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었어야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죄송하게 생각하고 사죄드립니다."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에서 7중 추돌사고를 낸 광역버스 운전기사가 김씨가 경찰에 출석해 한 말입니다. 그는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신양재나들목 인근에서 차량 6대를 잇달아 들이받는 사고를 냈습니다. 버스에 직접 들이받힌 승용차에 타고 있던 50대 부부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추돌사고로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숨진 부부는 손주 출산을 3개월 앞두고 참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추돌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광역버스 기사 김씨의 졸음운전이었습니다. 졸음으로 아차하고 집중력을 잃은 사이 버스가 앞서 달리던 승용차에 돌진해버린 겁니다. 이 때문에 사고 초기에는 버스기사 김씨에 대한 대중의 비난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처한 상황이 밝혀지면서 여론이 반전되었죠. 사람이버티기 힘들 정도로 고된 스케쥴을 소화하며 운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김씨는 졸음운전으로 7중 추돌 사고를 내기 전 4일 동안 하루만 쉬었을 뿐 매일 15~18시간의 살인적인 근무를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사고를 낸 당사자로서 도의적인 책임은 져야 하겠지만, 5시간도 못 자고 매일 운전대를 잡고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는 상황을 보통 사람이 견딜 수 있을 리 만무합니다. 이번 사고가 김씨 개인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는 얘깁니다.



2017년 2월 개정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버스는 1일 운행 종료 후 연속 휴식시간 8시간을 보장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또한 1회 운행 후 최소 10분 이상, 2시간 이상 운행 시 15분 이상 휴식 시간을 부여해야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법은 멀고 관행은 가깝죠. 이번 7중 추돌사고를 낸 운전기사 김씨가 속한 오산교통은 노사가 합의한 근로시간조차 지키지 않았습니다.

 

운전기사 김씨는 사고 전 3달 동안 월 300시간 이상 파김치가 될 때까지 운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런 과도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조항에 따라 버스기사의 1일 운전 시간은 노사 합의로 결정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버스 회사들의 협정 근로 시간은 적게는 15시간에서 많게는 19시간에 달합니다. 많은 업계는 근로기준법 59조가 노동자들의 권익을 좀 먹고 야근을 권장하는 악법이 되어버렸다고 성토합니다. 

 

출처 - SBS

 

제59조(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업에 대하여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한 경우에는 제53조제1항에 따른 주(週) 12시간을 초과하여 연장근로를 하게 하거나 제54조에 따른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

 

1. 운수업, 물품 판매 및 보관업, 금융보험업
2. 영화 제작 및 흥행업, 통신업, 교육연구 및 조사 사업, 광고업
3. 의료 및 위생 사업, 접객업, 소각 및 청소업, 이용업
4. 그 밖에 공중의 편의 또는 업무의 특성상 필요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

 

강도 높은 노동을 하고도 월급으로 250만 원 받기가 어려운데 연속 운전 및 휴게시간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나면 회사뿐 아니라 운전기사 본인마저 과태료를 내거나 면허가 취소되는 등의 불이익을 당하게 됩니다. 이번 사고는 먹고살기 위해, 회사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밀려 운전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과로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인재였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고의 원인을 기사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졸음운전'이 아닌, 사측과 법의 구조적 문제로 노동자를 벼랑으로 내모는 '과로운전'으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출처 - SBS


안전을 비용으로만 생각하는 버스업계의 문제도 심각합니다. 지난 10일 영동고속도로 강천터널 빗길에 미끄러진 버스가 비상 회차로를 넘어와 반대 방향에서 마주오던 승용차를 덮쳐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친 사건이 있었죠. 이 사고는 닳고 닳은 타이어 때문에 브레이크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차가 미끄러지면서 발생했다고 합니다. 재생타이어를 사용하는 버스나 트럭으로 인해 발생하는 안전사고가 빈번한데요, 이윤을 남기기 위해 승객과 운전자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 더는 없기를 바랍니다.

 

차량 관리 문제 외에 도로에서 일어나는 사고에는 법적 미비함도 한몫합니다. 현행법상 길이 11미터가 넘는 대형버스는 자동비상제동장치와 차로이탈경고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하게 되어 있습니다. 11미터 규정은 버스 운송업체들의 영세성을 감안해 9~11미터 크기의 버스들 중 가장 큰 규격을 적용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번 경부고속도로 7중 추돌사고의 원인이 된 버스의 차체 길이는 11미터에서 딱 5센티미터가 작은 10.95미터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사고는 안전장치 의무 장착 대상에서 제외되어 일어난 경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업체의 영세성은 감안하면서 그보다 더 약한 노동자 개인의 처우는 왜 감안하지 않는지 의아합니다. 버스가 차로를 이탈했을 때 경고음을 내는 장치나 자동으로 비상제동하는 장치가 달려 있었더라면 이번 사고를 피할 수 있었거나 피해 규모가 훨씬 줄어들지 않았을까요?

