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하셨습니까?] 사막에서 꾸는 꿈

오랜만에 이은 씨가 [독립, 하셨습니까?] 원고를 보내왔습니다. 그간 60년 전 남장 아이돌과 열혈팬들의 삶을 담은 다큐 〈왕자가 된 소녀들〉의 스태프로 일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누굴 인터뷰했을지 궁금하시죠? 바로 소개하겠습니다. 


세상엔 남들보다 더 많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영화사 ‘꿈꾸는 오아시스’의 김효정 대표도 그런 부류(?)일 것이다. 평범한 삶에는 가슴이 뛰지 않으며 비록 현실이 모래바람일지라도 진짜 사막 걷는 것을 꿈꾸는 이들. 이들에게 삶이란 가로질러야 할 무언가이면서 가로지르는 일 자체이기도 하다. 사막에서 영화를 찍다가 진짜 사막을 가로지르는 사막 레이서가 되어버린 김효정 프로듀서는 그래서 오늘, 또 다른 꿈을 꾼다.

사막을 횡단하다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사람이 사람에게 들려주고 보여주는 이야기라는 점인 것 같다. ‘인터뷰도 사람과 이야기를 잇는 매개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바람으로 이 일을 시작했고, 어느새 초심을 돌이켜볼 시점이 되었다. 인터뷰이를 고민하다가 리스트의 앞부분에 있었지만 소식이 알려지지 않은 김효정 프로듀서를 찾아 나섰다. 그가 남긴 책이자 이정표인 《나는 오늘도 사막을 꿈꾼다》를 들고서.

김효정은 ‘갈 데까지 가본 사람’이다. 2003년 모로코 사하라 사막을 시작으로 2005년 중국 고비, 2006년 칠레 아타카마, 2007년 이집트 사하라, 2008년 남극까지 세계 5대 사막 레이스에서 약 1000킬로미터를 완주했다. ‘그랜드슬래머’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는 이 중 고비, 아타카마, 사하라, 남극을 지나야 한다. 아시아 여성으로는 최초, 세계를 통틀어도 세 번째로 타이틀을 획득한 여성이 바로 그다. 그것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영화 촬영과 촬영 사이 막간의 휴지기에 이룬 쾌거이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끝도 없는 사막과 평지, 능선이 펼쳐지는 사막 레이스. 가려도 가려도 온통 모래투성이가 되어버린다.

언뜻 보아도 스포츠 우먼과는 거리가 먼 듯한데 어떻게 사막 레이스에 도전할 생각을 다 했을까. 그는 시인이 되고 싶어 문예창작과에 진학했지만 고전영화 마니아들과 어울리며 점점 영화의 매력에 빠져들어 같은 대학 영화과로 재입학했다. 스물넷에 1999년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이었던 영화사(현 싸이더스)에 제작부 막내로 입사한 뒤로 쉼 없이 달리기만 했다. 2000년 모래바람을 맞으며 10개월간 영화 <무사>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40대 중반의 신한은행 박중헌 지점장이 사막 마라톤을 완주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봤다. 스물다섯 청춘이 바닥부터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그로부터 3년 후, 김효정은 사하라 사막 마라톤 출발선에 섰다. 촬영 중 틈틈이 준비한 터라 뛰어서 완주할 체력도 없었지만, 전쟁터 같은 현장에서 늘 종종거린 탓에 뛸 마음도 없었다. 한낮의 태양과 밤의 적막함, 외로움과 동행하며 꼴찌 비슷한 성적으로 완주했을 때의 희열을 잊을 수 없어 그는 끊임없이 사막으로 자신을 내몰았다. 그러는 사이 <행복한 장의사> <킬리만자로> <무사> <결혼은, 미친 짓이다> <싱글즈> <역도산> <호로비츠를 위하여> 등의 영화 제작에 참여했고, 프로듀서로 권형진 감독의 <트럭> 등의 작품을 제작했다. 2008년 남극 마라톤까지 완주하고 나니 그랜드슬래머라는 영예와 함께 더 이룰 꿈이 없어졌다는 허무함이 찾아왔다.

"사막에서도 달리지 않고 열 시간 동안 같은 속도로 속보를 했어요. 처음엔 뒤로 처지지만 결국은 앞질러 뛰던 친구들보다 먼저 도착할 수도 있는 거죠. 처음엔 자아를 찾으려고 갔는데 두 번째부터는 주변 사람이 보이더라고요. 마음을 많이 키웠죠. 수업료치고 비쌌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대학생 때 배낭여행 붐이 불어도 저는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서 해외여행도 안 갔어요. 그런데 사막 레이스를 하면서 근처의 대도시를 많이 경유했어요. 다섯 번 다녀오고 회사 그만두고 나서 쉴 겸 호주에 마지막 레이스를 하러 갔어요.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데가 사막이었거든요. 왜 또 왔지 싶다가도 되게 즐겁고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그러고 나니 돈도 떨어지고 이 돈이면 다른 걸 할 수 있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해가 질 무렵, 꼴찌로 들어오는 참가자를 환영하기 위해 피니시 라인으로 향하는 레이서들. 사하라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란다.

