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72주년 제헌절입니다. 1948년 7월 12일, 대한민국 헌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5일 뒤인 7월 17일, 조선왕조 건국일에 맞춰 헌법이 공포되었고 이날을 우리는 제헌절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제헌절은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과 더불어 5대 국경일에 속합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제헌절 경축사를 통해 "시대변화에 발맞춰 헌법을 개정할 때가 되었"다면서 "코로나 위기를 한고비 넘기는 대로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자고 했습니다. 아울러 "정치권의 이해가 아닌 오로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시대 정신을 반영한 새 국가 규범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헌법은 항구불변의 가치를 담은 약속이 아닙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국민의 요구에 부합해야 하며, 더 많은 권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출처 - 뉴시스

 

7월 17일 과거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84년 전인 오늘, 스페인 내전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정권을 잡은 공화진영에 맞서 국민진영은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소련이 공화진영을 지원한 반면 파시즘 국가였던 독일과 이탈리아는 국민진영을 지원했습니다. 이 때문에 스페인 내전은 국제전 양상으로 비화했고, 1939년 4월 1일 국민진영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내전으로 약 50만 명이 숨지고 스페인의 국토가 황폐해졌죠.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 장군은 총통의 지위를 꿰차고 공화파를 학살했습니다. 그러고는 1975년 사망할 때까지 파시즘 독재정치를 이어갔습니다.

 

출처 - Magnum Photos / © Robert Capa ©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종군사진기자 로버트 카파는 스페인 내전 당시 〈어느 인민전선(공화군) 병사의 죽음〉이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프랑코의 파시스트 세력에 대항해 싸우다 머리에 총을 맞은 채 쓰러지는 공화파 병사의 모습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포착한 덕분에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 사진으로 로버트 카파는 세계적인 유명세를 누렸지만 한편으로 사진을 조작했다는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출처 -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 © Amical de Mauthausen

출처 -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 © Benito Bermejo

 

이와 달리 자신이 찍지 않은 사진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꾼 인물이 있습니다. 생각비행이 출간한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의 주인공 '프랑시스코 부아'입니다. 오스트리아에 있던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친위대나 카포(수감자를 관리하는 수감자, 나치의 앞잡이)에 의해 자행된 '비자연사 죽음'을 속이기 위해 나치는 사진을 조작했습니다. 이런 사진의 존재를 알게 된 프랑시스코 부아는 조작된 일련의 사진 원본 필름을 빼돌렸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열린 뉘른베르크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하여 나치 지도자들이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을 온전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아울러 그의 노력을 통해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스페인 홀로코스트가 부각되었죠.

 

 

오늘은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를 번역하신 문박엘리 님과 인터뷰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시스코 부아'와 '스페인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Q 안녕하세요? 생각비행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자들께 간략히 소개 부탁합니다.

A 안녕하세요.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를 번역한 문박엘리입니다. 서울에서 대학교 졸업 후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했습니다. 귀국 후 일반회사와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했고요, 지구와 인간과 우주 만물의 연계, 그리고 역사 등 다방면에 관심이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 제3공화국의 역사와 그 유산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스페인 홀로코스트를 다룬 책으로 프랑스 제3공화국 말기의 유럽 정세와 오늘날에 이르는 영향까지 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Q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그래픽 노블'입니다. 장르의 특성과 함께 출판계에서 그래픽 노블이 차지하는 위상을 소개해주시죠.

A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은 대개 문학적 구성과 특성을 지닌 작가주의 만화를 가리킵니다. 영어의 '코믹스'와 일본의 '망가'와 한국의 '만화'보다 무게감과 진지함이 부여된 듯한 이 용어는 1960년대 이후 널리 쓰이게 됩니다.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탄탄한 스토리와 구성으로 전개되는 만화 부분과 그 만화의 근거가 되는 역사적 인물과 사실을 설명하는 사료 부분으로 이루어져 전형적인 그래픽 노블에 속합니다. 


프랑스와 벨기에를 중심으로 프랑스어권 만화는 오랫동안 유럽 만화 시장을 지배해왔는데요, 특히 그래픽 노블 영역은 1960년대 이후 크게 번창했습니다. 2017년 통계에 따르면 그래픽 노블을 포함한 프랑스 만화 업계는 최근 10년 동안 매출이 20% 증가했으며 프랑스 출판 시장에서 일반 문학과 청소년물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 만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술로 인정받았고 만화 전시회가 점차 대중적인 인기와 전문가의 호평을 받으며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빠트릴 수 없는 축제가 1974년 이래 매년 프랑스 앙굴렘에서 개최되는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Festival international de la bande dessinée d'Angoulême)'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만화 페스티벌 중 하나로 매년 1월 말에 열리는데요, 이 축제에서는 프랑스는 물론 세계 각국의 만화와 관련 영상물이 전시되고, 다양한 강연회와 상영회, 시상식 등이 열립니다. 이 축제를 찾아오는 전 세계 만화 애호인들과 관련 종사자들과 기자들의 수가 수십만 명이 넘습니다.

 


 

Q 넷플릭스에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책과 영화는 어떻게 다른지요?

