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오늘은 협동조합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2012년은 UN이 지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매년 7월 첫째 토요일은 '세계협동조합의 날'입니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1923년부터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었을 때도 전 세계의 협동조합은 대규모 파산이나 조합원 해고 없이 어려운 상황에 잘 대처했습니다. 오히려 많은 협동조합이 이 기간에 성장하고 발전하여 지역사회를 튼튼하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협동조합이 경제발전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UN은 2009년 12월 뉴욕에서 열린 제64차 정기총회에서 2012년을 세계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했습니다.

협동조합이란 무엇인가

협동조합이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해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협동하는 자율적인 조직을 말합니다. 협동조합은 경제적 약자 다수가 서로 뭉치고 나누는 호혜의 힘으로 시장 지배력을 키우고, 자본주의 독점의 치명적인 폐해를 극복하려는 기업의 형태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일반 기업과는 달리 협동조합은 국가나 복지단체 혹은 자선단체의 도움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 책임에 바탕을 두기에 요즘 뜨는 표현을 사용하자면 '99퍼센트의, 99퍼센트에 의한, 99퍼센트를 위한' 기업인 셈입니다.

2012년 세계협동조합의 해 공식 로고

세계협동조합의 해 로고는 협동조합의 7원칙을 상징하는 7명의 사람이 협력하여 정사각형의 물체를 들어 올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정사각형의 물체는 협동조합 사업의 성공적인 진행을 의미한다고 하는군요. 그렇다면 협동조합의 7원칙이란 무엇이고 왜 중요한 걸까요?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원칙의 변천 (출처: 세계협동조합의해 누리집)


협동조합의 7원칙

1.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
2.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
3.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4. 자율과 독립
5. 교육 훈련 및 정보 제공
6. 협동조합 간 협동
7.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국제협동조합연맹은 오랜 논의를 거쳐 1995년 100주년 총회에서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선언했습니다. 협동조합의 원칙은 여러 상황에 놓인 협동조합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공통점을 정리한 것으로 협동조합 운동의 나침반이자 방향타인 셈입니다. 협동조합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장기적으로 조직을 발전시키기 위한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의 원칙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거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열쇠처럼 생각해선 안 됩니다. 

원칙이란 계율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행동 판단과 의사 결정의 기준이 된다. 협동조합들은 원칙을 글자 그대로 따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정신을 따라야 하며, 각 원칙이 품고 있는 정신을 전체적으로 협동조합의 일상적인 활동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협동조합의 원칙은 연례행사에서만 꺼내는 진부한 목록이 아니라 협동조합이 미래를 열어 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틀이자 에너지를 제공하는 요인이다.

_ 19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발표한 협동조합의 원칙 서문에서

   
세계적인 협동조합, 어떤 게 있나?

FC 바르셀로나
FC 바르셀로나는 1899년 11월 29일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를 연고지로 삼아 세계 최초로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축구 클럽입니다. 축구를 사랑하는 17만 3000여 명의 시민이 출자자이자 주인인 셈입니다. 클럽 회원 중 가입 경력 1년 이상,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6년마다 치르는 회장 선거에서 투표할 권리가 있고 이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2010년 6월 산드로 로셀(Alexandre Rosell)은 역대 최고 득표율인 61.35퍼센트를 얻어 회장이 되었습니다. 

2006년 9월 12일 FC 바르셀로나는 유니폼 스폰서십을 유니세프와 체결하여 많은 이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니폼 스폰서십은 돈을 받고 특정 회사의 로고를 새겨 홍보하는 대가로 수익금을 창출하는 구조인데요, FC 바르셀로나는 에이즈에 노출된 전 세계 어린이를 돕기 위해 5년간 구단 수입의 0.7퍼센트를 유니세프에 지원하기로 계약했습니다. FC 바르셀로나가 일반적인 축구 클럽 이상의 클럽인 까닭이 바로 이런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데 있지 않을까요?

