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캐비닛 문건이 화제입니다만 이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현 사태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된 문건들이 있었습니다. 검찰이 지난 2012년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탄생시킨 대선 당시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된 문건을 715건이나 확보하고도 이를 선거가 끝난 2년 뒤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에 고스란히 반납해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검찰은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한 사실을 파악하고 증거도 확보하고 있었으면서도 범인 혹은 공범인 박근혜의 청와대에 이를 갖다 바쳤습니다. 검찰 개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출처 - JTBC


2013년 검찰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 행정관 한 명은 국정원이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을 빼돌렸다며 기소를 했습니다. 빼돌린 국정원 문건은 2011년 10.26 재보선 두 달 전부터 작성된 것이고 서울시민의 민심을 얻기 위한 제안이나 야당의 동향에 대한 보고서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대체 국정원이 왜 서울시민의 민심을 얻는 제안을 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국내 정치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다면 말이죠.

 

문건을 입수한 검찰은 국정원이 국내 선거에 개입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아무런 수사를 하지 않고 1년 뒤 이 문건마저 고스란히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에 반납했습니다. 이러니 청와대, 국정원, 검찰이 짜고 선거 및 정치 개입을 고의로 은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충분히 나올 법합니다.


영화 제목처럼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인 것인지, 정권이 바뀌자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 재판과 관련하여 새로운 증거를 제출합니다. 생각비행이 일전에 언급한 바 있는 국정원의 〈SNS 선거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을 비롯한 문건들과 원세훈 녹취록입니다. 국정원은 2013년 수사 당시 회의 녹취록을 제출하긴 했지만 국가 안보에 민감한 부분이라며 내용을 임의로 삭제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출된 증거는 예전에 삭제된 내용이 복구된 자료입니다. 새로 제출된 증거들은 2011년 10월 26일 재보궐 선거를 전후해 선거에 대비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당시 국정원이 선거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하려 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출처 - JTBC


복구된 녹취록에서 원세훈은 "심리전이란 게 대북 심리전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민들에 대한 심리전이 중요하다" "심리전단 같은 곳에서 좌파들이 국정 발목 잡으려는 걸 차단시켜야 한다"고 말해 국민을 마치 첩보활동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물들을 찾아내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 출마를 시켜라"라며 국정원이 정보기관인지 대통령과 여당의 선거대응 조직인지 헷갈리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국정원 비판 기사에 대해서는 "그런 보도를 없애버리는 공작을 하는 게 여러분 할 일이다"라며 "잘못할 때 줘패는 게 정보기관 할 일이다"라는 저열한 의식의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습니다.

 

출처 - 뉴스1


현재 파기환송심 중인 원세훈은 이 같은 증거에 대해 자신은 지시하거나 보고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으며, 국정원 일은 국정원장 혼자 하는 게 아니라며 책임마저 회피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파기환송심에서 국정원이 댓글부대를 동원하여 선거에 영향을 끼친 혐의로 징역 4년, 자격 정지 4년을 구형했습니다. 하지만 겨우 이걸로 괜찮은가 싶습니다. 여기서 끝이어서도 안 될 일입니다.


출처 - 서울신문


국정원 댓글 조작의 최초 제보자인 김상욱 씨는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에서 생산된 보고서는 대통령이 결재하게 된다며 대통령의 암묵적인 지시가 아니라 직접적인 지시와 교감 없이는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국정원의 SNS 장악 보고서가 청와대에 보고되었고 당시 김효재 정무수석이 직접 검토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국정원에 23년간 몸담았던 김상욱 씨는 이 공익 제보로 삶이 파괴되었죠.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국정원에 고발을 당해 압수수색에 시달려야 했고 사람다운 삶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국정원 대선개입 댓글부대 운용에 대한 제보로 인한 고소 고발은 2016년 말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아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이제는 지난 정권들의 패악을 밝히고 잘못을 바로잡을 때입니다. 국정농단으로 나라를 파탄 낸 박근혜가 국정원의 대선개입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 국정원에 그런 지시를 내린 이명박에게 있음을 뜻합니다. 박근혜의 국정농단은 이명박의 국정농단을 발판으로 삼아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국정원 문건과 청와대 캐비닛 문건을 온전히 공개하여 이명박근혜 정권의 실정을 낱낱이 파헤쳐야 할 때입니다.