A 영화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는 스페인 여성 영화감독 마르 타르가로나(Mar Targarona)가 연출한 작품으로, 2018년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되었습니다. 프랑시스코 부아의 실화를 바탕으로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의 참상과 나치의 만행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특히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의 프란츠 치라이스 소장이 아들의 생일 파티에서 시중을 들던 포로들을 죽이는 장면은 보는 이를 경악하게 합니다. 실제로 치라이스는 아들 생일 파티에서 40여 명의 포로를 살해합니다. 프랑시스코가 빼돌린 실제 사진들이 마지막에 나오면서 끝나는 영화는 여러 사건을 두서없이 나열한 듯해 전체적으로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책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스페인 시나리오 작가인 살바 루비오와 스페인 만화가 페드로 콜롬보가 합작하여 완성한 작품입니다. 책이 영화보다 한 해 앞서 2017년에 출간되었죠.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발매된 이 책은 만화계 인사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만화의 경우, 실존 인물인 프랑시스코 부아를 중심으로 수용소 사진 빼돌리기와 전쟁 후 그 사진의 용도를 드러내는 과정에 집중합니다. 영화보다 한층 탄탄한 플롯으로 전개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주인공의 내레이션은 독자가 주인공의 심리에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한편 스토리를 따라가기에 적절한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영화보다는 책이 재미와 감동을 준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Q 유대인 홀로코스트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스페인 홀로코스트를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먼저 이 부분을 말씀해주시고, 이후에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스페인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려주시죠.

A 스페인 홀로코스트는 종전 후 일반 대중에게 대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전후 사학자들의 우선 관심사도 되지 못했습니다. 스페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직접 참전국이 아니었기에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수많은 스페인 포로가 희생되었으리라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죠.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스페인 내전 후 강력한 독재체재를 구축하고 1975년 종신 때까지 스페인의 총통을 지낸 프랑코 장군은 나치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스페인 포로들을 자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페인 홀로코스트는 사실상 프랑코 정권과 나치의 합작물이고 또 그런 의미에서 스페인 홀로코스트의 기원은 1936년 7월 17일(84년 전 오늘이군요!) 프랑코 장군의 쿠데타로 발발한 스페인 내전이라고 봅니다.

왕당파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지원뿐만 아니라 히틀러와 무솔리니 등 파시스트 세력의 지원을 받은 프랑코파에 맞서 싸운 이들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 등을 비롯한 공화파 사람들이었습니다. 1939년 4월 스페인 내전에서 패한 공화파의 상당수가 망명길에 오르는데, 당시 프랑스로 망명한 이들만 50만 명에 달합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프랑스 군대에 입대하거나 레지스탕스와 연대하는 방식으로 나치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때 독일군의 포로가 된 스페인 사람들은 대부분 오스트리아의 마우트하우젠 나치수용소로 이송되었습니다.

 

출처 -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 © Amical de Mauthausen

 

이 수용소는 책에 나오듯 노역으로 인한 절멸수용소로 분류된 지옥이었습니다. 서류상 입증된 수만 거론하자면 4816명의 스페인 포로가 이곳에서 살해되었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스페인 공화파 포로들은 1945년 해방 이후 대부분 프랑스를 비롯하여 제3국으로 제2의 망명을 해야만 했고, 그들 중 대부분이 끝내 스페인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생을 마쳤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내용처럼 두 번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가족을 만나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난 프랑시스코 부아의 경우는 스페인 포로 대다수의 여생을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주인공인 '프랑시스코 부아'는 어떤 사람인가요?

A 1920년생인 프랑스시코 부아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열렬한 공화파 가족의 일원으로 자랐습니다. 청소년기에 스페인 사회주의청년연합당(JSU)의 일원이었던 그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공화파 군대에 입대하여 싸웠습니다. 패전 후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 억류되기까지 부아의 운명은 앞서 말씀드린 스페인 공화파 참전 포로들과 비슷합니다. 그는 1941년 1월 마우트하우젠 수용소로 이송된 이래 해방 때까지 신원확인국에서 사진사로 일했습니다. 

 

© Amical de Mauthausen

 

특이한 점은 부아가 수용소 내 나치의 만행을 담은 사진을 빼돌리는 데 주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용소 나치 상관들과 관계가 원만했다는 사실입니다. 나치가 사진사로서 부아의 실력을 인정했음은 기록에도 있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밝고 사교적이었던 그의 성품이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 종전 후 프랑스 공산당 기관지 등에서 사진기자로 활약했던 그는 1951년 7월 파리에서 31년이 채 안 되는 생애를 마칩니다. 그의 사후 현실화된 스페인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스페인 홀로코스트 관련 참고자료들이 잇달아 발표되고 관련국(프랑스, 독일 등)에서 생존자와 유가족 대우에 관한 후속 조치들이 시행되었습니다. 2017년 프랑스 정부는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 시장이 주재하는 안장식 행사와 함께 프랑스시코 부아의 유해를 파리 시내의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안치했습니다. 올해는 프랑시스코 부아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강제수용소에서 얻은 질병으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넋을 기리고 생전에 파시즘에 맞서 맹활약한 젊은 영혼을 기억하는 행사가 스페인과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해봅니다. 

 

Q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 다양한 인물이 있었지만, 신원확인국 책임자인 ‘파울 릭켄’이라는 인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가 아니라 실존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는데요, 그는 어떤 일을 했고 프랑시스코 부아와 어떤 관계였나요? 

 

© Amical de Mauthausen

 

A 파울 릭켄은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의 신원확인국 책임자였습니다. 신원확인국에서 사진 현상을 담당했던 프랑시스코 부아의 직속 상관인 나치였죠. 릭켄은 부아의 업무능력을 높이 샀습니다. 그가 자신의 '죽음의 미학'을 부아에게 강변하는 것은 끔찍하긴 하지만 릭켄의 정신세계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릭켄이 촬영했던 수용소 생활과 포로들의 사진들은 훗날 부아가 수용소 밖으로 빼돌려 뉘른베르크 공판에서 나치 전범들의 행적을 증언하는 증거자료로 제출됩니다. 그 사진들과 부아의 증언을 통해 수용소 내 만행이 드러났고 관련 나치 전범들의 죄가 입증되었습니다.

