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나 직책은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합니다. '피겨의 여왕 김연아'처럼 특정인을 설명하는 표현 역시 한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압축해 전달합니다. '국민 여동생' 같은 말을 들으면 그가 어떤 일을 해온 사람인지 머릿속에 바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권경애 변호사는 '불출석 변호사'로 불리게 됐습니다. 소송 대리인인 권경애 변호사가 재판에 세 차례나 출석하지 않아 항소가 취하되게 했기 때문입니다. 소송 당사자는 억장이 무너질 판국인데, 권경애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정직 1년 처분을 받는 데 그쳤습니다.

 

출처 - 뉴스1

 

고 박주원 양은 학교 폭력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엄마 이기철 씨는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2016년 서울시와 학교법인 및 관계자, 학교폭력 가해자 등 38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딸이 겪은 학교폭력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수년간 이어진 재판 끝에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패소한 피고인이 항소했는데 원고 이기철 씨의 소송 대리인인 권경애 변호사가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변론기일에 세 차례나 불출석해 소 취하로 원고 패소 판결이 났습니다. 권경애 변호사는 이런 사실을 이기철 씨에게 5개월이나 숨겼죠.

 

출처 - 미디어오늘

 

이기철 씨는 4월 6일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권경애 변호사는 첫 번째는 쓰러져서 못 갔고 두 번째는 날짜를 다음 날로 수첩에 잘못 적어놔서 못 갔고, 그렇게 두 번을 못 가서 취하됐다고 했다"며 "그러나 내가 알아보니 두 번이 아니고 세 번이었다. 그래서 1심에서 일부 승소로 처리된 사건이 패소로 처리됐다"고 억울한 마음을 피력했습니다. 변호사로서 과정과 결과는 물론 변명까지 너무 황당해서 피고 측과 짜고 불출석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사안입니다.  딸을 먼저 보낸 것만으로도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이기철 씨 입장에서 1심에서 일부 승소한 재판 결과가 뒤집혀 패소가 확정됐으니 얼마나 억울할까요? 이젠 소송 비용까지 모두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기철 씨가 권경애 변호사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자 "그러면 나는 매장된다. 그것만은 봐달라"고 사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출처 - 대한변호사협회

 

권경애 변호사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건을 수임받았으며 대체 무슨 마음으로 세 번이나 변론기일에 불출석한 걸까요? 자신의 잘못으로 소송 당사자가 사과를 요구했는데 어떻게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지, 당최 모르겠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대한변호사협회는 권경애 변호사에 대해 "성실의무 위반의 정도가 중하다"며 정직 1년의 징계를 내렸습니다. 비슷한 다른 사례보다 무거운 징계라고 하지만 권 변호사 때문에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피해자에게 정직 1년 결정이 과연 위안이 될까요?

 

출처 - MBC

 

안타깝게도 피해자인 이기철 씨는 대한변협의 징계 결정에 대해 불복조차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반면 권 변호사는 이의신청과 행정소송 등으로 징계를 감경받을 길이 열려 있다죠. 피해자의 억울하고 참담한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30일 이내에 권 변호사가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징계는 확정됩니다. 7월 말 징계가 확정될지 아니면 권 변호사가 이의신청을 해 징계수위를 낮추려고 시도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10건이 넘는 논물을 표절해서 해임된 서울대 교수가 소송 끝에 강단에 다시 서게 됐습니다. 표절은 맞지만 서울대가 징계 절차를 잘못 밟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표절한 논문에는 자신이 지도하는 대학원생 논문도 있었습니다. 표절 사실은 대학원생이 힘들게 밝혀냈다고 하죠. 

 

출처 - 한국일보

 

2013년 서울대 대학원생 모 씨는 자신의 지도교수인 국문과 박 모 교수의 표절 사실을 파악하고 자신의 석사 논문을 포함해 여러 건의 표절 사실을 학교 측에 알렸습니다. 이때 제대로 조치가 취해졌다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지는 않았겠죠. 학교에서 별다른 조치가 없자 대학원생 모 씨는 2017년 직접 박 교수의 논문 20건을 분석해 1000 쪽 분량의 표절 자료집을 만들어 공론화에 나섰습니다.

'소년이 잘못 하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잘못 하면 대학원에 간다'는 농담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대학원생은 사람이 아니라는 식의 농담도 많습니다. 대학원 생활이 그만큼 고단한 과정이라는 점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들이죠. 학문에 뜻이 있어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에게 본인이 공부한 분야에서 이미 한 획을 그어 교수를 하고 있는 지도교수는 대학원생의 인생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입니다. 표절 사실을 발견했다 해도 감히 나서지 못할 수도 있는데 한 대학원생이 표절 자료집까지 만들어 고발하는 용기를 낸 것입니다.

