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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서울의 봄> 돌풍과 아직 끝나지 않은 반란 세력의 부역

by 생각비행 2023. 12. 22.

전두환과 노태우 신군부의 군사반란을 조명한 영화 <서울의 봄>의 개봉으로 올해 12월 12일 극장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던 한국 영화계에서 개봉 한 달여 만에 900만을 넘어 1000만 관객을 바라보는 영화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마음속에 12.12 군사반란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생각비행은 그간 전두환과 노태우가 저지른 악행과 이후 행보에 대해 꾸준히 알려왔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전두환 사망을 보는 우리의 시각 : https://ideas0419.com/1245 

5.18 광주민주화항쟁 41주년에 살펴보는 전두환 일가의 세습 : 
https://ideas0419.com/1182 

쿠데타 40주년 자축연 벌인 전두환을 단죄하라 : 
https://ideas0419.com/1017 

미국 비밀 전문, 전두환이 5.18 주범임이 드러나다 : 
https://ideas0419.com/838 

한국을 민주화 사회로 이끈 결정적 운동, 6월 항쟁 : 
https://ideas0419.com/155 

다시 기억해야 할 5.18 광주민주화운동, 신군부의 독재와 언론·방송의 굴종사 : 
https://ideas0419.com/145 

 

관객들의 말처럼 역사 자체가 '스포일러'라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이라고 해도 어떤 내용인지는 잘 아실 겁니다.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으로 가까스로 찾아온 '서울의 봄'은 불과 두 달 만에 전두환과 노태우를 위시한 하나회의 군홧발에 짓밟혔습니다. 영화 엔딩에서 보이듯 반란에 성공한 전두환 이하 하나회 멤버들은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공기업 사장 등등을 역임하며 그야말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반란을 막고자 애쓰던 참군인들은 유명을 달리했거나 성공한 반란군들로부터 온갖 고문과 오욕을 당해야 했죠.

 

출처 – 네이버 영화

 

극에서 정해인이 분한 오진호 소령은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큰 주목을 끌었습니다. 모티브가 된 김오랑 소령의 실제 이야기가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일 텐데요. 그는 영화에서처럼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지키다가 총격전 끝에 전사했습니다. 하지만 전두환이 사형 선고를 받고 사면된 후 호의호식하다 죽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김오랑 소령의 형 김태랑 씨는 불과 2년 전 방송 인터뷰에서 "내가 안 이러는데 왜 이 생각만 하면 눈물이 자꾸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라며 "왜 사람을 죽였느냐 말이야. 제압하면 되는데 왜 죽였냐고" 하면서 한탄했습니다. 또한 김오랑 소령의 기일을 지키는 조카 역시 "반란군에 희생된 삼촌은 말이 없는데 전두환 씨는 아직도 반성은커녕 떵떵거리고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의가 살아 있는 나라입니까"라며 오열했습니다. 

한참 뒤늦은 2014년이 돼서야 보국훈장이 추서됐지만 국방부는 한결같이 12.12 희생자들에 대한 예우에 소극적(?)입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후예들이라 그런 걸까요? <서울의 봄>의 이례적인 성공으로 국방부는 과거와 같은 군사반란은 절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고 발표하며 12.12 군사반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출처 - MBC

 

하지만 원론적인 인정 이외에는 받아들이는 것이 없습니다. 반란군에 저항하다 전사한 김오랑 중령과 정선엽 병장에 대한 추모비 건립이 국회에서 진즉 통과됐는데도 육사와 국방부의 반대로 지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사와 국방부는 이들의 명예회복 조치에 대한 계획을 묻는 기자에게 6.25 전사자 등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어렵다고 답했고, 정선엽 병장 유족이 제기한 손배 소송에 대해서도 이중배상을 근거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배제 이슈까지 생각해보면 육사와 국방부는 일본 황군이 정신적 뿌리이며 군사반란이 전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의구심이 듭니다.

영웅들이 목숨을 걸고 지킨 정병주 사령관 역시 총상을 입고 강제 예편 당한 뒤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던 중 행방불명되어 1989년 야산에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 내렸지만 언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의문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속에서 정우성이 분한 이태신 장군의 모티브인 장태완 사령관 역시 기구한 운명인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전두환과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군사 반란에 끝까지 저항했던 이들 중 한 분인데요,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은 드라마 <제5공화국>의 유명한 장포스 장면을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출처 - 웨이브

 

장태완 장군은 12.12 군사반란 성공 직후 반란군에 체포되어 장기간 고문당했습니다. 이등병으로 강등되는 모욕을 겪은 끝에 강제 전역까지 당했죠. 이후로도 오랜 기간 가택연금을 당했고요. 그의 아버지는 반란군에게 잡혀 가서 고문당하는 아들의 일로 충격을 받아 술로 연명하다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죠. 어려움 속에서도 서울대 자연대 수석을 할 만큼 총명했던 장태완의 아들은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어 할아버지 산소 근처에서 꽁꽁 얼어 의문사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뒤에 부인은 자살로 생을 마감해 문자 그대로 전두환의 쿠데타에 의해 한 집안이 풍비박산 났습니다. 입맛이 참 씁니다.

