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의날에 읽는 시,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성년의날을 맞아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이란 시를 소개합니다. <입 속의 검은 잎>이라는 시로 유명한 기형도 시인은 1960년에 태어나 1989년에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젊음은 태양처럼 빛날 수 있지만 청춘기엔 불안한 마음에 고민하고 방황하는 일도 많이 생깁니다.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할 문제라도 지금은 밤을 새워 고민할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기형도의 시는 는 이로 하여금 과거의 길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단순히 돌아봄이 아니라 찬찬히 살펴보게 하는 힘이라고나 할까요.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잛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시인

기형도를 처음 만난 1992년 여름날이었습니다. 그의 시집을 처음 읽었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다시 천천히 그의 시를 읽었습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답답함과 허무함이 몰려오더군요. 또다시 시를 읽었습니다. 답답함과 허무함이 내 안에 있는 절망과 슬픔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는 듯했습니다. 다시 그의 시를 읽었습니다. 그러고는 밤새 술을 마셨습니다. 창 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감상에 젖기 쉬운 20대에 저는 기형도를 통해 스스로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시간을 얻었습니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다른 사람보다 재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느낄 때는 오히려 절망감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그 절망은 극복의 대상이지 회피의 대상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이 일은 나에게 맞지 않아!" 하고 회피하며 다른 일을 찾아 나서거나 자신에게 맞는 일이 없다며 투덜댑니다. 어쩌면 이 세상엔 자신에게 딱맞는 일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맞다고 스스로 믿고 해야 할 일만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5월의 태양처럼 그러한 믿음이 빛날 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노라"라는 시인의 삶에 대한 인식은 사랑을 다시 찾아 나서는 희망의 한걸음입니다. 그의 언어는 허무하지만 아주 따듯한 시선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살았던 1960~1980년대의 우울한 유년시절과 부조리한 세계를 추억의 공간에서 시로 풀었습니다. 그러한 행위로 시인은 암울한 시대와 개인적 슬픔과 절망을 희망으로 극복하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시인 기형도는 1989년 3월 7일 탑골공원 뒤편에 있는 작은 극장에서 첫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보지 못하고 혼자 죽었습니다. 《입 속의 검은 잎》 해설을 쓴 비평가 김현은 "좋은 시인은 그의 개인적·내적 상처를 반성·분석하여, 그것을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이 맞다면 기형도는 좋은 시인임이 분명하겠지요. 


기형도

1960년 2월 16일 경기도 연평에서 출생하여 1989년 3월 7일 종로 파고다극장에서 심야영화를 보다 뇌졸중으로 죽었다.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기자로 활동했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로 등단했으며 강한 개성을 담은 독특한 시들을 발표했다. 《입 속의 검은 잎》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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