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9일 향년 83세의 일기로 숨을 거뒀습니다. 중년 이상 되시는 분들은 그의 책 제목이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말인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기억하실 겁니다. '세계경영'과 '탱크주의'라는 표어로 IMF 이전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이기도 했죠. 김우중 본인 역시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대재벌 기업인 대우그룹을 일궈내어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인정받았죠. 하지만 대우라는 신화의 껍데기는 IMF를 통해 드러난 김우중의 민낯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김우중의 경영방식은 군사독재 시절 정경유착의 표본이자 IMF를 초래한 한국 재벌 체제의 모순이 그대로 농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경유착을 통한 방만한 차입경영, 대마불사라며 문어발식으로 외형을 확장한 사업들, 천문학적인 부채에도 불구하고 군사정부의 뒷배경으로 부를 쌓아올린 대우는 그야말로 사상누각이었습니다. 결국 42조에 가까운 터무니없는 회계부정이 드러나 그룹이 무너지면서 안 그래도 IMF 사태에 부닥친 우리나라 경제는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대우 그룹이 남긴 총 부채는 60조 원에 이르렀습니다. 대우가 무너지자 그동안 밑도 끝도 없이 대출해준 금융기관마저 부실로 흔들렸고, 외형이 큰 대우와 관계된 기업들의 연쇄도산이 이어졌습니다. 대우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소액주주들은 한순간에 휴지 조각이 된 대우 주식을 들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죠. 이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간 공적자금, 즉 국민의 혈세가 30조 원에 이릅니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1999년 당시 우리나라 1년 국가 예산이 84조 원 정도, 1년 국방 예산이 14조 정도이던 때입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이란 나라 전체의 1년 예산과 맞먹는 부채와 우리나라 육해공군 전체를 3년동안 먹여살릴 수 있는 돈을 분식회계로 해먹고, 김우중은 해외로 도망쳐버립니다. 이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김우중 체포 결사대를 만들어 해외 원정 투쟁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도피 후 6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김우중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 6개월과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17조 9253억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한국은행과 당시 재경부 장관에게 신고하지 않고 해외로 송금한 돈과 해외로 도피시킨 재산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판결문에서도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보다 회계부정 등의 불법 경영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끼친 과가 훨씬 더 크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김우중은 틈나는 대로 자신은 IMF와 정치권이 하라는 대로 하다가 이렇게 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공감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해외금융 점조직을 이용해 거액을 빼돌린 사실을 비롯해 치부가 너무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죠. 여담이지만 2009년 그는 자기 항공 마일리지 29만 9000마일을 돌려달라며 독일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에 소송을 걸어 뉴스에 나기도 했죠. 국민 세금 30조는 날려먹어도 되는 돈이고, 항공 마일리지는 소중하게 챙기는 쪼잔한 사람이었던 겁니다.


출처 – JTBC


인생의 마지막 10년 동안 베트남에서 도피성 창업 양성을 했지만 죽은 지금도 그의 미납 추징금은 17조 8000여억 원에 이릅니다. 전체 추징금의 0.5%에 불과한 887억 원을 납부하고선 그대로 해외를 전전하다 죽음에 이르렀죠. 김우중은 14년 동안 전두환조차 제치고 부동의 체납자 1위였습니다. 여기에다 지방세 35억 1000만 원, 양도소득세 등 국세 368억 7300만 원도 체납한 상태였죠. 김우중은 전대미문의 추징금과 거액의 재산 은닉 의혹, 국세 체납 등 더러운 유산만을 남겼습니다. 노에경영의 끝은 막대한 추징금으로 남았을 뿐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김우중이 죽었다고 추징금을 거둬들일 방법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이 추징금을 함께 물도록 판결받은 전 대우그룹 임원들로부터 남은 추징금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김우중이 해외도피 중이던 2005년 강병호 대우 전 사장 등 임원 7명에게 추징금 23조 358억 원을 선고한 바 있습니다. 김우중은 이 임원들과 공범으로 묶여 추징금을 연대 부담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까지 임원들을 상대로 확보한 건 5억 원뿐입니다. 검찰은 다른 일보다 이런 사건에 주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출처 - 오마이뉴스


법원의 판결문대로 김우중은 공보다 과가 너무나도 큰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 과를 갚기 위한 사죄나 배상 행위를 전혀 하지 않았죠. 기업인, 인간으로서의 김우중을 추모하고 싶다면 이 문제를 바로잡은 이후라야 가능할 것입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죽음은 대한민국 재벌체제의 비정상성을 드러내고 재벌개혁이 더 미룰 수 없는 사회적 문제임을 시사합니다.

