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현실을 생각하며 읽는 시,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새누리당은 지난달 30일 19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총선공약 이행의 일환으로 비정규직 법안 등이 포함된 '희망사다리 12개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새누리당 진영 정책위의장은 이를 "비정규직, 중소기업, 장애인, 학생 등에게 희망을 주는 법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법안이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법안이라면 좋겠지만 그중에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은 생각할 여지가 많습니다. 

이 법안의 취지는 노동법의 사각지대인 사내하청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상 속셈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내하청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면 지금 불법인 사내하청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으로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어야지, 사내하청을 합법화는 법안을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사내하도급은 명백한 불법파견을 합법화하여 이를 양성화하겠다는 의도가 있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법치질서에 어긋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번 새누리당의 법안은 겉으로는 노동자를 위하는 척하면서 기업의 사내하청을 부추기는 법안이요, 사다리를 걷어차서 희망을 절망으로 만드는 법안일 뿐입니다. 
 
생각비행은 6월 출간을 목표로 《입사부터 퇴사까지 직장인이 알아야 할 노동법》이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노동자의 권익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이번 새누리당의 '희망사다리법'(통합민주당의 표현에 따르면 '절망미끄럼법') 발의를 목도하면서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이란 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20년 전에 읽었던 시집 《노동의 새벽》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1984년 출간된 초판본

노동의 새벽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줏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노동의 새벽》 초판 표기를 따름

《노동의 새벽》은  박노해 시인의 첫 시집으로 1984년에 출간되었습니다. '노동해방'이라는 말에서 딴 '박노해'라는 필명을 가진 얼굴 없는 시인은 곧 노동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91년 7월, 7년의 수배생활 끝에 두 손에 수갑을 찬 박노해의 얼굴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그는 노동현장의 체험을 시로 승화시킨 행동하는 시인이었습니다. 

시인 박노해이기 전에 그는 노동자 박기평이었습니다.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그는 독서와 글쓰기를 즐기고 천주교 사제를 꿈꾸던 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난은 16세 소년을 서울 빈민가로 내몰았습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선린상고 야간부에 다니며 체험한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그는 사제의 꿈을 접고 맙니다. 그렇지만 노동 야학에 열심히 참여하며 《사상계》《창작과 비평》 같은 진보적 잡지를 탐독하며 민주회복을 열망하는 집회에 참여하고 노동자 파업에도 적극 가담하면서 현실 참여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철공소, 구로공단, 성수공단 등에서 섬유, 화학, 금속 노동자로 지내면서 잔업, 철야, 특근을 반복하는 저임금, 인권유린의 노동 현실하에서는 미래가 있을 수 없음을 절감하고 성수공단에서 최초의 파업을 이끌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경찰에 납치되어 폭행당한 후 살해 위협을 받은 채 어두운 둑길에 버려졌습니다. 이후로 그는 대학생들과 연대를 모색하며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군대에서 전역한 후에는 안양 시내버스 정비공으로 취직하여 여러 활동을 펼쳤습니다. 영치회라는 친목회를 만들어 '우리만 좋아지지 말고 다른 노동형제들의 삶도 함께 개선하자'며 공부와 실천을 병행하는 조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노동현장과 투쟁현장 속에서 노동자 박기평은 1970년대부터 "저는 노동자이자 시인이며 혁명가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고 합니다. 처절한 고통의 시간과 체험이 빚은 결과물이 곧 시인 박노해와 《노동의 새벽》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전보다 풍요로운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전과 비교하면 노동현실도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얻은 풍요의 열매를 지금 누가 거두고 있습니까? 1970, 1980년대와 비교해서 노동현장이 더 나아졌으니 이제는 만족해야 할까요? 

'한강의 기적'이란 말로 대한민국의 외형적인 발전을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기적이란 없으며 말없이 이 땅에서 피땀 흘린 노동자가 있을 뿐입니다. 많이 개선되었다는 오늘날의 노동현장에서조차 다치거나 죽는 노동자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 기업의 행태는 여전합니다. 사내하청, 하도급, 파견 등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기업의 도구로 쓰이다 버려지는 노동자의 현실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노동의 새벽》이 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였던 채광석과 김사인의 노력이 지대했습니다. 그들은 박노해의 시를 두고 "민중문학의 실체를 찾았다"면서 출간을 위해 여러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문학성'과 '위험성'을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그 와중에 나병식이 사장으로 있던 풀빛이라는 출판사에서 간신히 출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오윤과 김봉준의 판화가 인상적인 《노동의 새벽》 초판본에서 작가 소개를 보면 '1956년 전남 출생. 15세에 상경하여 현재 기능공'이라는 간단한 이력만 나올 뿐입니다. 그런데 《노동의 새벽》이 출간되었을 때 문단은 경악했다고 합니다. 지식인은 아무리 애를 써도 쓸 수 없는 현장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비수 같은 시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이 시집은 1980년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아우르는 민중문학의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시를 읽거나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정의합니다. 문학이론서를 봐도 이런저런 표현으로 좋은 시란 무엇인지를 규정합니다. 저희가 생각하기에 현실을 토대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며 쓴 박노해의 시야말로 세대를 초월하여 가슴에 깊이 남는 좋은 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요?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출간된 시집

박노해
196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서울에 올라와 선린상업고등학교 야간부를 졸업했다. 현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1984년 《노동의 새벽》을 출간하면서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이 되었다. 1989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했다. 7년의 수배생활을 하다가 1991년 체포되어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1998년 8월 15일 석방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과 수필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석방 후 그는 2000년부터 스스로 사회적 발언을 금한 채 세계의 분쟁지역과 빈곤지역을 돌며 평화운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노동의 새벽》《참된 시작》《사람만이 희망이다》《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등이 있으며 두 번의 사진전 <라 광야> <나 거기에 그들처럼>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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