AP통신
통신사는 뉴스를 모아 다른 신문사, 잡지사, 방송 사업체에 제공하는 회사를 말합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합뉴스, 중국의 신화통신, 일본의 교도통신이 바로 이런 통신사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5대 통신사로는 AP, AFP, TASS, UPI가 있습니다. 

AP통신은 정부 후원이나 상업적 방식이 아니라 미국 내 1400여 개 이상의 신문사, 잡지사, 방송사가 회원으로 참여하여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공동의 이익(뉴스의 수집과 전송)을 위해 각기 발행 부수의 비율에 따라 경비를 분담하여 운영하는 협동조합입니다. 1848년 뉴욕의 6개 신문사가 입항하는 선박으로부터 유럽의 뉴스를 공동으로 취재하기 위해 결성한 '항구뉴스협회(Harbor News Association)'가 그 기원이라고 합니다. 똑같은 정보를 얻기 위해 많은 신문사가 이중, 삼중으로 비용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동의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겠다고 생각하여 뉴욕 AP를 거쳐 지금의 AP(Associated Press)로 개칭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2010년 현재 수천 개의 매체에 문자, 사진, 그래픽, 음성, 영상 형태의 뉴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전 세계 300개 이상의 지국에서 37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습니다. 사진 부문에서 30개의 상을 받는 등 총 49개의 퓰리처상을 받을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몬드라곤
몬드라곤은 1950년대에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서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을 설립하여 발전시켜온 협동조합복합체입니다. 그 안에는 가전제품 기업도 있고, 식품회사도 있으며, 유통업체도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노동인민금고’라는 신용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나로 묶여 있으며 전체 사원 수는 무려 8만 3000명이 넘습니다.

몬드라곤은 2008년 금융위기 때도 해고를 하지 않은 기업으로 유명해졌는데요, 일시적인 휴직자가 있긴 했지만 노동자들은 그 기간 동안 80퍼센트의 급여를 받고 재교육을 거쳐 다른 관계사로 복직했다고 합니다. 당시 스페인의 실업률은 25퍼센트에 육박했는데 어떻게 몬드라곤은 완전고용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현대적인 거대그룹인 몬드라곤은 종업원들이 경영진을 선출하며 종업원 대표로 구성된 의회가 주요 경영 사항을 결정하는 협동조합입니다. 여기에서는 재벌 총수가 독재할 수도 없고, '1주 1표'의 주주 자본주의 원리가 아니라 '1인 1표'의 경제 민주주의로 조직을 운영합니다. 스페인의 10대 기업 집단 안에 들어가는 몬드라곤의 기업 목표는 '이익 극대화'가 아닌 '고용 확대'인 까닭에, 3만 5000명의 노동자 조합원은 1만 4000유로(약 2000만 원)의 출자금을 내고, 평균 7300만 원의 높은 연봉을 받습니다. 출자에 따른 배당금은 계속 쌓아놓았다가 퇴직 시 거금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의 경쟁력

2008년 시작된 세계 공황으로 2012년 현재에도 세계 전역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제너럴 모터스나 도요타 같은 대그룹도 이 기간에 수많은 직원을 해고했습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정규직을 해고하지 않고도 어려움을 이겼습니다. 그 이유는 협동조합은 경제와 사회를 바라보는 철학이 일반 기업과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반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는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관계에 불과합니다. 소비자는 기업의 고객이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소비자에게 상품을 홍보하여 가능한 한 많은 상품을 소비하도록 유도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능한 기술혁신으로 부가가치를 높여 매출을 일으키려고 노력하지만 성장의 과실은 일부 지배계급 안에만 맴돌며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점점 기업은 부유해지고 국민은 가난해지는 것이지요.