 

 

Q 책을 번역하면서 특히 눈에 들어온 인물이 있다면 소개해주시지요.

 A 만화에는 등장하지 않고 책의 사료 부분에 사진 한 장으로 소개된 인물인 카를로스 그레이키(Carlos Greykey)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피부색과 복장이 일반적인 수용소 포로들과 달라 의아하게 생각하다 곧 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카를로스는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의 유일한 흑인 포로였습니다. 수용소 나치 친위대원들은 그에게 호텔 웨이터 복장을 입히고 식사 시중을 들게 했습니다. 수용소에 힘러와 같은 나치 고관이 방문하면 카를로스는 '식인종 아비의 자식이지만 스페인에 살던 흑인'으로 소개되기도 했어요. 굴욕적이었겠지만 견뎌내야 했습니다. 살인적인 채석장 노역으로 마우트하우젠 수용소 포로들의 평균 생존 기간이 6개월에서 1년을 넘지 못했는데, 카를로스는 식사 시중을 하면서 수년을 버틴 끝에 살아서 해방을 맞이했거든요.

 

1941년 수용소 입소 당시 나치 친위대원은 수건으로 그의 피부를 문질러댔다고 합니다. 흑인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던 그들은 카를로스가 검댕이를 덮어썼다고 생각한 거죠. 그가 흑인임을 확인한 나치는 카를로스를 처형하려고 했습니다. 1925년 출간된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에 의하면 유대인만이 아니라 흑인도 열등한 존재로서 아리아인 혈통을 오염시키는 위험한 인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카를로스가 나치 장교의 질문에 독일어로 대답했고, 아마도 그런 이유로 즉각 처형을 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카를로스는 스페인어와 독일어 외에도 카탈루냐어, 영어, 프랑스어를 구사했습니다. 191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그는 의대생으로 재학 중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자 공화파로 참전했고 패전 후 프랑스로 망명했습니다. 대부분의 스페인 공화파 참전용사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망명 후에도 반파시스트 전쟁을 프랑스 편에서 이어가다가 결국 독일 나치에게 체포되어 마우트하우젠 수용소로 이송되어 사진 속의 모습으로 나치 친위대원들의 식사 시중을 들게 된 것이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프랑코 총통 치하인 스페인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는 프랑스에 두 번째 망명을 했고 몇 년 후 프랑스에 귀화해 결혼을 하고 자녀도 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방 후 초기 카를로스는 수용소 생존자들의 정기 회합에 참석했으나 이후 발길을 끊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 그의 자취는 상세하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의 딸에 의하면 카를로스는 카바레에서 댄서로 일하다가 나중에는 전기공으로 생계를 꾸렸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1977년부터 1982년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적도기니공화국의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카를로스가 만년에 스페인 민주화가 아니라 적도기니공화국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했다는 기록은 그의 부모님이 스페인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페르난도 포(Fernando Pó)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을 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페르난도 포는 196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적도기니공화국에 속한 지역입니다. 1968년부터 1979년까지 대통령직을 역임한 초대 대통령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Francisco Macías Nguema)의 독재정치는 조카인 테오도로 오비앙(Teodoro Obiang)의 쿠데타로 막을 내리고, 2대 대통령이 된 테오도로 오비앙은 1979년 이래 현재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즉 적도기니공화국은 독립 이래 현재까지 독재정권 치하에서 민주주의가 파괴된 채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책의 주인공도 아니고 심지어 만화에 등장하지도 않는 인물인 카를로스 그레이키에 대한 소개를 길게 한 까닭은, 엄청난 영광도 명예도 동반하지 않은 삶의 여정을 처음에는 연민의 감정으로 띄엄띄엄 추적하는 와중에 깊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피부색과 출신의 불리함과 아마도 풍족하지 못했을 생계 방편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회피하지 않았고, 잔혹한 차별의 세상과 투쟁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가치에 따른 투신을 죽을 때까지 거듭했습니다. 그는 험난하게 굴곡진 세월을 선의로 뚜벅뚜벅 살아낸 영웅이었습니다.     

 

 

Q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3분의 2가 그래픽 노블의 형식으로 된 만화이고, 3분의 1은 사료와 해설로 되어 있습니다. 사진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역사적 상황과 실재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데요, 유심히 보신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Amical de Mauthausen


A 개인적으로 마리-클로드 바이앙-쿠튀리에(Marie-Claude Vaillant-Couturier)가 나오는 부분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역사적으로는 1946년 1월 28일 뉘른베르크 공판에서 그녀가 증언을 마친 뒤 프랑시스코 부아가 증언을 했는데요, 이 책에서 그 상황을 어떻게 그려냈는지를 보고 그 세밀함에 감탄했습니다. 또한 뉘른베르크 공판에서 증언을 마치고 난 그녀가 부아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작가에 의한 상상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공산당을 넘어 초당적인 명성과 존경을 받은 여성 정치인의 인품과 매력이 잘 드러난 부분이라 자꾸 보게 됩니다.

 

 

Q 짧은 인터뷰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를 꼭 읽어야 하는 이유를 독자들께 간략히 말씀해주시죠.   


