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하셨습니까?] 커피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일전에 저희는  <사회적기업이란 무엇일까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기사에서 공정무역 커피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 시간이 많이 흘렀고, 공정무역 커피를 즐기는 분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사회적기업' 혹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어떻게 커피산업과 연관되는지 더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스타벅스는 세계 40여 개국에 1만 6000여 개의 매장을 둔 세계적인 커피 체인입니다. 스타벅스의 최고경영자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는 커피를 파는 게 아니라 문화를 판다”는 말로 성공적인 마케팅전략을 설명하기도 했죠. 그런데 스타벅스가 세계 최대의 공정무역 인증 커피 구매업체 중 하나라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스타벅스는 2012년 전체 원두 구매량의 8퍼센트에 해당하는 약 3430만 파운드의 공정무역 인증 원두를 구매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공정무역 커피를 구매한다고 해서 스타벅스를 좋은 기업이라고만 얘기할 수 있을까요?

작년 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공습했을 때 전 세계적으로 스타벅스 불매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스트벅스의 하워드 슐츠가 과격 시오니스트 중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졌고, 스타벅스 운영으로 거둔 수익의 상당액이 이스라엘 군수산업 강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정보가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커피를 둘러싼 사회, 문화, 정치적 상황이 참 기막힙니다. 세상 일이란 게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기 마련이라지만, 우리가 무심코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가는 도구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독립, 하셨습니까?]를 연재하는 이은 씨가 지난 2월에 '커피 콘텐츠 기획자' 박우현 씨를 만났습니다. 원고를 지난 2월에 보내주었는데요, 3월에 나올 생각비행의 책을 마무리하는 시점과 겹쳐 제때 소개하지 못했습니다. 두루 양해를 구합니다. 찬찬히 읽어보시면 누군가의 커피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의 커피는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실 겁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커피를 드셨나요?


커피 라이터 박우현 씨가 말하는  
커피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오듯 휩쓸고 지나고 있다. 이 땅에 커피산업이 번성하게 된 과정 말이다. 갑자기 에스프레소 전문점이 번성하고 목 좋은 번화가 길목마다 프랜차이즈 카페가 생겨나더니 급기야 동네 골목까지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10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그러니 한국 사람들이 커피문화의 확산 속도를 근대화 과정만큼이나 재빠르다고 느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믹스커피 문화의 반대편에 있는 아라비카 커피 시장의 팽창과 공정무역 커피의 개발과 보급, 확산이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상품화된 공정무역 커피는 아름다운가게가 내놓은 ‘히말라야의 눈물(네팔산)’이었다. 당시 가게에서 활동하며 이 과정을 주도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박우현 씨다.

10년의 세월 동안 변한 것은 커피를 둘러싼 사회적 현상만이 아니다. 커피를 통해 그의 삶도 변했다. 박 씨는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이 아니라 전업주부, 영화기획 프로듀서, 잡지사 기자, 회사원 등을 거쳐 공정무역 커피를 들여오는 일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폭넓은 시도와 변용이 가능했고, 지금과 같은 커피(에 관해 쓰는) 저술가, 그의 표현대로 ‘커피 콘텐츠 기획자’가 될 수 있었다.
 
커피에 관한 책이야 많이 접했지만, 그가 쓴 《커피는 원래 쓰다》가 여느 책과 다른 점은 일단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커피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보고서 혹은 스토리텔링이 접목된 커피문화사랄까. 인류사에 커피가 등장한 지 추산하기론 약 1000년, 그다지 오랜 세월이 아닌데도 사료가 충분하지 않아 상상으로 그 틈새를 메워야 하기에 더욱 흥미롭다. 커피의 역사에 관한 자료가 왜 그토록 남아 있지 않은지 짐작할 만도 하다. 가장 합리적인 추론에 따르자면 커피는 (서구에서는) ‘이교도의 음료’였다. 음주를 금기시해 커피를 즐겨 마시던 이슬람 문화권에서 커피의 위상이란 독일의 맥주, 아시아의 차문화 사이 어딘가 혹은 그 둘을 더한 것만큼 일상적인 무엇이었을 터다.

커피의 등장, 생각의 발견
 
커피와 카페에 관한 책이야 근래 발에 채고도 남을 만큼 많이 나왔지만, 박우현 씨의 책이 돋보이는 점은 ‘스토리텔링’을 접목한 데 있다. 커피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야 가설이 많으니 아주 새롭지는 않다고 해도, 국내에서 가장 먼저 커피를 마신 사람으로 ‘정약용’을 추론한 것은 꽤 흥미롭다.
 
