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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비건' 이름만 붙으면 동물보호/친환경인가? 확대되는 그린워싱

by 생각비행 2023. 6. 15.

지갑이나 가방 하나가 몇백에서 몇천을 호가하는 비싼 브랜드를 알고 계실 겁니다. 샤넬, 에르메스, 루이뷔통 같은 이른바 '명품' 말입니다. 경제, 시사 유튜브 크리에이터 슈카는 최고의 마케팅 성공 사례로 이런 '명품'을 꼽았습니다. 사치품을 뜻하는 'Luxury'를 한국 수입업체에서 명품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거든요. 단어를 바꿔 부른 것만으로도 우리는 사치품을 뭔가 장인이 만든 대단히 가치 있는 물건으로 생각하게 됐다는 겁니다. 이런 성공적인 마케팅을 바탕으로 작년 한국은 세계에서 1인당 명품 소비를 가장 많이 한 나라가 됐습니다.

 

출처 - 슈카월드

 

이렇게 성공적으로 개념을 바꾼 마케팅은 '사치품'에만 있지 않습니다. 요즘 '비건'이 각광받고 있죠. 고기를 먹지 않고 우유나 달걀도 먹지 않고, 실크나 가죽처럼 동물에게서 원료를 얻는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비건이라고 합니다. 극단적인 기후 변화의 시대에 환경 보호에 관심을 두고 친환경 삶의 방식으로 바꿔나가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대인 만큼 사람들이 왜 '비건'에 열광하는지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문제는 이런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관련 상품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난다는 겁니다. 일단 상품에 '비건'이란 이름이 붙으면 죄다 비싸집니다. 그중엔 심지어 친환경이 아닌 경우도 허다합니다.

 

출처 - 패션엔

 

비건 레더, 페이크 퍼, 비건 치즈 같은 말을 요즘 자주 들어보셨죠? 비건 레더는 동물의 가죽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소재를 사용해 가죽 느낌을 낸 제품을 말합니다. 식물을 이용해 동물을 죽이지 않고 친환경적인 가죽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시겠죠. 네, 물론 그런 제품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건 레더에는 합성 가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거 '레자'라고 부르며 싸구려 가짜 가죽으로 취급되던 것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동물 가죽을 쓰지 않았다고 '비건 레더'라는 프레임을 뒤집어쓰고 고가 친환경 제품으로 과대 포장되고 있어 문제입니다. 합성 가죽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폴리염화비닐(PVC)이 주요 소재입니다. 제조와 폐기 과정에서 다이옥신을 방출하는데 인간이 만들어낸 화학물질 중 가장 발암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출처 - Pinatex / Bolt Threads

 

한 물건을 오래 쓰는 것은 친환경적 삶의 방법입니다. 그런데 합성 가죽은 내구성이 진짜 가죽에 비해 확연히 떨어집니다. 수십년을 사용할 수 있는 진짜 가죽 제품과 달리 인조 가죽 제품은 자주 바꿔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되니 비건의 애초 의도 중 하나인 환경 보호와 상관없이 쓰레기가 양산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PVC 같은 재료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비건 레더도 있긴 있습니다. 파인애플 줄기 섬유질로 만든 비건 가죽, 버섯 균사체를 활용해 만든 비건 가죽 같은 제품은 비건이란 자향점을 제대로 추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비건 치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난 2012년 피자 업계에 모조 치즈 논란이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시는지요? 이 때문에 59피자는 자기네 피자에 100% 자연산 치즈가 들어간다고 광고를 해야 했습니다. 모조 치즈는 우유로 만들지 않는데요, 팜유 등 식물성 기름에 전분 등을 넣어 치즈와 유사한 맛과 식감을 내죠. 당시엔 이를 가짜 치즈, 모조 치즈, 식용유 치즈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현재 시점으로 보면 모조 치즈가 비건 치즈의 일종인 셈입니다. 지금은 비건 치즈를 넣은 피자나 햄버거가 아무런 문제 없이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고요.

 

출처 - 59피자

 

원가를 낮추기 위해 모조 치즈를 일반 치즈로 속여 판 10여 년 전 사건과 지금의 비건 치즈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죠. 요즘 나오는 비건 치즈 제품들은 코코넛 오일, 캐슈너트 오일 같은 고가의 식물성 오일에 단백질과 유기질 등의 성분을 추가해 영양까지 자연산 치즈와 비슷하게 구현한다고 하니까요.

 

출처 - 비건 치즈 아머드 프레시

 

하지만 비건 레더가 됐든, 비건 치즈가 됐든 제품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이미지와 프레이밍에 따른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예전엔 나쁜 것으로 취급됐던 것이 지금은 좋은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죠. '그린(Green)'이 처음에는 좋은 의미로 등장했지만 곧 그런 제품의 양산으로 쓰레기만 더 만들어 내는 '그린 워싱(Greenwashing)'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시대가 변해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해서이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의 생각 변화에 편승한 마케팅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비건’이 유행하고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진짜로 동물을 보호하고 환경을 생각하며 소비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생명체로 환경을 신경 쓴다면 비건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진정으로 비건의 가치를 제대로 추구하고 있는 제품인지 꼼꼼히 따져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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