남극 레이스에서 만난 펭귄. 보호 규정상 근접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고.

영화로 세상에 말을 건네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숱한 이의 노동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스태프의 근로조건이 얼마나 열악한지는 화려한 스크린 뒤편에 가려져 있다. 제작부는 현장 통제와 세팅, 장소 헌팅과 섭외는 물론 청소까지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부서다. 제작부 신입(현장에선 '막내'라 부른다)으로 시작해서 제작부장, 실장을 거쳐야 프로듀서가 될 자격이 된다. 편당으로 계약하는 프리랜서는 참여 기한도 짧고 진급도 비교적 빠른 편이지만 김효정은 회사에 소속되어 있어서 꽤 많은 작품의 기획 단계부터 완성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겪어냈다. 현장에서 시작한 덕분에 작품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됐다. 14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거의 없었던 여성 스태프의 수가 많이 늘었고, 마케터 출신이나 유학 다녀온 프로듀서가 많아지면서 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었던 것들이 다소 경시되는 경향도 있다.    

"제작팀에 들어갈 때 여자 스태프가 드물었어요. 여자 선배가 절 처음 보자마자 중간에 관둘 거면 지금 그만두라면서 3~4년은 밤낮도 없고 사생활도 없을 텐데 괜찮겠냐고 묻더라고요. 사실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일을 제대로 못 하면 남에게 부담이 가니까 더 많이 일했던 것 같아요. 맨손으로 쓰레기 줍고 도시락 분리수거하고 잡다한 일까지 다 해요. 현장에서 하는 일이 대부분인데 성별 따져서 일 나누기도 그렇고, 무거운 거 들고 갈 때 남자 스태프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마다하고 그랬어요. 남자들도 쉬이 그만두는 판에 제작이나 연출 파트 여성들은 남성적 성향이 많아야 견딜 수 있어요. 이제는 제 위치가 생기기도 했고 요즘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겠죠. 피디도 남들보다 늦게 됐지만 차근차근 모든 단계를 경험한 것이 지금은 큰 자산이 됐어요."

처음에 한 번이라고 생각했던 사막행이 잦아지면서 점점 회사에 얘기하지 않고 다녀오게 됐다. 아무리 휴가 결재가 떨어졌다고 해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경우, 반길 수만은 없는 부분이 있었고 그런 점이 신경 쓰여 일에 완벽을 기하려고 더욱 노력했을 터다. 영화라는 작업 자체가 계획한 일정에 맞춰 끝나기 힘든데다 개개인의 사정을 봐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취미나 다른 일과 병행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체력훈련을 해야 하는 일을, 김효정은 자투리 시간만 이용해 해냈으니 대단한 성취일 수밖에. 그걸 아는 사람들은 경탄의 눈길로 바라봤을 테고 또 어떤 이들이 질시의 시선으로 보는 것도 당연했다.      

"남들 휴양지 갈 때 난 사막에 가는 것하고 다를 바가 없는 거죠. 저는 몸을 움직이는 게 행복하고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몸을 내몰았을 때 희열을 느껴요. 인생이 일과 사막, 두 가지뿐이었죠. 그러다 2009년에 회사를 그만두게 됐어요. 프로듀서로 데뷔해서 한 작품을 했는데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져서 희망퇴직처럼 나온 거예요. 독립할 요량이었으니 잘됐다 싶으면서도 불안했는데 책을 쓰면서 나름대로 극복한 것 같아요. 그동안 못 만난 친구들도 만나고 열심히 놀았어요. 그러면서 제 영화사도 차렸고요. 2년 정도 촬영한 다큐가 있는데 마무리하고, 올해 장편 상업영화를 제작할 계획이에요. 되어 봐야 아는 거긴 하지만."    

사막 레이스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아프리카'였다. 십 년간 영화를 찍어 번 돈의 절반은 사막에, 나머지 반은 아프리카 촬영에 쏟아부었다. 그 계기가 된 영화가 <데저트 플라워>(2009)였다. 아프리카 소말리아 사막의 가난한 유목민의 딸로 태어나 강제 결혼을 피해 고향에서 도망쳐 천신만고 끝에 세계적인 톱모델이 된 와리스 디리의 삶을 그린 이 영화는 그간 사막을 가로지르기만 했던 김효정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여성 할례란 여성 성기 절제술을 이르는 말로, 여성의 성기에서 성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제거해 성적인 쾌감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아직도 널리 행해지고 있는 악습이다.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20~30퍼센트에 달하는 아이가 감염과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전통할례를 치르고 있는 소녀들 (케냐 Olenguruone) -서민수
NGO 교육프로그램을 경청하는 여인들 (에티오피아 Gift)-서민수
2.6 할례 반대의 날(Anti-FGM Day) 거리캠페인 중인 학생들 (에티오피아 Addis ababa) -서민수