“커피에 관해 재미난 이야기가 많아요. 미국이 베트남전에 패망한 이유가 커피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어요. 인스턴트커피(나쁜 커피)로 찌들었던 미국이 전쟁에 지고 베트남에서 철수하던 시기, 비교적 양질의 커피를 표준화한 스타벅스가 창업한 사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거예요. 《커피 견문록》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커피에 얽힌) 재미난 얘기가 많은데,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이 유배를 가는 바람에 즐겨 마시던 커피가 끊겨서 어렵게 구해 마셨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도 지어서 썼어요.”
 
이렇듯 커피가 매력적인 까닭은 역사, 문화, 종교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매우 다양한 텍스트로서 그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면 뇌 작용이 활발해져 생각이 깨어나게 된다는 것도 단지 우연만은 아니리라. 우연한 기회에 커피를 업으로 삼게 된 그가 이토록 매료된 것만 보아도 커피의 치명적 매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은가.

2005년경, 프리랜서로 영화 일을 하며 이래저래 생겨나던 카페들을 떠돌며 일하던 그에게 생경한 제의가 들어왔다. 아름다운가게에서 ‘별난사업국’이란 이름의 새로운 팀을 만드는데 함께하지 않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여기에는 당시 박원순 변호사의 진두지휘 아래 성장을 거듭하던 아름다운가게가 새로운 아이템으로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혁신적인 방식과 구성으로 팀을 꾸리려 한 배경이 있었다. 이 사업국의 아이템으로 최종 선정된 것이 재활용사업(에코파티 메아리 등 재활용 디자이너 브랜드 론칭)과 공정무역 커피 론칭 사업이었다.

“당시 한국 시장은 아라비카 시장도 미미하고 로스터리 카페가 막 생겨나는 시점이었어요. 시장이 너무 작아서 공정무역과 아라비카를 동시에 알리는 게 힘들었어요. ‘네팔리바자로’라고 네팔만 도와주는 일본 엔지오에서 네팔 원두를 어렵게 구했어요. 1년에 10톤을 재배하는데 판로가 없어서 절반을 버린다고 하더군요. 도와달라고 요청했더니 생산자가 흔쾌히 한국까지 와서 도와주고, 전광수 선생도 재능기부를 해주셨어요. 처음에는 직접 원두를 볶다가 물량이 달리니까 공장에 로스팅 시스템을 만들어주셨어요.”
 
세계적으로 아라비카 커피가 90퍼센트 정도 통용되고 있지만, 정작 ‘공정무역’이라는 공인된 시스템에 속한 커피의 수급량은 미미했다. 아름다운가게는 애초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않은 공정무역 원두를 브랜드로 양산하는 것은 물론 공정무역 커피믹스를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우여곡절 끝에 네팔 공정무역 커피가 탄생했을 때 시장의 반응은 생각보다 빨랐다. ‘착한 소비’를 내세우는 마케팅을 등에 업고 대형마트와 편의점까지 입점한 아름다운커피는 공정무역 커피의 동의어로 통용될 정도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개발부터 론칭까지 대략 1년 반, 양산과 보급은 후임 활동가에게 맡기고 박 씨는 가게를 나왔다.

요즘 카페는 차별된 공간으로 만드는 분위기, 사람의 아우라가 있어야 한다. 사진은 홍대 카페 디스트릭트 D에서 찍은 것. 인위적인 색채를 배제한 빈티지한 톤도 요즘 인기다. 

그 뒤로 전광수커피하우스의 전광수 선생과 함께 프랜차이즈 가맹을 시작했다. 특이한 점이라면 기계로 추출하는 에스프레소로 만드는 커피가 아니라 다양한 산지별 원두로 핸드드립(쉽게 말하면 기계가 아니라 손으로 내려 마시는 커피)에 주력하는 프랜차이즈라는 사실이다. 전광수 아카데미를 이수한 사람 중 ‘슬로우 커피’라는 본연의 방식에 충실하려는 이들을 모아 가맹점을 내는 일을 했다. 그런데 고작 점포 5곳을 론칭하고는 이내 다른 일을 벌였다. 가맹 담당 직원을 뽑아 일을 맡기고서 ‘킹콩커피’라는 원두 판매 온라인 숍을 운영하고 ‘카페인’이라는 커피문화 웹진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직업이 대체 몇 개인지 헛갈릴 지경이지만, 어차피 ‘커피’나 ‘글’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통용될 만한 일들이다.
 