 A 7월 17일 오늘은 한국의 제헌절이자 스페인 내전 발발일입니다. 스페인 내전 때 파시즘에 맞서 싸운 이들은 패전 후 스페인 밖에서도 파시즘과의 전쟁을 이어갔고, 그 와중에 수많은 이들이 스페인 홀로코스트로 희생되었습니다. 비단 스페인과 유럽 역사에서만이 아니라 파시즘의 위협은 오늘날에도 지구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무지가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게 만듭니다.

 

 

스페인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이 지구상에서 재발하지 않으려면 먼저 그것이 어떤 사건이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한국에 거의 소개되지 않은 스페인 홀로코스트의 배경과 진행에 대해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형식과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식민지 통치와 동족상잔의 비극, 그리고 군부독재와 민주화 투쟁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 한국의 20세기 역사와 닮은 점이 많은 스페인 역사에 대해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무척 흥미로운 형식의 입문서가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최다 세계기록유산 보유국입니다.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많은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한 역사로 이어진 듯합니다. 지난 6월 25일 광주시는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고 밝혔습니다. 정부 지원 없이 민간 NGO가 주도적으로 추진해 달성한 성과이기에 그 의미가 큽니다.

 

최근 정부는 일본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 취소를 추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군함도로 알려진 일본 나가사키 앞바다의 섬 하시마는 1940년대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석탄 채굴에 동원됐다가 100명 이상 숨진 곳이죠. 일본은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며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리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역사 왜곡은 어떤 이유로든 허용되어선 안 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나치의 참혹한 만행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진사 한 명을 소개할까 합니다. 생각비행이 출간한 신간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의 주인공인 ‘프랑시스코 부아(Francisco Boix)’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라는 영화를 보실 수 있는데요, 그래픽 노블인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가 원작입니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스페인 홀로코스트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절멸될 수감자들”

1938년 3월 독일 제3제국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지 며칠 후, 새 정권은 오스트리아에 집단수용소를 건설할 계획을 발표한다. 나치 친위대는 포로의 수가 급증할 것을 내다보고 수용소 추가 건설을 고려했다. 동시에 나치 친위대 사령부는 건설자재 산업을 일으킬 계획이었다. 이렇게 친위대는 강제수용소 확장을 정당화하고 수용소 내 활용 가능한 노동력을 독점함으로써 친위대의 재정을 튼실히 하고자 했다.


친위대는 그들의 경제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용소 부지를 물색하는 데 착수하여 마침내 화강암 채석장을 인근에 둔 마우트하우젠(Mauthausen)과 구젠(Gusen)을 낙점했다. 나치 친위대 기업은 독일 제3제국의 화려한 기념물과 건물에 필요한 건축자재를 수용소 포로들을 동원해 채석하여 공급할 계획이었다.


1938년 8월 8일, 다하우 강제수용소의 포로를 태운 첫 기차가 마우트하우젠에 도착했다. 포로들은 자신들이 수감될 수용소 건설을 위해 노동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화강암 채석장 개발과 확장에도 동원되었다. 수감자들은 극도로 열악한 조건 아래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적합한 도구나 작업복조차 받지 못했고, 늘 부족한 음식에 시달려야 했으며, 적절한 의료적 조치를 받지 못해 숱한 질병에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심각한 사고의 위험 속에서 생존해야 했다. 고된 노역 과정에는 친위대의 끊임없는 폭행이 이어졌다.


1938년 설치된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는 1945년 미군에 의해 해방될 때까지 약 33만 명이 수감되었으며, 그중 12만 명 이상이 죽었다. 마우트하우젠은 나치에 의해 기획된 절멸수용소(Extermination camp)였다. 이 명칭은 공식적으로 존재한 적은 없으나, 실제 역할은 다른 강제수용소와 명확히 구분된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비롯한 6개의 강제수용소는 대량학살을 목적으로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설립했다. 이곳은 범죄 행위에 대해 형벌을 주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전쟁 중 절멸 정책을 일괄 마무리하는 곳이었다. 희생자의 시체는 통상 소각 처분 내지 집단 묘지에 묻어 처리했다.
1941년 1월 2일, 당시 나치 독일의 국가보안본부 수장인 하이드리히(Heydrich)는 25개에 달하는 강제수용소를 3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카테고리I 수용소는 나치의 입장에서 개선 가능성이 있는 수감자들을 위한 수용소였다. 다하우, 작센하우젠, 아우슈비츠 등이 그런 곳이었다. 카테고리II 수용소는 부담스럽지만 재교육 가능성이 있는 수감자들을 위한 수용소였다. 부헨발트, 플로센뷔르크, 노엔가메, 비르케노 등이 그런 곳이었다. 카테고리III 수용소는 교화 가능성이 없는 수감자들이 수용되었고, 그들은 노동을 통해 절멸될 운명이었다. 나츠바일러-슈트루토프, 마우트하우젠, 구젠 등이 그런 곳이었다.

 


“나치의 만행을 폭로한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프랑시스코 부아”

지정학적 관점에서 보면 스페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상대적으로 덜 입은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프랑코와 히틀러가 조기에 맺은 동맹을 참작할 때 말이다. 그러나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안티-파시스트 군대가 유럽의 다른 곳보다 일찍 조직된 스페인의 복잡한 실상을 드러낸다. 스페인 공화주의자들은 파시즘에 대항하여 무기를 든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1936년 스페인 공화주의자들은 독일·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의 지지를 받은 프랑코 장군에 맞서 싸웠으나 패하고 말았다. 이들은 신속한 귀환을 희망하며 프랑스로 대거 망명했는데, 그 수가 50만 명에 달한다.