 

출처 -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

 

출처 - SBS

 

그제야 조사에 착수한 서울대는 연구진실성위원회에서 논문 12건을 중대한 표절로 판정한 뒤 박 교수를 해임합니다. 표절 사실을 알고 난 뒤 해임 결정을 받기까지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인생을 걸고 싸움을 이어간 대학원생이 받았을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표절 당사자인 박 교수는 해임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겨 먹은 위인이니 표절을 그렇게 해댔겠죠. 정작 놀라운 점은 1심, 2심 그리고 지난 3월 대법원까지 모두 박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는 사실입니다.

 

출처 - SBS

 

논문의 표절 사실은 확실하게 입증이 됐습니다. 표절한 교수가 맞습니다. 그런데 서울대가 논문 표절을 판정하기 위해 연구진실성위원회를 구성할 때 조사위원 과반을 해당 전공자로 채워야 한다는 자체 규정을 어긴 절차적 과실이 문제가 됐습니다. 행정 처분의 절차적 하자가 중대할 경우 실제 내용과 관계 없이 위법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라고 합니다.

 

출처 - SBS

 

법원의 판단을 잘못됐다고 마냥 욕할 수는 없습니다. 서울대가 스스로 만들어놓은 규정, 지키기 어려운 규정도 아닐 텐데, 그걸 어겨서 다 된 밥에 재 뿌린 격이 됐으니까요. 결국 서울대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최근 박 교수의 해임 취소를 통보했습니다. 어쩌면 일부러 그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왜냐하면 판결이 확정된 지 3개월 안이라면 대학 측이 제대로 절차를 밟아 다시 징계 의결을 할 수 있는데도 기다렸다는 듯 해임 취소 통보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표절 피해자이자 공론화 당사자인 대학원생에게 늦게 알렸습니다. 3월 말에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 시효가 아슬아슬한 6월 초에나 알려준 겁니다. 서울대 측은 "관련 분야를 국문학으로 좁혀서 볼 것인지 아니면 어문학 계열로 넓혀서 볼 것인지의 문제"라며 "국문과 교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위원으로 들어가면 이해충돌이 생길 우려 때문에 연진위에서 그렇게 판단한 것 같다"고 해명했습니다.

 

출처 - SBS

 

정말 놀랍습니다. 국내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서울대학교가 명성에 심각한 흠집을 남길 수 있는 문제를 이렇게 미적지근하게 대응했다니 말입니다. 대학원생을 자신의 논문을 위한 재료 정도로 여겼다고밖에 볼 수 없는 교수를 내부의 실수로 해임하지 못하게 됐다면, 이를 바로잡기 위해 3개월 동안 기민하게 움직였어야 하지 않을까요? 위원회에선 언제까지 검토 중이라고 할 건지 모를 일입니다. 표절의 피해자가 된 사실도 억울한데, 관련 소송으로 인생의 방향이 크게 틀어진 피해 대학원생은 앞으로 누구에게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을까요? 논문을 표절하고도 다시 강단에 서게 된 표절 교수에게 배워야 하는 국문과 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걸까요?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제자의 논문까지 표절해 해임됐다가 요행으로 복직한 표절 당사자 교수가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어떤 얼굴로 대할지 궁금합니다.

심리학에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사람이 문제를 해결할 때 간단하고 노력이 덜 드는 방법으로 하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문제를 간단히 해결하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에너지를 적게 쓰고 빨리 결정하고 행동해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기에 인류의 뇌가 이런 식으로 진화하지 않았을까요? '사과'라는 단어 대신 5~10cm 정도의 둥근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주로 빨갛거나 노란빛을 띠는 과일이라고 매번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이처럼 '단어'는 길게 설명해야 하는 개념을 한 번에 인식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정치, 사회적 이슈를 정의하는 단어에 따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틀이 달라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프레이밍 효과'는 특히 언론 미디어에서 자주 활용됩니다. 신임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이 유력한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의 아들이 학교 폭력 논란에 휩싸인 사실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당시 학교에서 학폭위를 열지 못하도록 이동관 특별보좌관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동관 특별보좌관은 2011년 하나고 1학년에 다니던 아들과 피해 학생 사이에 "상호 물리적 다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일방적 가해는 아니었으며 당사자 간 사과와 화해가 이뤄졌다"고 해명했습니다. 학폭 피해자 중 한 명 역시 최근 언론에 "사과를 받고 1학년 1학기에 화해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2012년에 작성된 진술서에 등장하는 피해자는 4명입니다. 이 특보는 입장문에서 나머지 3명과도 화해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출처 - MBC

