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라이 탐루엉 동굴에 17일간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해 세계의 축하를 받은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과 코치가 지난 18일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태국 치앙라이 매사이의 무 빠(야생 멧돼지) 축구클럽에 소속된 선수들과 코치는 자신들의 팀 유니폼을 차려입고 등장했습니다. 자신들을 구조한 태국 네이비실 대원들과 치료를 담당한 의사 등과 함께 축구공을 차는 모습으로 건강을 증명했고, 밝은 얼굴로 동굴 고립 당시 상황을 풀어놓았습니다. 한 소년은 동굴에 갇혔을 때 집에 가서 엄마에게 꾸중을 들을까 봐 겁났다고 말해 그 순진함에 사람들이 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모두 무사히 구조되어 웃는 얼굴로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건 당시만 해도 생존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웠고 이들을 구조할 수 있을지 세계의 걱정이 집중되던 사건이었죠. 지난 6월 23일 선수 가운데 한 명의 생일파티를 위해 탐루엉 동굴에 들어갔다가 갑작스러운 폭우로 동굴 내 수로에 물이 불어나면서 이들은 밖으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 동굴 앞에서 팀원들이 타고 다니던 자전거와 가방, 축구화 등을 발견한 태국 당국은 이튿날부터 수색에 나섰습니다. 아이들과 코치는 실종 열흘째인 지난 2일 영국 잠수전문가들에 의해 동굴 안쪽 깊숙한 에어포켓 공간에서 생존이 확인됐던 바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아이들의 생존을 확인한 태국 당국은 전 세계와 공조를 통해 이들의 구조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아이들의 생존을 확인한 사람이 영국 잠수 전문가들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 공군 구조대원 30명을 비롯한 동굴 잠수 및 구조 분야에서 활동하는 세계적 전문가들을 불러모았습니다. 한편 이 아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태국 정부는 통상 외교관에게만 부여하는 면책특권을 약속하며 세계에서 전문가들을 초빙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동굴 잠수 및 구조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호주의 의사 해리스와 2명의 보조 인력을 초청했는데요, 그들이 임무에 최선을 다했지만 일이 잘못됐을 경우 명시적으로 보호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응한 해리스는 4km가 넘는 구간을 잠수해 들어가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점검했고, 그의 진단 결과는 생존자들의 구조 시기와 순위를 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쓰였습니다. 태국 당국은 동굴 곳곳에 고인 물을 빼내는 한편 아이들에게 수영과 잠수장비 이용법을 가르친 뒤,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3일에 걸쳐 안전하게 전원을 구조하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출처 - 뉴시스


동굴에서 종유석에 맺힌 물만 먹고 살아 2kg 정도 체중이 줄고 기력이 없긴 했지만 아이들의 생명에는 이상이 없었다고 하죠. 이는 당시 아이들과 같이 갇혔던 엑까뽄 코치가 아이들을 잘 돌보며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엑까뽄 코치는 음식물을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굶은 채 구조를 기다렸습니다. 이 때문에 발견 당시 건강 상태가 가장 나빴던 것으로 알려졌죠. 살신성인하며 아이들을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돌본 엑까뽄 코치는 아이들이 모두 무사히 구조된 다음 마지막으로 동굴을 나왔습니다. 이런 미담 때문인지 엑까뽄 코치는 태국의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런 그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함께 무국적 난민이 되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했죠.


출처 - JTBC

 

태국 동굴에 갇힌 유소년 축구팀을 무사히 구조하는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습니다. 정부의 빠른 대처, 적확한 판단을 내린 전문가, 사건 현장에서 아이들을 돌본 코치의 살신성인 등을 보면 세월호 참사와는 거의 정반대일 정도로 훌륭한 대응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9일 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가 초동 대응과 구조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며 국가가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년여 만에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겁니다.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고 피해를 키운 정부와 해경, 무리한 증·개축을 한 청해진 해운, 사고 당시 단원고 학생들을 버려두고 제일 먼저 달아난 선원들과 선장 같은 탐욕스러운 어른들, 제대로 된 대처와 피해 보상을 등한시했던 정치권과 공권력 등등, 이 모든 대응에 국가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겁니다.


