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의 거목, 이희호 여사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대한민국의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맞서며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에 큰 족적을 남긴 거목이 졌습니다.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지난 10일 오후 향년 97세로 소천했습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으로 군사독재의 가시밭길을 끝끝내 이겨낸 평생 동지이자 한국 사회의 큰 어른이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고 이희호 여사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군사독재에 대항해 사선을 함께 넘나든 일은 유명합니다. 1971년 독재자 박정희에 맞서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정치인 김대중은 군사정권의 최대 정적이 되었고, 김대중-이희호 두 사람 앞에는 가시밭길이 펼쳐졌습니다. 24시간 계속되는 감시와 도청, 망명과 납치, 구금, 연금 등이 이어지는 생활을 20년 이상 견뎌야 했습니다. 1976년 3.1 구국 선언문 사건으로 남편이 구속되자 이희호 여사는 3년 가까이 석방투쟁을 벌입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등과 함께 군사독재에 맞서다 투옥된 가족들을 모아 양심수가족협의회, 현재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었다는 것 말고도 고 이희호 이사장의 업적은 정말 많습니다.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전쟁 때문에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그곳에서 친구 김정례 등과 함께 대한여자청년단을 결성했습니다. 여성의 권익을 찾아주자는 취지의 여성운동으로 시작되었으나 전쟁통이다보니 군경원호 활동에 치중하게 되어 다른 길을 모색했다고 하죠. 고 이희호 이사장은 여성 교육운동가 황신덕,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등 젊은 여성 지도자들과 함께 1952년 11월 여성문제연구원 창립에 나서 여성의 인권과 법적 권리를 도모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당시 회장까지 맡아 남녀차별 법조항 철폐에 주력했죠.

 

출처 - 한겨레

 

미국 유학 후에는 YWCA 총무를 맡아 그곳에서 가정법 개정 운동에 박차를 가합니다. 그때 나온 캠페인이 '혼인신고를 합시다'였습니다. 당시 많은 여성이 자식을 낳고 살다가 젊고 많이 배운 후처가 혼인신고를 먼저 해버리는 바람에 빈손으로 쫓겨나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축첩 반대 운동과 남녀차별적 내용이 담긴 가족법 개정 운동으로 발전해 최종적으로 호주제 폐지로 이어졌다고 하죠.


출처 - 《사랑의 승자》

 

생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가 나름대로 페미니스트적 관점과 행동을 실천할 수 있었던 건 아내의 조언 덕이었다" "아내의 내조는 정말 값진 것이다. 아내가 없었다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됐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라고 할만큼 이희호 이사장의 역할은 컸습니다. 

 

출처 - 여성신문

 

이희호-김대중 부부가 살던 동교동 집 앞에는 1980년대에 이미 김대중, 이희호, 김홍일의 문패가 걸려 있었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 후 안착한 동교동 자택에도 김대중, 이희호라는 문패가 나란히 걸려 있었죠. 문패는 부부인 두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고 온전히 동등하다는 증표였습니다.


출처 - 여성신문


여성의 권리에 관심이 많았던 이희호 이사장이 영부인이 되며 행정부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여성가족부의 모태가 되는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출범했고, 장관들 임명장 수여식 때는 부부가 동반해서 임명장을 받는 새로운 관행이 생겨났습니다. 영부인으로서 독자적으로 해외순방을 가기도 했고 대통령을 대신해 유엔 아동특별총회에 참석, 의장국으로 임시회의를 주재하고 영어로 기조연설을 하는 등 다방면에 다재다능함을 보였습니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에는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맡아 남편과 평생을 함께해온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활동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난 10일 별세한 이희호 이사장은 생전에 유언장을 작성했으며 11일 발표문을 통해 공개되었습니다. 그는 유언을 통해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노벨평화상 상금은 대통령 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라는 말씀도 남겼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고 이희호 이사장의 장례는 김대중 평화센터와 장례위원회 주관하에 사회장으로 치러집니다. 사회장 명칭은 '여성지도자 영부인 이희호 여사 사회장'으로 명명되었습니다. 장례위원회 고문으로 여야 5당 대표를 청해 모두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마지막까지 사회통합을 바랐던 고인의 뜻을 존중했기 때문일까요. 오는 14일(금요일) 생전에 장로를 지냈던 신촌 창천교회에서 장례예배를 치른 뒤 국립현충원에서 남편 고 김대중 대통령 곁에 안장될 예정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출처 - 데일리투데이

 

파란만장하고 힘겨운 고난을 이겨내고 위대한 업적을 쌓은 이희호 여사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그분의 뜻을 이어나가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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