주식회사와 협동조합의 차이 (출처: 2012 세계협동조합의해 누리집)

하지만 협동조합과 조합원의 관계는 이러한 '고객' 관계와는 크게 다릅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 모두의 협동에 의해 사업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협동조합은 상부상조적인 결합을 확산함으로써 생산이나 소비에 내재하는 제반 모순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협동조합은 대주주가 결정권을 독점하는 주식회사와 달리 소비자 또는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합니다. 사회적 경제는 탐욕 대신 협동, 신뢰, 명예 같은 동기로 움직입니다. 또한 고용, 민주주의, 환경 등의 성과를 재무 성과보다 앞세웁니다. 이런 차이점이 오히려 일반 기업보다 경쟁력 있는 조직문화를 형성하는 토대가 됩니다.

물론 협동조합이 기업 조직의 유일하거나 대안적인 모델은 아닙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주식회사와 함께 시장에서 선택 가능한 매우 바람직한 조직 모델이라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어떤 특수한 영역이나 특정 시장에 한정되는 예외적인 조직 형태가 아니라 모든 산업에서 주식회사와 어깨를 견줄 수 있습니다. 영국 맨체스터 지역의 식료품 매장을 운영하는 '유니콘'이라는 노동자협동조합 매장에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커다란 글귀가 있습니다.

"삶이 먼저다. 그리고 삶의 실현 방식이 경제다. 그 경제의 조직 방식이 협동조합이고 그건 개인이 선택할 문제다. 그리고 그건 철학의 문제다." 

어떤 방식으로 경제활동을 조직할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고 철학의 문제이지만, 1884년 영국의 맨체스터에서 최초의 협동조합이 탄생한 이후 협동조합은 수많은 경험과 연구를 축적해왔습니다. 협동조합이라는 개념과 원리에 그러한 자산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조합원의 참여를 통해 주인의식을 고취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유형적인 하나의 방법이라고 한다면, 협동조합은 그런 정신과 원리를 조직 문화로 정립하여 전수하기 때문에 무형적 차원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할 수 있는 셈입니다.

사회적협동조합의 미래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모든 경제 영역에서 협동조합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동안 8가지 종류의 협동조합만 법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농업협동조합, 수산업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엽연초생산협동조합, 중소기업협동조합, 산림조합, 새마을금고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런 협동조합은 필요할 때마다 제정된 특별법에 근거해 설립되었습니다. 

(출처: 한겨레)


이처럼 대한민국은 8개 특별법으로 정하지 않은 어떤 협동조합의 설립도 불가능했기에 협동조합의 불모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사과 재배 농민이 농협을 만들려면 200명 이상이 3억 원 이상의 출자금을 납입해야 했으며, 생협의 설립 요건은 조합원 300명, 출자금 3000만 원 이상이었습니다. 협동조합의 설립 요건도 무척이나 까다로웠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2011년 12월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됨으로써 다양한 협동조합을 자유롭게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출자금 제한 없이 조합원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인가 없이 신고만으로 모든 절차가 마무리됩니다. 국회는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하여 공포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새로운 경제사회 발전의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는 협동조합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농업협동조합법」등 기존 8개의 개별법 체제에 포괄되지 못하거나 「상법」에 의한 회사설립이 어려운 경우 생산자 또는 소비자 중심의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경제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 제공, 지역사회 공헌활동 등을 주로 수행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을 별도로 도입하며, 협동조합 등의 설립ㆍ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함으로써 자주·자립·자치적인 협동조합의 활동을 촉진하고, 사회통합과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려는 것임.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은 협동조합 설립의 자유, 정부 간섭의 축소, 사업영역의 개방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자율과 독립이라는 협동조합의 기본 정신을 되살릴 수 있고, 그동안 정부 예산 지원으로 운영되던 관제 사회적기업의 비효율성을 극복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주식회사 형태를 띤 다수 사회적기업들은 영리 추구와 사회적 가치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선을 빚기도 했으나 조합원들의 편익 극대화가 목적인 협동조합이라면 그런 갈등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협동조합의 활성화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사업체가 경제의 한 영역을 차지하게 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출처: 한겨레)


