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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서울대 표절 교수 복직 논란을 보는 우리의 자세

by 생각비행 2023. 6. 28.

10건이 넘는 논물을 표절해서 해임된 서울대 교수가 소송 끝에 강단에 다시 서게 됐습니다. 표절은 맞지만 서울대가 징계 절차를 잘못 밟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표절한 논문에는 자신이 지도하는 대학원생 논문도 있었습니다. 표절 사실은 대학원생이 힘들게 밝혀냈다고 하죠. 

 

출처 - 한국일보

 

2013년 서울대 대학원생 모 씨는 자신의 지도교수인 국문과 박 모 교수의 표절 사실을 파악하고 자신의 석사 논문을 포함해 여러 건의 표절 사실을 학교 측에 알렸습니다. 이때 제대로 조치가 취해졌다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지는 않았겠죠. 학교에서 별다른 조치가 없자 대학원생 모 씨는 2017년 직접 박 교수의 논문 20건을 분석해 1000 쪽 분량의 표절 자료집을 만들어 공론화에 나섰습니다.

'소년이 잘못 하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잘못 하면 대학원에 간다'는 농담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대학원생은 사람이 아니라는 식의 농담도 많습니다. 대학원 생활이 그만큼 고단한 과정이라는 점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들이죠. 학문에 뜻이 있어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에게 본인이 공부한 분야에서 이미 한 획을 그어 교수를 하고 있는 지도교수는 대학원생의 인생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입니다. 표절 사실을 발견했다 해도 감히 나서지 못할 수도 있는데 한 대학원생이 표절 자료집까지 만들어 고발하는 용기를 낸 것입니다.

 

출처 -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

 

출처 - SBS

 

그제야 조사에 착수한 서울대는 연구진실성위원회에서 논문 12건을 중대한 표절로 판정한 뒤 박 교수를 해임합니다. 표절 사실을 알고 난 뒤 해임 결정을 받기까지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인생을 걸고 싸움을 이어간 대학원생이 받았을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표절 당사자인 박 교수는 해임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겨 먹은 위인이니 표절을 그렇게 해댔겠죠. 정작 놀라운 점은 1심, 2심 그리고 지난 3월 대법원까지 모두 박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는 사실입니다.

 

출처 - SBS

 

논문의 표절 사실은 확실하게 입증이 됐습니다. 표절한 교수가 맞습니다. 그런데 서울대가 논문 표절을 판정하기 위해 연구진실성위원회를 구성할 때 조사위원 과반을 해당 전공자로 채워야 한다는 자체 규정을 어긴 절차적 과실이 문제가 됐습니다. 행정 처분의 절차적 하자가 중대할 경우 실제 내용과 관계 없이 위법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라고 합니다.

 

출처 - SBS

 

법원의 판단을 잘못됐다고 마냥 욕할 수는 없습니다. 서울대가 스스로 만들어놓은 규정, 지키기 어려운 규정도 아닐 텐데, 그걸 어겨서 다 된 밥에 재 뿌린 격이 됐으니까요. 결국 서울대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최근 박 교수의 해임 취소를 통보했습니다. 어쩌면 일부러 그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왜냐하면 판결이 확정된 지 3개월 안이라면 대학 측이 제대로 절차를 밟아 다시 징계 의결을 할 수 있는데도 기다렸다는 듯 해임 취소 통보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표절 피해자이자 공론화 당사자인 대학원생에게 늦게 알렸습니다. 3월 말에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 시효가 아슬아슬한 6월 초에나 알려준 겁니다. 서울대 측은 "관련 분야를 국문학으로 좁혀서 볼 것인지 아니면 어문학 계열로 넓혀서 볼 것인지의 문제"라며 "국문과 교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위원으로 들어가면 이해충돌이 생길 우려 때문에 연진위에서 그렇게 판단한 것 같다"고 해명했습니다.

 

출처 - SBS

 

정말 놀랍습니다. 국내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서울대학교가 명성에 심각한 흠집을 남길 수 있는 문제를 이렇게 미적지근하게 대응했다니 말입니다. 대학원생을 자신의 논문을 위한 재료 정도로 여겼다고밖에 볼 수 없는 교수를 내부의 실수로 해임하지 못하게 됐다면, 이를 바로잡기 위해 3개월 동안 기민하게 움직였어야 하지 않을까요? 위원회에선 언제까지 검토 중이라고 할 건지 모를 일입니다. 표절의 피해자가 된 사실도 억울한데, 관련 소송으로 인생의 방향이 크게 틀어진 피해 대학원생은 앞으로 누구에게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을까요? 논문을 표절하고도 다시 강단에 서게 된 표절 교수에게 배워야 하는 국문과 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걸까요?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제자의 논문까지 표절해 해임됐다가 요행으로 복직한 표절 당사자 교수가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어떤 얼굴로 대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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