 

당시 학폭위가 열리지 않은 이유로 "학교폭력사안대응기본지침에 따르면 담임교사가 자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으로 규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지침은 '가해 행위로 피해 학생에게 신체, 정신 또는 재산상 피해가 있었다고 볼 객관적 증거가 없어야 한다'와 '학교폭력이 지속적이지 않아야 한다'라는 점을 자체 해결 조건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2~3회 꼴로 때렸다", "책상에 머리를 300번 부딪히게 했다"는 내용이 피해 학생 진술서에 명확히 들어가 있는 이상 학폭위는 반드시 열렸어야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학교 폭력의 줄임말인 '학폭'은 학교에서 학생 간에 일어나는 각종 폭력 사건을 통칭합니다. 그런데 "물리적 다툼은 있었으나 학폭은 없었다"고 하니 흥미롭지 않습니까? 음주운전 사고를 낸 사람이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요? 정치 관여,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현천 전 국군 기무사령부 사령관이 최근 법원에 보석을 청구했습니다. 조현천은 2017년 2월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국민들을 쓸어버릴 계엄령 문건 작성 의혹의 핵심 인물이죠. 당시 기무사령관이었던 조현천 중장이 기무사 3처장이었던 소강원 준장을 불러 계엄령 발동 요건, 선포 절차, 과거 계엄 발동 사례 등에 대한 자필 보고서를 써오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내용의 보고서가 나오자 화가 난 조현천은 소강원 처장을 다시 불러 '한민구 국방부장관께서 현 위중한 상황을 고려하여 위수령이나 계엄 관련 절차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며 보고서 작성을 다시 명령했다고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에 소 처장은 인터넷 망은커녕 군 인트라넷 망도, 기무 인트라넷 망도, 군용 PC도 없는 기무사령부 수사단 208호실에 모여 비상계엄과 관련한 디테일한 지침을 작성했다고 합니다. 승인되지 않은 비인가 개인 노트북과 USB로 작성된 계엄 문건은 장관에게 보고된 뒤 모두 포맷됐고 문서가 담긴 USB 하나만 남겼습니다.

 

출처 - MBC

 

법원은 기무사가 비정상적이고 위법적인 방법으로 계엄 문건을 작성하고 그 내용 역시 통상적인 계엄 상황을 넘어서는 정치적 연금, 국회 해산 등의 위법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했습니다. 게다가 계엄 문건 작성은 기무사 임무 범위 밖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프랑스어 '쿠데타'는 군사적 힘을 동원하여 정권을 빼앗으려고 갑자기 벌이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대통령을 탄핵하네 마네 하는 정치적 혼란 상황에 기무사령부 군인이 계엄 문건을 이상하리만치 자세하게 작성하고 비밀에 부쳤는데 조 전 사령관이 받고 있는 혐의는 ‘정치 관여’밖에 안 되는 현실, 어떻게 봐야 할까요?

 

출처 - YTN

 

1980년에 레이건 대통령은 부자들의 편에서 상속세를 줄이려고 했습니다. 부자들이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 부과되는 세금이 부담되니 좀 깎아주자고 하면 누가 그러라고 하겠습니까? 레이건 대통령은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 상속세를 '사망세(Death Tex)'라고 프레이밍했습니다. 세금은 모든 납세자에게 고통을 주는 해로운 무기와 같은 것이므로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 것입니다. 보수파는 세금 인하에 반대하는 진보 진영을 악당이라는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습니다.

 

출처 - 월간조선사 / 아이엠피터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보수 언론은 앞다투어 '세금 폭탄'이라고 프레이밍했습니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종부세(종합부동산) 감세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정치적인 프레이밍을 한국 언론이 매일 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대신에 '상호 물리적 다툼'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쓰고 쿠데타 대신에 '정치 관여'라는 희석된 표현을 일부러 쓰고 있으니까요. 대한민국 언론의 위기입니다. 과연 시민의 눈과 귀로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물을 때입니다. 언론이 정권의 세탁기가 되는 꼴을 언제까지 봐야 하겠습니까?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에 유명한 바위산이 있습니다. 좌에서 우로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 등 미국 역대 대통령 4명의 얼굴이 조각돼 있죠. 미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꼽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성지였던 러시모어산에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환경 파괴 행위를 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북한에는 이런 큰바위 얼굴이 많습니다. 금강산 바위 곳곳에 김일성과 김정일 얼굴을 새겼고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붉고 흉한 흔적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뿐인가요? 북한 지역엔 김일성 부자의 동상도 많습니다. 북한 전역에 수천 개는 된다고 하죠.