할례를 피해 도망온 아이들을 보호하는 캠프에서 만난 소녀의 뒷모습 (케냐 Kuria) -서민수

"한국 사람들이 할례도 잘 모르고 아프리카를 오지(奧地) 이미지로만 알고 있잖아요. 저도 사막을 그렇게 다녔는데 그곳 사람들의 삶을 전혀 몰랐더라고요. 가보면 다들 원조받은 브랜드 옷 입고 핸드폰 들고 다녀요. 아프리카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마사이족이 실제로는 제일 잘살아요. 저희는 현지인처럼 정말 가난하게 다녔어요. 싼 방에서 다 같이 자고, 현지 음식을 먹고 물만 사서 마시는 식으로. 할례를 피해서 도망쳐온 아이들을 만나려고 2010년 겨울하고 이듬해 겨울 두 번 다녀왔어요. 겨울방학이 우기라서 학교에 못 가기 때문에 그때 할례를 해요. 우리가 도와줄 건 없고 결국엔 아이들에게 교육할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부모가 초등학교 중퇴니까 아이를 안 보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첫해에 하루도 안 빼고 촬영했는데 나중에 보니 쓸 게 없더라고요. 이듬해에는 할례를 피해 도망온 아이들을 돌보는 기숙학교에 한 달 있었어요. 철제 이층침대에 다 꺼진 스펀지를 깔고 아이들하고 같이 잤어요. 한 달쯤 지나서 돌아갈 때가 되니 그제야 마음을 조금 열더라고요."

아이들과 똑같이 먹고 자고 하다 보니 살이 빠졌다. 아침은 묽게 탄 짜이(밀크티 비슷한 차)와 마가린밥, 점심엔 팥 삶은 것만 먹는 약소한 식단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집보다 배불리 먹고 편히 지내서 그런지 얼굴에 윤기가 돌았다. 방학이 끝나면 집과 학교로 돌아가거나, 아예 집을 떠나야 하는 아이들. 딱히 해줄 것이 없어서 120명이나 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뷰파인더에 담아 사진을 인화해주었다. 우리나라식으로 졸업사진을 찍어준 셈인데, 사진을 보며 아이들은 특별한 동기생과 한국에서 온 노란 피부의 언니들을 평생 떠올릴지도 모른다. 언젠가 영화가 완성되어 함께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진 찍어서 잠깐 보여주고 마는 건 좀 아니잖아요. 카메라 두 대로 종일 찍고 인화해서 졸업날 개인 사진하고 단체 사진을 나눠줬어요. 아이들에게 안 입는 옷을 나눠주려고 수하물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1인당 10킬로그램씩 챙겨갔어요. 우리는 옷을 두 벌만 가져가서 매일 빨아서 입고.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줄 수가 없잖아요. 언젠가 집 떠나 독립하려면 스스로 책임져야 하니까 돈 버는 일이 힘들다는 걸 가르쳐주고 싶어서 같이 옷을 팔았어요. 처음에는 잘 팔리니까 재밌어하더니 금세 지루해하더라고요. 남은 옷은 저희가 다른 장에 가져가서 팔았어요. 일주일 후에 옥수수가루랑 차, 비누 같은 생필품을 사줬어요. 한국에 돌아오니 후반작업 비용이 필요해서 기업 사회공헌 기금이나 단체 지원금을 주로 알아봤는데 할례가 거부감을 주는 소재라면서 나무 심기나 축구공 기증처럼 눈에 보이는 사업에 지원하겠대요. 저 같으면 생리대 판매수익이 아프리카 여성을 위해 쓰인다고 하면 살 것 같은데 말이에요. 잘 마무리해서 개봉하려고 해요."

이 다큐멘터리는 아마 상업적으로 크게 이득을 안겨주는 결과물은 아니겠지만, 그의 본업은 상업영화 프로듀서다. 더 많은 사람이 향유할 수 있는 대중영화라도 기왕이면 사람들의 마음에 조그만 행복이라도 안겨주는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 짬짬이 강연이나 다른 책 작업을 하면서 영화 일에 힘쓰고 있다. 시간이 지나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별다른 수식어 없이 '김효정'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오랫동안 다져온 꿈인 만큼 좋은 영화, 오래 회자할 만한 영화를 만들어내리라 기대한다. 꿈꾸고 노력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이루게 마련이니까. '꿈꾸는 오아시스'라는 영화사 이름을 곱씹을수록 그러하다.

"물론 오락영화도 좋고 그런 영화는 영화대로 보지만, 제가 만든 영화가 뭔가 사람들의 삶에 작용하길 바라요. 조금씩 퍼뜨려져서 전 세계가 행복해지면 좋겠다는 어찌 보면 막연한 꿈을 꾸는 거죠. 영화란 게 기획 기간이 길고 실 제작에 들어가야 펀딩이 되고 저도 인건비를 받을 수 있는데 그 과정이 너무 길죠. 대박이 나야 수익도 나는 거고. 남들은 신세가 좋은 줄 알겠지만 미치지 않으면 못 하는 일이에요. 영화 작업이 더뎌지면서 스트레스를 받지만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져요. 저는 꿈 얘기할 때가 가장 즐겁고 밤새는 줄도 몰라요. 직장 그만두고 나서 돈보다 자아를 찾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남들이 결혼하고 애 낳고 그런 건 안 부러운데,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친구들은 참 부러워요. 세상에 즐거운 일이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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