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에 읽는 詩, 박인환의 <어린 딸에게>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오늘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는 한국전쟁을 수나라, 당나라, 원나라의 침략처럼 과거에 일어난 일로 치부하고 역사의 화석같이 취급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6.25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실입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한반도의 상흔은 복구 노력과 오랜 개발의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정서적 충격과 이데올로기적 논리는 1970~1980년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민족을 분열시키는 정치적 도구로 여전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준비가 부족했던 해방을 맞이한 뒤, 우리의 의사와 무관한 분단과 남북 갈등을 겪은 것도 모자라 같은 민족끼리 피를 뿌리는 참혹한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처럼 1945년부터 1950년 초반까지의 한반도는 기쁨과 희망에서 슬픔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한 맺힌 공간이었습니다. “아아~6.25!” 하고 슬픈 탄성을 자아내는 전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고 살아남은 이에게는 괴로움, 분노, 삶의 허무함만 남겼습니다. 전쟁을 경험한 많은 분이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전쟁의 충격을 알지 못하는 우리는 과연 그 감정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생각비행이 찾은 하나의 답은 박인환의 <어린 딸에게>라는 시입니다.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 소개합니다.

1955년 발행된 박인환의 첫 시집이자 생전에 발간된 유일한 시집.

 

어린 딸에게

기총과 포성의 요란함을 받아가면서
너는 세상에 태어났다 죽음의 세계로
그리하여 너는 잘 울지도 못하고
힘없이 자란다.

엄마는 너를 껴안고 삼 개월간에
일곱 번이나 이사를 했다.
서울에 피의 비와
눈바람이 섞여 추위가 닥쳐오던 날
너는 입은 옷도 없이 벌거숭이로
화차 위 별을 헤아리면서 남으로 왔다.

나의 어린 딸이여 고통스러워도 애소(哀訴)도 없이
그대로 젖만 먹고 웃으며 자라는 너는
무엇을 그리 우느냐.

너의 호수처럼 푸른 눈
지금 멀리 적을 격멸하러 바늘처럼 가느다란
기계는 간다. 그러나 그림자는 없다.

엄마는 전쟁이 끝나면 너를 호강시킨다 하나
언제 전쟁이 끝날 것이며
나의 어린 딸이여 너는 언제까지나
행복할 것인가.

전쟁이 끝나면 너는 더욱 자라고
우리들이 서울에 남은 집에 돌아갈 적에
너는 네가 어데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그런 계집애.

나의 어린 딸이여
너의 고향과 너의 나라가 어데 있느냐
그때까지 너에게 알려 줄 사람이
살아 있을 것인가.

박인환 하면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의 시를 떠올릴 분이 많으실 겁니다. 그런데 박인환이 한국전쟁을 겪으며 남긴 <어린 딸에게>라는 시는 막연하게 서구를 동경하는 시인으로 알고 있던 박인환의 또 다른 면을 엿보게 합니다. 이 시는 1955년에 나온 박인환의 첫 시집《박인환선시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박인환 시인은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지하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는 도중 서울 수복 3일 전에 딸이 태어났고, 1.4 후퇴 때 시인은 딸을 안고 가족과 함께 피난 열차에 오릅니다. <어린 딸에게>라는 시는 이런 참담한 배경을 두고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마치 유서처럼 써내려간 작품입니다.

비극적인 상황에서 태어난 딸의 불투명한 미래와 빈곤한 형편, 불안한 조국의 현실과 좌절감, 참혹한 현실에서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시를 전쟁으로 단절된 현실과 절망적 상황을 형상화하지 못하고 허무주의에 빠진 일상적 심정을 배설하고, 현실 극복의지가 떨어진다고 평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펜대를 휘둘러 남을 깎아내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일 뿐입니다.

한국전쟁은 시인 박인환의 정신에 깊숙이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 상처는 곧 허무주의로 나타났으며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극복하지 못한 그의 한계가 되었습니다. 사실 박인환은 <샤르트르와 실존주의>라는 글에서 사르트르를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는 행동철학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소박한 감상주의를 바탕으로 한 허무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가 김수영처럼 4·19 혁명을 겪으며 1960년대를 맞이했더라면 어쩌면 허무주의를 극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전쟁은 모든 것을 무효로 만들고,
전쟁은 모든 것을 황폐화하고,
전쟁은 살아 있는 것 자체를 절망으로 만듭니다.

박인환
1926년 8월 15일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1956년 3월 20일 31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인제공립보통학교를 다니다 가족이 서울로 상경하자 덕수공립보통학교로 전학했으며, 경기공립중학교를 다니다 영화에 빠져 만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퇴했다. 그 후 명신중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평양의학전문학교를 다니다 해방이 되자 중퇴했다. 그는 '마리서사'라는 책방을 운영하며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으며 많은 문인과 교류했다. 마리서사는 그가 시인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1946년 《국제일보》에 <거리>를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 시인으로 인정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을 남겼으며 <아메리카 영화시론>을 비롯해 많은 영화평을 쓰기도 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번역하여 시공관에서 신협에 의해 공연되기도 했다.


댓글(2)

  • 2012.06.25 13:51

    박인환 하면 목마와 숙녀가 깊이 박혀있기 때문일까요..
    담담함에서 더 큰 비극이 느껴집니다.

    • 2012.06.25 18:40 신고

      저도 여강여호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박인환 시인을 생각하면 <목마와 숙녀><세월이 가면>제일 먼저 떠오르지요. 비 오는 저녁이면 라디오를 타고 <목마와 숙녀>가 가끔은 나올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 <어린 딸에게>가 머리에 많이 남았습니다. 여강여호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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