안전한 피난처로 굳게 믿었던 나라에서 스페인 공화파 망명자들은 자신들을 “달갑지 않은 빨갱이”로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프랑스 각지로 흩어져야 했다. 남자들은 프랑스 군대, 외인부대, 보병대대 또는 군사 시설인 외국인 노동자 회사(CTE)로 들어가도록 강요받았다. 공장, 농장, 군사방어 시설의 건설 현장에서 하급 노동을 수행하면서 그들은 “삽과 곡괭이 부대”가 되어갔다. 1940년 5월 독일 부대의 공격으로 희생된 사람들이 바로 이런 회사에서 일한 스페인 망명자들이었다. 생존자들은 흩어져 도주하거나 스위스로 들어가려는 시도를 계속하다가 독일 국방군에 체포되었다. 약 1만 명에 달하는 이들을 비시정부(Vichy政府)는 프랑스 군인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포기해버렸다. 스페인 정권도 히틀러와 협상하면서 마찬가지 태도를 취했다. 결국 고국인 스페인으로도, 망명지인 프랑스로도 갈 수 없었던 이들은 대부분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1940년 8월 시작된 강제수용은 1944년까지 이어졌다. 대략 1만 명의 공화파 사람들이 공화정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파시즘에 맞서 투쟁했다는 이유로 나치 강제수용소에 구금되었다. 1941년 1월 27일 1506명이라는 가장 큰 이주 대열 속에 한 명의 사진사가 있었다. 그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 ‘프랑시스코 부아(Francisco Boix)’다.


초기에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스페인 포로들에게는 유리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수용소 내 주요한 보직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이는 더 좋은 식단과 생존의 기회가 보장된다는 의미였다. 미용사, 음악가, 소목장 등의 직군에서 일하면서 이들은 수용소에서 비교적 오래 존속할 수 있었다. 수용소를 지휘하는 나치 친위대의 입장에서도 이들을 부리는 편이 유용하다고 여겼다. 이런 특별한 혜택을 받은 수감자들을 ‘프로미넨텐’이라고 불렀다.


프랑시스코 부아는 스페인 수감자들인 동료들에 의해 프로미넨텐으로 연결되었으며, 수용소 내에 있던 신원확인국에서 일하며 필름을 현상하는 일을 맡았다. 그곳에서 그는 나치에 의해 은밀하게 작동하는 끔찍한 체계를 목도한다. 프랑시스코는 신원확인국의 책임자였던 파울 릭켄을 도우면서 그가 꾸미고 있는 일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파울 릭켄은 나치 친위대나 카포(수감자를 관리하는 수감자, 나치의 앞잡이)에 의해 살해된 포로들의 시신을 자살이나 사고사로 위장했다. 때로는 수용소 탈출을 시도하다 죽은 것처럼 꾸미기 위해 시신의 자세를 바꾼 다음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파울 릭켄은 노출, 초점, 구도 등을 완벽하게 통제하면서 죽은 사람들을 촬영했다. 그는 단순히 시체의 모습을 찍는 게 아니라 마치 자연의 아름다움을 불멸화하는 것처럼, 영상의 구성과 원근법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자신만의 미적 감각을 총동원해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려 했다.


프랑시스코 부아는 스페인 수감자들의 지하 레지스탕스 한가운데에서 동지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나치의 범죄행각을 드러내고 나치 최고 수장들을 고발하는 데 증거가 될 필름을 빼돌리려는 은밀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위험천만한 이 계획은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선 대장정의 출발일 뿐이었다.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한 인물의 영웅담을 기록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스페인 홀로코스트와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스페인 생존자들의 운명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픽 노블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실화이며, 책의 후반부는 사료를 중심으로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의 참혹한 삶을 증언하고 있다.  


프랑시스코 부아는 뉘른베르크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서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빼돌린 필름으로 나치의 만행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수많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이 역사적으로 조명되었다. 그의 생생한 증언은 언제까지나 기억될 것이며, 그가 남긴 기록 역시 불멸할 것이다.


 

 

 

▌만든 이들

그림  페드로 J. 콜롬보(Pedro J. COLOMBO)
페드로 콜롬보는 1978년 스페인 그라노예르스(Granollers)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만화 주인공인 스파이더맨(Spider-Man)이 되기를 꿈꾸었으나 그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깨달은 뒤 자신의 영웅과 최대한 가까운 것(만화)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1998~2000년 바르셀로나의 호소 만화 학교(Éole de bande désiné Joso)에서 제9의 예술의 역사와 자신이 그릴 만화의 기본을 공부했다. 동료와 만화가 친구들의 우정과 자기초월의 경향에 힘입어 프랑스의 만화 전문 출판사인 다르고(Dargaud)의 시리즈물인 《셋...그리고 천사(Trois...et l’ange)》 세 권을 그리는 것을 비롯하여 다양한 합작품을 발표함으로써 프랑스와 벨기에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경력을 다져왔다.
2001년에 배우자이자 자신의 채색 전담이 될 아인차네(Aintzane)를 만났고, 현재 두 사람은 빌바오(Bilbao)에서 살고 있다. 시나리오작가인 살바 루비오와 함께 롱바르 출판사에서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를 출간했다.

 

채색  아인차네 란다(Aintzane Landa)
아인차네 란다는 1980년 스페인 바라칼도(Barakaldo)에서 태어났다. 배우자인 만화가 페드로 콜롬보가 그린 작품의 채색을 맡고 있다.
유럽에서 명작 만화인 《마팔다(Mafalda)》, 《탱탱(Tintin)》, 《아스테릭스(Astéix)》를 보며 자랐고, 지금도 손에 잡히는 작품들이면 죄다 읽는다.
그라나다(Granada)에서 페드로와 정착하면서 채색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 일이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벨기에와 프랑스 출판사의 만화 시리즈물 채색을 다수 담당했으며, 페드로 곁에서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채색 작업을 했다.
현재 페드로와 함께 빌바오에 살고 있으며, 여가를 이용해 아미구루미, 수첩, 레터링, 스크랩북 등을 만든다.

