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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울산 큰바위 얼굴과 경북 이승만 동상 논란, 우상화가 보수의 본분인가?

by 생각비행 2023. 6. 19.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에 유명한 바위산이 있습니다. 좌에서 우로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 등 미국 역대 대통령 4명의 얼굴이 조각돼 있죠. 미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꼽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성지였던 러시모어산에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환경 파괴 행위를 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북한에는 이런 큰바위 얼굴이 많습니다. 금강산 바위 곳곳에 김일성과 김정일 얼굴을 새겼고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붉고 흉한 흔적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뿐인가요? 북한 지역엔 김일성 부자의 동상도 많습니다. 북한 전역에 수천 개는 된다고 하죠.

 

 

그런데 울산시가 이런 큰바위 얼굴을 좋게 봤나 봅니다. 기업가의 도전 정신을 기리겠다며 40m 높이의 기업인 얼굴 조각상 건립을 추진했기 때문입니다. 조각상 건립에 투입 예정인 세금은 자그마치 250억 원입니다. 부지 매입비 50억 원과 조각상 설계 제작 설치비에 200억을 잡았다고 합니다.

 

출처 - 울산시

 

울산시는 '위대한 기업인 조형물 건립' 예산 등을 포함한 총 284억 원 규모의 제2회 추경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했습니다. 당연히 사업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은 "최근 가스, 전기 등 공공요금이 폭등했고 물가도 급등하고 있다"며 "추경예산은 당장 시급을 요하는 사업을 반영하도록 하는 것인데 제2차 추경예산 284억 원 중 전체에 88% 이상이 흉상 건립을 위한 예산"이라며 "이것이 당장 시급을 요하는 사안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하고 되물었습니다. 위대한 기업인 조형물 예산 때문인지, 나머지 34억 추경안마저 제대로 사용하려고 추경한 게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출처 - MBC

 

울산시는 국내 대표 그룹 창업주인 현대그룹 고 정주형 회장, 롯데그룹 신격호 전 회장 등의 얼굴 조각상으로 랜드마크를 만들어 '기업하기 좋은 도시' 이미지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부자처럼 우상화하자는 건 아닐 덴데, 후보에 오른 국내 그룹 회장들조차 저 돈으로 울산에 있는 기업들을 도우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출처 - 페이스북

 

울산시에 이어 경북에서도 조형물 설치 논란이 거셉니다. 경북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이승만, 트루먼 전 한미 대통령의 동상이 새벽에 기습 설치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경북도지사가 민간단체인 '이승만, 트루먼 동상건립추진 모임'의 건의를 받아들여 성사된 일이라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군과 UN군의 군통수권자였던 두 전직 대통령의 정신을 바르게 평가하고 계승하기 위해 세웠다는 취지인데요, 4.19 단체와 민족문제연구소는 헌법정신뿐만 아니라 4.19정신에 위배되는 것으로 공공터에 독재자의 동상을 함부로 세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출처 - MBC

 

이승만·트루먼 전 대통령 동상의 기습 설치에 대해서는 이해가 엇갈립니다. 이승만처럼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뉘는 인물의 동상이 전국에 6개나 있죠. 백보 양보해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경우 한국전쟁 당시 군통수권자였다는 상징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죠. 반면 미국 대통령인 트루먼의 동상은 임진각에 이미 있습니다. 6.25 참전을 결정한 트루먼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기준이라면 한국전쟁을 치른 한국은 전적지마다 트루먼 대통령, 맥아더 장군 등의 동상을 수도 없이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동상이 아니어도 고마움을 전하는 방법은 다양할 것입니다. 있는 동상 관리를 잘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다행히 울산 기업가 흉상은 울산시의회의 예산 삭감으로 제동이 걸렸다고 합니다. 울산시가 요청한 추경예산안 250억 원 중 부지 매입비 50억 원을 제외한 기업인 흉상 설치 사업비 200억 원을 전액 삭감했습니다. 시의회는 삭감 사유로 "기념사업인 만큼 시민이 공감하는 명품 사업으로 추진하기 위한 절차와 시기 등을 고려했다"고 합니다. 흉상 건립 자체를 엎지 않은 터라 다시 추진될 여지를 남긴 것은 아쉬운 대목이지만, 일단 불필요한 세금 낭비를 중단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출처 - MBC

 

현대 사회에서 잘 만든 조형물은 뜻깊은 랜드마크가 됩니다.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등 좋은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 만든 조형물은 돈만 들어간 흉물이 될 수 있습니다. 다부동전적기념관에는 지금 5m 높이의 장막을 친 상태입니다. 높이 4m 20cm, 중량 3t짜리 청동 이승만, 트루먼 대통령 동상이 그 안에 가려져 있습니다. 새벽에 기습적으로 세운 것도 문제인데 설립 일정을 공개하지도 않고 있다니 기가 막힙니다. 반대하는 사람들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당당하지 못해 숨겨두는 게 동상건립추진 모임이 말하는 두 전직 대통령의 정신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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