이런 이유로 사회적협동조합에 관한 기대가 큽니다. 협동조합기본법은 '사회적협동조합'을 별도로 정의해 기존에 사회적 기업과 비영리단체, 비영리법인들이 행하던 사회적 목적사업을 협동조합이 수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다양한 사회적협동조합이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와 복지를 활성화하리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으로 좋은 기회가 열린 건 사실이지만, 조합원의 자발적 참여, 민주적 운영, 이를 통한 수익 창출을 고민하지 않으면 그 아무리 좋은 계획이 있더라도 협동조합이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협동은 희생을 기본으로 합니다. 조합의 이익을 우선할 때 개별적 희생이 전체적인 보상으로 돌아옵니다. 협동의 원칙을 이해하고 협동으로 접근할 마음이 있는 분이라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꿈을 펼쳐보시는 건 어떨까요.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8월 말에 찾아온 태풍 '볼라벤'과 '덴빈'을 보면서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분들이 하루빨리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이 잘 복구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무더위로 힘겨웠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가을 날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맘때 많은 사람이 '가을을 탄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이는 아마도 잊지 못한 추억을 저마다 마음 한자리에 남겨둔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을은 사랑과 이별의 추억으로 시작하여 붉게 물든 단풍이 마른 나뭇잎이 되어 거리를 채울 때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끝을 맺는 짧고도 긴 계절입니다.

오늘은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이별을 노래하고 있지만 결코 사랑하는 임을 떠나보낼 수 없다는 심정을 노래하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소개하겠습니다.

1925년 출간된 시집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2008년 11월 15일 KBS 1TV가 한국 현대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시인만세>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대국민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가장 좋아한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기사보기)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한국적인 정서를 그만큼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적'이라는 의미는 형식적으로 3음보의 전통적 리듬에 내용적으로 이별의 아쉬움과 슬픔의 정서를 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김소월은 <접동새><초혼><엄마야 누나야><산유화> 등의 시에서 나타나듯이 민요시 형식에 고통과 슬픔의 정서를 담아 우리 민족의 삶을 표현했습니다. 1920년대 한국 시단을 휩쓴 낭만주의 시의 한 특징으로 민요시가 성행했다는 점에서 김소월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이론적으로 낭만주를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김억이나 주요한의 작품들보다 김소월의 민요시를 훨씬 뛰어나다고 평가합니다. 김소월 시에 깔린 고통과 슬픔의 정조를 개인의 성향 탓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식민지 상황에서 전 국민이 느낀 고통, 슬픔, 분노의 감정과 떼려야 뗄 수 없겠지요. 이러한 정서는 민족 고유의 전통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살어리 살어리 랏다” “가시리 가시리 잇고” 같은 민요나 고려가요를 보면 3음보는 다분히 한국적인 리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별에 대한 아쉬움이나 슬픔의 정서는 고조선의 노래로 알려진 <공무도하가>, 유리왕이 지었다는 <황조가>, 고려가요 <가시리><서경별곡>, 민요 <아리랑>, 정지상의 한시 <송인> 등에 잘 나타나는 민족적 정서입니다. 이처럼 <진달래꽃>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가장 한국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애송하는 시가 된 것이겠지요.

그러면서도 <진달래꽃>이 노래하는 이별의 정서는 이전 시가와는 사뭇 다릅니다. 떠나는 대상에 대한 애절함이야 <공무도하가><황조가><가시리><아리랑>과 같지만 떠나보내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공무도하가>는 “當奈公何 (당내공하, 떠나셔서 어이할꼬”로, <황조가>는 “誰其與歸(수기여귀, 누구와 함께 돌아가리)”로 떠난 대상에 대한 아쉬움과 상실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시리>는 “가시는 듯 돌아오소서 나는(가시는 즉시 돌아오소서)”라는 바람을, <아리랑>은 “십리(十里)도 못 가서 발병난다”며 떠나는 대상을 향한 애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 김소월은 <진달래꽃>에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며 상실과 슬픔, 바람과 애원을 넘어서는 비장함을 표현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말 없이 고이보내”줄 것 같지만 가려거든 나를 “사뿐히 즈려 밟고” 가라고 위협하면서 그래도 가겠다면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라며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낼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비장함 때문에 <진달래꽃>의 임을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조국으로 해석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네요.