 

 

그런데 울산시가 이런 큰바위 얼굴을 좋게 봤나 봅니다. 기업가의 도전 정신을 기리겠다며 40m 높이의 기업인 얼굴 조각상 건립을 추진했기 때문입니다. 조각상 건립에 투입 예정인 세금은 자그마치 250억 원입니다. 부지 매입비 50억 원과 조각상 설계 제작 설치비에 200억을 잡았다고 합니다.

 

출처 - 울산시

 

울산시는 '위대한 기업인 조형물 건립' 예산 등을 포함한 총 284억 원 규모의 제2회 추경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했습니다. 당연히 사업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은 "최근 가스, 전기 등 공공요금이 폭등했고 물가도 급등하고 있다"며 "추경예산은 당장 시급을 요하는 사업을 반영하도록 하는 것인데 제2차 추경예산 284억 원 중 전체에 88% 이상이 흉상 건립을 위한 예산"이라며 "이것이 당장 시급을 요하는 사안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하고 되물었습니다. 위대한 기업인 조형물 예산 때문인지, 나머지 34억 추경안마저 제대로 사용하려고 추경한 게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출처 - MBC

 

울산시는 국내 대표 그룹 창업주인 현대그룹 고 정주형 회장, 롯데그룹 신격호 전 회장 등의 얼굴 조각상으로 랜드마크를 만들어 '기업하기 좋은 도시' 이미지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부자처럼 우상화하자는 건 아닐 덴데, 후보에 오른 국내 그룹 회장들조차 저 돈으로 울산에 있는 기업들을 도우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출처 - 페이스북

 

울산시에 이어 경북에서도 조형물 설치 논란이 거셉니다. 경북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이승만, 트루먼 전 한미 대통령의 동상이 새벽에 기습 설치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경북도지사가 민간단체인 '이승만, 트루먼 동상건립추진 모임'의 건의를 받아들여 성사된 일이라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군과 UN군의 군통수권자였던 두 전직 대통령의 정신을 바르게 평가하고 계승하기 위해 세웠다는 취지인데요, 4.19 단체와 민족문제연구소는 헌법정신뿐만 아니라 4.19정신에 위배되는 것으로 공공터에 독재자의 동상을 함부로 세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출처 - MBC

 

이승만·트루먼 전 대통령 동상의 기습 설치에 대해서는 이해가 엇갈립니다. 이승만처럼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뉘는 인물의 동상이 전국에 6개나 있죠. 백보 양보해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경우 한국전쟁 당시 군통수권자였다는 상징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죠. 반면 미국 대통령인 트루먼의 동상은 임진각에 이미 있습니다. 6.25 참전을 결정한 트루먼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기준이라면 한국전쟁을 치른 한국은 전적지마다 트루먼 대통령, 맥아더 장군 등의 동상을 수도 없이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동상이 아니어도 고마움을 전하는 방법은 다양할 것입니다. 있는 동상 관리를 잘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다행히 울산 기업가 흉상은 울산시의회의 예산 삭감으로 제동이 걸렸다고 합니다. 울산시가 요청한 추경예산안 250억 원 중 부지 매입비 50억 원을 제외한 기업인 흉상 설치 사업비 200억 원을 전액 삭감했습니다. 시의회는 삭감 사유로 "기념사업인 만큼 시민이 공감하는 명품 사업으로 추진하기 위한 절차와 시기 등을 고려했다"고 합니다. 흉상 건립 자체를 엎지 않은 터라 다시 추진될 여지를 남긴 것은 아쉬운 대목이지만, 일단 불필요한 세금 낭비를 중단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출처 - MBC

 

현대 사회에서 잘 만든 조형물은 뜻깊은 랜드마크가 됩니다.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등 좋은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 만든 조형물은 돈만 들어간 흉물이 될 수 있습니다. 다부동전적기념관에는 지금 5m 높이의 장막을 친 상태입니다. 높이 4m 20cm, 중량 3t짜리 청동 이승만, 트루먼 대통령 동상이 그 안에 가려져 있습니다. 새벽에 기습적으로 세운 것도 문제인데 설립 일정을 공개하지도 않고 있다니 기가 막힙니다. 반대하는 사람들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당당하지 못해 숨겨두는 게 동상건립추진 모임이 말하는 두 전직 대통령의 정신인가 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