“저는 바리스타도 아니고, 로스터도 아니고, 냉철한 사업가도 못 되니 커피에 관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이 적성에 맞더라고요. 웹진에 실은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내면서 ‘작가’란 타이틀도 얻게 됐지요.”
 

커피로 다양한 문화적 변용을 꿈꾸다

 
고종이 ‘고히’를 즐겨 마셨다는 이야기는 (영화로까지 만들어졌으니) 유명하다. 그런데 사실 커피 문화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계기는 한국전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군의 인스턴트커피에 맛 들인 한국인들이 결국 세계 최초로 믹스커피를 양산해낸 것이니. 1964년 이후 근 40년 동안 우리나라는 믹스커피의 식민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뭐든 빠른 것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습성이, 빠르고도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에스프레소 전문점에 쉽사리 적응한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공정무역 커피는 이래저래 식민지 역사와 연관이 깊다. 유럽이 처음 공정무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에 반기를 들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수익의 일정 정도를 분배해야 돌아갈 수 있어요. 미국이 중남미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 커피를 제값 주고 사주다가 더 보호할 이유가 없어지니까 국제커피기구에서 탈퇴해버려요. 미국의 4대 커피회사가 산지를 베트남으로 바꿔버리니 안 그래도 떨어진 커피 값이 더 폭락하게 돼요. 유럽에서 그걸 보자니 미국 주도로 세계가 움직이는 것 같아 기분도 나쁘고 해서, 과거 식민지에서 수탈하던 일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지식인들이 ‘공정무역’을 만든 거예요.”
 
커피는 주로 가난한 제3세계 국가에서 생산돼, 주된 커피 소비국인 선진국으로 흘러오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손길을 거친다. 그 안에 들여다보아야 할 노동 현실과 국경을 넘나드는 이야기가 넘실거린다. 커피를 단순히 하나의 산업으로서가 아니라 역사적 산물 혹은 성찰과 실천이 필요한 무언가로 봐도 좋은 이유다.
 
“어느 언론이 ‘커피 컨설턴트’란 이름을 붙였던데, 그 말은 좀 그래요…. 제 인생도 책임 못 지는데 어떻게 남의 일을 컨설팅하겠어요? (웃음) 그저 제 경험을 조금 나눌 수 있는 정도죠. 카페 서비스는 사람을 연결하는 일이고, 감성적인 비즈니스예요. 어마어마한 일이지요. 이걸 단순히 매뉴얼화하거나 주5일 근무에 익숙한 사람들이 대책 없이 시작하면 안 돼요. 자영업도 작은 기업을 꾸리는 일인 만큼, 이것저것 배우는 것으로는 부족하죠. ‘사람들과 함께’ 해나가도록 차근차근 준비해야 합니다.” 

그의 작업실 '화수목'. 빈 공간이 사람의 온기와 커피향기로 채워지는 순간이 가장 빛나는 때가 아닐까.

박우현 씨는 오랫동안 살던 종로 안국동의 한옥을 떠나 용인시 수지 동천에서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다. ‘커피가 당신을 응원합니다’라는 커피문화 교실을 여는가 하면, 작업실에서 상영회와 토론회를 겸하는 등 다양한 경로로 커피를 만나는 일을 벌이고 있다. 공간 한쪽에는 헌책방을 열어 책과 커피가 공존하는 공간을 꿈꾼다. 그의 작업실 이름은 ‘화수목’. 커피에 필수적인 나무(커피체리)와 물과 불(로스팅)을 담은 이름이기도 하고, 일주일에 3일만 일하고 싶다는 바람도 담아 지었단다. 물론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가족의 이해와 지원도 필요하다. 지금은 중학생이 된 딸이 태어났을 때부터 아내와 번갈아 육아를 맡았기에 가족의 유대감이 남다른 듯했다. ‘생명을 키우는 일’의 소중함을 알게 된 덕분에 삶에 쉼표를 허락하는 일, 마음이 원하는 대로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커피에 관해 할 이야기가 여전히 많은 그는, 또 다른 꿍꿍이를 준비 중이다. 커피와 영화를 접목하는 일이 그것이다. 연출된 다큐멘터리(페이크 다큐)의 형식에 유에프오에서 커피가 내려온다거나 하는 SF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업이 될 수도 있고, 이래저래 생각을 엮어내는 중이다. 아무튼 이 모든 것이, 커피 때문에 벌어진 일 아닌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커피란 삶의 매뉴얼을 새로 쓰게 할 수도 있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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