민식이법과 하준이법이 10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드디어 처리됐습니다. 민식이법은 법안 발의 2개월 만에, 하준이법은 법안 발의 약 2년 만입니다. 두 법 다 아동이 교통환경으로부터 더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법이었으나 통과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민식이법을 정쟁의 도구로 쓸 수 있는 카드 중 하나인 양 취급해 부모들과 국민의 분노를 샀죠.


출처 - 오마이뉴스


민식이법은 지난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민식 어린이의 이름을 딴 법입니다. 민식이법은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2건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어린이보호구역 내 과속단속 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고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이 신호등 등을 우선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어린이보호구역 내 사망사고 가해자를 가중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민식이법의 경우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 전자의 경우 재석 242인 중 찬성 239인, 기권 3인으로 압도적으로 처리됐습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는 찬성 220인, 기권 6인, 반대 1인으로 가결 처리됐죠. 반대 1은 자유한국당 의원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국회의원들에게 지칠 대로 지친 민식이 부모에게 다시 한번 대못을 박은 셈입니다.


출처 - KBS


민식이법과 관련해서 자유한국당과 비상식적인 운전자들이 악질적인 선동에 나서기도 하여 사람들의 분노를 야기했습니다. 민식이법에 대해 자동차나 운전자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스쿨존에서 난 사고를 무조건 가중처벌하는 악법이라는 주장이 돌았던 것이죠. 규정 속도로 운전해도 스쿨존에선 무기징역이라느니 스쿨존에서 사고 나면 최소 징역 3년에서 무기징역이라느니 하는 소리가 떠돌았습니다. 게다가 스쿨존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애들이 문제이니 스쿨존을 노키즈존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무식한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출처 - KBS


이런 주장들은 당연히 사실이 아닙니다. 이번 개정안은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에 처하고 어린이를 상해에 이르게 하면 1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돼 있습니다. 이게 모든 어린이 교통사고에 적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쉽게 말해 운전자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주행속도 시속 30km 이하를 준수하고 어린이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하여 어린이를 사망 또는 상해를 입게 한 경우에 한합니다. 즉 운전자의 부주의나 중과실로 어린이를 죽거나 다치게 하는 경우에 국한된다는 겁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규정 속도인 30km 이상으로 달리거나, 안전운전 의무를 소홀히 해서, 13세 미만 어린이를 죽거나 다치게 한 경우에만 처벌한다는 건데, 애초 어린이보호구역은 그 이전에도 30km 미만 서행 구역이었고, 안전운전 의무는 운전자라면 누구든 당연히 지켜야 하죠. 여기에 '13세 미만 어린이'를 넣었을 뿐인데, 말도 안 되는 선동이 난무하는 것은 참으로 악질적인 대응이 아닙니까? 모든 횡단보도 앞에서는 일시정지가 당연한 겁니다. 이런 상식조차 몰랐다면 운전대를 잡으면 안 될 일이죠. 현실 운운하며 그동안 어겼던 법을 계속 어기고 싶다는 어른들의 이기심이 아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겁니다.


출처 - 한겨레


하준이법은 2017년 서울랜드 동문주차장에서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든 경사도로에서 굴러 내려온 차량에 숨진 최하준 어린이의 이름을 딴 법입니다. 경사진 주차장에 미끄럼 방지를 위한 고임목과 안내표지 등을 설치하는 등 주차장 내 운전자 안전 의무와 주차장 관리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이번 국회 본회의에서 하준이법 역시 찬성 244인, 기원 2인으로 가결 처리되었습니다.


출처 - 뉴스핌


민식이법이 통과되자 민식이의 부모님은 국회 본회의 현장에서 오열했습니다. 그동안 쌓인 감정 때문이겠죠. 하지만 하준이법이 통과된 직후 하준이 엄마는 "하나도 기쁘지 않다. 국회에 전혀 고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숨쉬기도 어려운 유가족에게 국회가 한 짓을 생각하면 이 당연한 법을 통과시켰다고 한들 고마운 마음이 들겠습니까?