출처 - 경향신문

 

이번 사고는 과로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인재로 얼마나 큰 참사가 벌어질 수 있는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또한 노동자의 권익이 바닥일수록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지를 보여주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기사가 충분한 월급을 받았다면, 법이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을 제대로 보장했더라면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었겠지요. 

 

문재인 대통령이 예산을 동원해 자동비상제동장치 등 관련 안전장치 장착을 서두르라고 지시했지만, 법적인 미비함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제2, 제3의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하는 일이 사회적 안전을 지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과로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한나라당이 박원순에게 서울 시장 자리를 빼앗긴 2011년 10.26 재보궐 선거 직후, 국정원이 SNS의 선거 영향력을 분석하여 2012년 총선, 대선의 승리를 위해 온오프라인에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를 장악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세계일보》가 폭로한 국가정보원 SNS 장악 보고서에 나오는 사실입니다. 

 

출처 - 세계일보

 

보고서를 보면 국정원이 집권여당의 선거 전략 기관처럼 운영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명백한 국정원법 위반이자 공직선거법 위반이며 이명박 정권 당시 민간인 사찰 의혹마저 재점화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합니다. 현재까지 검찰과 법원은 국정원이 독자적으로 댓글 조작 활동을 했다고 판단하고 있었는데요, 청와대 핵심부가 구체적으로 연루된 사실이 세상에 드러난 셈입니다. 국정원 댓글 조작으로 당선된 박근혜가 탄핵당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마저 벌어졌으니, 결국 지난 9년간 우리나라를 망친 몸통이 이명박이었다는 정황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봐야 하겠지요.


출처 - 세계일보


국정원 SNS 장악 보고서를 보면 각종 탈법과 비윤리적 방법을 이명박 정권 당시 거침없이 제안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정원은 출신 학교,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페이스북 활동을 강화해 총선을 대비한 튼튼한 뿌리 조직을 만들되 평시엔 평범한 곳으로 꾸미라며 치밀한 준비 작업을 교사했습니다. 트위터와 관련해서는 총선이 5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니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해 팔로워를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라는 등, 18대 대선을 앞두고 트윗과 리트윗을 통해 여론을 조작했던 것과 비슷한 방법들을 제안했습니다. 특히 팔로워가 많은 유명인사를 통해 국민 갈등을 부채질할 것을 제안하기도 해 트위터의 '초원복집화'를 꾀했음을 알 수 있죠. 듣보잡이었던 우익 논객들이 어디서 튀어나왔나 싶었는데 바로 이것 때문이었나 싶은 대목입니다.


출처 - 세계일보


2040세대의 야권지지 동조화 경향이 뚜렷하다며 선거에서 2040세대와 5060세대의 대결을 부추기고 2040세대가 SNS에서 투표 독려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도 섞여 있었습니다. 게다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허위사실 유포 등 불법행위를 일벌백계하고 야당 좌파의 법치 공권력 경시 풍조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야당, 좌파에 대한 표적 수사로 보일 소지가 있으니 수사 독려 사실은 보안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정말로 공명정대한 활동이라면 수사 독려 사실에 대해 보안을 유지하라는 지시를 할 필요는 없었겠죠. 이는 국정원 스스로 자신들이 하는 일이 불법임을 알면서도 저질렀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출처 - 세계일보


극도로 은밀하게 취급된 이 보고서는 2011년 매일 새벽 청와대 정무수석실로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준공된 연풍문에 근무하는 경찰관에게 국정원이 밀봉 문서를 맡기면 정무수석실 행정관이 출근하면서 수령하는 구조였는데요, 문서 접수대장 없이 수령을 확인하는 서명만 이루어졌다고 하니 떳떳하지 않은 문건임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행정관이 문서를 개봉, 분류해 정무수석에게 건네면 며칠 뒤 다시 행정관에게 문서가 돌아왔는데 이걸 파쇄하는 것까지가 그 행정관의 업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행정관이 2012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청와대 근무를 그만두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문서를 파쇄치 않고 틈틈이 빼돌렸습니다. 그 분량만 715건에 달한다고 하죠. 자기 이익을 위해 자신이 복무한 정부의 치부까지 빼돌렸다가 추후 세상에 드러난 셈이 되었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합니다.