 

글  살바 루비오(Salva Rubio)
살바 루비오는 1978년 스페인 마드리드(Madrid)에서 태어났다. 시나리오작가, 작가, 역사가다.
역사물 기획이 전문으로, 스페인작가출판협회(SGAE)가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 ‘Julio Alejandro’의 결승전에 진출하기도 했다. 시나리오작가로 활동하며 많은 상을 받았으며, 2010년에는 그의 단편영화 중 하나가 스페인 세자르상에 해당하는 고야상(los Premios Goya) 예선에 진출했다.
마드리드 카를로스Ⅲ대학에서 영화와 텔레비전 시나리오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단편영화뿐 아니라 장편 애니메이션 〈딥(Deep)〉(2017) 등 스페인 소재 영화제작사의 다양한 기획에 참여했다. 작가로서 다양한 창작물과 각색 작품을 발표했으며 서사에 대한 강의도 한다.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모네, 빛의 노마드(Monet, Nomade de la lumièe)》에 이어 만화 시나리오작가로서 두 번째로 출간한 그래픽노블이다. 아마추어 화가이자 삽화가이며 여가를 이용해 재즈 트럼펫 연주를 한다.

 

옮김 문박엘리
서울에서 자라 학교를 다녔으며 대학 졸업 후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했다. 철학과 언어학을 공부했으며 일반회사와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했다. 인간과 자연과 우주 만물의 연계에 대해 관심이 많으며, 옮긴 책으로 《프랑스 아이의 과학 공부》, 《생물의 다양성》이 있다.

 

‘재미있는 과학 읽을거리’를 표방하며 《아시아경제》 온라인판에 인기리에 연재된 [과학을 읽다]가 책으로 엮여 나왔습니다. 2018년 1월 3일부터 2020년 5월 7일까지 만 28개월간 하루 한 꼭지씩 독자를 만난 수많은 기사 중에서 건강한 삶을 위해 상식으로 알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 좋을 정보들, 우리 몸과 관련된 궁금증을 풀어주는 지식들을 가려 담았습니다.


코로나19로 일상의 풍경이 바뀌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 어떤 명약과 획기적인 치료도 예방만 못하다고 강조합니다. 손을 자주 씻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기침예절을 지키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기본입니다. 《1분 과학 읽기》는 혼란한 일상 속에서 몸을 지키고, 팬데믹 시대에 삶을 지키는 방법을 쉽고 재미있게 들려줍니다.

 

1분 과학 읽기

[건강·의료편]

내 삶을 지키는 쉽고 재미있는 과학 50

 

 


바쁜 일상에서 몸을 지키는 1분 건강 읽기

《1분 과학 읽기》 1부는 건강편입니다. 현대인은 언제나 수면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학생들은 공부에 시달리고, 직장인은 과다한 업무와 잦은 야근에 시달립니다. 일상 속 스트레스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죠.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는데, 이는 뇌의 기능이 저하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수면 부족은 비만을 유발하기도 하고, 성장호르몬 분비를 저해시켜 청소년의 성장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하루에 8시간 정도 자는 청소년의 비만율은 8.8% 정도지만, 4시간 이하로 자는 청소년의 비만율이 13.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피로, 우울증, 암 등 수많은 질병의 근원도 수면 부족과 관련이 있습니다.

‘잠’과 ‘다이어트’ 같은 일상의 주제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과학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1분 과학 읽기》는 잠을 자고 또 자도 왜 피곤한지, 사람이 자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지, 살 안 찌는 체질이 과연 따로 있는지 등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질문에 답을 주면서 건강을 지키는 비결을 함께 알려줍니다. 논문보다 쉽고 교과서보다 실용적입니다. 무엇보다 재미있습니다.

다이어트를 해도 절대 빠지지 않는 3킬로그램은 무엇일까요? 오랜만에 운동하면 근육통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음식물의 칼로리를 꼼꼼히 따지면 살을 뺄 수 있을까요? 겨울철을 따뜻하게 보내는 간단한 비결은 무엇일까요? 저자는 기사에 담지 못한 정보와 숱한 자료를 덧붙여, 일상의 질문에 대한 과학적 답변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습니다. 《1분 과학 읽기》는 독자들에게 흥미롭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공부한 결과물인 동시에 우리 삶에 과학과 관련되지 않은 게 없다는 깨달음이 담긴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팬데믹 시대에 삶을 지키는 1분 의료 읽기

《1분 과학 읽기》 2부는 의료편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이 전 세계를 강타하며 우리의 일상을 바꿔놓았습니다. 확진자가 급증하며 삶이 불안해지면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고, 생활 속 방역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항균 기능이 있다는 스프레이 종류가 많이 팔리는 것도 달라진 풍경이죠. ‘항균 99.9%’라는 홍보 문구의 뜻을 소비자들은 ‘세균을 99.9% 없애준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코로나19 사태의 원인은 ‘바이러스(Virus)’입니다. 과연 항균 제품이 바이러스 제거에도 효과가 있을까요?