출처 - KBS


사실 어린이생명안전법안의 대부분은 아직도 법안 심사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해인이법은 어린이 안전에 대한 주관 부처를 명확히 하고 어린이 안전사고 피해자에 대한 응급처치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법입니다. 2016년 교통사고 후 뒤늦은 어린이집의 응급조치로 세상을 떠난 해인이의 이름을 딴 법입니다. 한음이법은 어린이 통학버스 운영자가 버스에 영상기기를 장착하고 모니터로 자동차 내부, 후방, 측면 등을 확인하게 하도록 하는 법입니다. 2016년 광주의 한 특수학교에서 동행 교사의 방치로 통학 차 안에서 세상을 떠난 한음이의 이름을 딴 법입니다. 태호유찬이법은 어린이가 탑승하는 모든 차량을 어린이통학버스 신고대상으로 포함되도록 하는 법입니다. 올해 인천 사설 축구클럽 승합차 운전자가 과속 및 신호 위반으로 교통사고를 내어 태호와 유찬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린이용 노란 승합차였지만 사설 축구클럽은 법적으로 어린이통학버스 운영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반 교통사고로 처리되었습니다.


출처 - 팩트TV


법안심사를 받지 못한 이러한 법들은 앞으로 임시국회가 열리지 않으면 폐기될 상황입니다. 자유한국당이 이 모든 민생법안과 어린이생명법안의 발목을 잡고 있는 원흉입니다. 하지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한 다른 당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당리당략에 의해 거래를 하는 것만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대리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 국회의원과 정치인의 본령일 테니까요. 내년 총선에서 민생 관련 법안과 어린이생명안전법안을 소홀히 취급한 국회의원들을 물갈이하여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추운 겨울날 얼어붙은 아스팔트 바닥에 온몸을 던져 오체투지 시위를 벌이던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도로공사가 항복을 선언한 것이죠. 한국도로공사는 지난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6일 요금수납원들이 대구지법 김천지원에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 선고에서 도로공사가 일부 패소함에 따라 해당 인원을 포함한 현재 1심 계류 중인 나머지 인원들도 모두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8월 29일 대법원과 이번 김천지원 판결을 분석한 결과 정년이 지났거나 사망자 등을 제외한 수납원들의 근로자 지위가 모두 인정됐기 때문에 나머지 재판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판단해 이런 결정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동안 도로공사는 확정판결을 받아와야 정직원으로 고용하겠다고 우겨왔는데요, 이번 결정으로 2015년 이전 입사자들은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되게 됐습니다.


출처 - MBC


애초 도로공사는 무리하게 버티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8월 29일 대법원에서 패소했고 이번 대구지법 김천지원에서도 패소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로공사는 패소할 때마다 그 소송에 관계된 사람만 정직원으로 고용하겠다며 이상한 고집을 부렸습니다. 다음 달 10일에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수납원 180여 명에 대한 판결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지난달에는 도로공사가 경북 김천에 있는 본사 점거 농성을 벌인 수납원과 민주노총 간부 등을 상대로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건 일도 있었죠.

 

출처 - 한겨레

 

 점거농성 때문에 현관 회전문이 부서지고 본관 잔디가 훼손됐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도로공사가 정말로 돈을 아끼고 싶었다면 결과가 뻔히 보이는 재판에 국민의 혈세를 쓰는 낭비하는 것부터 하지 말았어야죠. 하지만 그간 도로공사의 행태는 끝없는 소송과 고소 고발로 노조를 말려죽이려 드는 전형적인 악덕 사업주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출처 - 뉴시스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하고 국토부 장관과 여당 대표 사무실까지 점거하며 투쟁한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닙니다. 특이한 자격이나 신분을 달라는 것도 아니라 법원이 판결한 대로 자신들이 하던 일을 그냥 계속하게 해달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원래 하던 일인 요금 수납을 하면서 그에 대한 고용안정과 노동인권 보호 등 노동자라면 응당 받아야 할 최소한의 대우만 해달라는 것이었죠. 그러니 판결까지 나온 마당에 버티고 있던 도로공사의 행태야말로 법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 경향비즈


도로공사가 법원 판결을 뒤늦게 수용하면서 2015년 전 입사자 전원을 정규직화하기로 했으나 아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지난 대법원 판결로 직접 고용된 수납원들이 엉뚱한 업무에 투입되고 있는데다, 2015년 이후 입사 수납원 150여 명은 도로공사가 임시직 기간제로 채용할 방침이라 논란의 불씨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영업소가 어떻든 입사연도가 어떻든 도로공사가 직접 지휘, 감독한 것이 입증되었죠. 이번 대구지법 김천지원 판결이 명확하게 짚고 있는 부분입니다.