출처 - 뉴스1


현재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 중입니다. 2심에서 국정원법, 공직선거법 위반 모두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3년이 선고되었으나 3심인 대법원에서 선거법 위반 여부를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한 바 있습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이번에 폭로된 국정원 SNS 장악 보고서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부인했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매주 이명박을 독대했을 원세훈. 그러니 이명박 전 대통령을 이 모든 조작과 선동의 배후라고 의심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추론 아닐까요?


출처 - 경향신문


현재 현직 검사 등이 포함된 국정원 개혁위 산하의 적폐청산 TF팀은 2012년 국정원 댓글 사건 등 주요 정치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재조사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NLL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수사
-국정원 댓글 사건
-문화계 블랙리스트 개입 의혹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박원순 제압문건 수사
-국정원 '좌익효수' 필명 사건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뒷조사 사건
-극우단체 지원 관여 의혹
-세월호 참사 관련 의혹
-노무현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사건
-이탈리아 해킹 프로그램 통한 민간인 사찰

 

이번 기회에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그동안 권력의 개가 되기를 자처한 기관들과 그 배후 정치인들을 발본색원하여 앞으로는 정치 공작과 개입, 국민 분열을 선동하는 일이 없게끔 조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한 적폐청산 TF임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인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자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 국세청이 개혁의 첫 타깃으로 갑질의 온상이었던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를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공정위가 BBQ 치킨을 대상으로 고강도 사정의 칼을 뽑아 들자 치킨값 인상을 바로 철회하기도 했죠. 한편 검찰은 20대 여직원을 강제로 추행한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의 최호식 회장과 갑질 및 횡령 논란이 있는 미스터피자의 정우현 회장에 대한 수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최 전 회장은 지난달 3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일식집에서 20대 여직원 A 씨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 혐의(강제추행)와 이후 A 씨를 강제로 호텔로 데려가려 한 혐의(체포)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 전 회장이 피해 여직원과 3억 원에 고소 취하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죠. 지난 21일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인정해 합의한 것이 아니라 사업 매출상 불이익 등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어쩔 수 없이 합의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성추행은 피해자의 고소·고발이 있어야 조사할 수 있는 친고죄가 아니라는 입장에서 경찰은 조사를 진행하여 지난 23일 강제 추행 등의 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동종 전과가 없고 합의가 이뤄져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구속영장을 반려하고 불구속 수사하도록 지휘했습니다. 이에 경찰은 보강 수사를 거쳐 지난 28일 기소의견으로 최 전 회장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있는 자들의 갑질은 우리 사회에 깊고 넓게 박혀 있어 힘겨운 싸움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출처 - JTBC


한편 피자업계에서 유명한 미스터 피자의 정우현 회장은 가맹점에 치즈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동생 아내 명의로 된 회사를 끼워 넣어 50억 원대의 '치즈 통행세'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부당한 갑질에 항의해 탈퇴한 가맹업자들에게는 치즈 구매를 못 하게 방해하고 인근에 직영점을 개설해 덤핑 공세로 보복 출점을 한 혐의도 받고 있죠. 이뿐이 아닙니다. 정 회장은 미국 국적인 딸을 비롯해 친인척을 그룹 직원으로 이름만 올려놓고 30~40억 원대의 급여를 받게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 회장은 현재 배임, 횡령 등 총 100억 원이 넘는 금액에 대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으로 손꼽히는 서울대도 갑질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대학과 대학원 역시 위계와 위력에 의한 갑질이 일어나기 참 쉬운 장소입니다. 지난 4일 서울대 2017년 2학기 강의계획 명단에 H 교수의 전공 수업 강의 시간과 장소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이 교수가 학생들에게 갑질과 폭언을 일삼은 사실이 확인돼 지난달 학교 인권센터로부터 정직 3개월의 중징계 권고를 받은 사실이 있고, 학생들과의 분리 조치도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서울대 측은 징계위원회가 최종 징계 결정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버젓이 강의계획을 잡아줬습니다. 3개월 정직은 파면, 해임 다음으로 무거운 중징계입니다. 이미 확인된 사실까지 애써 무시해가면서 제 식구 감싸기에 열을 올리는 당국의 모습이 참 가관입니다.