코로나19는 박쥐가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쥐는 21세기 들어 유행한 대형 감염병의 주요 숙주이기도 하죠. 2002년 유행한 사스는 박쥐와 접촉한 사향고양이나 닭을 통해 인간에게 바이러스가 옮겨졌고, 2012년의 메르스도 박쥐가 낙타에게 옮긴 바이러스를 인간이 낙타를 타면서 감염되어 유행시킨 것입니다. 인류와 줄곧 함께한 박쥐가 현대사회에서 주요한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밖에도 코로나19 사태가 유발한 의료 관련 질문은 무수히 많습니다. 사람의 몸에는 면역 체계가 있는데, 신종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손씻기, 마스크 착용, 기침예절 준수 등으로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수 있을까요? 공공장소에서 함께 쓰는 비누는 안전할까요? 미뤘던 개학이 감염을 줄이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요? 코로나19 시대에 필수인 마스크 때문에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도대체 언제쯤 가능할까요?

《1분 과학 읽기》는 우리 삶을 위협하는 코로나19에 관한 과학 지식을 알기 쉽게 들려줍니다. 바이러스와 세균이 어떻게 다른지, 바이러스에 대항해 인간의 면역 체계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그리고 신종 바이러스 백신 개발이 왜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에 관해 다양한 사진, 일러스트, 인포그래픽 등의 자료를 곁들여 알려줍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우리는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문제는 남습니다.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유전자 조작이 가능한 시대에는 합성생물학이 바이오안보를 위협하는 문제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이오안보와 같은 문제에는 세계적 대응이 필수적입니다. 정자·난자 없이 아이가 태어나는 시대에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연애와 사랑의 의미도 지금과 사뭇 달라질 것이 분명합니다.

《1분 과학 읽기》는 과학과 인문학이 함께 발전해야 하는 이유를 고민하게 합니다. 우리 삶과 동떨어진 과학은 없습니다. 모든 과학 지식이 우리의 일상과 직간접적으로 닿아 있습니다. 1분 과학 읽기는 ‘과학’ 그 자체를 건강한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교훈을 마음 깊이 남겨줍니다. 
 

 

▌지은이

김종화
경제 일간지 《아시아경제》의 기자다. 1990년대 초반 경남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사회, 정치, 경제, 외교 등 여러 분야를 취재하며 뉴스와 칼럼을 써왔다. 늦은 밤 호젓하게 아내 곁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새벽부터 기사를 써서 오전이면 마감하는 석간신문 기자인지라 강제로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문화, 예술, 역사에 관심이 많은 천생 문과 출신이지만, 지난 2018년 1월 3일부터 2020년 5월 7일까지 만 28개월간 [과학을 읽다] 꼭지를 맡아 쓰며 생물, 우주, 최신 기술, 의료, 건강 등 과학 테마와 씨름했다.
그 덕분에, 기자로서 독자에게 ‘똑바로 알릴 의무’와 ‘쉽게 알릴 의무’를 더 절실히 새기게 되었다. 앞으로도 쓸모 있고 재미있는 세상 소식을 매일 전하는 일에 매진하는 한편, 언젠가는, 탄탄한 과학적(!) 설정과 푹 빠져드는 스토리로 무장한 소설도 써보려 한다.

 


▌차례

 

서문

PART1 바쁜 일상에서 몸을 지키는 1분 건강 읽기

01 만병의 근원은 수면 부족?
02 자고 또 자도 피곤한 이유
03 사람이 자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은?
04 물만 마셔도 살찐다?
05 짜증은 갈증의 신호?
06 물도 많이 마시면 죽는다?
07 꿩 대신 닭, 물 대신 탄산수?
08 물 마시기도 타이밍이 중요
09 다이어트의 잘못된 상식
10 다이어트해도 절대 빠지지 않는 3kg
11 불포화지방산은 살찌지 않는다?
12 살 안 찌는 체질은 따로 있다?
13 다이어트와 공복 시간의 함수관계
14 ‘간헐적 단식’ 하다 ‘간헐적 폭식’ 한다?
15 탄수화물 좋아한 부모 때문에 아이가?
16 다이어터가 조심해야 할 세 가지
17 식품 포장지가 살찌게 한다?
18 오랜만에 운동하면 근육통이 생기는 이유
19 운동에는 ‘간격’이 필요해
20 칼로리 수치 맹신은 금물
21 칼로리 소모, 운동보다 정신 활동?
22 칼로리 잡는 ‘갈색 지방’의 비밀
23 겨울잠과 소변 볼 때 몸을 떠는 행동의 공통점은?
24 따뜻한 겨울 보내려면 목과 발을 지켜라
25 체감온도의 비밀


PART2 팬데믹 시대에 삶을 지키는 1분 의료 읽기

01 코로나는 바이러스, 콜레라는 세균
02 동물과 사람이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유
03 박쥐보다 못한 인간?
04 면역의 역설, 신종 바이러스에 당하는 이유
05 예방접종은 아이들이나 받는 것?
06 비말감염과 기침예절
07 미세먼지 저감대책, 효과 있을까?
08 공기정화 식물 믿기보다 창문 열어라
09 함께 쓰는 비누, 세균 없을까?
10 가정상비약, 1년 지나면 버려라?
11 개학 연기, 감염 줄이는 데 도움 되나?
12 마스크, 전자레인지로 소독한다고?
13 마스크 때문에 공황장애?
14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언제?
15 붕어빵 ‘아빠와 딸’의 비밀
16 아이 건강은 부모 하기 나름
17 카페인 분해 유전자의 비밀 임무
18 거북이 사람보다 오래 사는 이유
19 합성생물학이 바이오안보 위협한다?
20 바이오안보, 세계적 대응이 필요하다
21 엄마 몸 밖에서 아기가 무럭무럭
22 미래 생명, 정자·난자 없어도 된다?
23 ‘로봇 손’이 아픔을 느낀다
24 환상통 치료, 환자를 속이는 게임?
25 알레르기 유발 성분 함유 화장품, 발라도 돼?