출처 – 연합뉴스


태국 정부와 사회, 그리고 언론은 동굴에 갇힌 아이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침착함을 유지했습니다. 구조에 관계없는 사람의 출입을 제한하고, 감정적인 보도가 이뤄지지 않도록 정보를 통제했습니다. 태국 정부는 구조 작업 과정에서 구조대원 1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차분함을 유지했습니다. 나롱싹 오소따나꼰 치앙라이주 주지사는 실종사건 도중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하지만 태국 정부는 현장 책임자였던 그에게 계속 지휘권을 부여하며 구조 과정을 책임지도록 했습니다. 그는 다국적 구조팀을 지휘하는 책임자로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태국 정부는 순조롭게 구조가 이뤄지는 와중에도 구조된 아이들의 이름조차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구조되지 못한 소년들의 가족이 겪을 수도 있는 감정적인 동요나 혼선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처 - 뉴스1

 

소년들의 가족들도 구조 순서를 일절 묻지 않는 성숙한 자세로 구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동굴 속에 갇힌 태국 소년 중 한 명인 나이트의 가족을 취재한 AFP는 그의 생환을 기원하며 생일 파티를 열 수 있기를 기도하는 나이트의 동생의 목소리를 소개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오빠가 살아 돌아올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냉장고 안에 둔 케이크를 버리지 않았다." 나이트라는 별명을 가진 소년은 실종 당일인 지난 6월 23일 17세 생일을 맞았다고 하죠. 가족들은 구조 작업이 성과 없이 흘러갈 때도 그가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출처 - phonphotchanan jitasa

 

태국 치앙라이주 정부는 과도한 대중의 관심이 아이들에게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 18일 열린 인터뷰 이후 아이들은 물론 가족들 또한 언론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생환자와 가족의 생활을 방해하는 경우 아동보호법에 따라 기소될 수 있다는 경고를 잊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깔끔한 마무리입니다.

 

출처 - MBC

 

하지만 우리는 어땠습니까? 생각비행은 세월호 참사 당시와 그 이후 구조 과정에서 드러난 언론과 방송의 보도 행태를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주류 언론이라는 기사를 통해 질타한 바 있는데요, 권력과 자본에 굴복한 언론과 방송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사고 당시부터 오보를 속출하고 감정적이고 선정적인 보도 경쟁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어둡게 했습니다.

 

출처 - MBC

 

JTBC는 세월호 참사 당시 뉴스특보를 전하며 생존 학생과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끔찍한 일을 겪은 당사자에게 절대적 안정이 중요한 순간에 피해생존자를 생방송으로 인터뷰한 것부터가 잘못이었습니다. 문제가 지적되자 JTBC 측은 이에 대해 공식 사과했지만 인터뷰를 시도한 것 자체가 매우 부적절한 취재행위였습니다. 한편 공영방송 MBC는 세월호 희생자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단원고 학생들의 여행자보험을 들먹이며 사고 피해자들이 받을 보험금을 소개하는 어처구니없는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그러고도 MBC는 사과조차 하지 않았죠. 

 

출처 - 아이엠피터

 