출처 - 일요신문


전국 단위의 크고 높은 곳만 갑질을 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청년창업 성공신화로 잘 알려진 농수산식품유통업체 '총각네야채가게'의 갑질이 폭로되었기 때문입니다. 총각네야채가게의 이영석 대표는 직원 및 가맹점주들에게 폭언 및 강압을 일삼은 것은 물론 보복출점과 물품 밀어넣기 등 가맹점에 할 수 있는 온갖 갑질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대표는 트럭 행상으로 시작해 맨주먹 성공신화를 이뤄낸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죠. 그의 일대기가 드라마와 뮤지컬 등으로까지 제작되기까지 했습니다. 밑바닥부터 올라온 그가 자신을 믿고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대기업 프랜차이즈식 갑질을 벌여 파산시켰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총각네야채가게 사건은 우리 사회에 갑질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알게 해주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갑질' 하면 대한민국 국회가 빠질 수 없겠죠. 지난 3일 국회 설비과는 직원 내부게시판에 의원회관 승강기 이용 안내문을 올려 청소 노동자들이 작업할 때나 물건을 옮길 때 비상용 승강기를 이용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의원회관 내 비상용 승강기는 전체 26대 승강기 중 4대에 불과합니다. 신문 배달같이 청소 노동자들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줄이 늘어서 청소 노동자들의 작업에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리게 됩니다. 시행 이틀 동안 실제로 그랬다고 하죠.


출처 - 오마이뉴스


그나마 익명의 자보에서 국회의 갑질을 조금이나마 희석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승강기 갑질 논란이 알려지자 국회 내 과반수의 엘리베이터에 위와 같은 자보가 붙었습니다. A4 크기의 용지에 의원실을 위해 애쓰는 노동자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며 엘리베이터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적었습니다. 어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든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는 말도 함께 적었습니다. 표창원 국회의원을 비롯한 여러 국회의원이 승강기 자보에 호응했습니다. 결국 국회 설비과는 청소 노동자들에게 비상용 승강기만 사용하라던 갑질 공지를 삭제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최근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의 횡포가 사회적 문제로 비화하면서 가맹사업법의 형사처벌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처리한 가맹사업법 위반 행위는 총 407건이었으나 형사 처분 중 하나인 고발 결정이 내려진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합니다. 과태료 부과가 108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고 42건, 시정명령 40건 등이었다고 하죠.


유명무실했던 공정거래위원회가 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취임하면서 프랜차이즈의 갑질을 뿌리 뽑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맹본부와 점주 사이 계약 내용을 폭넓게 공개하는 정보 공개를 통해 시장과 사회가 압력을 가할 수 있도록 만들고, 가맹점주들이 모인 사업자 단체의 역할 강화를 통해 가맹본부와 협상력을 높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서울경제

 

《서울경제》 보도에 따르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선두로 재벌개혁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갑질’과 관련한 분쟁조정 처리 건수가 급증했다고 합니다. 올해 상반기 분쟁조정 건수는 1242건으로 971건이었던 전년 동기에 비해 28퍼센트 증가했고, 접수된 건수도 1377건으로 2016년(1157건)보다 19퍼센트 늘었습니다. 분쟁조정이 성립된 사건은 모두 644건으로 피해구제 성과는 414억 원에 달했습니다.


처리 건수가 많이 늘어난 분야는 일반 불공정거래 분야와 프랜차이즈 등 가맹사업 거래 분야였습니다. 가맹사업 거래 분야 처리 건수는 356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52퍼센트 증가했고, 접수 건수도 처리 건수와 같은 356건으로 26퍼센트 늘어난 수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공정거래조정원 관계자는 "경제·사회적 약자 보호가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가맹점주 등 영세 소상공인들이 갑을 간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경향이 늘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 전역에 깊숙이 박힌 갑질 행태를 단속만으로는 근절하기 어렵습니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사회적 연대와 참여가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갑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 을들은 국회 승강기에 붙은 자보의 문구를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미안한 마음 절대 가지시면 안 됩니다." 을들이 연대하여 필요한 것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을 기억하는 1주기 추모식이 지난 지난 5월 28일 있었습니다. 하루 12시간 2교대라는 살인적인 근무에 쫓긴 스무 살이 채 안 된 하청노동자의 유품 가운데에는 컵라면 하나가 있었습니다. 밥 먹을 시간조차 없었던 그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모습이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죠.

 

출처 - 오마이뉴스

 

사실 김군의 죽음은 예상치 못한 참사가 아니었습니다. 생각비행이 출간한 《하청사회》의 내용 일부를 인용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김군 사망사고 1년 전 강남역에서도 비슷한 사망사고가 있었습니다. 원칙적으로 스크린도어 점검은 2인 1조로 진행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김군처럼 한 사람이 담당하고 있었죠.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점검 업무를 수주한 하청업체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극도로 인력을 축소한 상태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2인 1조 점검이란 애초에 불가능했습니다.

