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하셨습니까?] 오늘의 노동으로 작품을 쓰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독립, 하셨습니까?] 연재물의 두 번째 주인공은 얼마 전 홍대 스몰톡프로젝트(홍대 인근의 창작문화공간)에서 창고전을 연 이수지 작가입니다. 

주유소, 다단계회사, 동대문 도매상, 홍대 옷가게, 클럽, 커피숍, 비디오 대여점, 바(bar), 편의점, 음식점 써빙, 골프캐디, 핸드폰 검수원 등을 거쳐 미술계에 입문한 뒤 여전히 워킹푸어로서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흔치 않은 작가입니다. "자본으로부터의 철저한 독립, 대중성 없음, 알아주는 이 적으나 열광적"인 사람을 찾아 인터뷰하겠다는 [독립, 하셨습니까?] 연재물 성격상 주인공으로 모시기에 적합한 분이죠. 

1. <당연한 명제에서 열린 결말으로>
2. <동성애와 드라마의 행복한 공존, 김조광수의 영화 두결한장> 
3. <오늘의 노동으로 작품을 쓰다, 이수지 작가와 나눈 이야기>


오늘의 노동으로 작품을 쓰다,

이수지 작가와 나눈 이야기

인터뷰를 곰삭이며 글을 쓰는 동안 저널리스트이자 운동가인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르포르타주 <노동의 배신>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백인이자 지식인이지만 자신이 가진 자원을 가능한 한 숨긴 채 웨이트리스, 청소부, 판매원 같은 일을 전전하며 몸으로 겪은 워킹푸어의 현실을 생생히 그린 문제작이다. 쌍팔년도 식으로 말하면 '위장취업'인 셈인데, 아무리 노동계급 안에 들어가 있어도 그의 시선은 지식인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일터에서 순전한 노동자였다 할지라도 근무가 끝난 후에는 매일의 노동을 성찰하는 데까지 나아가야만 했다. 분명한 목적이 있고 기한을 정하고서 시작한 일이었음에도 그 모든 일은 녹록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입맛에 따라 직장을 고를 여지조차 없다는 현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몸으로 하는' 노동의 가치가 폄훼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주로 여성의 몫인) 가사노동이 사실상 정당한 대우를 받은 일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최근 들어서야 이혼할 때 재산의 50퍼센트 정도를 전업주부에게 지급하는 추세다. 그러나 여성의 급여평균이 남성의 64퍼센트밖에 안 되는 것에서 드러나듯, 노동의 가치가 대등하지는 않다. 비정규직 여성의 급여가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성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노동시장, 신자유주의와 '고용 없는 성장'은 여성과 청년 세대를 옥죄는 굴레와 같다. 굴곡 없는 삶을 살았다 해도 그럴진대, 정규교육을 거부하고 원하는 바대로 살아온 사람에게 이 사회가 얼마나 가혹했을까.

오늘의 인터뷰이에게로 이야기를 옮겨보자. 작가(예술가)이며 노동자인 이수지에게 선택할 수 있는 노동의 조건이란 애초 없었다. 대부분의 순수미술 작가가 그렇듯, 작품활동만으로 생계를 담보할 수 없다면 그것은 창작활동을 제한하는 덫이기도 할 것이다. 파트 타이머이면서 작가란 타이틀은, 원하는 일과 돈이 되는 일, 당장의 성취나 재화를 창출하거나 하지 않는 일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해야 하는 청년 세대의 표상 혹은 그 암울함과 직결된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먹고살기 위한 일과 창작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자화상>이란 제목이 붙은 목탄화에 등장하는 비틀린 육체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손은 끊임없이 작품을 매만진다. 또 그 손으로 우리가 육체를 지탱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먹는 식료품을 오리고 붙여 작품을 만들어낸다. 미술에 전혀 조예가 없는데도 굳이 인터뷰를 청한 까닭은 이수지의 작품에 시대와 작가의 초상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어서였다. 지독스럽게 선명한 은유로서의 작품은 유명세를 떠나 그 자체로 시선을 사로잡고, 공감을 자아내고, 말을 건네게 하는 힘이 있었다.

[자화상] (2007~) 개인을 판가름하는 보편적 지표로 작용하는 얼굴과 성별, 개성을 제거한 뒷모습을 차용하였으며 그로 인한 개체의 익명성은 한 개인의 자화상 연작에서 군상으로 확장된다.