일부 언론과 방송은 피해생존자들에게 세월호 내에서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을 요구하기도 하는 등 재난보도 준칙을 어기는 행위로 질타를 받았습니다. KBS는 박근혜 정권의 눈치를 보며 권력에 굴복하여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기레기(기자+쓰레기) 취급을 받았고, KBS와 MBC 내부에서 정권과 권력에 항의하며 진실을 전하려 했던 기자들과 PD들은 회사를 떠나야 하는 상반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2014년 4월 17일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세월호 사건을 취재하는 언론들의 무분별한 취재경쟁을 중단하고 취재와 보도에 신중을 기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언론이 재해보도준칙에 입학하여 다음의 원칙을 준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 신속한 보도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 감정적, 선정적 어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 피해 상황을 반복, 중복하여 보도하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 피해 상황을 전달하는 것보다 구조대책 및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추가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보도에 주력해야 한다.
- 보도는 피해자를 안심시키는 내용이어야 하며, 피해자와 유족, 피해생존자의 명예, 사생활, 심리적 안정을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 피해생존 청소년과 아동에 대한 취재는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 공익에 상당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피해자와 유족, 피해생존자를 담은 근접촬영 화면의 사용은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4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겨우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는 형국입니다. 태국 동굴소년 구조와 세월호 구조, 과연 무엇이 달랐을까요? 2018년 현재 대한민국은 달라졌을까요? 두 사건의 교훈을 곱씹어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2019년도 최저임금이 진통 끝에 2018년 대비 10.9% 오른 8350원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겠다던 대선 공약을 지키기가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대표적인 최저임금 적용 업종인 편의점을 비롯한 소상공인들은 발표 직후 최저임금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복 선언을 하기도 했죠. 최저임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알바를 비롯한 젊은이들은 환영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2년 연속 두자릿수로 오른 최저임금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큰 자영업자들이 많은가 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처음에는 인건비 상승을 감당할 수 없다며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지역별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달라고 요구하며 심야영업 중단 및 심야에 물건값에 할증을 붙여 파는 식의 강력한 단체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죠. 하지만 여론이 좋지 않았고 편의점주와 알바라는 을과 을의 전쟁이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편의점주들은 비판의 무게중심을 옮겼습니다. 공동휴업 등 단체행동을 하는 대신 카드 수수료 문제, 근접 출점, 가맹수수료 인하 등의 요구조건을 꺼내든 겁니다. 그러면서 을과 을의 싸움을 절대 원치 않는다며 정부와 가맹본부 쪽에 정당하게 공을 넘기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적절한 판단이었습니다. 편의점 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최저임금이 아니라 편의점주들이 어찌할 수 없는 갑들의 문제였기 때문이죠. 을과 을의 전쟁으로 번질 뻔한 문제를 진짜 문제인 갑에게 돌리는 데 성공한 셈입니다. 편의점 왕국인 일본은 편의점주들이 노동조합으로 연대해 가맹본부와 수수료 요율 등을 매년 협상한다고 하죠.


출처 - KBS


편의점을 비롯해 프랜차이즈 가맹 사업자들이 힘든 이유는 편의점 업주들이 성토하는 그대로입니다. 가맹본부가 가져가는 높은 비율의 가맹수수료와 건물 임대료가 가장 큰 지출을 차지합니다. 알바생들의 인건비는 5명을 교대로 근무시킨다 해도 이보다 부담이 낮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간 편의점주들이 최저임금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까닭은 가맹수수료와 임대료는 자신들이 낮추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인건비는 절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약자가 더욱 약한 상대에게 피해를 돌리는 을의 전쟁으로 번지곤 했던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출처 - KBS


사실 편의점 업계는 장기불황이라는 말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매출이 미미하게 상승하거나 오히려 떨어지기도 했는데, 편의점 업계만 10.9%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니까요. 문제는 이로 인해 가맹본부는 엄청난 이익을 보는 반면 편의점주들의 실질적인 이익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출처 - KBS


편의점주 대다수가 근접 출점을 막아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편의점 자체가 너무 많아지는 현상도 문제입니다. 인구가 우리의 두 배인 편의점 왕국 일본의 전국 편의점 수가 5만 5395개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4만 192개 수준으로 인구에 비해 편의점 수가 너무 많은 편입니다. 

 

가맹본부 입장에서는 편의점 수가 많아지면 만하질수록 수수료 수익이 늘어나니 좋겠죠. 하지만 편의점주 입장에서는 편의점끼리 과다한 경쟁을 하게 된다면 자신들의 파이가 줄어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는 가맹본부가 편의점 매출액의 30~40%를 가져가는 정률제 계약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런 조건 때문에 가맹본부는 편의점들의 매출 신장을 지원하기보다 전체 편의점 수를 늘리려 합니다. 편의점끼리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하고 있는데도 이를 신경쓰지 않는 것이죠.


