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하셨습니까?] 패션지, 동물복지와 환경을 만나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독립, 하셨습니까?] 연재도 어느덧 네 번째를 맞이했네요. 오늘은 패션 사진가 한 분을 소개할까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패션 사진가' 하면 과장된 환상을 보여주어 잠재된 욕망을 이끌어내고 소비를 부추기는 작업을 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진가로서의 본업보다 지구환경과 동물복지를 생각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친환경 잡지를 만드는 일에 더 열심인 사진가가 있습니다. 《오보이!》의 발행인, 사진가 김현성 씨를 이은 씨가 만나고 왔습니다. 

패션지, 동물복지와 환경을 만나다, 
《오보이!》 발행인, 사진가 김현성 

한때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사는 것이 더 훌륭하고 고상한 삶이라 믿었다. 내가 행복해야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존재에게 자신의 이기심으로 원치 않는 행동을 강요하기도 하는데 사실 반려인과 반려동물은 한끝 차이일 수도 있다. 종(種)이 달라도 얼마든지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다. 김현성 편집장은 표정이 그다지 없는 얼굴이지만 그토록 좋아하는 동물이란 존재를 위해 있는 힘껏 살고 있는, 그러니까 행복한 사람이었다. 

동물, 사지 말고 입양해요 

그는 잘 나가는 유학파 포토그래퍼였다. 10년을 훌쩍 넘겨 패션 사진을 찍으며 스튜디오를 차려 실장 직함도 달았고 크게 남부러울 일 없이 살았다. 특유의 감성이 엿보이는 사진과 일에 안달하지 않는 그의 시크한 태도가 도리어 차별화 전략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럭저럭 잘 나가던 어느 날, 삶이 바뀌었다. 남보다 잘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존재와 생명을 돌보는 일에 대가 없이 자신을 쏟아붓게 됐다. 자식처럼 키우던 개 '먹물이'의 죽음 때문이었다.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모델과 연예인이 표지를 장식했지만오보이!》의 주인공은 반려동물이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잡지도 생겨나지 않았을 테니.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전에는 잘난 척하면서 제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제 인생과 앞길만 위해 살았어요. 상업 사진 찍으면서 제 감성을 팔았는데 자식처럼 키우던 먹물이의 죽음이 (《오보이!》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됐어요. 아이를 낳아보지는 않았지만 제 자식이었거든요. 저보다 일찍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아니까 미리 준비했는데, 그래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힘든 일로만 지나가 버리면 먹물이에게 미안할 것 같아서 의미 있는 일을 찾아 하게 된 거죠. 갑자기 성자가 된 건 아니지만 이대로 사는 건 무의미하고, 돈 벌어서 땅 사고 건물 짓고 이름 알리는 일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보이!》를 만든 거지요. 욕심이 없어져서 옷도 안 사요. 예전 같으면 인터뷰하는 자리에 옷도 신경 쓰고 나왔을 텐데 지금은 예의만 차리는 정도죠." 

사진가이긴 해도 '찍히는' 일도 더러 있다. 인터뷰하던 날 그는 무늬가 없는 단색 티셔츠에 무채색의 팬츠, 운동화 차림이었다. 최신 유행 아이템을 입지 않아도, 차림이 캐주얼해도 본인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이 격식 아닐까.
    
이렇게 2009년 말에 등장한 무가지 《오보이!》 창간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이런 변화는 잡지 시장의 다양화, 양적인 팽창과 수익구조의 악화로 거품이 꺼지면서 무가지가 속속 등장하던 배경에서 시나브로 일어났는데, 그 틈바구니에서 '동물 복지를 이야기하는 패션 매거진'이라는 다소 급진적(?)으로 보이는 메시지를 담은 잡지가 등장할 수 있었다. 거의 3년 동안 31권을 만들어오면서 그간 공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조금은 자연스러워졌고, 패션 사진이 단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오보이!》에 나름의 원칙은 있다. (기존의 패션 화보에서는 필수불가결한) 가죽으로 된 신발이나 소품은 가능한 사용하지 않고, 모피는 절대 등장하지 않는다. 잡지 말미에는 유기동물을 스타가 안고 있는 화보를 실어 분양을 부추긴다. 잡지의 권수가 늘어난 만큼 아무 대가 없이 《오보이!》에 등장한 스타의 수도 그만큼 늘어난 셈이다. 아무리 잘 나가는 톱스타라도 촬영 때는 개나 고양이의 컨디션이 우선이다. 고양이는 특히 예민한 동물이기도 하지만, 화보가 예쁘게 나와야 녀석들이 좋은 곳으로 입양될까 싶어서다.
 