가을은 봄보다 빨리 지나갑니다. 하지만 어떤 계절보다 긴 여운을 내포하고 있는 계절이기도 하지요. 단순한 감상에 젖어 ‘가을 탄다’며 하루하루 보내기보다는 옛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거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어 읽으며 기억 저편에 묻어둔 '사랑'과 '열정'을 다시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요?

김소월

본명은 정식이며 190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오산학교에서 조만식 선생과 평생의 스승 김억을 만났다. 1920년 동인지 《창조》 5호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3·1 운동으로 오산학교가 문을 닫자 배재고보 5학년에 편입해 졸업했다. 1923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상업대학교에 입학했으나 9월에 발생한 관동대지진으로 중퇴하고 귀국했다. 그 후 고향에서 조부가 경영하는 광산을 도왔으나 실패하여 처가인 구성군에 《동아일보》 지국을 차렸지만 이마저 실패하는 바람에 극도의 빈곤에 시달렸다. 사업 실패로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아 술로 세월을 보내다 1934년에 33세의 나이로 죽었다(자살했다는 설도 있다). 사후 43년 만인 1977년 그의 시작 노트가 발견되었는데, 여기에 실린 시 중에 스승 김억의 시로 이미 발표된 것들이 있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저서로는 1925년 낸 시집 《진달래꽃》이 유일하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최근 피자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다 가게 주인에게 성폭행당한 뒤 자살한 ‘서산 여대생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남겼습니다. 또한 지난 21일 인천지역 일부 학교장이 승진을 앞둔 여교사를 성추행한다는 내용의 투서가 제출되어 교육계가 시끄러웠죠. 투서에 의하면 일부 교장이 여교사의 근무성적을 핑계로 술자리를 요구하고 노래방에서 껴안기, 무릎에 손 올리기 등 성추행을 하고 "승진을 앞둔 여교사들에게 출장, 애경사, 사전 답사 등 장거리 출장에 동행하길 원한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기사 보기)

 

저희가 출간한 책, 《입사부터 퇴사까지 직장인이 꼭 알아야 할 노동법》을 보면 <회사에서 성희롱을 당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꼭지가 있습니다. 앞선 기사를 보면 승진을 위한 근무평가가 학교장 펜에 달렸다는 사실이 성희롱의 큰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이와 비슷하게 직장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문제의 상당수가 주로 상급자에 의해 업무와 관련하여 일어납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성희롱 문제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될 수 있으므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정리해봤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하는 일인지 확인하자

직장 내 성희롱’ 남녀고용평등법에서 의미를 정한 법적 용어입니다. 모든 성희롱이 아니라 법이 정한 ‘직장 내 성희롱’에 한해서 법의 규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누가 직장 내 성희롱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는지, 어떤 문제가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부터 논란거리가 되는 일이 잦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의 가해자는 ‘사업주, 상급자, 다른 근로자’입니다. 또한 ‘고객 등 업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자’도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때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업주는 고충 해소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고, 고객의 성적 요구에 불응한 것을 이유로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의 피해자는 ‘근로자’입니다. 남녀고용평등법상 근로자는 고용된 자와 취업의사를 가진 자이기 때문에 모집, 채용과정에 있는 구직자도 포함됩니다. 보통 여성이 많지만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아르바이트생이나 파트타임을 하는 비정규직도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사업주, 상급자, 다른 근로자들이 직장에서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성적인 언동’으로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적 언동이나 요구에 대해 불응한 것을 이유로 고용상 불이익을 주는 것도 성희롱에 포함됩니다. 
‘업무와 관련해’라는 말은 폭넓게 해석하기 때문에 퇴근길, 회식, 야유회 등 사업장 밖에서나 근무시간 외의 행위도 성희롱에 해당합니다.