 

지난 박근혜 정권의 '개돼지' 발언에 이어 이젠 국민을 설치류인 들쥐 취급하는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사상 최악의 물난리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청주가 물에 잠긴 때 외유성 유럽연수에 나섰다가 이를 비판하는 국민들을 그냥 앞만 따라가는 들쥐의 일종인 레밍에 빗댄 자유한국당의 김학철 충북도의원 얘깁니다. 이번에도 자유한국당 의원입니다.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혁신이 어쩌고 해도 그 나물에 그 밥이기 때문이겠죠. 조기 귀국해 속죄의 의미로 수해복구 활동을 펼치고 있는 나머지 3명의 도의원과는 달리 김학철 도의원은 키보드 워리어처럼 자기 변명만 하고 있습니다.


출처 - 뉴스1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외유성 유럽연수에 레밍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무려 A4 용지 11장 분량의 헛소리를 올려 불에 기름을 붓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여론의 눈치를 살피다 김학철 도의원을 한 방에 제명하자, 그럼 현장에 안 나간 문재인 대통령도 탄핵하고 제명해야 되는 거 아니냐며 이상한 변명을 했는데요. 여기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금 대통령이라 불려지는 분'이라고 표현해 아직도 대선에 승복치 않고 박근혜만 붙잡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뒤틀린 현실 인식을 보여준다는 질타를 받기도 했죠. 이 밖에도 뜬금없이 세월호와 JTBC 손석희 사장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기도 해 대체 이런 자가 어떻게 공직에 앉아 있을 수 있는지 근본부터 의심하게 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지난 3월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대한민국 국회, 언론, 법조계에 광견병이 떠돌고 있다. 미친개들은 사살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한 경력이 있는 자였습니다.


출처 - 뉴스1


한편 비행기표가 없어 귀국이 늦었다는 김학철의 변명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김양희 충북도의회 의장이 국내 여론을 전하며 조기 귀국을 종용하자 내가 왜 돌아가야 되냐며 반발했고 나머지 의원들이 귀국했는데도 그는 프랑스 파리를 떠나 남부의 유명 관광지인 마르세유에 머물며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놀고 있었사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가 변명을 올린 페이스북에 그의 위치가 마르세유임이 빤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뭐 철 지난 박근혜의 무책임함과 변명을 다시 보는 느낌입니다.


출처 - 한겨레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더불어민주당 최병윤 충북도의원은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자유한국당 도의원 3명은 제명에 그쳤을 뿐 책임지고 사퇴할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출처 - 세계일보


이번 논란을 개인의 문제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의원들이 사실상 놀러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 해외연수에 국민의 세금을 들일 필요가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번 충남도의원의 해외연수가 자연재해인 폭우 상황이었기에 두드러지긴 했지만 사실 이런 외유성 해외연수는 다른 의원들도 한 번씩들 가기 때문입니다.

출처 - 거제뉴스광장

 

지난 5월 광주 서구 의원 6명은 복지행정과 도시재생 선진지를 방문한다는 연수 목적으로 스페인, 프랑스로 해외연수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계획에 있던 스페인의 쓰레기 소각 발전공장은 가지도 않았습니다. 패키지 여행 상품 일정에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지난 3월 제주도의회는 인구 급증에 따른 문제를 살펴보겠다며 인도로 연수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일정의 대부분이 관광지 탐방이었습니다.

 

지난해 기준 광역의원 한 명당 평균 200만 원 정도의 예산이 해외여행 경비로 책정되었고 전국 단위로는 17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관행적으로 예산이 책정되므로 안 쓰면 손해라는 식의 외유성 연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출처 - SBS


지방의회 해외연수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전무해 대부분 여행사를 통해 해외연수를 가고, 의원들도 연수가 아니라 의정활동에 대한 보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연수라면 목적과 효과에 대한 심사를 통해 가려내야 하겠지만, 이 심사는 100퍼센트 통과되고 있는 상황이라 사실상 유명무실합니다. 세금을 들여 다녀온 연수보고서는 대학생 레포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복사-붙여넣기 식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누구에게 보여주기가 낯뜨거울 수준입니다.


