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주모자', '국가 반역자', '독재자', '학살자' 등으로 불리며 우리나라 현대사에 짙은 어둠을 드리웠던 전두환이 지난 11월 23일 오전 집 화장실에서 쓰러져 사망했습니다. 12.12 군사 쿠데타 동지인 노태우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뒤를 따른 셈이죠.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을 앓고 있었기에 사망 원인은 지병으로 파악되는데요, 많은 이들이 전두환은 평화롭고 평범하게 죽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12.12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 전두환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암흑기의 주범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단 한 번도 국민의 직선제 투표로 당선된 적 없는 유일한 대통령이죠. 이처럼 정통성과 거리가 먼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후 1995년 반란수괴, 내란수괴, 내란목적 살인 등의 죄목으로 기소되었습니다. 애초 사형이 구형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국민 여론과 관계없이 그해 사면되고 말았죠. 수감 기간은 2년에 그쳤습니다.
출처 - KBS
그는 죽는 순간까지 5.18을 비롯한 무수한 민주화운동 피해자와 희생자들에게 참회하거나 사죄하지 않았습니다. 죽기 전 추징금을 완납한 노태우와 달리 전두환은 1000억여 원에 이르는 추징금마저 미납한 채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인면수심'이라는 말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인간입니다.
출처 - 뉴스1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전두환의 유가족 역시 ᄈᅠᆫ뻔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부인인 이순자는 관련 비리나 의혹이 끊이질 않았고, 그의 가족은 건국 이래 최대 금융사기였던 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에 연루된 바 있습니다. 친인척을 동원한 부동산 투기 소문 또한 끊이질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순자는 2019년 남편 전두환에 대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망언까지 하여 국민을 분노하게 했죠.
출처 - PD수첩
전두환의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출판사를 운영한 장남 전재국은 2013년 아버지의 추징금 완납을 위해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하더니 그 뒤로 감감무소식입니다. 최근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에 유령법인을 만들어 비자금 계좌를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을 샀습니다. 차남인 전재용은 탈세 혐의로 수사받던 중 차명계좌에서 160억가량의 뭉칫돈이 발견되었고, 이 중 70억가량이 비자금 계좌로 흘러들어 간 것으로 확인돼 검찰에 구속됐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전두환의 빈소에는 5공 정치인이나 하나회 출신 군인들,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이 조문했고 이명박, 반기문, 노태우 부인 김옥숙 등이 근조 화한을 보냈습니다. 일반 시민의 조문은 거의 없다시피 한 반면 극우 유튜버나 태극기 부대들이 빨갱이 운운하며 소란을 피웠죠. 국민의힘 대선 후보인 윤석열은 전두환 사망과 관련해 조문을 가겠다고 하더니 2시간 동안 오락가락하다 결국 안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비웃음을 샀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선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는 전두환을 명백한 내란 학살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사죄 없는 그에게 조문 계획이 없다고 하여 선을 그었습니다. 전두환의 유가족은 5.18 관련 사죄에 대해 묻는 취재진에게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며 끝내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전두환은 국립묘지에 안 가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북녘땅이 보이는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고 싶다고 했는데요,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겠죠. 그는 안 가는 게 아니고 못 가는 겁니다.
출처 - JTBC
국가보훈처는 빈소가 차려진 날 전두환 측에 "국립묘지 안장 배제 대상"이라고 명확히 통보했습니다. 청와대 역시 "끝내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던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라고 밝히며 청와대 차원의 조화와 조문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국가장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장례에 대한 지원 역시 없다고 했죠. 노태우 사망 당시 '추모 브리핑'이라는 이름으로 발표가 있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사망 관련 브리핑'이라고 표현도 달리했습니다.
출처 - 뉴욕타임스
전두환에 대한 해외 언론의 평가도 비슷합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1월 23일 한국에서 가장 비난을 많이 받은 군 장성 출신 독재자가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1980년 광주에서 시민들을 살육했다(mowdown)고 상세히 소개했습니다. 한국인 사이에서 전두환이란 이름은 폭압적인 군사 독재자와 동의어라며 올림픽 등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독재 정치와 학살이라는 부정적 유산이 이를 압도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출처 - MBC
대부분의 시민은 전두환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한편으론 기뻐하고 한편으론 아쉬워했습니다. 학살자가 죽은 건 기쁘지만 죗값을 치르지 않고 사과 한마디 없이 죽은 건 너무 파렴치하다는 거였죠. SNS에서는 오늘 저녁은 타코야키나 문어숙회라며 독재자의 죽음을 풍자하는 얘기가 넘쳤고, 일부 정육점과 식당은 전두환 사망 기념으로 할인 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살아남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확한 역사를 기록하고 전두환을 단죄하는 것입니다. 20년 넘도록 뭉개고 있는 추징금을 전두환 일가로부터 받아내는 것도 남은 일입니다. 전두환은 약 956억에 달하는 추징금 외에 지방세 10억여 원을 미납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8년째 서울시 고액 체납자 명당에 그이 이름이 올라 있기도 했고요.
출처 - CBS
당사자인 전두환의 사망으로 말미암아 향후 추징금 환수가 불투명해진 상황입니다. 추징금은 가족 등 타인에게 양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법 재산인 것을 알고도 취득한 제삼자로부터는 추징이 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검찰은 미납 추징금 집행에 대해 법리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6월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두환 사망 뒤에도 상속재산에 대해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전두환 재산 추징 3법을 대표 발의했으나 법사위에 계류 중입니다. 조속히 처리하여 전두환 일가의 범죄 수익금을 모조리 받아내야 할 것입니다. 전두환을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역사에 어둠을 드리웠던 독재자가 모두 죽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을 반면교사 삼아 대한민국 역사에 다시는 독재자가 등장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하고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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