이런 마음으로 만들어서인지 잡지의 인기는 나날이 상한가다. 매월 초 서울 도심 곳곳에 있는 배포처에서 무료로 얻을 수 있는 《오보이!》는 들어오기가 무섭게 동나곤 한다. 지난 9월호도 그랬다. 아이돌 그룹 에프엑스f(x)의 멤버 크리스탈이 표지 인물로 나온 고양이 특집은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10여 페이지가 넘는 화보, 이름난 글쟁이들이 고양이에 관해 쓴 글로 가득 채워져 고양이 애호가 사이에서 구하기 어려운 '희귀템'이 되었다. 잡지는 별다른 꾸밈없이 세련된 디자인으로 패션 리더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화려하고 멋진 것이 다가 아니라는 인식도 심어주었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를 아끼는 것 또한 아주 멋진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동물권'이란 단어조차 생경하게 느끼는 이가 여전히 많지만,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유행을 선도하고 남보다 앞서갈 수 있다고 사람들이 공감하는 데는 분명 《오보이!》 같은 잡지와 이효리 같은 톱스타의 영향이 존재한다. 

《오보이!》에 실린 기사와 화보는 누리집에서도 볼 수 있다.

"벌써 3년 가까이 됐네요. 생계를 위해 촬영하면서 틈틈이 잡지 만들고. 한 달에 열흘은 계속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고, 쉬는 날은 단 하루도 없어요. 매달 기획과 섭외를 하고 촬영을 부탁하는 일이 힘들긴 해요. 다행히 화보를 찍겠다고 먼저 연락하는 스타가 늘었어요. 효리 씨도 화보 촬영으로 처음 만났고요. 기획사나 방송국도 그렇지만 요즘 연예권력이 엄청나잖아요. '누가 입었다' 하면 완판되고 산업 자체가 연예인에 의해서 왔다 갔다 하잖아요. 이왕이면 그런 유명세를 긍정적인 쪽으로 활용해보고 싶었어요. 잡지를 만들면서 동물복지에 관심 있는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됐지요."  

《오보이!》 그리고 《그린보이》  

그에게 동물을 사랑하는 일은 당연한, 본능과도 같은 일이다. 버려지는 동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어머니 덕에 언제나 동물로 넘쳐나던 집안 분위기도 큰 몫을 했으리라. 수없는 만남과 이별을 겪었음에도 유독 잊을 수 없는 반려견이 있었다고 한다. 어릴 적 처음으로 상실의 아픔을 느끼게 했던 개, ‘레니’ 그리고 결혼 후 처음으로 키운 개 ‘밤식이’와 ‘먹물이’. 10년이나 자식처럼 키우던 밤식이와 먹물이가 차례로 곁을 떠난 후, 세상은 텅 빈 굴처럼 공허했다. 하지만 잡지를 창간하면서 많은 것이 변했고, 지금은 잡종 개 ‘뭉치’가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다.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흔히 이야기하듯, 그네들이 주는 사랑은 조건 업고 절대적이다. 그래서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굳이 비싼 품종일 필요는 없다. 개는 사람에게 좋은 반려자가 되어준다. 애정을 쏟을 사람이 있으면 개는 행복하지만 철창에 갇힌 개는 그렇지 않다. 

"더는 안 키우려고 했는데 보시다시피 얘가 잡종이라 입양이 안 되면 안락사당할 확률이 높아 보호소에서 데려왔어요. 자기 배가 고픈데 동물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요. 세상엔 좋은 사람도 많지만, 지구나 환경 측면에서 보면 인류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죠. 출산율이 낮다고 하지만 세상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럴수록 환경과 동물엔 피해가 가니까요. 할 일이 많죠. 동물을 '같이 사는 존재'로 인식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아이들이 반려동물을 자연스럽게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식을 개선하는 교육도 하고 싶어요. 하루아침에 바뀌길 바라는 건 아니고, 작은 영향이라도 조금씩 일어나길 바라요. 보신탕 먹는 사람을 비난하는 식이 아니라,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알려주면서 천천히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는 몇 년을 썼는지조차 가물가물한 ‘017’로 시작하는 피처폰을 쓴다(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없다. 고장 나기 전에 물건을 사는 일이 없으니). 배터리 수명이 다된 탓에 충전기에 늘 꽂아두지 않으면 통화가 힘들 정도지만, 굳이 ‘스마트’한 새 전화기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철 따라 싫증 나면 바꾸는 세태 속에서 이런 삶의 방식이 대단한 실천으로 보일 지경이다.

꾸준히 책을 내면서 미약하나마 변화를 감지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 덕분에 반응이 좋아져 광고 수익과 정기구독을 통해 어느 정도 유지도 가능해졌다. 아직은 1인 매체지만 장기적으로는 필자들에게 고료도 지급하고, 함께 일할 사람도 고용할 계획이다. 원고 쓰는 일은 물론 촬영과 메이크업, 스타일링까지 주변인의 '재능기부'에 기대어 계속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게 본인의 인건비를 고려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전 같으면 집에 틀어박혀서 책을 보거나 게임에 몰두할 시간을 지금은 온전히 《오보이!》에 들인다. 이는 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지켜봐주는 아내 덕이기도 하다. 잡지를 만들며 틈틈이 쓴 글들에 살을 붙여 《그린보이》란 책도 냈다. 이래저래 바쁜 일상이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감지하며 힘을 내는 수밖에.