게다가 해외연수에 공무원들을 동행하게 하는 경우도 왕왕 있는데 이 또한 문제입니다. 도의원들의 해외 나들이에 술자리 응대 및 수행원 노릇을 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무원과 사무직 직원을 대동하는 겁니다. 그러니 공무원들은 의원들의 갑질에 넌더리를 내고 있습니다. 의원들이 공무원을 동행시키는 까닭에는 여비를 더 타내기 위한 꼼수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세금 도둑질에만 유능한 사람들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국민의 지탄을 면하려면 국내에서 제대로 된 의정활동이 기본입니다. 또한 해외연수가 제 기능을 하려면 유명무실한 의회 내 심사위가 제 기능을 해야 하겠죠. 이력, 제안서를 사전 검증하여 의정 활동에 큰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연수만을 허가해주고, 비용은 영수증을 첨부하면 투명히 밝혀진 사용 내역만큼만 연수비로 지금함이 마땅합니다. 아울러 해외연수 보고서에 대한 철저한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참에 해외연수 관련 제도를 강화하고 시민의 심사와 검증을 거치게 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수를 위한 돈이 떠나는 사람 개인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세금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생산한 문건이 쌓여 있는 일명 마법의 캐비닛이 청와대에서 발견되어 정국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에 따르면 7월 14일 민정비서관실에서 이전 정부에서 작성한 문건이 발견된 후 민정 총무비서관실에서 일제 점검을 시행했는데, 현재 국정상황실과 안보실 등에서 다량의 문건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간 발견된 전체 문건의 규모만도 약 2000여 건으로 마치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캐비닛이 문서를 마구 쏟아내는 수준입니다.


출처 – 〈브루스 올마이티〉, 유니버설 스튜디오

 

이 문건들은 2014년 3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작성된 것들로, 당시 민정수석은 법꾸라지 우병우였습니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은밀히 지원한 치부도 다수 적혀 있는 것으로 파악되어 이후 국정농단 및 우병우 재판에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 많은 문서 중에는 '삼성물산 합병안에 대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방향'이라는 문건도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개입할 것인지, 정부가 개입한다면 의결권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관한 내용과 더불어 정부가 대기업을 지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위원 구성을 신중히 하고 관계 부처가 한목소리로 대응해야 한다는 표현도 들어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삼성을 위해 국민연금 의결권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죠. 

출처 - 경향신문

 

또한 '국민연금 의결권 관련 조사'라는 문건에는 삼성 경영권 승계 국면을 기회로 활용,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이라는 대목이 나와 박근혜가 국민연금의결권 등을 이용해 이재용 삼성 그룹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왔을 것이라는 정황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국정농단 재판과 관련해 박근혜가 이재용으로부터 경영권 승계 작업을 도와달라는 부정 청탁을 했느냐는 사실과 더불어 뇌물 298억 원을 받은 혐의가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발견된 이전 정부의 문건 중 국정농단과 관련해 범죄 사실과 상관 있는 문건들의 사본을 특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출처 - JTBC


이번에 발견된 문건을 통해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와 관련해 천인공노할 지시를 내린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무능함과 무책임이 고스란히 드러났던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는 세월호 특조위를 무력화하라는 명시적 지시를 내렸음이 이번 수석비서관 회의 정리 문건을 통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언론과 협조해 세월호 유가족 개개인의 일탈 행위 등을 부각하여 세월호 특조위 자체를 무력화하라는 비열한 주문도 서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심증은 당시에도 있었지만 세월호 특조위를 청와대가 앞장서서 무력화하려 했다는 구체적 정황이 드러난 건 이번 문서가 처음입니다.


보수논객 육성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내용이 담긴 문건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박근혜 정권에서 편향된 특정 이념 확산을 직접적으로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입니다. 또한 카카오톡 검색 기능과 관련해 좌편향적인 자동연관 검색어 논란이 있으니 이를 개선토록 하라는 주문도 보입니다. 참 별것을 다 집적거렸구나 싶은 대목입니다.