출처 - 프레시안


도로공사 점거농성이 100일에 다다를 때까지 직접 대화를 거부하던 도로공사의 이강래 사장은 노조 집행부와 직접 만나 교섭할 예정입니다. 이강래 사장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해 오는 17일 퇴임할 예정이라고 하죠. 하지만 정말 그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3선 의원 출신인 이강래 사장은 내년 총선에 출마할 예정이라죠. 어차피 출마 때문에 물러나야 하는데 좋은 핑곗거리를 찾은 셈입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사장이 된 사람에게 휘둘려온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강래 사장은 아마 자신의 출신지인 남원/순창/임실 쪽으로 공천을 받으려고 혈안일 겁니다. 이쪽에 사시는 분들은 내년 총선에서 노동자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한 자를 엄하게 심판해주시길 바랍니다.

 

출처 - 경향신문

 

하청 또는 외주는 갑과 을을 제도적으로 연결하는 끈입니다. 원청업체는 독점적 지대를 향유하며 갑이라는 압도적 우위에 서게 됩니다. 고용의 외주화로 을은 몸이 아파도 일터로 나가야 하는 이른바 '프리젠티즘'이라는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갑의 지대추구행위에 정보기술과 첨단매체가 가세하면서 일터의 외주화 현상과 근로자의 근무여건 악화, 사생활 침해, 노동강도 증가 등의 부정적 영향이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하청사회로 변모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분절화되고 개인화된 관계를 어떻게 청산하고, 원청과 하청 사이의 책임 있는 관계와 연대의 끈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요?

 

 

첨단기술의 발달로 단순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등으로 대변되는 최신 기술의 발전에 대응하기 바빠 정작 노동자의 고용형태가 악화되어온 하청사회의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노동자는 기술이 발전하면 당연히 사라져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노동자를 길거리에 나앉게 만들거나 고용을 유지하려는 노력 없이 무한경쟁 시장을 들먹이며 경영의 실패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일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을과 을들이 서로 피튀기는 경쟁을 하게 하는 사회가 제대로 된 곳일리 만무합니다. 노동자들도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경쟁에 앞서 부정의한 현실을 똑바로 보고 이를 바꿔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을들이 하청사회를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힘, 특히 갑의 '지대추구행위'와 '외주화'를 보기 시작한다면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평화 일직선,

키나 쇼키치를 만나

 

음악으로 평화를 그리는 키나 쇼키치

키나 쇼키치를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본 오키나와 출신의 전설적인 음악인으로, 오키나와 민요 명인이자 산신(일본 전통악기) 속주의 달인 키나 쇼에이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1976년 발매한 앨범 [키나 쇼키치 & 참프루즈]에 수록된 〈하이사이 오지상〉(ハイサイおじさん, 안녕하세요 아저씨)은 공전의 인기를 끌며 오키나와에서만 30만 장이 판매되었죠. 당시 오키나와 인구가 100만 명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의 인기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앨범은 일본 평론가가 뽑은 100대 명반 중 35위에 랭크됩니다.


키나 쇼키치는 음악으로 평화를 그리는 행동주의자이기도 합니다. 저항이나 투쟁의 방법이 축제일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체감하고, 음악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서 평화 활동을 펼쳤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꽃을, 모든 무기를 악기로, 모든 기지를 화원으로, 전쟁보다 축제"가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1980년 오키나와 문화, 산업, 정신을 소중히 하자는 취지로 개최한 '우루마 축제', 1986년 기아로 고통받는 주민을 위한 필리핀 마닐라 네그로스섬 지원 콘서트, 1997년 북한 식량 지원을 위해 수차례 진행한 '아리랑에 무지개를' 자선 콘서트, 1998년 3주간에 걸쳐 미국 대륙을 횡단한 백선(White Ship of Peace) 축제, 2003년 이라크 평화 가두행진 등의 활동으로 드러나듯, 그는 평생을 평화 일직선으로 살아왔습니다.


