이란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하자 거칠 것이 없었다. 이수지는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로 체류하며 돈을 벌면서 어디나 가지고 다닌 노트 두 권에 틈틈이 작업했다. 그렇게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주(노동)'과 '여행'이 잦았던 그에게 서울에 체류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떠났다 돌아올 장소가 아니라 그저 조금 덜 외로우면서도 익명성을 유지할 수 있고, 일자리가 더 많은 도시일 뿐, '타자의 공간'이란 점은 변하지 않았다.

"개인이 문화나 언어의 범주로 묶일 수는 있지만 공간과 국가에 따라 나뉘는 건 부당하다고 봐요. 어쩌면 모두 타자인데 인지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사실 외국에서 생활할 때가 참 편했어요. 최저임금도 높고, 열심히 일한 만큼 대가가 돌아오니까요. 물론 여행을 할 때 소속감을 느끼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땐 돌아갈 곳이 있느냐 없느냐로 많은 것이 갈려요. 한국의 존재들에 폭 안겨서 쉬고 싶다는 생각은 그저 환상에 불과해요.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사느라 바쁘잖아요. 지쳐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어디 있어요? 매 순간 나를 내던져야 했어요. 적어도 처음처럼 쫓기듯 도망치지는 않는데 무엇 때문에 항상 어딘가로 가야 하는지, 의문은 풀리지 않아요. 왜 항상 그래야 하는지."


'2말 3초'를 살아가는 이수지의 시간,
혹은 작가라는 정체성

여러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과 노동을 하는 사이, 이수지는 서른을 목전에 둔 나이가 됐다. 지난해 4월, 호주에서 귀국한 후 그간의 작업을 갈무리하는 데 집중했고 생애 첫 개인전까지 무사히 치렀다. 하지만 바닥을 드러낸 통장 때문에 조만간 노동시장으로 복귀해야 할 타이밍이다. 작가로서 일종의 데뷔 무대를 치른 그에게 식상한 질문이지만 영감의 원천이 되는 존재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를 저답게 하는 건 혼자 있는 거예요. '당신이 영감을 받는 것은 무엇이냐?'란 질문에, '영감을 받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라'고 답한 후세인 살라얀(국제 패션계에 급부상한 터키 출신 디자이너)의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생각하는 동안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무수한 것들 중에 특정한 영감을 인지하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안목은 다양한 경험과 독서를 통해서 쌓거나, 혹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인내심을 갖고 파고드는 거지요. 소설과 시를 많이 읽어왔는데 여행을 하며 만나는 이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아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인문, 사회, 정치 비평을 망라해서 읽어요. 그래도 밑바닥부터 고갈되는 느낌이 들 때면 다시 문학으로 돌아오지요."

그의 영감은 이미 갖고 있지만 모를 수도 있던 존재를 독서 혹은 사유를 통해 인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뜻한다. 그 사유가 매일 노동을 하는 육체에 덧씌워졌을 때 비로소 이수지다운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의 작품에 작가의 의도란 분명히 존재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무엇이다.

"자기가 볼 수 있는 것만 보면 돼요. 예술은 자기표현에 앞서 미학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남의 평가를 듣고 고치고 싶은 욕망이 들어도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해요. 모두가 좋아하는 걸 할 수는 없어요. 가까운 사람들, 특히 가족들이 좋아하는 작업을 하면 안 돼요." (전시를 찾은 어느 시인 지망생에게)  

이수지 '창고전'은 미술작품에 부여된 권위를 애써 배제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평소 모임이나 상영 공간으로 이용되는 내부를 활용해 바닥에 세우거나 벽면에 원래 있었던 양 작품을 걸어놓거나, 심지어 테이블 위에 쌓아놓고 들춰볼 수 있도록 했다. 누구나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감상법을 제안한 것이다. 문턱을 낮춰 누구나 쉽게 미술을 향유하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고, 세상에 존재하나 어떤 면에서 존재성이 없는 아티스트들에게 건네는 응원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작업자들은 예술에 함몰되지 않고 예술과 객관적인 거리감을 유지하거나, 예술과 인생을 동일시하거나 하는 두 가지 중 하나에 속할 거예요. 현실의 벽으로 힘들어 하는 아티스트들이 이 질문에 직면하기도 전에 인생에 함몰돼 버리는 게 문제라고 봐요. 힘들더라도 분투하면서 견고하게 작업하시기를 바라요."

[네가 무엇을 먹는지 얘기해주면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해주겠다] (2007~) 프랑스의 한 미식가가 이 시대는 무엇을 소비하느냐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야기한다고 했다. 소비할 물건은 넘쳐나지만 이상하게도 선택의 자유는 점점 좁아지고, 몰취향이 취향의 모습을 띄기까지 한다. 얇은 전단 안에서 가격이 매겨진 식료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로부터 생명을 받아서 살아간다는 생각보다 그 돈의 가치를 지탱하는 사회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전시는 끝났지만
계속될 이야기

작품을 보는 안목이라는 게 거창하게 느껴진 탓도 있고, 그림을 사본 적이 한 번도 없는 탓에 무얼 어찌 골라야 하는지 잘 몰랐는데, 이수지 작가의 작품은 덜컥 들여놓고 싶어졌다. 좁고 온갖 잡동사니로 틈도 없이 빽빽한 벽면에 억지로 그림을 구겨 넣을 순 없으니 자주 가는 공간에라도 걸어놓으면 탐미욕이 조금이나마 충족될 것 같아서다. 그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거창한 의미는 아니더라도 내일 여전히 다른 작품을 그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경계를 오가는 그의 '여정'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아쉽게도 이수지 창고전은 지난 8월 앙코르 전시까지 끝난 상태다. 작품으로 만나길 원한다면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할듯. 작품과 노동, 그리고 자화상을 그리는 일도 진행형일 테니 작가로서의 다음 행보는 천천히 생각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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