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범죄 신상 공개 논란. 명확한 기준과 원칙이 필요하다

올 들어 세 번째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공개 결정이 있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여러 곳에 유기한 혐의로 피의자 고유정에 대한 신상공개 결정을 한 것이었죠. 그런데 고유정은 신상 공개 결정이 난 이후 고개를 푹 숙여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나타나 사람들의 비난이 있었습니다. 얼굴이 공개된 건 다음 날인 지난 7일 오후 유치장에서 진술녹화실로 이동하던 때에 한 언론이 찍은 사진에 의해서였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피의자에 대한 신상 공개는 2010년부터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선별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2009년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차원과 피의자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피의자가 청소년이 아닌 경우 등 모두 4개의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 신상공개 심의위원회의 결정으로 얼굴, 이름, 나이 등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습니다.

 

출처 - YTN

 

이 제도가 생긴 후 신상이 공개된 범죄자는 21명으로 첫 공개 대상자는 2010년 대낮에 초등생을 납치 성폭행한 김수철이었고 이후, 오원춘, 조성호 이영학 등 우리 사회가 분노에 떨었던 사건의 피의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올해는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의 부모를 살해하고 유기한 김다운,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사건의 안인득 그리고 이번에 고유정까지 3명입니다. 21명 중 판결이 아직 나지 않은 상태에서 공개된 사람은 이번에 공개된 고유정 등 5명입니다.

 

출처 - 중앙일보

 

과거에 비해 피의자의 신상 공개가 적극적으로 되고 있는 것은 강력범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사람들의 흉악범 신상 공개 요구가 커졌고, 이를 통한 범죄 예방 효과가 있다는 주장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신상 공개에 명확한 기준이 있는지, 정말로 범죄 예방 효과가 있는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출처 - 제주지방경찰청


이번 고유정의 신상이 공개된 바로 그날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제주지방경찰청은 공식 페이스북에 “제주에서 발생한 '전 남편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피의자나 피의자 가족의 신상 정보 등을 게시하거나 유포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고 공지했기 때문이죠. 수사기관이 공식 확인하지 않은 범행수법이 온라인에서 급속도로 퍼져 혼란을 야기한다며 포털 사이트들에 해당 정보를 가려달라는 요청도 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섣부른 공개였음을 인정한 셈입니다.

 

출처 - KBS

 

게다가 신상이 공개되자 다수의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는 고유정과 피해자인 전 남편 강모 씨의 출신학교와 졸업사진, 범죄와 무관한 고유정의 가족에 대한 신상까지 무분별하게 확산됐습니다. 여기에 편승해 아직 어린 아들에 대한 정보까지 다 까발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이쯤 되면 신상 공개라는 게 기레기들의 클릭 장사와 사람들의 괘씸죄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 말고 효과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출처 - JTBC


실제로 신상 공개 제도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어 사건 발생 현황이나 피의 사실에 관계없이 들쑥날쑥 공개된다는 지적이 계속 있었습니다. 통계적으로 봐도 살인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한 2011년에는 신상 공개가 아예 없었는데 30% 이상 줄어든 2017년에는 신상 공개가 4명 있었습니다. 또한 고유정 사건에 못지 않은 강력범죄였으나 신상 공개가 되지 않는 경우도 수두룩합니다. 2016년 초 아들의 시체를 토막 내 냉동실에 보관한 '부천 토막 살인사건'의 피의자와 7세 아들을 학대한 끝에 숨지게 한 '원영군 사건'의 피의자의 경우 얼굴과 신상정보를 공개하라는 사람들의 요구가 빗발쳤음에도 경찰은 끝내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출처 - 서울신문

 

한편 신상 공개가 제대로 된 기준 없이 여론 재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향도 있습니다. 여기엔 언론이 한몫하고 있죠. 이번에 공개된 고유정의 얼굴도 공개 결정 이후 경찰이 절차에 따라 정해진 장소에서 공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경찰서 내부에서 한 기자가 고유정의 동선을 따라다니다가 찍어서 알린 것이었죠. 이처럼 신상 공개 기준이 모호하고 그마저도 언론이 지키지 않으니 경찰과 언론 모두 월권의 소지가 있는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추세입니다.


출처 - KBS


제도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신상 공개 결정에 대한 근거만 있지 이에 대한 이의 제기 절차나 혹시라도 잘못된 공개 결정이었을 경우 피해 보상에 대한 근거가 아예 없습니다. 그나마 구속영장 발부 이후 신상 공개 원칙이 있긴 하지만 이조차도 원칙일뿐 사람들의 관심이 높고 증거가 있다고 판단되면 영장 발부 전에도 공개가 가능한 실정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인데요. 2006년 제주도에서 살인, 방화사건 용의자로 경찰에 체포돼 실명이 공개된 20대의 경우 최종심에서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공개되어 버린 신상에 대해 누구에게 어떻게 보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출처 - 연합뉴스

 

피의자 신상 공개가 범죄 예방에 실익이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증거가 충분하고 구속된 경우면 굳이 경찰이 가려줄 필요도 없고 언론도 과도한 사생활 침해가 없도록 보도하면 됩니다. 게다가 신상 공개 결정이 날 정도의 범죄 피의자라면 형량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10년, 20년 안에 사회에서 그 얼굴을 맞닥뜨릴 가능성은 굉장히 작습니다. 아직 잡히지 않은 피의자를 수배하기 위한 신상 공개야 당연히 필요하지만, 이쯤 되면 과연 누구를 위한 신상 공개인가 싶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수사단계에서 여론에 떠밀려 피의자 때문에 피해자의 신상까지 공개가 심해지는 일도 있는데, 이 또한 전체적으로 적절치 않습니다. 가해자 인권만 생각하냐는 분들께서는 피해자까지 2차 피해를 입는 부분 역시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신상 공개로 피해자가 입은 피해가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출처 - 중학독서평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신상 공개에 대한 여론은 찬성 쪽이 우세한 편입니다. 흉악범 얼굴공개를 찬성하는 측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공익보호, 범죄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반대 측이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정부는 명확한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원리원칙에 따라 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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