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번에 새로운 연재물 [독립, 하셨습니까?]의 기획의도를 소개했습니다. 인터뷰와 문화 리뷰+칼럼이 뒤섞인 글을 쓰겠다고 밝혔는데요, 오늘부터 본격적인 연재가 시작됩니다. 첫 순서로 <조선명탐정> <의뢰인>의 제작자이자 첫 장편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감독, 19살 연하의 동성애인과 결혼선언을 하여 주목받고 있는 김조광수 씨의 삶을 소개합니다.
1. <당연한 명제에서 열린 결말으로>
2. <동성애와 드라마의 행복한 공존, 김조광수의 영화 두결한장>
동성애와 드라마의 행복한 공존,
김조광수의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 이 글에는 영화 내용에 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성애가 멜로와 만날 때
김조광수 감독의 공식적인 프로필 사진. 사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은 보기 드문 편이다. 변화무쌍한 표정을 볼라치면, 한때 그가 배우를 꿈꾸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다.
김조광수는 "퀴어영화는 멜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계급과 출생의 비밀, 집안의 결혼 반대, 불치병과 시한부 등 소위 '막장' 코드는 조만간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시효가 다할지도 모른다고요. 이런 막돼먹은 요소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시청자들을 사로잡아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사랑과 드라마에는 '장애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넘지 못할 것 같은 벽에 부닥쳐 수없이 좌절하다가도 절대 좌절하지 않는 주인공이 보란 듯 역경을 넘어설 때의 쾌감과 대리만족은 현실세계에서 그만한 기염을 토해야 할 일도 없고, 하루하루가 절대 드라마틱하지 않은 이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판타지임이 틀림없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제는 드라마의 결말이 예측 가능해지니 정황을 뒤집는 '반전코드'는 물론, 개연성도 없는 황당한 결말로 모두를 배반하는 일까지 생기는 것이지요. 뻔한 이야기 전개를 비틀고 또 비틀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입니다. '갈 데까지 가는' 상황이 점점 임계치를 높여가면서, 막장이나 반전을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고 봐야겠지요.
사실 동성애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장식'이나 '감초' 캐릭터로 쓰인 건 꽤 오랜 일이지만, 동성애자의 사랑을 전면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지 않은 일입니다.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가 안방극장에 최초의 본격 동성애를 등장시킨 신호탄이자 논란의 불씨를 댕겼지요.
동성애가 옳은지 그른지는 논할 수 있는 명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존재에 이유가 없듯,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범죄가 아닌 한에서야) 누군가의 허락이나 재단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일부 기독교인은 그것이 신의 뜻이라 믿고 동성애를 죄악으로 여깁니다만, 성서를 경전으로 받아들이는 복음주의 진영 내에서도 퀴어신학(동성애에 관한 신학적 탐구를 다루며 테드 제닝스 등이 대표적인 학자)이 태동하는 걸 보면 동성애를 탄압하는 것은 꽤 정치적인 측면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동성애라는 '외부(?)의 적'을 설정하고 위기를 면하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섣부른 '정죄'가 교회 내에 존재하는 동성애자들을 도리어 시험에 들게 하고 신의 사랑을 의심하게 한 것이 작금의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동성애를 전면으로 다루는 퀴어영화는 이 보편적이지 않은 사랑 자체를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도전이며, 때로 누군가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끔 해주는 교과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는 자체가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닿아있지요.) 퀴어영화는 야오이(게이 판타지를 그린 만화의 일종)에 열광하는 '빠순이'들이나 향유하는 하위문화의 일종으로 여겨져 왔지만, 근래 그 관객층이 넓어지며 작품 또한 다양해지는 추세입니다. 퀴어영화의 대중화와 함께 성소수자의 사랑을 무조건 슬프거나 절망적인 상황으로 그리지 않는 '힘 빼기'의 흐름 또한 뚜렷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영화 제작자이자 영화감독을 겸업하는 김조광수(청년필름 대표)가 있습니다.
그의 첫 장편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그야말로 대중적입니다. 저예산영화로 많은 개봉관을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개봉
개봉 3주 만에 퀴어영화로는 최다 관객 기록을 돌파해 8월 초순까지 5만 명이 넘는 관객과 만났습니다.