제주에서 프랑스, 호주까지
이수지의 공간

비바리(아가씨를 일컫는 제주 방언) 이수지가 달랑 10만 원 들고 서울로 상경한 것은 여러모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트렁크 하나 달랑 끌고 학교까지 휴학한 채 서울로 올라온 내 기억과 겹쳐지는 지점도 있다. 일, 그리고 꿈을 찾아 바다 건너 서울행을 감행한 십대의 이수지는 '탈학교생'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중학교 때부터 영 적응할 수 없었던" 학교를 때려치웠다.

"학교 갈 생각을 안 했어요. 수중에 돈이 없으니까 밥도 굶고, 종일 있을 수 있는 곳이 도서관뿐이라 거기 눌러앉아 몇 권이고 책을 읽었어요. 그러다 집에 들통 나면 맞고, 학교에 강제로 보내지면 틈을 타서 빠져나와 바닷가를 걷거나 다시 도서관에 갔어요. 결국은 학교를 그만두게 된 거죠."

미술의 꿈을 한 번도 버린 적은 없었지만 남들처럼 미대에 가는 건 꿈도 꾸지 않았다. 진학을 위한 그림을 잘 그리려면 학원에 다녀야 하는데, 거기에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집을 버리듯 나와 서빙, 주유소 아르바이트, 동대문 옷가게 등 갖은 노동을 했다. 학력도 나이도 기준에 미달하는 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새로운 가능성이란 한국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2007년, 해외로 진학할 마음을 먹고 본격적으로 그림에 몰두했다. 가난한 노동자에게 재료가 많이 드는 물감 작업조차 버거웠지만 손에 잡히는 재료를 이용해 자신을 쏟아내듯 그리고 또 그렸다.
말을 깨치기라도 한 것처럼 봇물 터지듯 진행한 작업의 결과들을 추려 순수미술로 유명한 프랑스의 국립미술대학(보자르)에 응시했다. 3차 최종 면접까지 갔으나 낙방한 건 순전히 어학실력 탓이었다.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는 실력도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 전시한 작품들도 대부분 프랑스 가기 6개월 전에 그런 거예요. 예상 답변만 달달 외워서 갔는데 '이건 크기가 얼마지?’ 이런 질문에 답을 못 한 거죠. 그 정도 불어도 영어도 못 했거든요. 달달 외운 질문은 막상 알아듣지도 못했을 거고요. 나이 제한이 있어서 마지막 기회를 어이없이 날린 셈이었지만 아쉽지 않았어요. 심사위원들이 관심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인정받은 기분이었거든요. 호의적으로 그림을 보다가 제가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하기 시작했을 때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웃음)"

국경이란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하자 거칠 것이 없었다. 이수지는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로 체류하며 돈을 벌면서 어디나 가지고 다닌 노트 두 권에 틈틈이 작업했다. 그렇게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주(노동)'과 '여행'이 잦았던 그에게 서울에 체류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떠났다 돌아올 장소가 아니라 그저 조금 덜 외로우면서도 익명성을 유지할 수 있고, 일자리가 더 많은 도시일 뿐, '타자의 공간'이란 점은 변하지 않았다.

"개인이 문화나 언어의 범주로 묶일 수는 있지만 공간과 국가에 따라 나뉘는 건 부당하다고 봐요. 어쩌면 모두 타자인데 인지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사실 외국에서 생활할 때가 참 편했어요. 최저임금도 높고, 열심히 일한 만큼 대가가 돌아오니까요. 물론 여행을 할 때 소속감을 느끼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땐 돌아갈 곳이 있느냐 없느냐로 많은 것이 갈려요. 한국의 존재들에 폭 안겨서 쉬고 싶다는 생각은 그저 환상에 불과해요.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사느라 바쁘잖아요. 지쳐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어디 있어요? 매 순간 나를 내던져야 했어요. 적어도 처음처럼 쫓기듯 도망치지는 않는데 무엇 때문에 항상 어딘가로 가야 하는지, 의문은 풀리지 않아요. 왜 항상 그래야 하는지."