'성적 언동'은 육체적, 언어적, 시각적 행위가 있습니다. 육체적 성희롱은 입맞춤, 포옹 등 신체적 접촉과 가슴과 엉덩이 등 특정 부위를 만지는 행위, 안마나 애무를 강요하는 행위 등입니다. 언어적 성희롱은 음란한 농담이나 음담패설,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 성적 관계를 강요하거나 회유하는 행위, 음란한 내용의 전화 통화, 회식 자리에서 술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행위 등이 있습니다. 시각적 성희롱은 외설적인 사진이나 매체물을 게시하거나 보여주는 행위, 팩스나 이메일 등을 통해 음란한 편지나 사진을 보내는 행위, 성과 관련한 신체 부위를 고의로 노출하거나 만지는 행위 등입니다.

성희롱은 넓은 개념이기 때문에 성추행이나 성폭력도 당연히 성희롱에 해당하며 성추행이나 성폭력은 가해자를 상대로 형사고소를 직접 제기할 수 있습니다.

성희롱과 관련하여 ‘이것도 성희롱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애매한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단순히 개인적인 호감이나 친밀감을 표시했거나 별 뜻 없이 다들 하는 정도의 농담을 한 것뿐인데 피해자가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오해를 해 가해자가 당혹스러워하거나 고충을 처리해야 하는 사업주 또한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이것이 과연 성희롱인지 아닌지 몰라 대처하지 않고 그냥 넘기는 일도 많습니다. 간혹 가해자와 피해자가 연인이나 내연관계인 경우도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성희롱 피해를 주장하면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참 애매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먼저 피해자의 주관적인 감정을 우선으로 고려합니다. 피해자가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는지가 중요합니다. 성적 언동이 있더라도 피해자가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굴욕감이나 혐오감이 꼭 ‘심각한 수준’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못 참을 정도는 아니라도 은근히 불쾌하거나 언짢은 기분이 들면 그것도 굴욕감이나 혐오감에 해당합니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처하는 방법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할 때가 많습니다. 그냥 모르는 척하거나 무시할 수도 있고, 항의했다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참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희롱을 당하는 피해자는 굴욕감에 그치지 않고 가해자를 만나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 업무까지 영향이 이어져 결국 직장을 그만두는 일도 벌어집니다.

성희롱으로 인한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한 예방법이 마땅하지 않더라도 주의할 점은 있습니다. 업무시간 외에 원하지 않는 만남은 적당히 피하고 평소 성희롱 행위를 습관처럼 하는 사람과 단둘이 있거나 옆에 붙어 있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입니다. 성희롱 행위는 보통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하거나 친밀감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이런 과정에서 잘못 대응하면 심한 수준의 성희롱으로 이어지는 일이 잦으므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가벼운 성희롱이라도 불쾌감이 느껴졌다면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자신의 감정만 전달하는 편이 좋습니다.
 
웃으면서 “왜 이러세요~ 이러지 마세요”라고 한다거나 정색하면서 “성희롱으로 고발할 거예요” 하는 방식은 좋은 대응법이 아닙니다. 웃으면서 대꾸하면 가해자는 피해자가 불쾌하다는 생각을 못할 때가 많습니다. ‘좋으면서 그런다’고 생각하며 점점 더 심한 성희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너무 정색하며 대응하면 직장에서 이런저런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행동을 당하니 기분이 언짢다’자신의 감정만 전달하는 편이 좋습니다.

성희롱 행위가 직장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거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든다면 기록을 남기고, 회사의 고충처리기구나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와 함께 가해자에게 명확한 거부 의사를 표시하고 행위를 중단하도록 요구하는 이메일이나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사업주가 가해자거나 회사 내에서 처리를 기대하기 어렵다면 외부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직장 내 성희롱은 법적 조치보다 회사 내에서 원만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편이 좋습니다. 법적 분쟁 형태로 넘어가면 해당 가해자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을 문제 삼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일이 불거지면 회사는 오히려 가해자를 보호하려 들고 피해자를 상대로 적극적인 대응을 취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만한 해결이 어렵다면 고용노동부나 인권위원회에 진정·고발을 접수하거나 민사, 형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성희롱과 관련된 법적인 분쟁에서는 ‘입증’을 보다 명확히 해야 하고 상대방인 사업주나 가해자의 대응에 대한 전략도 구상해야 하기 때문에 사전에 전문가와 충분히 상담한 후 진행해야 합니다.