<두결한장>의 성취, 퀴어영화를 보는 즐거움
감독은 관객이 퀴어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크게 개의치 않아요. 결혼과 죽음이라는, 일종의 통과의례를 통해 성적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기쁨과 슬픔, 아픔을 덤덤한 시선으로 조금은 밝게 그려냅니다. 감독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 '민수'는 의사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지만, 그가 게이라는 사실은 부모조차 알지 못합니다.
김남길, 이제훈, 유아인 등 남자 스타를 발굴해내는 안목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제작가 겸 감독인 만큼, 그간 배우로서 존재감이 뚜렷하지 않던 김동윤을 '재발견'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평범한 삶을 원하는 부모님의 열망 앞에 못 이기는 척 결혼하지만, 그 결혼은 실은 동료 의사이며 레즈비언인 '효진'과의 계약에 의한 것입니다. 오랜 동성연인이 있는 효진은 이성애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정식으로 아이를 입양해 키울 수 없어 결혼관계에서 입양하는 것처럼 꾸미려는 것입니다. 적당한 시기에 이혼하고, 아이 양육권을 효진이 가지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이 결혼에 잠재된 폭탄이 있으니, 그것은 민수의 부모님입니다. 휴일 아침, 예고도 없이 들이닥쳐 살림살이를 헤집고 아들에게 밥을 제대로 해먹이는지 점검하는 시어머니 덕분에 이 가짜 결혼생활은 언제 들통 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죠.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한눈에 반한 연인 '석'을 사랑하면서도 사람들이 알아챌까 두려워 사랑을 드러낼 줄도,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말할 용기도 없는 민수의 '비겁함'입니다. 물론 쉬이 그럴 수 없다는 건 이해하지만, 민수의 그런 행동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친구 '티나'는 결국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고 맙니다. 민수와 티나에게는 한국판 '섹스 앤드 시티'를 연상시키는 일군의 게이 친구들이 있으니, 그들이 생전의 티나를 추억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헛갈리는 상황에 봉착해요.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티나의 성정체성은 가족에게 '커밍아웃' 되고, 각자의 방식으로 친구를 보내며 민수와 다른 이들도 한 발짝씩 자라나게 되지요.
원초적인 생활의 모습에서부터 흥겨운 피날레 결혼식 장면까지, 그의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과 판타지를 넘나들면서도 생의 무게와 삶의 흥겨움 어느것 하나 놓치지 않는 장점이 있다.
퀴어영화는 다양한 사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데서부터 출발해, 누군가를 사랑함에도 사랑으로 인해 자신이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과 맞닿은 지점에서 긴장감이 생겨나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드러내 소개하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욕구지만, 과연 축복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고, 때론 소중한 사람을 잃을 각오까지 해야 비로소 직면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영화 <두결한장>은 흥겹고, 페이소스마저 예쁘게 포장되어 이야기에 폭 빠질 수 있도록 해줍니다. 김조광수가 처음부터 감독으로 데뷔한 것이 아니었고 제작자로 오랜 기간 일한 덕분에 균형감각(대중의 취향과 감독의 의도, 투자자와의 조율 사이에서 적당한 지점을 찾는 능력)이 빛을 발하는 것이겠지요.
정작 영화를 만든 감독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못 하고 글을 끝맺어야겠군요. 저는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맨 마지막에 말하고 싶었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사실이지만 연하인 연인과의 결혼 때문에 본의 아니게 받게 된 대중의 관심을 도입에서부터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가 누구보다도 당당한 이유는,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행복을 성취한 게이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단지 그 이유로 그를 비난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그는 게이 역할 배우를 캐스팅하면서 수없이 거절당했습니다. 어떤 배우는 굳이 만남을 청해 그의 면전에서 "동성애는 죄라서 이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답니다. 종교적인 이유나 신념으로 그를 비난하는 일은, 나중에 천국에 가서 해도 늦지 않을 텐데요.
아무튼 내년 즈음, 그는 결혼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굳이 청첩장이 없어도 갈 수 있고, 게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춤과 음악이 있는 흥겨운 축제로 만들려 한답니다. 축의금은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데 쓰겠다고 하네요. 같이 가서 축하해주지 않으실래요?
* 이 글은 김조광수 감독을 인터뷰하고, 그의 인터뷰집 《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도 참조해 썼지만 인터뷰를 인용하지는 않았습니다. 검색하면 손쉽게 여러 매체에 실린 그의 이야기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다른 시각에서 쓰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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