일본에서 남한과 북한 청년단이 주최하는 '도쿄 통일마당' 행사에 해마다 참여해 〈아리랑〉을 부르고 분단된 한민족 현실에 남다른 관심을 두어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다양한 공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1993년 대전 엑스포 공연, 1999년 10월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종교와 문화 포럼' 초청 공연, 2000년 광주 5.18 20주년 기념 공연 등으로 한국을 방문했으며, 2002년에는 북한 평양 공연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키나 쇼키치는 김대중 정부의 일본 문화 2차 개방으로 2000석 이하 규모의 내한 공연이 가능해진 후, 1999년 9월 한국에서 최초로 공연한 일본 음악인이기도 합니다.


밥 말리(Bob Marley),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같은 세계적인 가수들이 키나 쇼키치의 음악에서 영감과 감동을 받았다고 표명할 정도로, 그가 동북아를 넘어 세계에 끼친 영향은 상당합니다. 2019년 현재 71세인 그는 DMZ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공연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나비는 국경 없이 그냥 날아다니잖아. 새들도 날아다니고, 바람도 경계 없이 불고, 구름도 흘러가고. 모두 국경이 없어. 그 정점에 서 있다고 잘난 체하는 인간만이 국경을 가지고 있는 거야. 거기서 문제가 발생해."

 


김창규 묻고 키나 쇼키치 답하다

류큐왕국은 1429년부터 1879년까지 450년간 존속했습니다. 일본에 무력으로 병합돼 반강제적으로 '오키나와현'이라는 이름으로 편입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일본 본토를 지키기 위해 버려지는 돌로 취급돼 지상전에 떠밀려 주민의 4분의 1이 죽는 비참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죠. 전쟁이 끝난 후, 미국에 27년간 양도되어 군사기지가 잔뜩 세워졌으며 1972년 반환된 이후 지금까지도 갈등 상황은 여전합니다.


키나 쇼키치는 1948년생으로 미국이 오키나와를 통치하던 시절에 태어났고, 일본을 다른 나라로 생각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음악 활동을 하다가 오키나와 주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국회로 갔고(키나 쇼키치는 전직 참의원 의원입니다) 선거에서 무참히 패배하기도 했지만(오키나와현지사 선거), 그가 최종적으로 안착한 곳은 '평화'였습니다. 그것도 무려 '세계 평화'죠.


키나 쇼키치는 인간을 국가나 이념, 종교나 민족에 한정해 보지 않습니다. 오직 개인입니다. '위정자에게 의지하지 않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온 오키나와인의 매력에 더해 제멋대로 살고 제멋대로 말하고 그 말을 온전히 책임지며, 미덕도 악덕도, 자본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모조리 받아낸 이 남자는 유쾌하고 씩씩합니다.


《딴지일보》 김창규 편집장이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평화를 노래하는 키나 쇼키치를 만났습니다. 2017년 한국에서,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2019년 일본에서 이어진 인터뷰에는 키나 쇼키치의 삶, 음악, 평화 이야기가 녹아 있습니다. 2017년 첫 만남 때만 해도 남과 북은 언제 전쟁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긴장 국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키나 쇼키치는 평화가 급진전될 수 있음을 예감했습니다. 그리고 남북한이 분단 상황을 넘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점을 피력했죠. 불과 2년 만에 그의 생각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키나 쇼키치의 대표곡 중 하나인 〈하나~ 모든 사람의 마음에 꽃을~(花〜すべての人の心に花を〜)〉이란 노래는 60여 개국에 리메이크되어 세계적으로 3000만 장 이상이 팔렸습니다. 세계적인 위상에 비하면 한국에선 키나 쇼키치의 존재감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는 남북 관계의 진전을 바라며 매년 아리랑을 부릅니다. 

 

 

지난 11월 6일 대전MBC에서 〈키나 쇼키치의 하이사이 아리랑〉이란 특집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남북한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키나 쇼키치를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판문점을 찾은 키나 쇼키치는 그의 마지막 꿈을 이야기합니다. DMZ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공연하는 것이죠.


