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고단한 삶을 노래한 시, <청산별곡>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합니다. 며칠 전만 해도 가뭄을 걱정했는데 이제는 물난리를 걱정하며 행여 비가 더 오면 어쩌나 근심하고 있습니다. 나라는 재정위기에 봉착했고 지방자치단체들은 복지예산이 바닥났다고 울상입니다. 점입가경으로 가계부채는 나날이 더 늘어나기만 합니다.

최근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는 있지만, 고용 없이 성장 일변도인 대기업은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6조 7000억 원으로 2분기 최대 실적이라고 떠들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MB정부의 대기업 중심 정책과 백혈병으로 죽어간 삼성 근로자의 희생, 외국보다 국내에서 비싸게 휴대전화를 판 결과여서 슬프고 화가 납니다. 정부는 서민보다는 대기업이나 부자들 편이고, 객관적이어야 할 언론은 대기업과 권력의 눈치를 살피느라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출처: 뉴시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웃이 서로 잘 사는 길은 과연 없을까요? 정치政治는 부정不正을 바로잡아 나라를 다스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네 정치가들은 스스로 부정不正을 저지르고 국민을 속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고려가요로 알려진 <청산별곡>을 읽으면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방식은 별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특히 〈청산별곡〉 5연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어듸라 더디던 돌코/누리라 마치던 돌코/ 믜리도 괴리도 업시/마자셔 우니노라”를 해석하면 “어디로 던지는 돌인가/누구를 맞히던 돌인가/미워한 사람도 사랑한 사람도 없지만/맞아서 우노라”입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어느 날 봉변을 당해도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열심히 살지만 가난함을 벗어날 수 없는 삶, 세대를 거듭하고 반복되는 절망적인 삶입니다. 이러한 절망적 현실을 피해 청산이든 바다든 어딘가에 숨어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권력은 국민한테서 나옵니다. 아주 당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드라마에서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알고 피하라고 있는 것이다’라는 대사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명분을 만들고 국민의 고혈을 짜냅니다. 국민을 위한다는 말에 해당하는 권력자들이 말하는 '국민'은 단 10퍼센트도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법은 90퍼센트의 국민에게는 평등하지 않고 마치 10퍼센트의 기득권층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합니다.

고려 시대 가요인 <청산별곡>의 저자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끼 묻는 쟁기’나 ‘경작하던 밭’과 같은 구절을 보면 농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어 힘들고 외롭고 의욕마저 상실한 상태입니다. 제정신으로는 도무지 살아갈 수 없어 현실을 떠나고 싶은 심정입니다. 지은이는 누군가를 특별히 미워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평범한 사람일 뿐 아니라 낮에 그럭저럭 지내도 저녁에 누구 하나 찾아오는 이 없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지은이는 왜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없게 되었을까요? 경작하던 밭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고 자신이 사용하던 농기구를 이끼가 낀 채로 버려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누구를 원망할 기운조차 없는 듯합니다. 사랑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매일 경험하는 현실은 또다시 아픔을 줍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형벌입니다. 희망을 거세당한 그에게 청산과 바다는 도망가고 싶은 곳이고 도망갈 수 없는 상황에서 술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현실을 잊고 벗어날 수 없으니 그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출처: 민중의 소리)

<청산별곡>의 저자가 살았던 땅에서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사람이 내일을 걱정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힘없는 그들에게 제발 돌마저 던지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바로 그들이 권력자에게 권력을 부여한 사람들이니까요. 그들은 곧 기업을 움직이는 근로자이자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이고, 오는 12월 9일 이 나라의 대표자를 뽑을 투표권자이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돌을 던지지 마세요.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까요!

청산별곡靑山別曲

고려 시대의 작품으로 〈가시리> <서경별곡>과 아울러 가장 뛰어난 고려가요 중의 하나이지만 누구의 작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전문이 《악장가사樂章歌詞》에 수록되었고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에는 제1연 및 곡조가 실려 있다. 옛 문헌에서 제목이나 해설을 찾을 수 없어 고려 시대의 노래라는 확증은 없지만, 형식이 《서경별곡西京別曲》《쌍화점雙花店》과 유사하고 언어 구사나 상념 ·정조가 조선 초기 가요의 건조함과는 판이하므로 고려 시대의 가요로 보고 있다. 형식은 전편이 8연, 매연은 4구, 매구의 운율은 3 ·3 ·2(3)조이며 연마다 후렴구가 있다.

댓글(4)

  • 2012.07.09 12:44

    청산에 살으리랏다 하는 게 어디 고려시대 민초들뿐이겠습니까.
    이 시대 비루한 민초들에게는 오히려 이상향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 2012.07.09 16:19 신고

      동감입니다. 고단한 삶이지만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 2012.08.10 05:36

    부당한 일 당했다고
    주민들과 국가 재산에 피해주고
    전경패서 반 죽이고 할 소리가 맞나요
    연행된사람들은 다쳤다고 소송내서
    돈 챙기고 나오면 그만이지만
    전경들은 시위소리만 들어도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욕들으며 서있다가
    죽도록 싸 맞을때나 겨우 방패들고
    진압한뒤에 쌍욕에 별 저주는 다 듣고
    찜찜하고 서럽고 또 시위나갈까 무서워서
    잠도 못자요 시위백날 해봤자
    다치는건 대한의 청년 남의집 귀한자식입니다

    • 2012.08.10 16:00 신고

      가만히 있는 전경을 때리고 욕하는 사람이 있다면 두둔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신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을 용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우리 사회에서 전경이 국가 폭력, 공권력 폭력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나약한 전경 뒤에서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리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단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땅에 불의가 있는 곳이면 언제나 시위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시시비비를 온당히 가리지 않는다면 결국 99퍼센트의 국민이 어려움을 당할 겁니다.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을 보시면 경찰특공대원조차 국가 폭력, 공권력 폭력의 희생자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생각비행이 이 땅의 모든 시위자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남의 집 귀한 청년을 해코지하려는 마음으로 시위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권력이 폭력을 행하지 않는데 시민이 먼저 가해하는 일은 이제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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