누구나 성희롱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최근 성희롱 피해에 대한 진정이나 고발이 많아져 회사에서도 고용환경의 악화, 생산성 저하, 처벌에 따른 부담과 소송비용의 증가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희롱에 대한 조치나 징계처분에 적극적인 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성희롱의 개념조자 알지 못하거나 극히 사소한 문제로 취급하는 직장인도 많습니다. 가벼운 성적 농담이나 가벼운 신체 접촉을 직장생활의 활력소로 여기거나 친밀감의 표현과 성희롱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성희롱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여성의 과다노출이나 음주로 인한 성적 충동 등으로 정당화하거나 관행이나 문화로 치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직장 내에서 별다른 경계나 주의 없는 언행으로 자신의 의도와 달리 오해를 사고 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되어 곤혹스러운 상황을 겪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성희롱 가해자가 되면 징계를 받아 직장을 잃거나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경력에 심각한 오점을 남길 수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 비난으로 심리적 부담도 상당하며 직장 안에서 다른 직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는데 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음담패설이나 성적 농담, 외모나 사생활에 대한 지나친 간섭은 자제해야 하고 불필요하거나 오해를 살만한 신체 접촉은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사적인 만남을 강요하지 않아야 하며 상대방이 불쾌감이나 거부 의사를 표시한다면 이를 무시하지 말고 즉시 사과하고 행동을 중단하는 편이 좋습니다. 성희롱 피해가 공식적으로 접수되고 조사과정까지 이뤄지는 상황이라면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식으로 피해자의 요구사항을 이행하고 징계가 합당한 수준이라면 이를 수용하는 편이 좋습니다.

‘단순한 오해이며 성희롱 의도가 전혀 없었다’라고 주장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런 사실을 사업주나 외부에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당사자에게 직접 알려야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명백한 증거가 없으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가해자도 많은데 성희롱 사건 자체가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운 성격이 있기 때문에 비록 명확한 증거가 부족해도 피해자가 자세한 정황을 진술하거나 목격자의 진술, 관련 정황 등으로 보아 성희롱 사실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면 성희롱 행위로 인정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가해자로 지목되었을 때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지 못하고 무조건 ‘기억이 안 난다’ ‘모르겠다’로 일관한다면 신뢰를 얻을 수 없으므로 이런 태도로 대응하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사업주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매년 시행해야 한다
직장에서 성희롱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사업주는 매년 성희롱 예방하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성희롱 사건이 일어났다면 사업주는 가해자를 징계하거나 필요한 조처를 할 의무가 있으며 사업주가 성희롱의 가해자라면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사업주는 성희롱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고,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한다면 형사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법
- 상대방을 인격과 존엄성을 가진 존재, 함께 일하는 동료로 인정하고 평소 동료 간에 예의를 갖춘다.
- 공적 업무와 사적인 일을 명확히 구분한다.
- 음담패설을 삼간다.
- 성희롱으로 인한 불쾌한 감정은 분명히 표현한다. 불분명한 대응은 상대를 오해하게 할 수 있다.
- 상대가 자신의 성적 언동에 적극 찬동하지 않거나 불쾌한 표정을 짓거나 자리를 피하는 등의 행동을 하면 이를 거부의사로 받아들이고 즉각 행동을 중지한다.
- 상대가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긍정적인 의사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 동료의 신체에 대해 성적인 평가나 비유를 하지 않는다.
-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삼간다.
- 회식 때 술 시중이나 춤을 강요하지 않는다. 또 술을 억지로 권하지 않는다. 
- 직장에서 인터넷 음란사이트를 보지 않는다.  

