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에 읽는 허수경의 <목련>과 <나는 스물 넷, 아버지>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앞으로 월요일마다 생각비행 편집실에서 뽑은 시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선정기준은 딱히 없지만 절기와 기념일에 맞는 시를 골라서 생각비행 편집실의 감성을 담아 전하겠습니다. 내일은 어버이날입니다. 이를 기념하여 <목련>과 <나는 스물 넷, 아버지>란 시를 골랐습니다.

목련

  구정물에 손 담그면
  하릴없이 저무는 저녁
  관절염 절룩이며 이는 바람이
  쉬엄 쉬엄 뜨락으로 나서고
  당신의 발자욱마다 흩날리는 목련은
  바람부는 한 생애를 빚네

  어머니, 봄이 갑니다.


나는 스물 넷, 아버지

  전쟁을 겪고 실업자로 떠돌다 전쟁 전부터 아는 여인과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고 기르고 이제는 진물이는 눈가로
  무덤이 떠오른다
  조국이여, 나의 아버지에게 이름 석 자 등기된 한 뼘의
  땅이라도 허락해다오
  흔하게 늙어온 가난한 한 남자가
  지금까지 착하게 살고 있다

 

허수경의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를 20년 전에 읽었습니다. 벌써 20년이 흘렀군요. 20대 시인의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20년 후, 40대의 가슴을 울컥하게 합니다.

<목련>은 성숙한 여인에게 묻어나는 따뜻함과 쓸쓸함으로 어머니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요즘은 봄이 너무 짧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로 가는 것 같습니다. 3월의 바람이 핏줄을 타고 흐르면 곱게 핀 목련, 개나리, 진달래를 보러 가던 봄은 언제였던가요? 언제나 함께 계시리라 생각했던 어머니의 깊게 주름진 얼굴과 거북등처럼 딱딱해진 손등이 마치 목련이 떨어지는 쓸쓸한 눈물 같습니다. 목련처럼 짧은 봄, 어머니께 전화라도 해야겠습니다.

이 땅에 말없이 살아온 우리의 아버지, 아니 내 아버지는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합니다. 가난한 아버지의 아들인 나도 가난합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시집이 나온 1988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이 땅에 말없이 순종하며 착하게 살았고 또 그렇게 살아가겠죠. 그렇게 살면 왜 가난해야 하는 걸까요?
 <나는 스물 넷, 아버지>에서 "조국이여, 나의 아버지에게 이름 석 자 등기된 한 뼘의 땅이라도 허락해다오"라는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허수경
1964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실천문학》에 <땡볕> 등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혼자 가는 먼 집》《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등이 있다.
소설가 기원은 "허수경이 갖는 괴물 같은 힘은 어디에서 솟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사랑에서, 그렇게 크고 넉넉한 사랑을 얻기 위한 고통과 몸부림에서 연유한 것이리라. 또한 그만큼 크고 깊은 은총이 없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허수경은 저주와 은총을 함께 받은 시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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