자신들 편에 서지 않는 지자체에 대해 직접적 보복을 불사하는 문건도 나왔습니다. '중앙정부, 서울시 간 갈등 쟁점 점검 및 대응방안'이란 문건에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정부가 무조건 반대한다는 프레임이 작동하지 않도록 하면서 서울시 계획을 부당하다고 몰아가야 하며, 박원순 서울시장이 청년 수당 지급을 강행하면 지방교부세 감액 등 불이익 조치를 하라고 지시하는 문건도 발견되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 모든 문서가 우병우가 민정비서관, 민정수석일 당시 생산된 것들이어서 국정농단 사건을 교묘히 빠져나갔던 법꾸라지 우병우를 이번에는 감옥에 집어넣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현재 우병우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잡아떼고 있습니다. 이에 특검은 청와대 캐비넷 문건을 작성한 전직 행정관들을 이재용 재판에 증인으로 불렀습니다. 삼성 승계를 비롯한 문건들을 상부의 지시로 청와대 행정관들이 작성한 것일 테니 이번에 우병우의 직권 남용 사실과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도운 혐의가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래선지 박근혜, 최순실 변호인은 캐비넷 문건을 검찰이 기습적으로 증거로 제출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이죠. 

 

한편 국정농단의 수괴인 박근혜를 따르던 자유한국당은 캐비넷 문건에 대해 대통령기록물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공개했다며 브리핑을 한 대변인을 고발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문건들이 대통령기록물인지 불분명할 뿐더러 대통령기록물에 속한다 하더라도 지정기록물을 제외하고는 열람이 가능합니다. 지정기록물은 국회의 인준과 법원의 영장이 있어야만 볼 수 있죠. 그런데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대통령 지정기록물의 목록까지 지정기록물로 지정하는 해괴한 짓을 해놓은 바람에 캐비닛 문건이 지정기록물인지 아닌지도 현재로선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지정기록물의 지정은 문서 생산 당시 대통령이 각 문서마다 개별적으로 이관하기 전에 보존기간을 정하는 방식으로 하게 돼 있으므로 그런 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캐비닛 문건은 지정기록물이 아니라는 전문가 의견이 있는 만큼, 황교안의 꼼수는 스스로의 발등을 찍은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박근혜, 이재용, 우병우 등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들 때문에 미궁으로 빠질 뻔한 국정농단 재판에 탄력이 붙게 되어 다행입니다. 국정농단의 주범들이 최종 판결을 받아 죗값을 치르고 부정한 방법으로 취한 이득을 모조리 토해내게 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닙니다. 국정농단 세력의 꼼수가 통하지 않도록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최근 코엑스에 가보신 분들은 확 바뀐 풍경을 보셨을 겁니다. 움푹 패인 광장의 빛나는 기둥에 책들이 별처럼 꽂혀 있는, 마치 외국의 대형 도서관과도 같은 멋진 풍경말입니다. 신세계가 코엑스몰을 인수하며 원래 복층 광장이었던 쇼핑몰 한복판에 60억 원을 들여 만든 별마당도서관 얘깁니다.

 

지하와 1층을 잇는 높이 13미터의 세 기둥과 1층 기둥 사이를 두고 늘어선 책장에는 총 5만여 권의 책이 꽂혀 있습니다. 시사지부터 잡지, 공공 도서 등 다양한 책을 도서 검색대에서 찾아 읽을 수 있으며 때때로 오케스트라 연주 같은 상설 무대도 열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원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많은 사람이 이동하던 경로에 설치되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는 확실히 성공한 듯합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별마당도서관에 대해서는 찬반 여론이 엇갈립니다. 새 책을 쉽게 접할 수 있고 문화 생활을 즐기기 위한 곳에 있어 오래 머물다 갈 수 있다며 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식당가를 지나치게 되어 있는 상업성인 공간에 있어 시끄러워 책을 읽을 환경으로는 적합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멋진 도서관이라는 감상부터 이곳은 관광지이지 도서관으로 볼 수는 없다는 평가까지 여론의 폭이 폭이 꽤 넓은 편입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별마당도서관은 일본 사가현의 다케오 시립도서관을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 인구 5만 명 남짓의 작은 마을인 다케오는 시장이 도서관에 과감히 투자를 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죠. 공공 영역이 발벗고 나서 도서관에 투자한 결과 어떤 결실을 보게 되는지를 보여준 성공적인 사례라고 하죠. 이 때문인지 우리나라 지방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북도청은 350억을 들여 신도시 중심부에 71만 권의 장서가 들어갈 수 있는 경북도서관을 만들겠다며 지난 6월 첫삽을 떴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국내 최대 규모의 서점인 교보문고도 리모델링을 통해 서점의 도서관화에 앞장섰죠. 독서하는 서점을 기치로 내걸고 독서 대중화에 앞장선 기업으로서 사회공헌의 귀감으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나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합니다.