'2말 3초'를 살아가는 이수지의 시간,
혹은 작가라는 정체성

여러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과 노동을 하는 사이, 이수지는 서른을 목전에 둔 나이가 됐다. 지난해 4월, 호주에서 귀국한 후 그간의 작업을 갈무리하는 데 집중했고 생애 첫 개인전까지 무사히 치렀다. 하지만 바닥을 드러낸 통장 때문에 조만간 노동시장으로 복귀해야 할 타이밍이다. 작가로서 일종의 데뷔 무대를 치른 그에게 식상한 질문이지만 영감의 원천이 되는 존재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를 저답게 하는 건 혼자 있는 거예요. '당신이 영감을 받는 것은 무엇이냐?'란 질문에, '영감을 받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라'고 답한 후세인 살라얀(국제 패션계에 급부상한 터키 출신 디자이너)의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생각하는 동안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무수한 것들 중에 특정한 영감을 인지하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안목은 다양한 경험과 독서를 통해서 쌓거나, 혹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인내심을 갖고 파고드는 거지요. 소설과 시를 많이 읽어왔는데 여행을 하며 만나는 이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아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인문, 사회, 정치 비평을 망라해서 읽어요. 그래도 밑바닥부터 고갈되는 느낌이 들 때면 다시 문학으로 돌아오지요."

그의 영감은 이미 갖고 있지만 모를 수도 있던 존재를 독서 혹은 사유를 통해 인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뜻한다. 그 사유가 매일 노동을 하는 육체에 덧씌워졌을 때 비로소 이수지다운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의 작품에 작가의 의도란 분명히 존재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무엇이다.

"자기가 볼 수 있는 것만 보면 돼요. 예술은 자기표현에 앞서 미학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남의 평가를 듣고 고치고 싶은 욕망이 들어도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해요. 모두가 좋아하는 걸 할 수는 없어요. 가까운 사람들, 특히 가족들이 좋아하는 작업을 하면 안 돼요." (전시를 찾은 어느 시인 지망생에게)  

이수지 '창고전'은 미술작품에 부여된 권위를 애써 배제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평소 모임이나 상영 공간으로 이용되는 내부를 활용해 바닥에 세우거나 벽면에 원래 있었던 양 작품을 걸어놓거나, 심지어 테이블 위에 쌓아놓고 들춰볼 수 있도록 했다. 누구나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감상법을 제안한 것이다. 문턱을 낮춰 누구나 쉽게 미술을 향유하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고, 세상에 존재하나 어떤 면에서 존재성이 없는 아티스트들에게 건네는 응원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작업자들은 예술에 함몰되지 않고 예술과 객관적인 거리감을 유지하거나, 예술과 인생을 동일시하거나 하는 두 가지 중 하나에 속할 거예요. 현실의 벽으로 힘들어 하는 아티스트들이 이 질문에 직면하기도 전에 인생에 함몰돼 버리는 게 문제라고 봐요. 힘들더라도 분투하면서 견고하게 작업하시기를 바라요."

[네가 무엇을 먹는지 얘기해주면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해주겠다] (2007~) 프랑스의 한 미식가가 이 시대는 무엇을 소비하느냐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야기한다고 했다. 소비할 물건은 넘쳐나지만 이상하게도 선택의 자유는 점점 좁아지고, 몰취향이 취향의 모습을 띄기까지 한다. 얇은 전단 안에서 가격이 매겨진 식료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로부터 생명을 받아서 살아간다는 생각보다 그 돈의 가치를 지탱하는 사회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전시는 끝났지만
계속될 이야기

작품을 보는 안목이라는 게 거창하게 느껴진 탓도 있고, 그림을 사본 적이 한 번도 없는 탓에 무얼 어찌 골라야 하는지 잘 몰랐는데, 이수지 작가의 작품은 덜컥 들여놓고 싶어졌다. 좁고 온갖 잡동사니로 틈도 없이 빽빽한 벽면에 억지로 그림을 구겨 넣을 순 없으니 자주 가는 공간에라도 걸어놓으면 탐미욕이 조금이나마 충족될 것 같아서다. 그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거창한 의미는 아니더라도 내일 여전히 다른 작품을 그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경계를 오가는 그의 '여정'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아쉽게도 이수지 창고전은 지난 8월 앙코르 전시까지 끝난 상태다. 작품으로 만나길 원한다면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할듯. 작품과 노동, 그리고 자화상을 그리는 일도 진행형일 테니 작가로서의 다음 행보는 천천히 생각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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