우리는 키나 쇼키치를 보고 있지 않았지만, 그는 계속 우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키나 쇼키치를 발견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가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김창규 묻고
필명 죽지않는돌고래. 《딴지일보》 편집장. 대학에서 일본문학사를 전공했고 제9회 국제통역사절단 선발대회 및 외국어경연대회에서 일본대사상을 받았다.
《딴지일보》에 입사해 필리핀에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한국인을 돕거나(김규열 선장 구출작전) 수배 중인 살인범을 추적해 인터폴 적색수배범을 잡는데 기여하거나(필리핀 납치사건-홍석동 납치사건) 영업 중인 불법 인터넷 도박 조직의 내부를 실시간 보도해 국세청의 세금 환수를 거드는 등(인터넷 도박 묵시록) 조금 이상한 일을 많이 했다. 2013년 4월부터 데스크 전담으로 기사 선정, 기획, 출판 등을 맡고 있다. 원고 추심원계의 프로페셔널을 자부하나 밤낮없이 시달린 필자들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말을 듣는다(내게도 다 생각이 있다).
<라이온 킹>의 ‘무파사’ 같은 아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돌고래 같은 자식과 뒹굴거리는 게 삶의 가장 큰 행복이며 할머니가 오래 사는 게 가장 큰 꿈이다. 인터뷰집 《범인은 이 안에 없다》와 《공익제보 하지 마세요》(공저)를 냈다.


키나 쇼키치 답하다
일본 오키나와 출신의 전설적인 음악인. 13살 때 쓴 〈하이사이 오지상〉(ハイサイおじさん, 안녕하세요 아저씨)이 1976년 싱글 레코드로 발매되면서 폭발적으로 팔리기 시작, 당시 인구 100만의 오키나와에서만 30만 장 이상이 판매되어 섬 전체의 재고가 떨어진다. 1977년, [키나 쇼키치 & 참프루즈] 앨범은 일본 평론가가 뽑은 100대 명반 중 35위에 랭크된다. 〈하나~ 모든 사람의 마음에 꽃을~花〜すべての人の心に花を〜〉은 60여 개국에 리메이크되어 세계적으로 3000만 장 이상이 팔린다.
저항이나 투쟁의 방법이 축제일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체감하고, 음악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서 평화 활동을 펼치는 행동주의자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남한과 북한 청년단이 주최하는 ‘도쿄 통일마당’ 행사에 해마다 참여해 아리랑을 부르고 분단된 한민족 현실에 남다른 관심을 두어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다양한 공연을 펼쳤다.
밥 말리(Bob Marley),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같은 세계적인 가수들이 키나 쇼키치의 음악에서 영감과 감동을 받았다고 표명할 정도로 동북아를 넘어 세계에 끼친 영향이 상당하다. 2019년 현재 71세인 그는 DMZ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공연하는 꿈을 꾸고 있다.

 

▌차례


책을 펴내며

1부
한국에서 키나 쇼키치를 만나다
01 지옥을 본 남자의 유일한 친구
02 〈하이사이 오지상〉과 나의 오지이상(할아버지)
03 이쪽은 오키나와, 저쪽은 미국 세계
04 미군이 떠난 날, 유치장에 들어가다
05 그러고 보니 나는 왕따였군
06 ‘그 간격’을 봐버린 인간
07 차별받는 자가 차별을 해결할 수 있다
08 일본인의 유전자에 새겨진 무의식 그리고 아베
09 북한이 적이 아니라 분단된 현실이 적이야
10 평화운동보다는 아이들의 마음을 꺾기 싫을 뿐이야
11 중요한 건, 일단 한다,는 거지
12 그러지 않으면 세상이 바뀌질 않아

2부
일본에서 키나 쇼키치를 만나다
01 ‘평화’라는 원 패턴과 1964년 도쿄 올림픽
02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돈
03 형무소 안에서, 다시 돌아가다
04 내가 잘하는 것과 이라크
05 오키나와, 미군기지 그리고 정치
06 핵, 야스쿠니 신사, 위안부, 독도
07 꿈은 같다
08 인터뷰 후: 천국과 지옥의 재료는 같다

부록
키나 쇼키치 연보
주요 앨범
주요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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