"주로 동물이나 문화 관련 특집이 중심이기 때문에 틀은 빤한데 어떻게 포장해 보여주느냐가 관건이죠. 기획은 다 제 머리에서 나오고 큰 틀에서 글은 자유롭게 쓰도록 해요. 애초 전하고자 한 것과 다른 방향의 글이 들어오는 것도 재밌고요. 만든 지 3년 가까이 되었는데 달라진 걸 많이 느껴요.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반응들이 오니까요. 좋아하는 스타가 나와서 우연히 책을 접했다가 동물복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글을 받으면 참 뿌듯하죠. 죽을 때까지 해야 하고 그 이후에도 이어져야죠. 미스코리아에게 소원을 물으면 '세계 평화'라고 하는데, 제 소원도 마찬가지예요. (웃음) 사람이 평화로워야 해요." 
  
동물 문제 실상 알리고 환경에 기여하고파 

열심히 책을 만들면서 이를 알리는 일에 나서다 보니 패션지를 벗어나 시사잡지, 각종 학보(學報)와 문화면까지 등장하게 됐다. 환경이나 동물복지 이슈를 알리기 위해 인터뷰나 강연은 가리지 않는다. 말수가 적고 능변은 아니지만, 정성을 다해 대답하는 모습이 마음에 와 닿았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육식과 공장식 도축의 폐해를 줄이는 일이라 했다.

(이하 사진) 개인 전시 혹은 사진집의 형태로 곧 만나게 될 그의 사진들. 무심히 보면 건조해 보이지만 언뜻언뜻 세세한 결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저도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못 돼요. 아예 먹지 말자는 게 아니라 육식을 줄이고 되도록 건강한 고기를 먹자는 거예요. 다국적기업의 대규모 축산과 도축은 환경을 파괴하고 가난한 이들을 더 굶주리게 해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고통받을 때도 잦아요. 개한테 염색을 시키거나, 억지로 교배시켜 작게 만들어 컵 안에 넣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나요. 동물을 생명이 있는 대상으로 보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예요."

그가 늘 입바른 이야기만 하고, 메시지가 있는 사진만 찍는 것은 아니다. 15년간 작업해온 사진가로서 잡지와 무관한 사진집과 전시도 준비하고 있다. 꾸밈이 없어 건조해 보이기까지 하는 사진은 동물보다는 덜 오래되었으나 그의 절친한 친구다. 누구도 보지 못한 결정적 순간을 놓칠세라 재빨리 셔터를 누르기보다는, 누구나 볼 수 있는 피사체와 느릿느릿 호흡을 맞추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특별한 기술이 요구되기보다는 특유의 감성이 필요한 사진. 담백한 시선에 솔직함이라는 양념을 가미한 그의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다.

"메시지와 무관한 일상이나 아무것도 아닌 걸 찍어요. 결정적 순간에만 집착하지는 않아요. 기록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 같아요. 세트나 조명을 복잡하게 꾸미지 않은 솔직한 사진을 좋아하거든요." 

그는 자기만의 메시지나 이야기를 가질 틈조차 없어 보이는 젊은 세대를 만나면 또 할 말이 많아진다. 세상을 숫자로 환원하고, 조금이라도 덜 가지면 불행하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에서 벗어나면 동물도 사람도 더 행복해질 텐데. 가난해도 힘써 살아온 이들이 부자들보다 남을 돕는 일에 지갑을 더 잘 여는 것을 보면, 그래도 희망은 있다.

"누군가가 더 잘나가면 불행하다고 느끼는 마음을 바꿔야 해요. 나보다 힘겨운 존재를 알고 그들을 위해 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때 행복해진다고 봐요. 실제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기부도 많이 하고 마음이 더 여유로워요. 주식이나 부동산, 자기 앞날만 생각하면서 각박하게 사는 것보다는요." 

김현성은 남다른 이상을 갖고 그것을 실현하면서 살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아끼고 사랑하던 이가 죽은 후에 그 죽음을 되새기며 삶의 전환점을 찾고, 소소한 자신의 삶에서부터 변화를 일으켜 그것으로 인해 인류가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삶을 살기 바라는 그 꿈은, '너무 어려워요' '난 못해요'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 삶의 자그만 태도나 습관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의도치 않게 배우게 해줬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힘겹고 지난하지만 각자가 삶의 태도를 바꾸기란 훨씬 쉬우니까. 얼핏 보기에 불가능한 일처럼 보여도 애정과 의지가 있다면 자신만의 타협점이나 틈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3년 전 얼마 못 가리라고 많은 이가 걱정하던 도전을 멋지게 지속 가능한 현실로 만든, 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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