출처 - 머니투데이


최근 가맹점주들 사이에서는 가맹본부가 수수료를 인하하고 신규 점포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맹본부는 현재 이익률이 낮아 수수료율을 손보기가 난망하다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가맹본부가 낮다고 한 이익률이 수천억입니다. 일례로 BGF리테일의 경우 2016년 오너 일가의 배당금이 180억 원이었을 정도입니다. 오너와 주주는 본부에서 배당을, 본부는 편의점주들에게 수수료를, 편의점주들은 알바들의 최저시급을 빨아먹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MBC


이와 동시에 편의점주들에게 큰 문제는 건물 임대료입니다. 일부 보수 언론은 최저임금이 18년 동안 4배 올랐다고 호들갑을 떱니다. 하지만 건물주가 받는 월평균 월세는 10년 사이에 6배나 올랐습니다. '갓물주'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갑들의 지나친 이익 추구로 인해 치명타를 입는 건 언제나 을들이라는 소립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런 사태를 초래한 범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국회입니다. 이 모든 사태의 요인을 막거나 완화할 수 있었던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100여 건의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 법률이 일하지 않는 국회에 쌓여 처리가 미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는 말로만 민생 민생 하지 말고 어서 법안들을 처리해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바랍니다.

 

출처 - 경향신문

 

아울러 편의점주, 자영업자들도 진짜 요구를 해야 하는 대상을 혼동하지 말길 바랍니다. 을과의 전쟁에 열을 올리지 말고 연대를 통해 갑에게 정당한 요구를 하며 실질적인 답을 찾야야 합니다. 가맹본부와 건물주, 나아가 이 돈이 집중되는 재벌 오너 일가도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을과의 상생을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 6월 19일 ‘2018 경향포럼’에서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와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 등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은 지대추구 행위가 불평등을 심화시켜 결국 공동체를 붕괴시킨다면서 정부의 과감하고 직접적인 개입을 주문했습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날 기조강연을 통해 "타인을 착취해 이익을 얻는 것이 지대추구 행위"라면서 "기업의 시장지배력이 지나치게 강해지면서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민주주의까지 약화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생각비행이 출간한 책, 《갑의 횡포, 을의 일터》가 바로 이러한 문제를 다룹니다. 갑이 많은 사회적 부를 움켜쥐게 된 까닭은 을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쥐어짜내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양극화가 심화된 대한민국이란 ‘하청사회’는 극소수의 갑만 이익을 챙기고 대다수의 을은 희생을 당하게끔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청사회는 막다른 골목으로 을들을 내몰고 상호 변절을 강요하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성과를 내야 하는 일터에서 살아가는 을의 눈에는 옆의 을이 동료라기보다는 경쟁자로 보일 뿐이죠.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에서 을들은 협동보다 생존을 우선적인 가치로 생각하게 됩니다. 최저임금을 둘러싸고 을과 을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2018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기무사가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 과정에서 계엄령과 위수령을 준비한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서울에 탱크 200대, 장갑차 550대가 들어올 계획이었다고 하니 마치 국민을 상대로 전쟁이라도 치르겠다는 생각이었을까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는 못할 망정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엄령을 들먹인 것을 보면 아직도 암암리에 숨어 있는 정치 군인들이 있는지 의심하게 합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지도 않은 북한 간첩을 잡는다고, 사회 안정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자신들이 지켜야할 국민에게 총부리를 돌렸던 전두환의 무리와 다를 바가 뭐가 있나 싶군요. 전두환이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 사령관이었던 사실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그들이 활동하고 있나 싶어 섬뜩하기만 합니다.



출처 - 군인권센터


기무사는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정치 군인들의 핵심 기관이었습니다. 기무사는 군 안에서도 초법적 기관으로 통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습니다. 투 스타 장군들도 기무사 중령 앞에서 벌벌 떨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니까요. 민주화 이후에도 기무사 개혁이 번번히 실패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각 부대에 대령, 중령급이 파견을 나가 있는데 그들은 파견 부대 상급자의 지휘를 받지 않고 오직 기무사령관의 명령만 듣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군 내부 인사들의 업무는 물론 사생활에 이르기까지의 인사 세평을 임무로 활동합니다. 이 때문에 모든 군 장성이 기무사 앞에 알아서 기게 되었죠.


출처 – MBC 유튜브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몰카나 미행 등을 자행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사찰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기무사가 세월호 유족을 사찰하고 성향을 분석해 박근혜에게 보고했다는 문건도 폭로되었죠.