 

 

구의역 지하철 사고와 관련한 기본 근로 조건을 보면, 49개 역사의 스크린도어를 관리하는 직원은 6명으로 1명당 5개 역을 담당하는 셈입니다. 하나의 역을 점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개 두세 시간인데 반해 하루 평균 고장 신고는 40여 건에 달했습니다. 여름철과 겨울처럼 온도가 급격히 변하는 계절에는 최대 하루 200여 건 가량의 신고가 접수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황을 정확히 파악해서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지만, 서울메트로는 유사한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며 비정규직 근로자 개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서울시와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구의역에서 김군 혼자 스크린도어 점검 작업을 하고 있을 당시 서울메트로에서는 김군이 작업 중이라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청사회에서는 힘없는 을들에게 이러한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갑이 비용 절감을 위해서 시행하는 외주화란 결국 ‘위험의 외주화’를 포함하거나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청년 김군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서울시에서 8월까지 서울교통공사 등 투자출연기관에서 근무 중인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전까지는 개선했다는 게 고작 고용기간만 연장하고 처우는 비정규직 그대로인 무기계약직이어서,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중규직'이라는 비아냥도 있었죠.

출처 - 경향신문

 

'위험의 외주화'는 지하철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도처에는 위험을 하청업체로 떠넘기는 외주화가 만연해 있습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1주기 추모 행사가 있던 지난 5월 1일에는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이 넘어지면서 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사망한 작업자 6명은 모두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이었고, 중경상을 입은 25명 역시 대부분 협력업체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정규직 근로자가 휴식하는 법정공휴일에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쉬지 못하고 근무하다 참변을 당한 것이죠. 또한 5월 20일에는 인천공항에서 변전설비 정기점검을 하던 부산지하철공사 소속 간접고용 비정규직 근로자 3명이 감전사고로 크게 다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게 우리 사회 노동의 현주소가 드러나는 사건이었습니다. 재난의 현장에 본청의 정규직은 존재하질 않습니다.

 

출처 - JTBC


첨단산업에 속하는 스마트폰 제조 현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계적인 기업이 된 삼성전자, LG전자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젊은이 6명이 업체의 관리 소홀과 보건 조치 미흡으로 생산공정에서 쓰는 독극물인 메탄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시각을 잃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피해 노동자는 비정규직이 아니라 불법 파견이기까지 했습니다. 앞날이 창창한 20대가 시력을 잃은 것만이 아나라 심한 경우 뇌손상까지 입었다고 합니다.

 


출처 - JTBC

 

지난 6월 9일 열린 유엔인권이사회 총회에서는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실무그룹이 조사한 국내 대기업들의 인권 침해 현황을 담은 보고서가 제출되었습니다. 유엔 측은 메탄올 피해자 사례와 노조 탄압 등을 언급하며 원청 대기업들이 인권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6명의 노동자가 시력을 잃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 사이 본청의 정규직들은 과연 어떻게 지냈을까요? "이게 나라냐?" 싶을 정도로 별탈 없이 지냈습니다.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건의 경우 크레인 신호수로 일한 1명만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됐을 뿐 원청업체 관련자에 대한 영장은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스마트폰 공장 메탄올 실명 사건의 1심 판결은 불과 일주일 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 중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다. 6명이 눈을 잃고 뇌 손상을 입었지만 불법 파견과 메탄올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실명의 책임이 있는 업체 사장까지 모두 집행유예와 수십 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불법 파견사업주들도 집행유예에 끽해야 벌금 100만 원이 다였습니다.

 

6명이 앞을 보지 못하는 채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제대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는 이상한 노동 현실이 계속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보다 돈이 먼저이기에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제도와 장치를 불합리한 규제라고 우기는 기업가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뉴시스


지난 3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50회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 자리에서 영상메시지를 통해 제도는 물론 관행까지 바꿀 근본적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산업 현장의 위험을 유발하는 원청과 발주자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이는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더 이상 외주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원청과 발주자의 책임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긴 하나, 이런 내용은 다른 정권에서도 한 적이 있습니다. 말보다 실행이 중요하다는 점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산업재해를 당하는 노동자 중 하청업체 노동자 비율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인 만큼,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사람이 먼저다'라는 그들의 슬로건을 실행으로 증명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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