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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홍콩 103만 명 시위 참여로 '범죄인 송환법'에 반대하다

by 생각비행 2019. 6. 13.

톈안먼 사건 30주년을 맞이한 올해 중국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 9일 홍콩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습니다. 주최 측이 추산한 집회 참가자수는 103만 명입니다. 이 추산대로라면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래 최대 규모 시위가 되는 셈입니다. 지난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통칭 우산혁명 당시 집회 참가 인원인 50만 명의 두 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홍콩 인구가 700여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니 사실상 7명 중 1명이 참여한 셈으로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죄다 시위에 참여했다고 봐도 될 규모입니다.




홍콩 시민들의 분노가 이렇게까지 극에 달한 것은 범죄인 인도 법안 때문입니다. 홍콩 정부가 추진 중인 이 법안이 입법될 경우 재판을 위해 범죄 용의자를 중국 본토로 보낼 수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점점 더 독재로 치닫고 있는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도망한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송환하는 데 이 법을 악용할 여지가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눈밖에 나면 판빙빙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조차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상황을 이미 보았죠. 그러니 홍콩 사람들로서는 범죄인 인도 법안이 피부에 와닿는 위협으로 느껴졌을 겁니다.


출처 - 로이터


현재 홍콩과 중국은 일국양제입니다.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어 편입되기는 했지만 외교와 국방을 제외하고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유지한다는 조건이 붙은 반환이었지요. 이 때문에 다른 체제 다른 경제로 돌아가는 중이었고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이라고 하지만 대만, 홍콩과 중국 사이에는 아직 범죄인 인도 조약도 맺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의 입김이 깊이 들어간 캐리 람 홍콩 행정 장관은 사형 선고나 고문을 받거나 반체제 운동 등 정치범 혐의 용의자에 대해서는 이 법안이 적용되지 않게 할 것이라는 사탕발림으로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중입니다. 캐리 람 행정 장관은 12일로 예정된 법안 표결을 강행하려 했으나 이날 대규모 시위에 가로막혀 오는 20일로 연기했습니다.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는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지난 4월에도 주최 측 추산 13만 명이 모여 시위를 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가 점점 불어나고 있습니다. 홍콩 당국이 이 법안을 7월 이전에 개정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00만 명이란 기록적인 시위 인파는 바로 다음 달로 다가온 현실적 위협 때문이기도 합니다.

 

출처 - 허프포스트


지난 9일 시위는 비교적 평화적으로 치러졌지만, 홍콩 입법회 건물에 진입하려던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 사이에 여러 차례 충돌이 있었으며 몇몇은 얼굴이 피범벅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시민 일부는 2014년 우산혁명의 상징인 노란 우산을 들기도 했습니다. 같은 날 뉴욕, LA, 런던, 시드니, 베를린, 토론토, 도쿄 등 세계 12개 국 29개 도시에서도 연대집회가 열렸습니다. 홍콩의 자유와 민주화 열망에 대한 화답이었으며 중국의 비인권 비민주적인 독재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습니다.


출처 - BBC


이 때문인지 중국은 이 시위를 서구 세력과 결탁한 반대파의 소행이라면서 음모론을 주장했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어떤 외부세력도 홍콩의 입법 활동에 간섭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며 법안을 강행할 뜻을 밝혔습니다. 독재자들이 시위의 배후를 찾고 음모론을 주장하는 건 만국 공통인가 봅니다. 중국 정부는 여론 통제에 박차를 가해 구글은 물론 우리나라의 네이버까지도 모조리 차단해버렸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범죄인 인도 법안이 시위의 원인이지만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홍콩 반환 즈음부터 수십 년간 쌓여온 반중국 정서가 터진 것이라는 게 외신들의 시각입니다. 2014년 홍콩 시민들이 행정장관 선거의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벌인 우산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뒤 중국의 홍콩에 대한 간섭은 더더욱 심해졌죠. 또한 중국 본토인들의 홍콩 진입으로 인해 폭등한 집값과 어려워진 경제 사정, 늘어난 범죄율도 시위 촉발에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일 것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출처 - 허프포스트


지난 우산혁명과 달리 이번 범죄인 송환법 개정안 반대 시위는 차원이 다른 규모이기도 하지만 그 구성원도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사업가, 변호사부터 학생, 민주화 인사, 종교 단체에 이르기까지 특정 계층이 주를 이뤘던 우산혁명보다 구성원이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중국 정부가 더 긴장하는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이 때문인지 중국 정부가 홍콩과 맞닿은 지역으로 인민해방군을 이동시키기 시작했다는 흉흉한 루머도 나오기 시작합니다. 톈안먼 사태 30주년, 미중 무역전쟁에 이어 홍콩 시위까지 하나의 중국이란 허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출처 - SBS

 

지난 12일에도 수만 명의 시위대가 홍콩 입법회를 둘러싸고 범죄인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집회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은 최루탄과 최루가스를 섞은 액을 쏘고, 고무탄과 곤봉까지 이용해 시위대를 진압하는 장면이 보도되기도 했죠. 몇 년 전 독재자의 후예인 대통령을 끌어내린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홍콩 시민들의 시위를 지지합니다. 그들의 자유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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