 

참고 자료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분이 많으신 줄 압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이 요긴하게 쓰여 경제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데요. 지난 4일 기준으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률이 99%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출처 - 뉴시스


4일 0시 기준으로 긴급재난지원금 신청 가구 수는 누적 2151만 7017가구였으며 지급액은 총 13조 5427억 9700만 원으로, 지급 대상 전체 가구의 99.1%, 총예산의 95.1%에 해당하는 규모였습니다. 전체 지원금 중에 67.2%는 신용카드, 체크카드 충전 방식으로 수령됐다고 하며, 11.6%는 선불카드, 지역사랑 상품권 수령은 7.1%였다고 하죠. 지역사랑상품권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의 사용기한은 8월 31일까지이며 이 이후 잔액은 국고로 환수됩니다.


출처 - 뉴스1


지역 시장을 기반으로 소비가 진작되고 소비자들도 모처럼 소비할 수 있어서 기뻐했는데요, 보수 언론과 경제지들은 분탕질을 하려 합니다. 전체 가구의 99%가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아 가자 IMF 때 금모으기 운동처럼 자발적인 기부를 하지 않고 다 찾아갔다면서 훈장질입니다. 끝까지 신청하지 않은 금액이 기부금으로 전환될 경우 최대 7600여억 원밖에 되지 않는다며 볼멘소리죠. 애초에 긴급재난지원금이 무엇을 위해 편성된 예산인지, 어떻게 소비 진작으로 이어졌는지 관심이 없었나 봅니다. IMF 때도 국민이 자발적으로 모아준 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생각해보면, 과연 누굴 위한 기부였나 싶기도 하죠. 어쩌면 긴급재난지원금의 사용처가 경제지들에 광고를 주는 대기업에 쓸 수 없게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이와 더불어 3차 추경이 결정되자 '나랏빚'이라는 단어로 공포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국가 재정 건전성을 걱정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제목은 ‘나랏빚 사상최대인데 또 재정확장한다는 정부’ 비슷하게 걸립니다.


출처 - MBC


하지만 생각해보면 가계부채나 정부부채가 과거와 비교할 때 사상 최대가 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경제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는 데다 저금리 기조로 돈이 시중에 풀리고 있으니 그렇습니다. 경제가 발전하면 당연한 일인데 이걸 마치 엄청나게 큰일인 것처럼 호도하는 건 언론의 '특정한 목적'이 있는 설레발에 불과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물론 코로나발 경제위기가 별것 아니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고용지표를 보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고 우리나라 경제성장률도 –0.2%로 예상됩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한 건 IMF를 포함해 딱 두 해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IMF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로 예측했습니다. 이런 세계적인 혼란을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선방 중인 셈입니다. 그리고 사상 최대의 어려움 앞에서 사상 최대의 나라 살림을 꾸리는 건 당연한 대책이겠지요. 이렇게 준비하지 않는다면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걸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됩니다. 세 차례에 걸친 역대급 추경을 하더라도 국민과 기업을 살려야 국가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위기감을 조장하는 보수 언론의 걱정과 달리 우리나라의 신용도는 주요 신용평가 기관에서 모두 A급 이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재정 확대로 위기가 오는 건 선진국을 포함해 해외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집니다. 미국은 3700조, EU는 1000조라는 상상하기 힘든 금액을 경제 회복을 위해 쏟아부었습니다. 미국의 채무율은 2019년 104.26%에서 106.1%로, 독일은 61.69%에서 70.3%로 늘었고, OECD 국가 평균은 109.2%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채무율은 보수 언론이 '사상최대 나라빚 타령'을 하는 와중에도 2019년 37.92%에서 40% 수준 정도로 늘었을 뿐입니다. 

 

출처 - 프레스맨 / 2019년 통계

 

빚이 늘어나는 속도를 우려하는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으나 지나친 걱정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할 이유는 없습니다. 코로나 대응으로 선진국이 올해 국가채무비율이 17.2%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이보다 훨씬 적은 5.5% 수준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보수 언론이 진심으로 나라 살림을 걱정한다면 그 초점은 이 재정으로 어떻게 실물 경기를 살리고 이를 성장 동력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데 집중하길 바랍니다. 엉뚱한 곳으로 예산이 새지 않는지 감시하는 일은 물론 중요하지만, 단지 나랏빚이 는다는 사실만 부각하는 건 국민을 위하는 일도 아니며 경기를 부양에 좋은 영향을 주지도 못합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미국이 주식에, 일본이 저축에 쓸어 넣어 실물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을 보면 더욱 그렇죠.


출처 - 국민일보


정부는 지난 3일 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확정했습니다. 35조 3000억 원 규모로 세수 감소분 보전과 세제감면 뒷받침으로 11조 4000억 원, 한국판 뉴딜 등 경기 보강 패키지에 11조 3000억 원, 금융패키지 재정 지원에 5조 원, 고용 사회안전망 확충에 9조 4000억 원 등입니다.

 

출처 - KBS

 

저소득층과 중소기업,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11조 7000억 원의 1차 추경,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12조 2000억 원의 2차 추경 모두를 합한 것보다 많은 역대급 추경입니다. 시중에 유례없는 돈이 풀리는 만큼 정부의 바뀐 정책을 꼼꼼히 확인하고 최대한 활용하여 경기를 활성화하는 것이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행동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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