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정서를 담은 詩, 정호승의 <또 기다리는 편지>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한낮의 햇볕을 피하고 싶을 정도로 뜨거운 요즘, 무더위를 식히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으시도록 정호승 시인의 <또 기다리는 편지>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이 시는 1982년에 출간된 정호승의 두 번째 시집인 《서울의 예수》에 담겨 있습니다. 이 시집은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이기도 합니다.
 
1980년대 정호승의 시에 나타난 서울은 밝은 모습이 아닙니다. 군사정권 아래서 바라본 현실이 밝을 수는 없었겠지요. 정호승의 시선은 소외되고 외로우며 하루하루 힘들게 연명하는 우리 주변 인물들을 향해 있습니다. 시인은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합니다. 그래선지 더 슬프고 아프게 다가옵니다. 

정호승 시인은 2009년 경향신문과 나눈 인터뷰에서 “76년 김명인·김승희·김창완 시인 등 젊은 시인들과 함께 ‘반시(反詩)’라는 동인을 만들었습니다. 60년대 선배 시인들이 난해하고 추상적인 시들을 많이 썼는데, 우리는 ‘일상의 쉬운 언어로 현실의 이야기를 시로 쓰고자 한다’는 의미로 ‘반시’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죠.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경향과의 만남] 등단 37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시인 정호승)라고 말했습니다.

1980년대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서울이 결코 희망적인 도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일반인도 그렇게 느낄진데 감수성이 충만한 시인에게는 어땠을까요? 서울이라는 숨막히는 공간에서 희망은 절망으로, 절망은 더 큰 절망으로, 기쁨은 슬픔으로, 슬픔은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정호승은 절망스러운 희망을 '기다림'으로 표현합니다. 그에게 희망이란 곧 기다림이었습니다. 모순이 가득하고 잘못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시인은 묵묵히 기다립니다. 사랑하는 사람보다 조금 먼저 가서, 조금 더 앞의 세상을 바라보고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은 2012년의 서울에서도 유효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광장에 나와 웃을 수 있는 세상, 더 많은 사람이 아픔 없이 사랑을 노래하는 세상, 강남과 강북이 물질적인 편견으로 나뉘지 않는 세상, 남과 북이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세상.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고 견디면 더 좋아지리라는 기대로 그런 세상을 기다립니다. 꿈꿉니다.

또 기다리는 편지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벽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라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평론가 정과리는 "한국 민중의 전통적 감성에 깊이 몸담고 있는 시인이다"라고 정호승 시인을 평했습니다. 정호승의 시를 읽어보면 그 의견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고려가요의 <가시리>, 정지상의 <송인>, 김소월의 <진달래꽃> 등 교과서에서 배운 전통적 정서는 정호승의 <이별노래><또 기다리는 편지><우리가 어느 별에서><새벽편지><슬픔이 기쁨에게> 등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이별노래><또 기다리는 편지><술 한잔><수선화에게> 같은 아름다운 시에 양희은, 이동원, 김현승, 안치환이 곡을 붙인 노래는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지요. 특히 <부치지 않은 편지>는 김광석의 유작앨범에 수록되기도 했습니다.

앞서 정호승 시긴이 갖춘 특유의 기다림의 정서를 언급했는데요, 어쩌면 기다림이란 허무로 이어질 수도 있는 미묘한 감정입니다. 기다림의 끝이 결국에는 더 긴 기다림의 출발점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기다림'이라는 소극적 감정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한계를 극복하고 일어서는 길은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세상을 바꾸며 사는 삶이 아닐까요?

<아버지>에서 "믿는 도끼에 찍힌 발등만 쳐다보며/내 집 한 칸 없이 살아오신 아버지"처럼, <서울의 예수>에서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는 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람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은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수는 절망의 끝으로 걸어간다"고 표현된 예수처럼 절망은 여전히 우리 앞에 버티고 있기에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이제 절망이란 벽을 조그만 희망이라는 망치로 내리치면서 벽이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 끝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은 시(詩)의 시대가 아니라고 합니다. 현실을 슬퍼하고, 비판하고, 기뻐하고, 괴롭다고 가슴을 치기도 하고, 욕도 내뱉던 시의 시대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누구보다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고 표현했던, 아름다운 미사여구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시를 쓰는 시인이 그립습니다.

정호승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도시 변두리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전국 고교문예 현상모집에서 <고교문예의 성찰>이란 글이 당선되어 문예장학금을 지급하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으며, 같은 대학의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제대 후에《한국일보》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당선됐다. 김요섭 선생에 의해 《현대시학》에 시가 추천되기도 했으며, 1973년에 《대한일보》에 <첨성대>라는 시가 당선되어 《1973》 동인지를 시작했다. 1982년에는《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위령제>가 당선되었다.
 
1976년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숭실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김창완, 권지숙, 이종욱, 하종오, 김명인, 김명수, 김성영 등과 《反詩》 동인지 활동을 했다. 정호승 시인이 참여한 '반시'동인지는 “삶은 곧 시다”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것들의 시화(詩化)가 중요하다. 꽃이나 사랑 등의 관념적 어휘는 배제한다”며, 예술성은 지키되 시가 오늘의 현실인 삶의 문제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시 동인들이 만든 동인지 《반시》는 1978년 세 번째 동인지를 만들며 상업화되는 시단을 비판하고 동인지 중심의 시단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오월시》 등으로 동인지를 양적으로 확산하는 데 이바지했다. 하지만 1979년 군사정권에 의해 동인지가 불법적인 정기간행물로 규정되어 박해를 받았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서울의 예수》《새벽편지》《별들은 따뜻하다》《사랑하다 죽어버려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눈물나면 기차를 타라》 등이 있으며, 시선집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산문집으로 《정호승의 위안》, 어른을 위한 동화집 《항아리》《연인》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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