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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킬러문항 배제로 역대급 불수능, 되레 사교육 부추긴다

by 생각비행 2023. 12. 26.

올해 수능 출제위원장인 정문성 경인교대 교수는 지난 11월 16일 수능 시작 직후 브리핑에서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에 따라 소위 '킬러문항'을 배제했으며,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도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출제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수험생들이 이 말에 동의했을까요?

 

출처 - SBS

 

지난달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자 수험생들이 느낀 감정은 분노와 허탈감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킬러문항'과 '사교육비 경감' 등 많은 말이 횡행한 가운데 치러진 이번 수능은 역대급 불수능이었으니 말입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올해 수능은 의대 열풍, 킬러문항 배제의 영향으로 27년 만에 졸업생 응시자 비율이 가장 높았다고 하죠. 고난도 킬러문항이 없어 '물수능'이 되리라는 예측과 달리 국어와 수학 영역이 어렵게 출제되면서 재수생이 수능 성적 우위를 앞세워 대입 정시 전형에서 고3 재학생보다 두각을 보이는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 사달의 제공자는 윤석열 대통령이었습니다. 지난 6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아 뜬금없이 사교육비 유발 주범이 수능의 이른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라고 지적했으니까요.

 

출처 - 선데이뉴스

 

수능에서는 변별력 확보라는 명분하에 공교육 범위를 벗어난 킬러문항이 출제돼왔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사교육 경쟁이 벌어져 이에 파생된 여러 사회 문제가 나타났다는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킬러문항을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언급하자마자 교육부와 국민의힘은 수능 때려잡기에 나섰습니다.

 

출처 - MBC

 

다들 아시겠지만 수능은 완벽한 수험제도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조정이 필요하고 끊임없이 보완이 필요한 하나의 제도일 뿐입니다. 그런데 전문가가 아닌 대통령이 수능을 5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불쑥 킬러문항의 문제를 언급하며 이것만 없애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을 던지니, 그 밑으로 부화뇌동해 무조건적으로 따르다 보니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출처 - 교육부

출처 - JTBC

 

당시 교육계에선 단순히 킬러 문항을 줄인다고 사교육비가 경감되는 게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교육부에서조차 최근 발표에서 사교육비 증가의 주요원인은 '코로나19 장기화로 학교 대면 교육이 축소되면서 학습 결손 우려가 커진 탓'이라고 설명한 바 있고요. 또한 2021년 이후 교육 공정성 이슈가 확산하는 과정에서 정시 전형이 확대되고 이에 따라 사교육이 크게 증가했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대학 입시 제도는 학원 대책, 고교 서열화에 따른 교육 불평등, 대학 서열이 임금 격차로 이어지는 사회 불평등까지 겹쳐 있어 정말 풀기 어려운 고차 방정식과도 같은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학부모가 걱정한 대로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태도가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길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는 국면이었습니다.

 

출처 - K trendy News

 

애초 '킬러문항'이란 정의 자체가 모호합니다. 여러 개의 핵심 개념을 적용하거나 연산이 지나치게 복잡하면 킬러문항이라는데, 교과 외 과정이나 개념을 가져온 문제라면 모를까 아무나 풀 수 있는 쉬운 문제만 시험에 내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교육당국이 지금까지 모든 수능 문제를 교육 과정 안에서 출제했다고 주장해왔으니 학생과 학부모가 우려를 거두지 못한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출처 - MBN

 

실제 수험생과 학부모의 반응은 이번 수능이 킬러문항이 나오기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나마 이전에는 예측이라도 가능한 고난도 문제였던 반면 이번엔 예측할 수 없는 고난도 문항이라는 차이점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수능이 끝난 이 시점에서 보면 결국 더 넓고 많은 범위의 사교육의 필요성이 커진 것밖에 없지 않으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출처 - 대전일보

 

이번 수능에서 만점자가 단 한 명뿐이었다는 것도 이를 방증합니다. 전 과목 만점자와 표준점수 최고 득점자가 모두 의대 입시 전문 학원에 다닌 재수생이었다는 사실까지 알고 나면 되레 사교육 없이는 좋은 수능 점수를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한 꼴이죠. 인터넷 커뮤니티에 유출된 이번 만점자의 대치동 종합반 학원 비용은 학원 비용 300만 원에 기숙사비 150만 원으로, 최소 한 달에 450만 원을 쏟아부었다는 얘기가 파다합니다. 재수를 10개월 준비했다면 사교육비의 최소 비용이 4500만 원에 달하는 셈입니다. 사정이 이러니 학원을 따로 다니지 않고 학교 공부 위주로 예습, 복습을 철저히 했다던 수능 만점자들의 얘기가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윤석열 정부는 고작 킬러문항 붙잡고 늘어지는 교육 정책으로 어떻게 사교육 시장을 바로잡겠다는 말을 꺼낸 건지,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앞으로 3년간 교육 정책을 어떻게 망가뜨릴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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