출처 - JTBC


암울했던 군사정권을 지나 사회가 민주화되고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21세기가 된 지도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정당성 없는 군사 독재의 단맛을 그리워하는 정치 군인들이 언제든 자신들의 야욕을 드러낼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이번 촛불집회 계엄령 문건과 세월호 민간인 사찰 문건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박근혜 탄핵 국면과 촛불집회에서 까딱 잘못했다가는 1980년 5월처럼 서울이 피바다가 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계엄령과 위수령을 포함해 광주에서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군의 강압적 방식이 모두 나열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처 – KBS 유튜브


기무사 내부 문건을 보면 심지어 군 지휘계통조차 무시한 위법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전시나 국가비상사태로 계엄령 발동 시 계엄군 배치를 위해 군 부대를 이동 배치하려면 군령권을 가진 합참의장이 승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사령부 편성표에 의하면 계엄사령관은 합참의장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이 맡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군의 위계질서는 한순간에 무너지게 됩니다. 흔히 '육방부'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군의 폐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출처 - 경향신문

 

또한 위수령의 위헌 소지에 대해 군의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적시했습니다. 국회가 위수령 무효법안을 제정하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는 재의를 해야 하므로 2개월 이상 위수령 유지가 가능하다는, 국회를 무시하는 초법적인 계획안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위수령을 지나 계엄령이 선포되면 국회에 병력이 진주하고 국회의원들을 체포·구금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자신들이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겁니다.


출처 - 경향신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이와 관련해 군 사이에 오간 모든 문건을 즉각 제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기무사 계엄령 수사 관련 독립 수사단을 꾸리되 비육군, 비기무사 출신으로 수사단을 구성하라는 세부적인 지시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는 당시 상황과 벌어진 사건을 무겁게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 역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지휘관들에게 계엄문건 확인 후 최단시간 제출 명령을 내렸습니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실질적 권한을 가진 국방부 장관이 모두 명령을 내렸으니 이에 불복하거나 태만할 경우 명령불복종으로 항명죄에 해당, 그들은 더 이상 군인이라고 자칭할 수도 없습니다. 멋대로 계엄령 검토를 한 시점에서 국가반란에 준하는 죄를 범한 존재들이긴 합니다만.


출처 - 국민일보


특별 수사단의 조사에 의하면 기무사는 지난해 3월 초 계엄령 문건을 상부에 보고한 뒤 파기했다고 합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자 문건의 보고를 받았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이 문건의 원본을 보존하라고 명령했는데도 말입니다. 기무사 눈에는 자신들의 직속 상관인 국방부 장관마저 호구로 보였나 봅니다. 다행히 USB 형태로는 남아 있지만, 문건 파기와 관련해 증거인멸의 혐의도 적용해야 할 판입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출처 - 경향신문

 

기무사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군의 적폐 중에서도 대표적인 기관입니다. 그들의 존속 가치가 더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오히려 존재함으로서 끼치는 해악이 이만큼 크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난 셈이죠. 이번에야말로 기무사를 해체하고 아직 박멸되지 않은 정치 군인들의 싹을 잘라야 할 것입니다.

소득이 있는 고객의 소득액을 적게 입력하거나 없다고 입력해 가산금리를 높게 부과하고, 전산시스템으로 산정된 금리 대신 최고 금리를 적용하고, 대출 담보를 제출했는데도 담보 미제공으로 입력해 가산금리를 뜯어내고... 금융감독원이 지난 2~5월 9개 은행을 대상으로 대출금리 산정체계의 적정성 점검을 시행해 적발한 사례입니다.

 

경남은행과 하나은행 그리고 씨티은행은 부당하게 대출금리를 산정하여 고객한테서 이자를 뜯어냈습니다. 이 3개 은행에서 부당하게 뜯어간 이자만 27억에 달합니다. 은행은 서민 경제의 근간인데도 이렇게 뒤통수를 맞으니 배신감은 극에 달합니다.