성희롱 발생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
-여성긴급상담전화 1366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더위도 한풀 꺾여 곧 가을이 오려나 봅니다. 이제 좀 살만하다고 느껴야 할 텐데, 그게 아닙니다. 계속해서 오르는 물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경제위기와 관련된 불안한 소식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건들만 보도하는 뉴스와 신문 때문에 국민의 속마음은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뭔가 기분 좋은 소식이 없나 싶어 눈을 굴려보지만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값 등록금 논의는 소리소문없이 증발했고, 중국과 FTA를 한다는 소식만 무성할 뿐 잘나가는 공기업을 민영화하겠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려주는 언론이 없네요. 노동자를 탄압하는 사설 용역회사의 문제, 제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목소리와 현장의 투쟁상황을 주요 언론이 외면하는 가운데 여름이 가고 가을로 접어드는군요. 

누구를 위한 FTA이고 누구를 위한 민영화이며 누구를 위한 해군기지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고도 위정자들은 오늘도 국민의 뜻대로 정치를 펼치겠노라고 헛소리만 해댑니다. 참 슬프고 우울한 세상입니다. 일찍이 함민복 시인은 사회적 소통이 단절된 공간 속에 은거하고 있는 현대인의 소외된 삶을 <우울氏의 一日>이라는 연작시에 담아낸 바 있습니다.

단지 공짜라는 이유로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나와 경북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입사했지만 기계와 대면하는 삶이 힘들어 4년간의 근무를 끝으로 서울예전 문창과에 늦깎이로 들어간 함민복. 그는 2학년 때인 1988년에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그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슬픔마저 관조하는 여유로움을 보여줍니다.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삭월세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커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짜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짜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짜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이 땅에 많은 사람이 현실에 순종하며 살면서 저마다 행복을 꿈꿉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만 있다면 참을 수 있는데, 그 희망마저 빼앗는 세상이라니 사는 게 고역입니다. 졸업과 동시에 등록금 대출이라는 빚을 떠안고 사회로 나와 좁은 취업문을 두드리다 희망보다 절망에 익숙해지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들. 그들에게 희망을 제시해야 하는 게 바로 앞선 세대와 국가의 의무가 아닌가요? 

과연 누가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라는 시를 쓴 함민복 시인 자신도 이처럼 미래를 논할 수 없는 곤궁함 가운데 있었습니다. 자신의 등록금을 대기 위해 형은 전세에서 사글세로 옮겨야 했고, 그런 형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그의 심정은 참혹했습니다. 

그런 일상 가운데 함민복 시인은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의 삶을 보았습니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고 하면서 그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웠다고 말합니다. 함 시인은 평범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젊은 부부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는 실낱같은 희망에 행여 그림자라도 드리울까 염려하여 이미 물배가 찼으나 마지막 면발을 남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함 시인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 사회엔 아직 무수한 희망이 잠재되어 있는 게 아닐까요? 건설 현장에서 뜨거운 태양에 굴하지 않고 빗물 같은 땀방울을 흘리는 노동자의 모습에서, 날품팔이 재래시장에서 가난함을 벗어나지 못해도 웃음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노파의 모습에서, 국가 폭력과 공권력 폭력이 난무하는 투쟁의 현장에서 남의 고통을 제 것인 듯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슬픔으로 배부른 세대, 좌절에 익숙한 세대에게 그저 기다림이 희망의 묘약이 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젊은 중국집 부부처럼 작은 일에 감사하며 하루를 온 힘으로 버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지 않는다면 그들은 언젠가 일어설 것입니다. 들풀처럼 민중은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요. 

함민복
1962년 충청북도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다.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4년 근무하다 서울예전 문창과를 졸업했다. 1988년 《세계의문학》에 <성선설>로 등단했으며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강화도에서 전업시인으로 살고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애지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등을 받았다. 그가 펴낸 책으로는 시집 《우울씨의 일일》《자본주의의 약속》《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말랑말랑한 힘》, 에세이집 《눈물은 왜 짠가》《미안한 마음》《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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