 

한 페이스북 계정에는 대형 서점의 도서관화에 뿔난 사람이 올린 게시물이 1000개가 넘는 공감을 얻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요점은 이렇습니다. 서점에 비치된 책은 출판사가 판매 목적으로 위탁한 상품이기 때문에 손때가 묻거나 더러워지면 반품이라는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책은 수많은 출판사가 만드는데 독자들과의 접점인 대형 서점이 돈도 벌고 좋은 이미지를 가져가는 상업성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이 게시물에는 견본 책은 서점의 서비스인 줄 알았다거나 서점이 훼손된 책을 책임지는 줄 알았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습니다. 한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최대 100인이 이용할 수 있는 독서 탁자가 설치되면서 5만 권의 책이 꽂힐 책장이 사라진 데 대한 출판계의 아쉬움도 많이 있었죠. 이에 대해 교보문고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표명합니다. 독서 테이블 때문에 출판사 피해가 심각해졌다고 보기 어렵고, 심하게 훼손된 책은 반품하지 않고 독서용 견본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출처 - 뉴스1


대형 서점은 행복한 고민을 하는 경우가 그나마 많지만, 지역의 작은 책방들은 사정이 전혀 다릅니다. 책방으로는 유일하게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공씨책방을 둘러싼 소송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공씨책방은 1972년 경희대 앞에 처음 문을 연 국내 1세대 헌책방입니다. 1991년부터 신촌 인근에 정착해 운영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건물주로부터 임대료를 250퍼센트 올리지 않으면 퇴거하라는 요구 때문에 쫓겨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공씨책방은 문화재 지정까지는 아니어도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기에, 미래세대에 남겨줄 가치가 있는 유무형유산을 말하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난 2014년에 서울시가 지정한 바 있습니다. 건물주는 공씨책방 자리에 카페를 열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건물주는 법원에서 조정한 임대료 인상 차액을 서울시가 지원하겠다고 했는데도 이를 거부했습니다. 공씨책방은 건물주를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임대료를 낼 계좌번호조차 알려주지 않아 법원에 공탁한 상태입니다.

 

전반적인 정황을 보면 건물주의 횡포에 공씨책방이 시달리는 모양새입니다. 현재 재판부는 임대료 감정을 기초로 최종 중재안을 내놓겠다고 밝힌 상태여서 공씨책방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견물생심이라는 말처럼 화려하고 더 예쁜 것에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상가 안에 볼거리로 책을 들여놓았더라도 이를 통해 사람들이 책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갖게 된다면 바람직한 일이겠지요. 그렇지만 대형 마트가 들어서면서 골목 상권이 죽어버리는 아픔을 겪은 곳이 많이 있고, 소상공인이 오랜 시간 피땀을 흘려 일궈놓은 상권이 건물주의 탐욕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공멸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므로 책을 둘러싼 문화도 상생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책을 활용한 화려한 마케팅이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책 문화로 이어지고 있는지, 출판계 전체가 상생하는 구도로 가고 있는지 잘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대형 서점, 지역 서점, 헌책방이 상생하지 않고서는 출판계의 미래가 불투명합니다. 번잡하고 화려함에 지칠 때면 가까운 동네 도서관과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해보시길 권합니다. 생각보다 즐길 거리가 많습니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보물 같은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지요. 이번 주말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이 아닌 한적한 곳에서 한 권의 책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오늘 생각비행이 펴낸 《키워드 오덕학》이 2017년 상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다는 반가운 통보를 받았습니다. 오덕 문화에 대한 책이 많이 팔릴 리 없겠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출간했는데 예기치 않은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책을 구매하여 공공 도서관과 기관으로 보내게 되므로 더 다양한 곳에서 《키워드 오덕학》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공공 도서관에서 생각비행 책을 자주 만나실 수 있도록 사회에 도움이 되는 책을 더욱 열심히 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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