출처 - 중앙일보


의료사고 분쟁과 마찬가지로 금리산정 체계에 대해 은행 고객들은 사실상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점을 악용해 은행들이 부당 이익을 챙기는 것이니 전형적인 불공정 금융 거래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은행들은 대출자 소득을 누락하거나 축소 입력해 가산금리를 높게 매긴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산금리는 시장 상황 및 경기변동(신용도 변화) 등을 반영하여 주기적으로 재산정되어야 하죠. 하지만 일부 은행은 수년간 가산금리를 재산정하지 않고, 경기 불황기를 반영한 고정값을 적용하거나, 시장 상황 변경 등 합리적 근거 없이 인상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신용등급이 오른 대출자가 금리인하 요구권을 행사하면 우대금리를 줄여 전체 대출금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등 금융소비자들이 누려야 할 이자 혜택을 은행들이 강제로 빼앗아가기도 했습니다.

 

경남은행의 경우 부당하게 높은 금리를 부과한 사례가 25억에 이르며 1만 건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가계대출의 6%에 이르는 수준입니다. 이만한 규모의 돈을 다른 문제도 아닌 이율 산정에 있어 다른 곳도 아닌 은행이 단순 실수를 1만 건 넘게 저질렀다면 이건 스스로 은행 자격이 없다는 고백일 테죠. 참여연대는 은행의 대출금리 조작이 단순 업무 실수일 수 없다며 고의 또는 시스템 문제일 가능성을 의심하면서 금감원의 철저한 진상 규명, 책임자 문책 및 피해 보상 등 재발방지책을 촉구했습니다.

 

출처 -SBSCNBC

 

은행들이 금감원이 조사에 나서자 부랴부랴 부당 이자 환급 조치에 나선 것은 사태 확산을 차단하고 환급을 통해 이번 사태를 무마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책에 대한 얘기도 없이,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없이 이렇게 나오는 건 이번에도 대충 무마하고 넘어가겠다는 심보입니다. 소비자 단체들은 이번 사태가 업무 실수나 과실이 아닌 고의적 행위라며 반드시 전수 조사로 가담 은행과 임직원을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고객들 담보제공을 누락, 축소해서 높은 금리를 받아 부당한 이득을 편취한 사기죄에 해당한다며 가담 은행을 고발했습니다.


출처 – KBS 유튜브


여론이 들끓자 대출금리를 부당 산출해 이자를 더 받은 경남·KEB하나·한국씨티은행은 1만 2000건, 약 27억 원에 대해 다음 달 중 환급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6월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경남은행(1만2000건, 25억 원), KEB하나은행(252건, 193명, 1억 5800만 원), 씨티은행(27건, 25명, 1100만 원)은 공식 사과와 함께 대출금리가 부당 산출된 대출자 수와 금액, 관련 상품 등을 공개하고 향후 환급계획을 밝힌 것이죠.

 

하지만 환급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은행마다 대출 금리가 제각각인데 그 기준이 철저히 은행 내규에만 달려 있고 금융소비자에게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더 큰 문제는 이 내규를 제대로 만들고 지키도록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현행법상 내규를 만들게 되어 있지만, 부실하거나 지키지 않더라도 제재 조항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당국은 은행이 알아서 조치해주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결국 금융당국이 합리적 제재 방안을 마련해 정기 점검에 나설 시스템과 법안을 만들어야 소비자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나아가 그 기준이 금융 소비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며 이번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경우 징벌적 배상을 하도록 징벌적 손해 배상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도 있습니다.


출처 - 뉴스웨이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취임 두 달 만에 첫 기자간담회를 열어 '금융감독혁신 과제'를 발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융회사들과 전쟁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3년 전 폐지했던 금융회사 종합검사를 부활하고 대출금리 부당 부과 관련 조사를 전 은행권으로 확대하고, '근로자 추천 이사제'에 대한 의견수렴에 나서겠다고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금감원은 금융회사 자율성 강화와 컨설팅 검사를 강조하면서 종합검사제도를 폐지하고 금융사 경영실태 평가로 대체한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죠. 

 

그간 은행권이 채용 비리로 얼룩진 상태였고, 이번에 고객을 상대로 이자 장사마저 하고 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채용 비리와 부당 대출금리 산정 등은 서민의 경제활동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안인 만큼 금융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적극적인 제재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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