 

출처 - MBC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하나회 척결에 나섰습니다. 그러자 12.12 군사반란의 피해자였던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과 이건형 전 3군 사령관 등이 전두환, 노태우 등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한 34명을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고소장에는 전두환, 노태우 등이 정권 장악을 목적으로 하나회 인맥을 동원해 일으킨 군사반란이며, 군 형법상 반란죄와 내란목적 살인죄를 저질렀다고 명시했습니다. 실제 피해자이자 목격자들이 나서서 고소를 했으니 법적인 단죄가 시작되겠구나 싶었죠.

하지만 이듬해 검찰의 결정은 상식 밖이었습니다. 전두환과 하나회 일당을 전원 불기소 처분했거든요. 전두환과 노태우는 기소유예했습니다. 죄는 있으나 벌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조준웅 서울지검 1차장은 "사회의 안정과 국가발전을 위하여 이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소추처분을 유예하는 결정을 하였다"며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후세에 맡기고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이번 검찰의 결정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습니다. 참으로 오만방자한 발언이 아닙니까? 검찰이 무슨 자격으로 사건의 법리와 역사성마저 제멋대로 규정한단 말입니까?

 

출처 – 유튜브

 

한술 더 떠서 검찰은 5.18 광주학살 피해자 322명이 고소한 사건 역시 뭉갰습니다. 검찰은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공소권 없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이른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헌정 사상 최악의 궤변으로 말입니다. 한부환 당시 서울지검 1차장 검사는 "새 정권이 출범하고 새로운 헌법질서가 실효화된 이 사건의 경우 피의자들이 정권창출 과정에서 취한 일련의 조치나 행위는 사법심사가 배제된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밝혔습니다. 쿠데타가 실패하면 내란이지만, 새로운 정권과 헌법질서를 창출한 정치적 변혁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없다는 궤변이었는데요, 이런 논리로 사실상 검찰이 신군부에 면죄부를 준 셈이 됐습니다.

 

출처 - MBC

 

현재의 검찰 공화국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잘 알 수 있는 역사의 한 장면입니다. 그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면서 뻔뻔하게도 영화를 아직 안 봤다고 인터뷰까지 할 정도입니다.

 

출처 - MBC

 

가로세로연구소를 비롯한 극우 유튜버 등의 세력들은 <서울의 봄>을 이른바 '좌빨 영화'로 낙인 찍고 음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가 근현대사 역사 수업의 일환으로 단체 관람을 계획했는데요. 6학년 사회과 교육과정과 연계해 민주 시민의 역량을 강화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극우 유튜버들이 이 학교의 통신문을 공개하며 분탕질을 하자 아이들의 안전 등을 문제로 단체 관람을 취소하는 해프닝이 발생했습니다. 경북의 한 초등학교도 단체 관람을 추진했다가 극우 학부모들의 반대가 이어져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고요. 이 소식을 들은 대다수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언제부터 역사적 사실을 말하거나 영화로 만들면 좌빨이 되냐"며 성토가 줄을 이었습니다. 현실에 군부 독재 찬양 세력이 존재하지만 대다수의 상식적인 국민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만큼은 고무적입니다. 특히 군사반란이라는 어두운 한국 현대사를 다룬 영화에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반응이 폭발적이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출처 - MBC

 

한 관람객은 <서울의 봄>을 관람했을 때의 최고 심박수를 인증한 사진을 올려 스마트워치를 차고 영화를 관람하는 이른바 '심박수 챌린지'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12.12 군사반란을 잘 몰랐던 관객은 물론, 이미 역사적 결말을 아는 관객들까지도 전두환과 하나회의 파렴치함에 분노하고 있음을 요즘 감성의 이벤트가 드러내고 있습니다.

 

출처 - MBC

 

이런 밈은 실제 행동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전두환의 유언에 따라 파주에 유해를 안장하려던 계획이 무산됐습니다. 전두환 가족이 매입을 추진하던 파주의 땅 소유자는 매물을 거둬들였고 앞으로도 팔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 매수자가 개발을 위한 구 당국의 동의 절차를 얻지 못한 데다 전두환의 유해 안장에 대한 지역사회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계약 자체가 무산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로써 2021년 사망한 전두환은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반겨주지 않아 사망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오도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어 서울 연희동 자택에 임시 안치된 상태입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연희동을 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출처 – YTN

 

<서울의 봄> 흥행으로 올해 12월 12일에는 참군인인 김오랑, 정선엽 등의 의로움이 재조명되며 추모도 이어졌습니다. 정선엽 병장의 모교에서는 44년 만에 첫 추모식이 개최되었고, 사망 당시 재학 중이던 조선대에서는 명예졸업장 추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올해 김오랑 중령 추모제에는 유족뿐 아니라 150명이 넘는 추모객이 모였습니다.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지금의 대학생들은 독재의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대자보를 대학마다 붙이기도 했습니다.

 

출처 - CBS

 

민주주의를 지켜온 것은 힘 있는 권력이 아니라 선량하고 평범한, 하지만 자기 자리에서 본분을 다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되새기고 있습니다. 올해 12월 12일부터 이어진 이 흐름이 계속되어 내년 12.12부터는 전두환과 신군부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복구, 그리고 이에 저항했던 사람들에 대한 추모가 더 큰 조명을 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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